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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클래식기타방 원문보기 글쓴이: 기타아
클래식기타의 현대적인 형태로의 발전은 몇 단계가 있지만, 스페인사람인 토레스( Antonio de Torres Jurado 1817-1892) 에 의해 완성 되었다고 할수 있다.
토레스는 종종 기타의 스트라디바리우스라 불리는데, 아마도 다른 어떤 기타 제작자보다도 더욱 악기의 질을 개선시켰다고 볼 수 있다. 기타는 바이올린과 달리 수 세기동안 음향학적인 특성을 보존하기가 어려워, 올드 악기의 특성을 완전하게 평가 할 수가 없지만, 연주 가능하게 남아있는 토레스 기타를 보면 당시 어떤 표준이나 다른 형태의 기타와는 다른, 톤의 아름다움과 투과력 ( projection power)을 지녔다. 토레스는 1817년 6월 13일 Almeria 근교 La Canada de San Urbio에서 태어났다. 16세때 Vera로 옮겼으며, 군대징집 을 피하려했으나 실패하고, 1835년 징집되었다가 몇 개월후에 건강상의 이유 로 제대하고, Vera로 돌아와 결혼하여, 몇 년동안 목수로 생활했다. 첫 번째 부인이 사망한 1835년부터 6-7년간의 토레스행방과 경력에 관해서는 논쟁거 리가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야기는 Emilio Pujol의 "Tarrega" 라는 책에서 나오는데 토레스는 Granada에서 일했으며, 여기서 Jose Pernas에게서 기타제작을 배웠다고 언급한다. 그라나다는 19세기중엽 기타제작의 중요한 센터였고, Pernas는 그도시의 제일가는 장인이었다. Pernas는 윗굴곡(upper bout)이 없는 서양배 모양(pear-shape)의 기타만 들기를 좋아했다. 적어도 이런악기가 토레스에 영향을 주었으며,두사람간의 연관의 정황적인 증거로 여겨진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Pujol의 토레스와 Pernas의 관련설( 또는 토레스가 그라나다에 있었다는 사실까지도)을 입증할 만한 근거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반면에 토레스가 1845년부터 Seville에 거 주하였다는 서명된 문서들이 최근에 나와 Pernas와의 관련설을 배제시킬 수 있다. 1840년대 후반 토레스의 행방이나 기타제작의 훈련이 어떠하든, 1850 년대 초에 Seville에서 기타제작자로 확립되었다는게 확실하다. 토레스의 Seville 시기동안에 대부분 "calle de la Cerrageria"에서 작업을 했으며 꽤 나 명성을 획득했다. 그의 기타는 기타리스트인 Julian Arcas에 의해 채택되 었으며, 토레스를 타레가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Arcas와 타레가는 스페인과 외국에서의 리사이틀에서 토레스의 기타로 연주하였다. 이시기는 1869년 까지 지속된 것으로 보여지는데, 이때는 기타제작자로서 재정적으로 지탱할 수 없었다. 1876년 Almeria로 돌아와서 2번째 결혼을 하여, 생계수단으로 도자기가게를 운영한다. 1880년에 "20 calle Real, La Canada,Almeria"에서 기타제작을 다시 시작한다. 기타제작자로 이마지막시기는 1892년그가 죽기 까지 지속된다. 그의 일생이 사생적이지만,그의 공적은 확실하다. 그의 기타 에 대한 개혁은 단지 새로운 형태의 도입이라기보다 아직 실현되지않았던 충분한 가능성있던기존의 아이디어의 발전, 완성,조합등이다. 그의 선배들의 기타와 가장 두드러지게 다른점은 기타의 모양과 크기이다. 토레스의 기타는 저명하게 큰, 위 아래 굴곡 (upper & lower bout)으로 충분한 모양과 깊은 옆판을 가진다. 그러나 가장 유명한 작업은 부채살 지주(fan strutting)의 발전이다. 그는 그 유명한 풀먹인 딱딱한 종이로 만든 몸통의 기타 (papier- mache boidied guitar)로 부채살 지주가 음향학적으로 매우 중요함을 증명 하였다. 참고: papier-mache boidied guitar: 이것으로 흔히 기타에서 톤(tone)을 결정하는데 앞판의 부채살 지주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증명 하는 것으로 흔히 인용된다. 앞판은 고급 스프루스로 만들었으며, lower bout에 토레스의 전통적인 7 부채살 지주 버팀( 7 fan struts bracing )형태 를 사용했다. 옆판과 뒷판은 목제 섬유소(timber fillets)를 채운 두꺼운 마분지(cardboard)를 사용했다. 이구조로 몸통이 아주 가볍게 되었다. 악기 밸런스를 유지하기위해 토레스는 나무 못 해드를 사용했으며, 지판은 흑단대신 장미나무를 사용했다. 지금은 앞판이 아주 심하게 갈라져서 연주를 할 수 없다. Domingo Prat는 이 기타가 손상받기 전에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행운을 가졌었는데, 약간 침투력(penetration)이 떨어지나 매우 부드럽고 깊은 소리를 낸다고 기술했다. 토레스의 이 실험적인 기타가 톤의 질 (tone quality)을 결정하는데 지주버팀이 잘된 앞판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증명 했으며, 음의 뻗침(projection)과 볼륨을 나타내는데 옆판과 뒷판의 반사면 의 중요함을보여준다. 토레스는 이기타를 생존시에 팔기를 거부했으며, 타레가와 Llobet를 거쳐 Barcelona Conservatory에 있다. 타레가는 많은 실험을 통해 여러개의 지주패턴을 테스트 하여, 7 fan system이 그의 기본이 되었다. 토레스의 지주패턴은 지금도 광범위 하게 사용되며, 기타제작자들이 다른 지주패턴을 개발하는데 출발점으로 남아있다. 사려깊은 지주버팀 앞판 과 큰 몸통의 결합으로 토레스 기타는 다른선배들의 어떤 기타보다도, 강하고 풍부한 사운드와 넓은 범위의 톤 반응( wide range tonal response)을 지녔다. 비록 현대기준으로 보면 특별하게 음이 크지는 안지만, 토레스 기타 는 분명하고 밸런스 잡힌톤, 단단하고 둥그러우며 잘 전달되는 소리를 지녔다.( clear, well balanced tone, firm & rounded ) 그의 다른 공적은 스케일 길이를 65cm 로 표준화 한것인데, 이 길이는 사운드의 명로함 (clarity)의 손실없이 최대한 볼륨을 나타내고,연주자의 과도한 왼손 벌림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는 또한 현대적인 지판형태를 표준화 했는데 이전보다 넓고 두꺼워졌다. 브리지형태도 오늘날과 거의 같은 형태이다. 마지막으로, 단순 rosette와 최소한의 테두리 장식을 제외하고 모든 외부장식을 제거하 였다. 토레스의 기타는 당시 어떤 기타보다도 확실히 우수하여서, 처음에는 스페인 전역으로,나중에는 결국 전세계적으로 기타제작패턴의 변화를 초래 했다. 그것뿐 아니라 현대기타에서 가능한 새로운 울림과 톤 컬러로 고무되어 작곡가와 연주대가들이 새로운 길로 발전할 수 있었다. 토레스에 의한 현대 기타는 음악과 테크닉의 발전에서 중요한 촉매가 됨이 입증되었다. 토레스는 학생이나 후계자를 남기지 않았다. 그의 사망후에 Madrid는 기타제작의 주요 한 센터가 되었다. 19세기말과 20세기초에 세명의 기타제작자--Vincente Arias(1840-1912), Jose Ramirez 1 (1857-1923)과 그의 형제인 Manuel Ramirez (1866-1942)에 의해 Madrid school 이 리드되고 있었다. Ramirez 형제들은, 나중에 나름데로 훌륭한 기타제작자가 된 학생들을 훈련시켰다. Manuel Ramirez는 그의 형에게서 기타제작을 오리지날로 배워 3명의 학생을 두었는데 그중 2명이 Santos Hernandez (1873-1942), Domingo Esteso (1882-1937)인데 거의 전설적으로 남아있고, 아직도 번성하고있는 가업 (family bussiness)을 진정으로 창설한 사람은 Jose Rmirez 1 이다. Jose Ramirez 1의 제자는 그의 아들인 Jose Ramirez 2(1885-1957)와 Enrique Garcia (1968-1922) 가 있다. Garcia는 나중에 Barcelona로 이주 하여, 여기서 또 다른 유명한 기타 제작자인 Francisco Simplicio(1874- 1932)를 교육시켰다. Madrid에서는 Jose Ramirez 2 는 그의 부친 사후에도 가업을 지속시켰으며, 그의 아들인 Jose Ramirez 3 ( 현제 회사의 헤드) 와 Marcelo Barbero(1904-1955)을 교육시켰다. Barbero는 Santos Hernandez의 미망인을 위해 몇 년간 일을 했으며, 몇 대의 예외적으로 훌륭한 기타를 만들었다. 20세기 초반을 기타제작의 황금기라고 보여지지만, 기타 제작자 자신들에게는 그렇게 쉽지 않은 듯이 보인다. 그들의 악기는 어리석게도 적은 가격으로 팔렸다. 또한 꼭 상기해야될 것은 이시기의 제품의 대부분이 풀라멩코 기타였으며, 이들의 수요가 훨씬 많았다. 오늘날 스페인 에서는 많은 도시에 훌륭한 기타제작자들이 많이 있다. 주 센터로 유지되고 있는 Madrid에는 Arcangel Fernandez( Barbero에게서 배움) , Marcelino Lopez Nieto, Herman Conde( 그의 삼촌인 Domingo Esteso 와 일을 같이 함), Jose Ramirez 3, 과거에 Ramirez의 종업원이었던 Paulino Bernabe, Manuel Contreras, Felix Manzanero등의 공방이 있다. Barcelona에는 Ignacio Fleta가 돋보인다. Cordoba의 Manuel Reyes는 주로 플라멩코 기타 로 유명한데, 그가 만든 소수 클래식기타도 높게 쳐준다. Granada에도 많은 기타제작학교가 있는데 그중에서 Antonio Marin Montero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런 지속적인 활동으로 스페인은 클래식기타 제작의 중심 으로 남아있지만, 독점을 가진 것은 아니다. 금세기에 대부분의 기타제작자에 가장 영향을 끼친 사람중의 한 명이 독일의 Herman Hauser(1882-1952)인데 그의 아들에 의해 가업이 지속되고 있다. 프랑스의 Robert Bouchet는 많은 일류 연주가들의 기타를 만들었다. David Rubio는 그의 기타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첫 영국인이었으며, 또 다른 영국계의 Madrid출생 Jose Romanillos는 최근 주목을 끈다. 미국에는 2명의 잘알려진 기타제작자로 Manuel Valasquez와 Manuel Rodriguez(1930년생)가 있는데, Manuel Rodriguez는 Madrid에서 Jose Ramirez와 함께 공부한후 Los Angeles에서 거주하다 지금은 스페인으로 돌아갔다. 일본에서는 그들의 타고난 재능으로 기타제작의 영역에서도 모방과 장인정신을 나타내어, 많은 기타제작자를 배출했다, 수많은 훌륭한 장인들이 각각 개인적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아주 다양한 소리 질을 갖는 기타들이 나오게된다. 두 가지의 주된 추세를 확인할 수 있다. 첫째는 현대기타가 연주되어지는 환경의 변화에 기인한다. 요즈음 연주자들은 몇 백 명에서 이 삼 천명의 관중이 앉아있는 콘서트 홀에서 연주 를 들려주어야 한다. 직업적인 기타연주가들은 톤의 형성과 기타 테크닉의 모든 다른 어려움 뿐 만 아니라, 볼륨의 획득문제 에 많은 걱정을 하고있다. 20세기 중엽에는 더욱 큰 소리를 내는 기타를 추구하여 큰 몸통과 보다 긴 현 길이를 채택하게 되었다. 큰 홀에서 사용되어지는 기타는 관중의 몸과 홀의 공간에 의해 저음 주파수( bass frequency)가 흡수되어서 저음 울림(bass resonance)이 증가되어야 한다는 학설이 있다. 불행하게도 저음반응이 큰 (loud bass-responsive) 기타는 어느 정도의 고음 영역의 힘과 명료함(power &clarity)의 손실 이 있어야 도달할 수 있다. 반대되는 견해를 갖고있는 학교가 있는데, 홀의 크기가 어떠하던 현저한 볼륨을 내지는 않지만 맑은 고음(clear trebles)을 내고 저음을 과하게 강조하지 않은(no undue bass emphasis), 완전히 균형 잡힌 기타소리가 더 잘 전달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스페인계 제작자들은 첫 번째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어 크고 울려 퍼지는(big, sonorous) 기타를 만든다. 사람들은 또한 감미롭고 로맨틱하고 달콤한 소리를 내는 것은 스페인 기질에 기인 한다고 생각한다. 북유럽나라 제작자들은 토레스에서 Hauser까지의 발전라인을 따라서 작은 몸통의 기타로 명료함과 밸런스를 추구하고있다. 연주자들은 아직도 사운드 홀이나 지판 위에서까지 오른손을 놀려 로맨틱 사운드를 얻어내곤 하고, 단단한(firmer) 톤은 초기음악 레파토리에서 필요한 소리의의 명료함을 나타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저음 주파수를 흡수하는 관중의 영향에 대한 논쟁은 평가하기 힘든 일이다. 음악음향학은 개념들(ideas)이 흔히 유행이 되었다 사라지는 복잡한 과제이 다. 그러나 현대의 연주 홀은 음향학적으로 면밀히 조율되고 음향학적으로 관중의 영향을 고려해서 설계되어졌다는 것을 지적해야한다. 또한 연주 홀을 설계한 고위 관계자들은, 관중과 공간자체에 의해 흡수되어 큰 홀을 괴롭히는 것은 저음주파수가 아니고 고음주파수인데, 이것을 보존시킨다. 건축설계사 와 엔지니어들은 강력한 고음주파수와 음의 명료함을 좋아한 Hauser, Rubio나 Romanillos와 같은 제작자의 기타제작에 접근하는 것을 좋아함을 알 수 있다. 최근 Jose Ramirez는 그의 평소 큰 콘서트 모델에 추가로 65cm 의 짧은 지판 길이와 작은 몸통을 가진 모텔을 만든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연주자 자신들의 의견은 매우 다양하다. 기타리스트들은 그들의 악기가 연주되는 장소에 따라 매우 변하기 쉬운 음악가들이다. 또한 강단에 있는 기타리스트들은 관중들에게 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 정확하게 판단하기 는 매우 어렵다. 이렇게 의견이 나누어져 있어 현대 기타의 디자인이 확정적 인 것은 없다. 현대 클래식 기타들은 비슷하게 보이지만, 내부 구조의 중요한 세부는 매우 다양하다. 기타는 바이올린과 달리 소리를 만들어내는 정확한 방법이나, 악기로부터 톤이나 볼륨을 내는 방법은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다. 최근 미국의 과학자인 Michael Kasha 박사(플로리다 주립 대학 분자 생물 물리학 연구소 소장)는 이러한 논쟁을 풀기 위해 그들의 기술을 기타 음향학 과 역학에 응용하였다. 기타 제작자인 Richard Schneider와 공동으로 일하 여 부채살 지주, 브리지, 네크, 몸통 디자인에서 혁명적인 모양을 한 기타 시리즈를 만들었다. Kasha와 Schneider는 스테이지에서 테스트하여 기존의 기타보다 그들의 기타가 훨씬 소리가 큰것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또한 연주자 의 요구한 대로의 특별한 반응과 톤 특성을 갖는 부채살 지주와 상판의 두께 를 주문제작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오늘날 그들의 아이디어는 많은 흥미를 끌지만, 많은 연주자와 기타 제작자들은 Kasha 박사의 이론에 아직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기타 분석행위에서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피할 수 없고 얻어진 지식은 악기 디자인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악기점에는 토레스에서 최근까지의 콘서트 기타를 보여준다. "동일한 사람에 만들어진 똑 같은 2대의 악기는 없다"와 "위대한 기타 제작자들까지도 실패작이 있다" 라는 것을 읽어 이해하여야한다. 어떤 기타에 대한 논평은 비록 악기 제작자의 악기에 대한 접근법과 일반적인 특성을 말해야하는 것이지만, 오직 그 기타 자체에 국한해야 한다. " GUITRS From Renaissance to Rock" :Oxford 번역: 고정석 .........(펌-고정석홈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