7월 30일 꽃동네 아이티센터 정창용 타대오 신부님 강론말씀
† 찬미 예수님!
내일 저는 아이티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가기 싫습니다.
더럽고 위험하고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은 그 곳에 내일이면 가야한다는 사실을 부끄러운 말이지만 피하고 싶습니다.
저는 11년 전에 아이티로 갔습니다.
아이티로 가기 전 꽃동네에서 사제생활을 시작했을 때 인기가 좋았습니다.
말을 좀 할 줄 알기에 수녀님들, 신자분들, 꽃동네 가족분들이 좋아해 주시는 가운데 2년을 행복하게 보내고 있을 때 였습니다.
하루는 수사님이 부르셔서 아이티로 가야하겠다고 하셨을 때 “여기가 너무 좋습니다.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이티에 가겠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아이티에 가게 됐습니다. 아이티에 도착한 순간 바로 후회했습니다.
먼지와 쓰레기 들... 대지진이 나서 39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후의 아이티. 공항인데도 냄새나고...
어떻게 하면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까 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티 꽃동네에 들어갔습니다.
꽃동네가 엄청 컸는데 엉망진창이었습니다. 덥고 먼지나고. 돌아가고 싶은데...
다음 날 아침밥을 주는데 신상현 야고보 수사님과 같이 갔었더랬는데 수사님 말씀이
“그래도 먹을만하다~ 야!” 하시며 너무 잘 드셨습니다.
수사님은 그날 바로 한국으로 떠나고 그렇게 저는 버려졌습니다.
마을을 돌아다니다 어떤 사람이 나체인 채로 온몸에 대변이 붙어 딱정이가 진 상태로 널부러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 수건, 대야 어느 것도 쓸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펌프에서 물을 떠와서 대변 딱정이를 떼 주고 급한 대로 시트를 걷어다 몸을 닦아 주었습니다.
흑인들에게는 좀 특이한 냄새가 납니다.
그렇게 개인적 체험을 하다가
문득,
“창용아,”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네가 남들보다 공부를 잘했냐, 남들보다 기도를 많이 했냐,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했냐?
네가 훌륭해서도 아니고 네가 잘하리라 기대도 않는다.
너를 훌륭히 키우려고 한다” 는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11년이 지난 지금도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을 보면 신부로 살면서 그들에게 할 수 있는 것보다 그들이 나를 사고치지 않은 신부로 살수 있게 해 주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특별히 아픔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 앞에서 고통으로 숨을 헐떡이고 있을 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무력감에 대한 절망적인 체험. 그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기도 밖에는 없다는 느낌.
이게 뭐냐면, 그곳이 어떤 상황이냐면, 그곳에 98개 수도회가 있는데 수녀님 등 봉사 온 사람들 얘기에 의하면 길거리에 걸인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병원에 가면 버려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보통 병원 한 쪽 구석에는 5~6구의 시체들이 쌓여 있습니다.
병원인데도 여자들이 나체 상태로 온 몸에 각질을 뒤집어 쓰고 그 각질 밑에는 염증으로 곪아 있습니다.
누워 있는 한 여인을 꽃동네로 옮기려고 등 밑으로 양 손을 쑥 들이밀어 팔로 안았는데 손 끝에 뭔가 물컥 만져집니다. 각질 밑에서 염증으로 살이 곪고 있었던 것입니다.
꽃동네의 영성이 좋다는 게 그냥 있는 게 아닙니다.
다음 날 피부병이 옮았습니다.
그러자 마음 속에서 기도가 나왔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제가 이걸 받아들일 테니까 저 아주머니 좀 도와주세요!”
“하느님 제가 참을 테니까 저 할아버지 영혼을 구원해 주세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그나마 그 어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는 것.
이런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이티에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옆 사람 때문에 힘든 것이었습니다.
같은 공동체 안에 살고있는 상대방과 맞추는 것. ‘어떻게 자기와는 상의 한마디 없이 그걸 결정했느냐’고 따지는 것 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것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나 때문에 350명이 불편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내가 불편하면 같이 있는 사람 모두가 불편합니다.
저는 아무것도 없지만 그나마 그 자리 지키는 것입니다.
저는 전에는 죽는 순간 외롭게 죽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티에 선교하러 오셔서 평생을 그곳에서 사시다가 은퇴 후에도 고국(스페인?)으로 돌아가지 않으시고 계속 아이티에 남으신 신부님이 계셨습니다. 그 신부님이 외롭게 선종하셨을 때
‘외롭게 죽을 수 있는 것, 역시 은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또 하나의 가난함.
여기에서 가난한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 은총의 시작입니다.
제가 아이티로 가기 전 오웅진 신부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뭘 할려고 하지마. 뭘 하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같이 살면 돼”
해가 지날수록 하느님께서는 새로운 가르침을 주십니다.
아멘. -
엄은혁 안드레아 본당 신부님께서 이스라엘 성지순례 중 골고타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나오면서 타대오 신부님 전화를 받으셨다고 합니다. 우리 본당 공동체에 이러한 말씀이 필요하지 않을까 묵상하셨는 데 전화를 받으시고 ‘하느님께서는 그냥 그저 하시는 게 없구나’ 느끼셨답니다.
<받아 적어 글로 표현하다 보니 강론의도와는 좀 다르게 표현되었을 수 있습니다. 이해하시고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