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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축복사역(22) / “관계 성숙으로 복을 받으라!”
+ 본 문 : 창 세 기 13장 1절 - 9절 (구약성경 15쪽)
1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2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3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4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5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6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7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아멘!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사랑하는 여러분 모두의 가정과 생업, 사랑하는 모든 자녀 손들에게,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의 축복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옆의 분들과 인사하겠습니다. “잘 되고 있습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기도한 대로 됩니다.” “축복한 대로 됩니다.”
특별한 인사를 하나 더 나누겠습니다. / ‘저랑 친해지십시오. 나중에 제 덕 볼 수 있습니다.’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성공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해본 재미있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머리가 좋아 성공한 사람들은 15% 뿐이었고, 인간관계가 좋아 성공한 사람이 85% 나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연구결과가 말해 주는 것은, 사람이 일류대학을 나오고 똑똑해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독불장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잘 났어도 혼자 힘으로는 장군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주위에 따르는 병사가 있어야 장군이 되는 것이지, 어떻게 혼자서 장군이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사람은 혼자서 살 수도 없고, 혼자서 성공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중요합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 부부관계, 형제관계, 친구와 이웃과 직장 동료관계, 교회 안에서 교우관계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관계의 성숙이 곧 신앙의 성숙이고, 관계의 성숙이 인격의 성숙이고, 관계의 성숙이 영적 성숙입니다.
우리가 인맥이라는 말도 합니다만 공부만 잘하고, 일 잘한다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그래서 요즘 성공의 키워드가 인맥이라는 말도 합니다. 그리고 전도의 열매도 인정받는 인간관계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아멘!
우리 성도들의 인간관계에 대해서 잘 말씀해 주는 성경이, 로마서 12장 14절 - 18절 말씀입니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아멘!
이 말씀을 보면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하려면, 먼저 “축복하라!” 축복의 사람이 되라고 말씀합니다.
그것도 보통 축복이 아니라, 나를 이유없이 괴롭히고 손해를 끼치고 어려움을 주는 사람을 축복하라고 하십니다.
유명한 미국의 전도자 디엘 무디는 만나는 사람마다 복을 빌었습니다. 아이를 만나도 축복했고, 술주정뱅이,
노름꾼, 깡패를 만나도 크게 축복을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가 축복한대로 되더라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축복했는데 그 아이가 성장해서 목사가 되고, 술주정뱅이 노름꾼이 변해서 새사람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축복의 근원입니다. 모든 사람을 축복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는 사람들까지 축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갚아 주십니다.
그리고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하려면, 성경은 “함께 하는 자가 되라!” 동행의 사람이 되라고 말씀합니다.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며 함께 하는, 동행의 사람이 되라고 말씀합니다.
기쁨은 함께 하면 배가 되고, 슬픔은 함께 하면 반으로 줄어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과 마음이 통해야 합니다.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일수록 모든 것에 대하여 함께 동행을 잘합니다. 기쁜 일이 있으면 함께 기뻐해줍니다.
슬픈 일이 있으면 밤새워 함께 슬퍼해 줍니다. 그렇게 인간관계가 원만한 사람의 집에 애경사에는 손님이 넘쳐납니다.
그런데 어떤 집은 손님이 적습니다. 그런 집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의 경조사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특별히 우리나라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민족의 병폐입니다.
사촌이면 가까운 사이인데 축하를 못하고 배가 아파 못삽니다. 이것을 한의학 이론으로 푸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음이 언짢거나 답답하면 한의학에서는 간기체가 생긴다고 합니다. 여기서 간 기체란 간 자체의 혈액순환이,
잘 안되 간 기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간 기능이 떨어지면 담낭에 담즙 생성이 잘 안 되고,
그래서 몸 전체에 혈액 순환이 제대로 잘 되지를 않기 때문에, 소화 효소 역시 잘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비장과 위장, 즉 소화기 계통에 영향을 주어 소화불량 현상이 나타나서 배가 아픈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웃는 자와 함께 웃어주고, 우는 자와 함께 울어주는 함께 동행하는 성도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하려면, 성경은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라!” 겸손한 사람이 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예수님을 보십시오. 우리 예수님은 한 번도 높은데 마음을 두시지 않고, 항상 낮은 마음으로 사셨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우리 예수님께서는 궁궐에서 태어나지 않고, 가장 낮은 말구유에서 인간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렇게 우리 예수님은 가장 낮은 곳에서, 낮고 천한 우리 인간들을 위해 사시다가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습니다.
우리나라 코메디 역사에도 보면 바보역을 맡았던 배삼룡, 이주일 같은 사람들이 모두 인기가 있었습니다.
바보는 바라볼수록 보고 싶은 사람들입니다. 왜 그럴까요? 바보스러움은 사람들에게 친밀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따지자면 바로 스스로 낮아짐 - 곧 자기보다 다른 사람들을 높게 여기는 겸손함 때문입니다.(빌 3:3)
지금까지 말씀을 요약하면, 성공하는 사람이 되려면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가져야 하고,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축복하라! 다른 사람과 동행하라! 다른 사람과 겸손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래서 제가 인간관계에서 오는 축복을 위해 특별한 축복인사를 하라 하는 것입니다.
‘저랑 친해지십시오. 나중에 제 덕 볼 수 있습니다.’ ‘서로 친해지십시오. 서로 덕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을 사람들은 ‘돈이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는 황금만능주의 세상이라고 합니다.
현대인들은 돈을 인생의 최고의 목적으로 삼고, 돈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맘몬니즘에 빠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앉아 있어야 할 자리에 돈이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돈 때문에 울고 돈 때문에 웃습니다.
돈이 나를 보호해 준다고 믿고, 돈이 나를 어려움으로부터 구해준다고 믿고, 돈이면 뭐든지 다 된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목숨 걸고 돈에 집착하다보면 내가 돈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새 돈이 나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아름다운 인간성은 상실되고 말았고, 인간사이의 의리와 사랑은 메말라지고 말았습니다.
돈 때문에 가족관계도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돈이 세상을 막된 세상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과거 가난해도 정답게 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당장 끼니 걱정을 하더라도 가정에 웃음이 넘쳐났었습니다.
1년 한 두 차례 사글세 방, 전세방을 전전하더라도, 가족들과의 관계가 정말 좋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돈이 있는 부잣집에서는 유산 상속 때문에 송사가 벌어지는 것이 예삿일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돈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돈돈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돈보다 사랑이 중요하고, 돈보다 명분이 중요하고, 돈보다 가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은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런 돈에 얽힌 이야기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너랑 나랑 서로 친해지는 성숙한 인간관계로 받게 되는 축복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100세가 되어 낳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즉각 순종할 정도로,
순종하는 믿음이 탁월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믿음의 대가일 뿐만 아니라, 관계를 매우 중시했던 관계의 대가이기도 하였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고향에서 조카 롯을 데리고 나와 가나안에 정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심한 기근이 듭니다.
그래서 애굽 땅으로 잠시 이사를 갔다가, 아내 사라를 바로왕의 아내로 빼앗길 뻔한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혜로 아내를 빼앗기지 않고, 모든 가족들을 이끌고 애굽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 1절과 2절 말씀입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아멘!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므로, 도무지 관리할 수 없을 만큼 차고 넘치는 축복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은 이러한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얼마 있지 않아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 내용이 오늘 본문 5절부터 7절 말씀입니다.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아멘!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목축의 숫자도 늘고, 재산이 늘어 가면서 아브라함과 롯 사이에 생긴 갈등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갈등이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그대로 방치할 수 없어서 나서게 됩니다.
성경이 이 갈등을 해결하는 아브라함의 에피소드를 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삶의 장에,
지금도 존재할 수 있는 갈등에 대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승리의 모본으로 기록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함께 머무를 수 없을 만큼 갈등을 경험하게 될 때,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현대인들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도, 결국은 근본적으로 관계의 윤리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갈등과 상처와 쓴 뿌리를 간직하고 살아갈까요? 관계가 잘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왜? 아름다워야 할 인간관계가 잘못될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 인간 안에 내재하는 죄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아브라함이 갈등을 아름답게 처리했다는 점입니다.
한때 사랑했던 친구들, 한때 서로가 없이는 못산다고 말하던 친척들, 한때는 그렇게도 서로 아껴주던 사람들이,
어떤 일로 서로 상처를 주고받아 지금 갈등하고 있는 우리에게, 아브라함을 통해서 주시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아브라함을 통해서 주시는 교훈은 인간관계를 중요시하는 가치관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돈보다 인간관계를 더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권리와 소유까지도 포기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어떤 사람과의 갈등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 이유가 돈 때문인가요?
아니면 어떤 말 때문인가요?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갈등은 좋은 게 아닙니다.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십시오.
그래서 소중한 사람들과의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예방하시기를 바랍니다. 터지면 함께 망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보십시오. 그는 인간관계 보다 재물을 택했다가 망한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물질 때문에 실제로 있었던 실화입니다. 어떤 사람이 너무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돈이 없어서 늘 어머니와 아버지 싸우고 다투는 것을 보면서, 나는 커서 부자가 되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그래서 청소년 때부터 열심히 돈을 버는 일에 집중하였고, 어른이 되어 정말로 그는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돈을 벌면서, 그의 마음속에 사람들의 소유를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돈을 많이 가지게 된 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하여 좋은 집을 사고 으스대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비싼 차들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벤츠, 포르쉐, 4 Wheel Drive 와 같은 값비싼 자동차를 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말이 되면 그는 값비싼 차들을 닦으면서, 내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가 생각하면서 좋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말에도 그는 휘파람을 불면서 특별히 아끼는 벤츠를 닦은 다음 다른 차를 한참 닦고 있는데,
“끼기기긱” 하는 소리가 나서 고개를 돌려 보았더니, 자신의 6살 된 아들이 조금 전에 닦아 놓았던 벤츠에,
못으로 무엇인가를 쓰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반짝이는 차에 허옇게 글씨가 쓰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갑자기 이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아들의 손에서 못을 빼앗은 다음, 아이를 야단치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그 사람은 놀라서 우는 자기 아들을 현관으로 끌고 가서 ‘내가 다시는 네가 이런 짓을,
하지 못하도록 버릇을 고쳐주겠다.’ 고 하면서, 현관 신장 안에 있던 망치로 그 아이의 손을 내려쳤습니다.
아이가 손을 붙잡고 비명을 지르며 자지러지는 것을 보다가, 이 사람이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이를 병원으로 싣고 가서 X-Ray를 찍어보니 아이의 손이 너무 망가져서 아이의 손을 자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사람은 아이가 수술실에서 수술을 받은 후, 병실에 누워 지쳐 자는 모습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그가 병원에 갔을 때, 아이는 울면서 아버지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나는 아빠가 너무 좋아하는 차를 누가 훔쳐갈 까봐, 아빠의 이름을 차에 써 놓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아빠가 싫어하시면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것예요. 그런데 아빠, 내 손을 돌려주세요.”
그 사람은 우는 아이를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병실을 나와 집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방안 서랍에 있던 권총으로 자살을 하였다고 합니다. 무엇이 그 가정을 비극으로 몰고 갔습니까?
물질이 자녀의 손을 사라지게 만들었고, 아버지를 자살하게 만들고, 물질이 가정을 비극으로 몰고 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돈보다 사람을 사랑하십시오. 그래서 아름다운 인간관계가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합니다.
둘째로, 아브라함을 통해서 주시는 교훈은 대화를 중요시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모든 권리가 아브라함에게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도 아브라함이었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재산을 모으게 된 것도 아브라함 때문이었습니다.
나이로 따져도 아브라함이 당연히 연장자이었고, 가정의 윤리로 보아도 아브라함이 어른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이 먼저 대화를 시작하고, 아브라함이 먼저 화해를 요청하고, 아브라함이 먼저 양보합니다.
많은 경우 인간관계가 깨지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받는 모습을 보면, 대개 대화의 노력이 전혀 없고,
화해의 노력이 전혀 없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자기를 조금만 낮추고, 자기의 잘못을 먼저 사과하고,
대화하고 화해를 노력하면 틀림없이 해결될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이런 면에서 아브라함이 위대했습니다.
가장인 자기에게 우선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카 롯에게 그 모든 우선권을 철저히 양보합니다.
가정화목을 위하여 자기를 내어놓습니다. 그렇습니다. 싸움을 끝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절대 양보입니다.
아브람은 이권의 현실 앞에서 화목을 위하여 철저히 양보합니다. 여러분!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아브람은 애급에서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배웠습니다. 돈이 사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돈이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 내가 얻으려고 몸부림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말입니다.
물론 열심히 일해야죠. 그리고 열심히 일해서 모으기도 하고, 재테크도 잘해서 부자가 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면서까지, 형제끼리 서로 불화하면서까지 집착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환경이 어떻든지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시면 된다는 것을 깨닫고 돈에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아멘!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아멘!(잠 17:1)
돈 때문에 부모 동기간에 윤기가 끊어지고, 돈 때문에 전날의 친구가 원수가 되기도 하는 각박한 세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의 양보하는 관대함 때문에 모든 갈등이 해소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나에게 아무 잘못이 없어도 상대방에게 먼저 화해를 청하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입니다.
부부관계를 위시해 모든 인간관계에서 갈등이 생기면, 누군가 먼저 얘기 하는 것이 힘들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자존심이 상한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내가 먼저 사과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생각해 보세요. 누가 누구에게 먼저 화해를 청했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이 먼저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시면서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화평케 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친히 우리 죄인들의 모든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친히 제단의 제물이 되신 예수님께서 “예배드릴 때,
예물을 드리다가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먼저 형제와 화목하고 예물를 드리라.” 고 하셨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서로 화해하고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양보하고, 기꺼이 십자가에서 자신을 죽기까지 내려놓을 때 세상은 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내가 먼저 대화를 시작하고, 내가 먼저 화해를 요청하고, 내가 먼저 양보해야 합니다.
셋째로, 아브라함을 통해서 주시는 교훈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손해를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손해 보는 사람이 없으면 화해가 불가능합니다. 누군가 손해를 봐야 합니다. 그 손해는 손해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시며, 공평하게 해결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누가 먼저 양보합니까? 연장자인 아브라함이,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이 먼저 양보합니다.
9절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누가 먼저 좋은 땅을 택했습니까? 롯이었습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아브라함이 먼저 롯에게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가 손해 보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또 하나의 계산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공의와 주권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롯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것을 더 의식하고 선택했습니다. 그 땅은 어떤 땅이었습니까?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만 욕심내던 롯은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됩니다. 결국 소돔 사람들과 함께 망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은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과는 180도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기에는 믿음으로 결정하는 것이 어리석게 보이고, 당장은 불리하게 여겨 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정당하게 선택하는 것을 말합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아브라함은,
주님을 온전히 의존하므로 엄청난 축복을 누렸으며, 늘 하나님께 예배드림으로 친밀한 교제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러나 롯의 최후는 어떻게 됐습니까?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불이 내렸을 때 모든 재산이 몽땅 다 타버렸습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남아프리카 연방의 통합을 위해 전략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던,
남아프리카 추장 여러 명을 영국왕실에 초청하여, 특별한 만찬을 베풀었습니다. 미리 오리엔테이션이 있었지만,
추장 한 명이 포크와 나이프로 식사하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지자, 자기들 방식인 손으로 음식을 먹기 시작합니다.
이에 영국 각료들과 귀족들이 눈살을 찌푸리자, 갑자기 여왕이 빙그레 웃더니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고,
손으로 먹기 시작합니다. 그 후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여왕을 따라 손으로 음식을 먹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아프리카 추장들도 기분 좋게 식사를 마쳤고, 통합하자는 여왕의 제의에 흔쾌히 승락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이러한 모습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지 않고 주님의 몸 된 교회에 누가 되지 않는다면 모든 사람을 품어주었으면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돈보다 인간관계를 더 중요시하는, 화해자가 되어 사람들과 더불어 화평을 누렸으면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손해도 보고, 돈보다 사람을 존귀히 여기는, 우리 믿음의 가족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인간관계의 성숙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므로 “아브라함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말씀하셨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축복하시므로, 도무지 관리할 수 없을 만큼 차고 넘치는 축복을,
우리 믿음의 가족 모든 성도님들이 다 받아 누리시기를, 참 좋으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