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 지방 이전 안된다
이 대통령 신념 강해 세종시 계속 추진 위해 與주류, 3가지案 검토
與·與나 與·野 대결 예고 국민투표면 지역 충돌
롤러코스터는 완만한 오르막 경사를 타고 출발한다. 더디다 싶을 정도로 천천히 움직인다. 그렇게 정상 가까이 이를 무렵 탑승객(搭乘客)들의 공포는 정점에 달한다. 어지럼증 나는 곡예(曲藝) 주행이 막 시작되려는 순간이다. 세종시 수정을 위한 여권(與圈)의 행진이 바로 이 장면에 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 그룹인 한나라당 의원은 "박근혜 전 대표가 반대하니 세종시 수정은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박 전 대표의 신념만 알고 '세종시 원안은 절대 안 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신념은 몰라서 하는 얘기"라고 했다. 그는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중앙 부처의 지방 이전을)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막고 싶다'고 하지 않았느냐"면서 "이 대통령의 그런 심정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했다.
여권의 고위 관계자는 "세종시 수정 포기는 없다.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검토 중"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한나라 당론(黨論)을 세종시 수정으로 바꾼 뒤 국회 표결을 하거나 (박 전 대표 눈치를 보지 않고)의원들이 소신 투표를 할 수 있도록 국회 표결을 무기명으로 하는 방안이 있으며, 국회 표결이 도저히 안될 경우 최후의 대안으로 국민투표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여권이 세종시 수정을 위한 작전계획 A, B, C를 세워놓고 있다는 얘기다. 이 대통령은 설 연휴 직전인 지난 12일 청와대에서 가진 한나라당 당직자 조찬간담회에서 "세종시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릴 때가 됐다. 민주적인 방법으로 당론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세종시 당론 바꾸기를 '플랜 A'로 정했다는 뜻이다.
당론 변경을 하려면 한나라당 친이 주류 대(對) 친박 비주류 간의 격렬한 대립이 예상된다. 현재 한나라당 세종시 당론은 박 전 대표 재임시 정해진 '원안'이다. 이를 주류 바람대로 '수정안'으로 바꾸려면 한나라당 의원 169명의 '3분의 2'인 113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당내 친박세력이 50명 내외인데, 이들을 제외하고 113명을 확보할 수 있을지가 1차 관건이다. 머릿수를 채우고 나면 비주류의 반대를 뚫고 당내 표결을 성사시키는 것이 두번째 과제다. 그렇게 수정안 당론을 만들고 나면 야권의 물리적 저지를 뚫고 국회 표결을 하는 세번째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여권 핵심부는 당론을 정하지 않고 국회에서 무기명 비밀투표를 하는 '플랜 B'를 보다 바람직한 방안으로 여기고 있다. 박 전 대표가 이 방식에 동의한다면 여당 내 표 대결 없이 곧장 국회 표결로 가게 된다. 플랜 B에선 여당 주류가 이중의 전투를 치러야 한다. 낮에는 표결 자체를 거부하는 야당과 싸우면서 밤에는 친박 비주류 중 일부를 '수정안 찬성' 쪽으로 돌리기 위한 각개전투를 치러야 한다. 국회 표결이 성사돼도 친박 50여명 중 상당수를 포섭해야 수정안을 통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회에서 결판내는 플랜 A, B는 국회 표결 성사 자체가 어렵고, 표결에서 이긴다는 보장도 없다. 그래서 여권이 만지작거리는 마지막 카드가 '플랜 C, 국민투표'다.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세종시 수정안이 원안보다 전국적으로 더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세종시가 국민투표 대상이 되느냐'는 법적 논란을 해소하고 실시만 된다면 수정안 쪽 승산이 높다는 얘기다. 문제는 충청·호남이 원안 지지로 뭉치는 등 지역 편차가 커서 국민투표를 강행하다가는 나라가 두쪽 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현재 여권의 공식 입장은 "국민투표는 검토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와 특임장관실에선 국민투표가 실시될 경우에 대비한 실무(實務) 차원의 검토가 조심스럽게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내 두 정파가 세종열차를 서로 다른 목적지로 끌고 가겠다며 다툴 결심이라면 앞으로의 험난한 여정(旅程)에 대해 예고방송이라도 해주는 게 예의일 것이다. "탑승객 여러분. 열차는 지금 충돌 코스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여당 주류·비주류 간 난기류가 형성되는 A코스입니다. 열차가 심하게 덜컹거릴 수 있습니다. 다음 B코스가 이어집니다. 여야가 충돌하는 한편 깜깜이 터널을 지나는 구간에선 여당 주류와 비주류가 뒤섞이는 혼란이 예상됩니다. 마지막으로 충돌이 전국적 규모로 확산되는 C코스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코스에선 열차가 궤도(軌道)를 벗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부디 안전벨트를 단단히 조여 매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