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어떤 신문에서 '낮지만 당당한 엄마의 학력'이란 독자투고의 글을 보게 되었다. 내용인즉슨 필자인 주부는 학력이 중졸이었지만 학교에서 돌아온 고교 3년생 막내딸이 상담교사와 진로상담을 하던 중에 아빠는 대졸이고 엄마는 고졸이라고 거짓말을 했단다.
이에 필자는 언성을 높이며 왜 거짓말을 했느냐고 다그치면서 이 세상을 살면서 누구에게도 전혀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며 우뚝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러한 내용의 글을 보는 순간 동병상련의 공감에 마음이 짠하면서 괜스레 그렇게 눈물까지 흐르는 걸 제어하기 힘들었다. 그 글의 주부도 그랬겠지만 지금으로부터 38년 전인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의 1972년도엔 곧바로 중학교에 갈 수 있는 여력의 친구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가뜩이나 먹고살기에도 버거운 형편의 빈가에선 자녀 역시도 초등학교를 마치는 즉시로 돈을 벌어와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은 나라고 하여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역시나 이 풍진 사회에서 중요한 건 학력과 학벌이 구축해 놓은 그 광활하고 방대하기까지 한 방어벽이란 사실의 발견이었다. 아무튼 겨우 초졸 학력으로 변방의 이방인처럼 애면글면 어렵게만 살다가 만학이란 것에 눈을 뜬 건 재작년부터이다.
주경야독으로 사이버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한 결과 이제 얼마 뒤면 졸업장을 받게 된다. 이뿐 아니라 요즘엔 또 다시 <우리말 겨루기>에 출전하고자 우리 말에 대한 공부를 집중적으로 하고 있다. 작년에 출전했던 이 퀴즈 프로그램에서 나는 고작 4등에 머물고 말았기에 지금은 가히 와신상담의 자세로 공부하는 중이다.
위에서 나보다는 더 배운 아주머니(그 분은 중졸이라고 했으니)의 경우를 예로 들었는데 이렇게 말하고 보니 내가 무슨 명실상부한 무지렁이라고 흉이나 보지 않을까 모르겠다. '무지렁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을 일컫는다. 그래서 노파심에서 부언하는데 따지고 보면 나는 명명백백한 무지렁이는 아니다.
수 십년간 읽어댄 방대한 도서와 지금도 오전 6시면 출근하여 책을 읽고 습작에도 열성을 보이는 습관은 이미 불학의 어두운 터널을 지났다는 반증이자 원동력이기까지 하니 말이다. <우리말 겨루기>의 지역예심은 오는 12월 4일에 대전 KBS에서 열린다.
여길 나가봐서 잘 아는데 이 예심에 통과하려면 우리 말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그날 치를 성적도 중요하지만 더욱의 관건인 것은 면접에서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는 비책을 미리부터 강구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 프로그램의 작가와 PD가 "어떤 이유로 우리 프로에 출전코자 하셨습니까?"라고 질문할 때 고루하게 상금에 탐이 나서라든가 유명해지고 싶어서라고 한다면 이건 보나마나 탈락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도 벌써부터 인터뷰 멘트까지를 만들어 두고 있는 터이다. 기왕지사 위에서 학력 얘기가 나와서 추가하는데 나처럼 배우지 못한 필부의 삶은 지금도 여전히 백척간두에 선 위험천만과도 같은 그런 빈궁의 연속이다. 이런 까닭으로 장차 아들과 딸을 결혼시킴에 있어서도 그 비용은 전적으로 녀석들의 깜냥에 맡기는 외는 딱히 수가 없다.
그러므로 내가 <우리말 겨루기>에 나가 반드시 '달인'이 되고자 하는 열의와 열공의 지향점은 당연한 것이다. 여기서 달인이 되어 받게 되는 수 천만 원의 상금은 고스란히 저축해 두었다가 녀석들의 혼례 때 자랑스레 보태주고자 하는 것이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꿈도 야무지다고 책을 잡히지 않을까 모르겠다.
그렇지만 꿈이라는 건 본디 허공에서부터 가져다 살을 붙이는 과정의 일환이 아니던가? <우리말 겨루기>로의 첫 출전을 앞둔 2년 전 이맘 때 우리 말 관련 책과 사전을 약 스무 권 가까이 보았다. 그리곤 나름 일일이 글을 써 노트를 만들었는데 그 분량이 여섯 권이나 된다. 이에 더하여 최근엔 국어 용례사전을 보면서 다시금 노트에 기록 중인데 어느새 한 권 분량에 육박하고 있다.
지역신문을 보면 아무개 자제의 결혼을 알리면서 이 인사의 현재 직책이 동시에 게재된다. 그런 걸 보자면 다시 또 내 가슴엔 시베리아의 한풍이 들어찬다. 그러면서 켜켜의 다짐이 더욱 뚜렷하게 생성되는 것이다. '아이들이 결혼할 적에 내 비록 물질적으론 해 줄 게 없다지만 아무나 오를 수 없는 퀴즈 프로그램에서의 '달인'이란 영예만큼은 기필코 선물하마!' 라고.
농사꾼에겐 나쁜 땅이 없다고 했다. 또한 망설이는 자의 몫은 없는 법이다. 불운했고 박복까지 한 바람에 남들은 간 중학교조차 못 나온 간난신고의 필부이되 국방의 의무 완수는 물론이요 세금 체납 따위의 국민의 의무까지를 소홀히 한 적도 없다고 자부한다. 즉 모범시민은 못 될지라도 나쁜 시민이라고 손가락질 받을 일은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늘 그렇게 동동거리며 바쁘게 살면서도 정보나 지식의 습득에도 결코 소홀하지 않았다. 아울러 학벌이 구축해 놓은 이 세상의 성벽을 쳐다보면서 기죽기 싫어 악착같이 책을 팠고 나름 열심히 독학했다. 사이버 대학의 졸업장을 받고 달인으로까지 등극을 하는 날을 벌써부터 꿈에 그려본다. 그러자면 내 사랑하는 아들과 딸은 분명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합창하리라. "역시 울 아빠는 대단하세요!!"
- 2010/11/13 -
▲ ‘우리말 겨루기’에 출연했을 당시인 2009년 1월 KBS 녹화장에서
첫댓글 대단하십니다
그러고보니 울카페에는 의지의 선진작가들이 참 많은것 같습니다^^
비슷한사람들끼리 만난다더니 그말씀이 맞는것 같군요
암튼 축하드려요 ^^
과찬이시지만 저 또한 세속적인지라 칭찬엔 약하답니다. ^^
고맙습니다!
설날 잘 보내세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짝짝 ^^
저분은 아나운서이시지요.? 많이 뵌듯 합니다. 늦게받은 졸업장 진심으로 다시한번 축하드립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제 옆은 한석준 아나운서입니다.
녹화 중 잠시 짬을 내 찍은 사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