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800년 전 침몰한 보물선 건지니 유물 3만여 점 나왔어요
입력 : 2022.12.22 03:30
수중 발굴 고려청자
▲ ①태안 해역에서 발견돼 보물로 지정된 고려 시대 청자들. ②작년과 올해 군산 고군산군도 해역에서 발견된 356점의 각종 도자기와 토기. ③태안 마도 2호선의 배 위에 쌓여 있던 나무를 걷어내자 청자 매병과 표찰이 발견됐어요. ④태안선 내부를 덮고 있던 흙을 제거하자 향로 뚜껑이 발견됐어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태안해양유물전시관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신출귀물(新出貴物), 태안 바다의 고려청자' 테마전을 지난달 25일부터 내년 6월까지 태안해양유물전시관에서 열고 있어요. 충남 태안군 대섬과 마도 해역에서 발굴한 유물 3만여 점 중에서 올해 4월에 보물로 지정된 고려청자 등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죠.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청자들을 땅속이 아닌 서해에서 건져 올린 거예요. 태안 등 서해안 일대에서 이처럼 많은 도자기가 발견되는 이유가 무엇이고, 어떤 중요한 유물들이 발견됐는지 좀 더 알아볼까요.
세곡을 운송하다 난파된 선박들
강이나 바다를 이용해서 사람이나 물건을 배로 실어 나르는 수운(水運)은 육상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전통 시대에 매우 중요한 운송 방법이었어요. 고려 시대에는 건국 초기부터 물길을 이용해 세금으로 거둬들인 곡물을 개경에 있는 창고로 운송했죠. 여기 쓰이던 배를 조운선(漕運船)이라고 해요. 조운선은 많은 세곡과 특산품을 옮겨야 해서 바다나 널찍한 강을 주로 이용했어요.
하지만 조운선이 항해 과정에서 풍랑과 암초·안개를 만나 침몰하는 사례가 기록에 자주 등장해요. 그중에서도 남부 곡창지대에서 올라온 배들이 지나가던 태안 해역 '안흥량'은 수많은 조운선이 침몰했던 곳으로 악명이 높지요. 원래 이곳은 지나가기 어렵다고 해서 '난행량(難行梁)'으로 불렸지만, 배가 안전하게 항해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부르다 보니 편안할 '안(安)' 자를 써서 '안흥량(安興梁)'으로 지명이 바뀌었다고 해요.
지금도 태안 해역에서는 많은 암초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요. 밀물에는 물에 잠기고 썰물에는 모습이 드러나는 암초들은 선박의 항해를 위협했어요. 또 많은 섬과 복잡한 해안선은 바닷물의 흐름과 유속에 변화를 줘 항해를 더 어렵게 했죠. 이런 지형적 특성 때문에 태안 해역에서는 수많은 배가 침몰했고 그 흔적이 바닷속에 그대로 남게 됐답니다.
2007년 태안군 대섬에서 침몰선이 발견된 이후, 마도 1~4호선까지 모두 5척의 침몰선이 연이어 발굴됐어요. 이 배들은 고려와 조선 시대 곡물과 특산품을 운반하던 조운선들로 추정됩니다. 태안 해역에서 발굴된 난파선 안에서는 얇은 나무 판이나 대나무에 먹으로 글씨를 쓴 표찰(標札)이 함께 발견돼 당시 화물의 출발지나 경유지·도착지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마도 1호선부터 3호선은 13세기 무렵에 전남 강진과 해남, 여수 등지에서 출발해 개경으로 가던 선박이었다고 해요. 조선 시대 선박인 마도 4호선은 '나주 광흥창(廣興倉)'이 적혀 있는 표찰이 여러 개 발견돼 이 배가 나주에서 화물을 싣고 서울 마포에 있던 광흥창으로 가던 조운선임을 알 수 있었답니다.
서해 바닷속에서 건져낸 보물들
태안 해역에서는 침몰선 5척과 유물 3만여 점이 쏟아져 나왔고, 뒤이어 안산과 인천·보령·군산 등 서해안 전역에서 비슷한 유물들이 발견됐어요. 바닷속에 가라앉은 배에서는 도자기와 곡물뿐 아니라 뱃사람들이 사용하던 생활용품까지 발견됐죠. 그중에는 고려청자 절정기인 12세기부터 13세기에 만들어진 다양한 청자도 포함돼 있어요. 이 과정에서 발견된 청자두꺼비모양벼루는 두꺼비가 머리를 들고 다리를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요. 표면에는 흰색과 검은색의 반점이 뚜렷하고, 등 부분은 움푹하게 깎아내서 먹이 잘 갈리도록 했어요. 고려 시대 청자로 만든 벼루는 여러 점이 남아 있지만 두꺼비 모양을 가진 것은 이 작품이 유일해요. 두꺼비의 특징을 잘 표현했으면서도 벼루의 기능까지 살린 이 벼루는 고려 시대의 독특한 미적 감각과 예술성이 돋보이는 작품이에요.
청자 사자형뚜껑 향로 2점은 몸통에 비해 큰 사자 머리에 날카로운 송곳니가 있고, 매섭게 뜬 눈에는 까만 눈동자가 찍혀 있어요. 사자는 용맹함과 위엄을 가진 동물로 불교에서는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상징으로 불상과 석등·석탑에 종종 등장합니다. 이 향로 뚜껑의 사자는 다른 사자들과 비교해 다소 파격적인 조형미를 보여줘요.
청자 매병(梅甁)도 눈길을 끌어요. 매병은 작은 입에 풍만한 어깨, 잘록한 허리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곡선을 가졌고, 구름 속을 노니는 학이 그려져 있어요. 고려청자를 대표하는 도자기 형태 중 하나지요. 입이 작아 겨우 매화의 앙상한 가지를 꽂을 수 있다고 해 매병으로 불렸고, 지금까지는 꽃을 꽂아 감상하는 화병으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마도에서 발견된 매병의 목에는 대나무에 글씨가 적힌 표찰이 묶여 있었어요. '중방(重房) 도장교(都將校) 오문부(吳文富) 댁에 참기름과 꿀을 준(樽)에 담아 올린다'는 내용인데요. 중방은 고려 시대 무신정권의 최고 회의 기구이며, 도장교는 정8품 이하의 무관, 오문부는 물건을 받을 사람의 이름이에요. '준'은 술통을 가리키는 말이죠. 청자와 함께 발견된 표찰은 수신처와 내용물을 적은 오늘날 운송장과 같은 거예요. 청자 매병이 화병으로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술이나 꿀·참기름을 담는 매우 실용적인 그릇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수중고고학과 난파선 발굴
육지가 아닌 바다와 강·호수 등에 남겨진 인간의 흔적을 찾아 연구하는 분야를 '수중고고학'이라고 해요. 우리나라에서는 신안선 수중 발굴부터 시작됐죠. 1323년 여름, 중국에서 일본을 향하던 무역선이 신안 앞바다에서 우연히 좌초됐어요. 1975년 전남 신안 섬마을 어부의 그물에 물고기 대신 이 배에 있던 중국 도자기 6점이 걸려 올라왔죠. 이 일을 계기로 650년 넘게 바닷속에 잠겨 있던 보물선이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됐어요.
1976년부터 1984년까지 해군 해난구조대의 협조로 중국 송·원나라 때 유물 2만7000여 점을 건져 올렸고, 일반인의 관심도 크게 높아졌어요. 2000년대부터는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고고학자들과 보존과학자들이 직접 수중 발굴을 진행하게 됐답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는 이를 전담하는 부서도 생겨났어요.
그 결과 작년과 올해에는 전북 군산시 고군산군도 해역에서 고려 시대 상감청자를 비롯해 조선 시대 분청사기와 백자 등 유물 356점을 추가로 발견하는 등 매년 중요한 성과를 내고 있답니다.
이병호 공주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기획·구성=조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