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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에 천진암 가까이 있는 외사촌 동생 집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었다. 경기도 퇴촌이라고, 주변 경치가 좋아서 돈 많은 사람들이 많이 산다는 동네에 동생네 집이 있었다. 포코너에 있는 전원주택 못지않은 아름다운 저택과 주변의 빼어난 경관에도 감탄했지만 정작 내가 마음을 빼앗긴 것은 엉뚱한 것이었다.
그게 바로 응접실 구석에 놓인 진공관식 앰프였다. 외장 케이스 없이 내부 부품이 그대로 보이는 앰프인데 먼지 하나 없이 반들반들해서 집주인이 얼마나 애지중지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진공관이 먼지를 얼마나 잘 흡수하는지 아는 사람은 안다. 그런 상태로 깨끗이 관리하려면 매일 부품이 상할 새라 조심조심 구석구석 매만졌을 것이다.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 중인 제수씨 말에 따르면 동생이 40대 중반에 직장에서 명퇴인지 강퇴인지를 당하며 받은 퇴직금을 몽땅 털어서 장만한 앰프라고 하는데 그동안 직장 생활을 하며 마음고생을 많이 한 동생이 거금을 들여서 장만한 오디오 시스템으로 음악감상을 하며 세월을 보내는 게 부러웠다. 남편이 거금을 들여서 취미생활을 하겠다는데 말리지도 않고 묵묵히 돈까지 벌어다 주는 제수씨는 마음이 한없이 너그러운 사람일 것이다. (이점도 부럽다.)
오디오 성능이 궁금해하는 나에게 동생이 들려준 음악이 바로 알레그리의 미제레레였다. 가톨릭에 전혀 관심이 없는 동생이 나도 들어보지 못한 이 음악을 즐겨듣는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물론 모짜르트와 관련된 에피소드로 유명한 이 음악을 알고는 있었지만 감상하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미국으로 돌아가면 바로 CD를 살 생각으로 작곡자 이름과 곡명을 받아 적기는 했지만 2년이 넘도록 까마득히 잊고 있다가 최근에 생각이 나서 어렵게 구해 들어보니 감회가 새롭다.
이 성가는 다윗의 참회시인 시편 51에 곡을 붙인 것인데 이참에 시편 51을 다시 읽어보니 다윗왕이 자신을 잘못을 회개하며 주님께 용서를 구하는 심정이 절절히 드러나 있는 듯하다. 일시적인 잘못을 저질렀지만 다윗왕은 정말 하느님을 경외하는 겸손한 인품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소갈 머리 없는 향구 남편이라면 어떠했을까? 아마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겠다고 예언자 목을 치라고 하고는 보란 듯이 더 아름다운 여인을 구하러 나섰을지도 모른다. 에이, 쓸데 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음악이나 올려야지.
다음 글은 “향기로운 삶의 샘터”에 미제레레에 관하여 소개한 실린 글을 발췌하여 올린 것이다. 자료를 모으고 번역하여 직접 쓰려고 준비하다가 이 글을 발견하고는 아무래도 더 잘 쓸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너무 전문적인 내용은 삭제하고 그대로 올리는 것이다.
1638년 이전에 작곡한 《Miserere Mei, Deus》는 알레그리의 대표작이며 걸작으로 해마다 성주간 동안 시스티나성당에서 무반주로 ‘5부 아카펠라 합창단(five-part a cappella choir)’이 부르는 성가로 유명하며 다윗의 참회시인 시편 51에 곡을 붙인 것입니다. 이 시는 다윗이 밧세바의 아내를 취한 후에 선지자 나단이 찾아왔을 때, 자신의 죄를 간절히 참회하며 지은 것인데, 전통적으로 수난주간 수요일에 낭송 되거나 노래로 불렀습니다. '테네브레'라는 이름의 이 예식은 촛불을 하나씩 꺼 나가다가 '미제레레 메이'의 신비로운 합창 속에 마지막 촛불이 꺼지며 완전한 어둠 속에서 마무리됩니다.
시편 51편 전체를 노래하는 긴 곡이지만 전체는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져 반복되고 5성부(소프라노2, 알토, 테너, 베이스)의 합창단과 4명의 솔로 그룹이(소프라노2, 알토, 베이스) 교창 형식으로 부르며 합창단과 솔로그룹 사이에 테너와 베이스들이 낭창하는 그레고리안 찬트가 자리합니다.
5성 합창 부분은 단순한 화성으로 낭창하는 부분에 이어 다성적이 합창이 나오고 다시 화성 적 낭창에 이어 다성 합창이 나오는 형식이 반복되며 Soprano의 High C음이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납니다. 그리고 찬트로 낭창되는 부분이 나오고 솔로그룹의 노래도 단순한 화성적 낭창에 이어 화려한 장식음이 다성적 선율이 반복되며 마치게 됩니다.
이 곡을 듣고 감명받은 교황은 악보를 시스티나성당 밖으로 반출하는 사람은 파문시키겠다는 엄명을 내려 오랫동안 로마교황청의 비곡으로 내려와서 악보가 정식으로 공개되기 전인 1770년까지 이 음악을 듣고자 하는 이는 바티칸까지 일부러 찾아와야만 했습니다. 그로인해 수많은 거장이 시스틴 성당에 몰려들었는데, 그 가운데 한 명이었던 괴테는 [이탈리아 여행기]에서 이 경험이 얼마나 감동적이었던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연주 여행을 하던 열네 살의 모차르트가 단 두 번 듣고 나서 복잡한 성부로 이루어진 이 곡을 암보하여 단숨에 악보로 옮긴 일화는 유명합니다. 알레그리의 "미제레레"는 반복이 많아서 채보하는 것이 생각보다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곡은 본래 장식음이 핵심적인 곡이었는데 모차르트가 그 장식음들을 다 복원했다면 문제가 달라지겠습니다. 처음 5분만 외운다고 그다음에 계속 변화하는 복잡한 장식음들까지 다 기억해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게다가 14살의 어린 나이였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더. 모짜르트는 역시 신이내린 천재임이 분명합니다.
훗날 모짜르트는 이 작품에 크게 영향을 받은 자신의 '미제레레 작품번호 85'를 작곡하기도 했다.
1770년 알레그리의 '미제레레 메이'는 바티칸의 다른 악보들과 함께 마침내 영국 음악학자 찰스 버니에 의해 세상에 공개됐습니다. 그러나 이전부터 사보는 흔하게 떠돌고 있었지요. 그러나, 대부문 암보에 의한 것이어서 성부라든가 멜로디에 차이가 있는데 사보가 흔하게 돌다보니 결국 정통 작곡가에 의한 최초의 버전은 유실되고 말았습니다. 바티칸의 비밀주의가 낳은 안타까운 대목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한글—공동번역 성서에서>
[지휘자를 따라 부르는 다윗의 노래, 다윗이 바쎄바와 정을 통한 다음
예언자 나단이 찾아 왔을 때 지은 시]
하느님, 선한 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어지신 분이여, 내 죄를 없애주소서.
허물을 말끔히 씻어주시고 잘못을 깨끗이 없애주소서.
내 죄 내가 알고 있사오며 내 잘못 항상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당신께, 오로지 당신께만 죄를 얻은 몸, 당신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한 이 몸, 벌을 내리신들 할 말이 있으리이까? 당신께서 내리신 선고 천번 만번 옳사옵니다.
이 몸은 죄 중에 태어났고, 모태에 있을 때부터 이미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마음속의 진실을 기뻐하시니 지혜의 심오함을 나에게 가르쳐주소서.
정화수를 나에게 뿌리소서, 이 몸이 깨끗해지리이다. 나를 씻어주소서, 눈보다 더 희게 되리이다.
기쁨과 즐거움의 소리를 들려주소서. 꺾여진 내 뼈들이 춤을 추리이다.
당신의 눈을 나의 죄에서 돌리시고 내 모든 허물을 없애주소서.
하느님, 깨끗한 마음을 새로 지어주시고 꿋꿋한 뜻을 새로 세워주소서.
당신 앞에서 나를 쫓아내지 마시고 당신의 거룩한 뜻을 거두지 마소서.
그 구원의 기쁨을 나에게 도로 주시고 변치 않는 마음 내 안에 굳혀주소서.
죄인들에게 당신의 길을 가르치리니 빗나갔던 자들이 당신께로 되돌아오리이다.
하느님, 내 구원의 하느님, 죽음의 형벌에서 이 몸을 건져주소서. 이 혀로 당신의 정의를 높이 찬양하리이다.
나의 주여, 내 입술을 열어주소서. 이 입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당신은 제물을 즐기지 아니하시며, 번제를 드려도 받지 아니하십니다.
하느님, 내 제물은 찢어진 마음뿐, 찢어지고 터진 마음을 당신께서 얕보지 아니하시니,
어지신 마음으로 시온을 돌보시어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쌓게 하소서.
그 때에는 번제와 제물을 올바른 제사로 기뻐 받으시리니, 송아지를 잡아 당신 제단에 바치리이다.
<Original-Latin>
Miserere mei, Deus: secundum magnam misericordiam tuam.
Et secundum multitudinem miserationum tuarum, dele iniquitatem meam.
Amplius lava me ab iniquitate mea: et a peccato meo munda me.
Quoniam iniquitatem meam ego cognosco: et peccatum meum contra me est semper.
Tibi soli peccavi, et malum coram te feci: ut iustificeris in sermonibus tuis, et vincas cum iudicaris.
Ecce enim in inquitatibus conceptus sum: et in peccatis concepit me mater mea.
Ecce enim veritatem dilexisti: incerta et occulta sapientiae tuae manifestasti mihi.
Asperges me, hyssopo, et mundabor: lavabis me, et super nivem dealbabor.
Auditui meo dabis gaudium et laetitiam: et exsultabunt ossa humiliata.
Averte faciem tuam a peccatis meis: et omnes iniquitates meas dele.
Cor mundum crea in me, Deus: et spiritum rectum innova in visceribus meis.
Ne proiicias me a facie tua: et spiritum sanctum tuum ne auferas a me.
Redde mihi laetitiam salutaris tui: et spiritu principali confirma me.
Docebo iniquos vias tuas: et impii ad te convertentur.
Libera me de sanguinibus, Deus, Deus salutis meae: et exsultabit lingua mea iustitiam tuam.
Domine, labia mea aperies: et os meum annuntiabit laudem tuam.
Quoniam si voluisses sacrificium, dedissem utique: holocaustis non delectaberis.
Sacrificium Deo spiritus contribulatus: cor contritum, et humiliatum, Deus, non despicies.
Benigne fac, Domine, in bona voluntate tua Sion: ut aedificentur muri Ierusalem.
Tunc acceptabis sacrificium iustitiae, oblationes, et holocausta: tunc imponent super altare tuum vitulos.
<English translation>
This translation is from the 1662 Book of Common Prayer, and is used in Ivor Atkins' English edition of the Miserere (published by Novello):
Have mercy upon me, O God, after Thy great goodness
According to the multitude of Thy mercies do away mine offences.
Wash me throughly from my wickedness: and cleanse me from my sin.
For I acknowledge my faults: and my sin is ever before me.
Against Thee only have I sinned, and done this evil in thy sight: that Thou mightest be justified in Thy saying, and clear when Thou art judged.
Behold, I was shapen in wickedness: and in sin hath my mother conceived me.
But lo, Thou requirest truth in the inward parts: and shalt make me to understand wisdom secretly.
Thou shalt purge me with hyssop, and I shall be clean: Thou shalt wash me, and I shall be whiter than snow.
Thou shalt make me hear of joy and gladness: that the bones which Thou hast broken may rejoice.
Turn Thy face from my sins: and put out all my misdeeds.
Make me a clean heart, O God: and renew a right spirit within me.
Cast me not away from Thy presence: and take not Thy Holy Spirit from me.
O give me the comfort of Thy help again: and stablish me with Thy free Spirit.
Then shall I teach Thy ways unto the wicked: and sinners shall be converted unto Thee.
Deliver me from blood-guiltiness, O God, Thou that art the God of my health: and my tongue shall sing of Thy righteousness.
Thou shalt open my lips, O Lord: and my mouth shall shew Thy praise.
For Thou desirest no sacrifice, else would I give it Thee: but Thou delightest not in burnt-offerings.
The sacrifice of God is a troubled spirit: a broken and contrite heart, O God, shalt Thou not despise.
O be favourable and gracious unto Sion: build Thou the walls of
Then shalt Thou be pleased with the sacrifice of righteousness, with the burnt-offerings and oblations: then shall they offer young bullocks upon Thine al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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