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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어둠 속에 갇힌 불꽃 원문보기 글쓴이: 상아 반정호
내 고향의 추억
상아 반정호
벌써 여름인가 했는데 소풀을 뜯기던 들녁의 한가락에는 나를 바라보는 듯 산딸기가 영글었다. 노린재가 달라붇어서 새콤한 맛을 음미할때 쯤에는 나도 시샘을 하듯 산딸기를 마구 따 먹었지.
어미잃은 올챙이들의 유영을 보다가 한가한 만족감에 취해서 영약한 미물을 부러워하며 행복을 느끼기도 했었지. 옆집 순이 어머니가 아들을 못 낳아서 걱정을 하실때에 하얀 접시꽃은 소원대로 잉태를 꿈꾸게하는 존재로 이름이 나서 그것을 구하려고무던히 애쓰던 꽃이 지금은 붉은 색만 피었고 그때의 추억을 그리듯 흰꽃을 찾으려고 여기 저기를 둘러본다.
아직은 덜 팬 보리발이랑 군데군데는 밤이면 찾아드는 남녀의 연애흔적이 남아 아침이면 보리밭주인을 흥분케 하는 뭉개진 자리가 어느듯 누렇게 익어 추수때가 되면 그래도 많은 양을 수확한다며 즐거워 하는 사이 가을이 되면 뒷 집의 순이와 앞집의 영철이가 결혼을 한다고 난리인데 알고보니 바로 그 보리밭에서 맺은 인연이라며 뒤통수를 긁는데 이미 망가진 보리는 누가 돌려 주려는지...
이 감자도 온전히 수확을 할 리 가 없다. 아무도 안 보인다 싶으면 슬금슬금 뒤돌아 서서 흘끔거리며 어느새 런닝셔츠 앞섶에 움켜싼 몇알의 감자는 너도나도 같은 심보로 하나 둘 모여서 감자꾸지(구이)로 이어지면 아마 한고랑쯤은 없어지지만 내자식의 소행이려니 하고 눈감아주시던 옆집 할아버지는 아직도 장죽에 움켜 넣은 담뱃대를 물고 뒷짐을 짚은 채 동네를 지키신다. 작은 나무로 울타리를 치듯 둘러쌓인 저 집에는 고저녁한 고요가 묻혀있고 누군가의 발소리만 들려도 집이 살아날 듯 한 집인데 밤이면 누군가의 연애 장소로 어느듯 자리매김하고 동족同族의 감시는 알게 모르게 이어져 오늘밤은 순이와 영철이가.. 내일은 동철이와 윗동네 꽃님이가... 은근한 참사랑의 밀어만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애비닭의 앞장에 전처 후처가 나란히 뒤를 따르는 듯한 모습은 동양의 인간에게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다. 오순 도순 앞서거니 뒷서거니 따라가는 모습이 참 보기 좋지만 그 사랑을 인간은 오래 두지는 않을것이다. 어느날 맏사위가 오는날에는..... 이 길을 따라 동구밖을 벗어나 학교를 가고 장성하여 군대를 갈때에는 어머니는 치맛자락에 눈물찍어 내셨고 아버지의 거름진 지게가 지금도 눈앞에 그림자로 남아 삼베바지 축 늘어진 뒷춤이 보이는 듯 눈에 선 한데. 같은 모습은 아니지만 지금은 그자리에 내가 나의 아내와 아이들이 손목을 잡고 나의 그림자를 밟으며 주름진 얼굴에 미소를 담고 추억을 삼키며 그 길을 들어선다 구운가재를 한마리 준다는 형들의 꾐에 과감히 한입을 물어 보지만... 누런 렁닝샤츠 앞자락에 감물만 드리고 밷어버린 입가에 그래도 먹고싶은 가재의 군침은 흘렸는데... 지금은 누가 저 감을 쳐다나 보는지.....
복숭아 잎을 돌에 놓고 콩콩 찍어서 졸졸졸 흐르는 냇물을 막아놓고 송사리에게 먹이면 그 작은 놈들이 하얀배를 드러내면서 벌러덩 자빠지고 잡았다고 좋아하며 한쪽 물막이 통에 던져 놓으면 어느새 살아서 조그만 돌뚝을 넘어 달아나 버리고 누런 코만 훌쩍이며 아쉬워 했었는데...
귀하디 귀한 물건중의 하나가 토마토였다. 지금은 흔하도 흔한게 복숭아 요 토마토이다. 설탕에 징궈서 먹든 토마토... 정말 귀했었다. 양날이 선 둥그런 철통에 긴 막대가 달린 잡초뽑는 기계를 골골마다 대고 휙휙 밀면 조그만 양철통에 하나 가득 물풀둘이 고여서 봅혔고 그렇게 관리하든 논들은 이제는 없다. 제초제 한병이면 풀들은 자취를 감추고 아침저녁 뒷춤을 짚고 슬금슬금 걸어나와서 한번 휘 돌아보면 되는것이 논농사로 변했다. 그때의 들밥은 이제 맛도 보기 힘들다. 어릴때에는 저 뿔에 받칠까봐 겁을 냈었고 까만놈의 눈동자는 엉뚱하게도 희끗 희끗한 흰 동자가 무서웠다 게다가 새끼는 귀엽다고 만지고 돌아서면 온통 노랑냄새가 베어서 몇일간은 그 냄새에 취해서 살아야 했었는데... 그때에는 별로 안먹든 오디인데 요즘은 피부미용에 좋다고 입이 까맣게 되어도 염치없이 먹는다. 뽕나무의 추억은 참 힘겨운 것들이다. 아침일찌기 지게를지고 다래끼를 얹어서 밭뚝에 나가 뽕나무가 부러지지않게 뽕잎을 따야 했다. 하얀 잉애의 달콤한 꿀똥이 입에 떨어지면 그렇게 달았지만 벌레의 똥이라 하여 퇴퇴 밷던 시절 그렇게 키운 누애가 실을 뽑고 번데기를 먹을려고 부뚜막 가상자리에 쪼그려 앉아서 명주실이 다 뽑아지고 검으티티한 번데기가 물에 뜨면 싸리나무를 꺽어 만든 나무젖가락으로 잽싸게 건져 먹든 버릇이 있어서 요즘은 날아가는 파리도 그때에 쌓은 실력으로 잡아챈다. 믿거나 말거나..
실파때에는 몰래 훔쳐서 솥뚜껑을 뒤집고 들기름을 또 훔쳐서 적(부침개)을 붙혀서 누가 먼저 먹을까봐 그 뜨거운 것을 입천정이 다 벗겨지는 것도 잊은 채 집어 먹고 결국에는 입천정이 다 벗겨져서 하얀 살점을 손가락으로 뜯어내던 때 그때의 실파는 지금도 자랄까?
여수항 부둣가에는 유별나게 굵은 자두가 있었다. 고등학교때 무전여행을 떠나서 단돈 50원으로 순천까지 가서 밤새 걸어서 여수항에 도착을 했는데 어느 할머니가 팔던 자두는 정말 굵었었다. 거의 나의 주먹만한 자두를 십원에 5개를 파셨는데 돈이 없어서 침만 삼켰고 자나가는 자두장사 아저씨 리어카를 밀어주고 얻어먹은 자두의 맛은 아마 지금도 그대로 일것이다.
어느 짓꿋은 말쟁이가 올린 농담이 생각이 난다. 고추는 과부가 키워야 크게 열린다는....... 클때에는 모르지만 늦게 애를 먹이는 것이 고추다 아마 남자 아이도 그런게 아닌가 싶다 어릴때에는 그냥 아들이라고 든든한 마음으로 키우지만 이놈이 참 말썽이 많다. 저 고추가 잘 영글어서 처녀밭에 씨를 제대로 부렸으면 좋겠다. 이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
누군가 그랬다. 살구처럼 달고 맛있는 과일은 없다고... 첫사랑의 그 맛이 아마도 살구맛이 아닐까... 달콤하고 새콤하고 온몸을 녹일듯이 상큼한 그 맛은.. 아마 전율을 느끼던 첫 사랑의 이루지 못한 그밤의 몽정과 같을것이다.
알알이 따 놓은 살구는 어쩌면 욕심의 소산일지 모른다. 몇알만 먹으면 금방 신물이 날 만큼 달고 맛있는 살구이고 보니 혼자 먹기에는 정말 그 맛이 아깝다 군침을 삼키며 한알을 더 집어 들지만 곱고 여리게 보이는 살구의 모습에 왜 금자의 고운 턱살이 보일까. 동서고금을 통하여 볼때 고구마를 남자의 상징물로 생각지 않는 나라는 없는듯 하다 노르웨에이 에서 15일을 달려 쿠웨이트에 도착한 트럭 기사의 말이 생각이 난다 샤워를 할때에 놀아워 바라보며 상당한 크기에 눈이 휘둥그래 지는데 그 친구의 말이 걸작이다. wey?yuo a look my xxx is sweet potato? 라고 물어보는 것을 보면 유럽도 남자의 그것에 고구마를 비교를 하고 남미에서도.. como se yo xxx patata? 라고 하는것을 보면 아마도 고구마는 남자의 상징물인가 보다. 어릴때에는 고구마가 그렇게 먹고 싶었지만 우리 동네는 감자밖에 없었다,
같은 종자이지만 이것은 사람의 손에서 귀염받고 자란 놈이고 맨위의 그림은 그야말로 햇빛이 쏟아지는 벌판에서 숨가쁘게 자라 억척같이 열린 물건이다. 아마 요강을 뒤집어 놓은 모습의 覆盆子 는 정장 위의 것이 아닐까.
옛날 교과서에는 감자꽃 이야기가 나온다. 자주색 꽃이 피면 자주감자 하얀 꽃이 피면 하얀감자. 그런데 어느 순간 서양 감자에 밀려 토종은 사라지고 없어졌다. 알고보면 옛날에 중국에서 들어온 감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토종인데 중국에는 그 종자가 지금도 늘버리지게 많단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들이 정말 멀어졌다 작고 아리고 눈만 커서 먹기에 나쁘니깐.. 감자를 켈때에는 얼마나 싫었으면 호미로 땅을 더 파고 땅속게 묻었는데 못자리를 하면서 다 뜨올라서 호대게 혼났던 그때가 그립다.
접시꽃을 보면 어릴때 보다는 더 추억스러운 일이있다. 도종환님의 접시꽃당신 이 출판되어 한창 팔리던 그때 나는 사하라사막에서 땀을 흘릴때였다. 2차대전 때 롬멜이 버리고 간 탱크라는데 나도 믿기지는 않치만 아무튼 탱크의 잔해 옆구리에서 응가를 하는데 한권의 책이 펄럭펄럭 날아왔다. 찢어지고 할킨 책 제목이 접시꽃 당신이다. 그 책을 보고 참 많이도 울었다. 아내를 여의고 쓴 음성중학교 국어교사 도종환 님의 시집 접시꽃당신이 이 꽃보다 더 아름답지는 않았을까.
앵두는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먹어 본 빨간 열매로 기억한다. 누구의 손에서 전해져서 나의 앙증맞은 작은 입속에 들어가서 씨 조차 삼켜버린 앵두 우물가의 그 앵두나무는 죽고 그 후손?이 자란다고 하는데 아직도 그 자리에 앵두는 열리고있다 내 마음의 우물에서...
아직은 털이 덜 자란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어른들은 흔히 말한다. ~허허 고놈 참 아직도 복상(복숭아의 방언)털 만도 못한 놈이 그래도 머시마라(머스마라) 할짓은 다한다.~ 아직은 솜털도 안 빠졌지만 그래도 복숭아는 복숭아다. 상아 반정호. 정상호아인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