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한의 할머니(정영숙)는 두한(안재모)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더럽히고도 집에 올 생각을 했냐며 노발대발한다. 두한은 할머니의 노여움이 풀릴 때까지 일어나지 않겠다며 마당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빈다. 최동열(정동환) 기자는 두한이 불의를 위해 싸우는 것도 독립운동이라고 했던 말을 전하며 두한의 입장을 대변한다. 최동열 기자의 완곡한 설득으로 할머니는 두한이 아버지께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허락하지만 쉽게 노여움을 풀지 않는다. 박인애(정소영)와 박인애 오빠(안성민)의 초대를 받고 간 두한은 기모노를 입고 있는 박인애 부모의 모습과 집에 일장기가 걸려 있는 모습을 보고 표정이 굳어진다. 두한에게 호감을 보이던 박인애 부모는 두한이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부터는 갑자기 차가운 태도를 보이며 황급히 자리를 피한다. 두한도 서둘러 자리를 뜨자 박인애는 마당까지 쫓아와서 부모 대신 정중히 사과한다. 한편 마포에 피해 있던 왕발(이재포)은 서대문 패거리가 두한에게 충성 맹세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한다. 마침내 왕발은 두한을 해치기로 결심하는데….
씬 1 삼청동
지난 회의 연결이다. 조모가 툇마루 위에 꼿꼿히 선 채, 두한을 무섭게 내려다보고 있다. 최동열도 당황하고 있다.
조모-내 집에서 나가라 하지 않았느냐? 어서 썩 물러가거라.
두한-할머님..
조모-나는 너 같은 시장통의 무뢰배 손자를 둔 적이 없느니라. 부끄럽구나. 범의 새끼가 되라고 내보냈더니 어디서 더러운 늑대의 새끼가 되었구나.
두한-할머님, 뭔가 오해가 있으셨나 봅니다. 그런게 아니라..
조모-닥치지 못할까? 네 아비는 천하가 다 존경하는 독립군 장군이시다. 그 큰 이름을 더럽히고도 감히 내 집에 발을 들여놓을 생각을 하였더란 말이냐. 나가거라, 이놈아. 어서....!
오씨-어머님....?
두한-.............
오씨-두한아, 어서 할머님께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거라. 그래야 하느니라. 어서..
최동열-........
두한-...........죄송합니다, 큰어머니.
오씨-두한아... 어서 용서를 빌어...
두한-언젠간 할머님께서도 이해를 해주실 겁니다. 이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 거짓으로 용서를 구할 수는 없습니다.
조모-닥치거라!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다. 어멈은 무얼하는 게냐? 어서 저 아이를 내쫓고 문을 걸어 잠그거라.
오씨-어머님.....?
조모는 그대로 방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오씨가 난감한 표정으로 양쪽을 번갈아 본다. 최동열 역시 참담한 표정이다. 두한이 그 자리에 무릎을 꿇는다.
두한-할머님께서 뭔가를 잘못알고 계시나봅니다. 노여움이 풀리실 때까지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습니다.
오씨-어이구, 어쩌나 어쩌나... (보다가 최동열에게) 너무 실례가 많은 것 같습니다. 우선 안으로 드시지요.
최동열-예.. 제가 말씀을 드려봐야겠습니다.
두한을 한 번 보고 최동열과 오씨가 안으로 들어간다. 두한은 미동도 없이 그렇게 있다. 그 모습에서..
씬 2 동 방안
은은하게 향불이 피어오르고 있다. 친조모가 반쯤 몸을 돌린 채 앉아 있고 오씨는 마치 자신이 죄를 짓기라도 한 것처럼 몸들 바를모른다.
오씨-어머님... 그래도 제사는 올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모-...........
오씨-그만 노여움을 푸세요.
조모-........... 일없다. 어서 내쳐라. 내 손주가 아니니라. 내가 저놈을 잘못보았어. 어서 내치지 않고 무얼하느냐? 어서.....
최동열-어르신, 제가 말씀을 대신 올리겠습니다. 사실 두한이가 그렇게 된 데에는 제 잘못이 큽니다.
조모-무슨 말씀을 하시는게요? 최기자가 왜요?
최동열-실은 만주로 가겠다는 두한이를 종로에 눌러 앉힌 게 바로 저였습니다.
조모-.........?
최동열-사실입니다. 두한이는 만주로 가려고 했으나 그때 형편은 그렇지가 못했습니다.
조모-그렇다고 해서 어떻게 시장통의 무뢰배 잡배가 된단 말입니까? 안동 김씨 가문에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독립군 김좌진 장군의 아들로서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어멈아...?
오씨-예...?
조모-무얼하고 있어? 내쫓으라고 하지 않느냐?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오씨-글쎄 어머님....?
최동열-두한이는 주관과 소신이 뚜렷한 아입니다. 물론 지금은 종로통의 어깨들과 함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조모-뭐요....? 시장통에서 거들먹거리는 어께라고 했소이다. 헌데 나쁜게 아니라구요?
최동열-그렇습니다. 주먹도 주먹 나름입니다.
조모-.............?
씬 3 다시 동 집 마당
두한이가 무릎을 꿇고 있다. 안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최동열-(소리) 제가 알아볼 만큼 알아봤습니다. 두한이는 힘없는 약자를 돕고 힘께나 있다고 상인들을 괴롭히는 자들을 혼내주고 있었습니다. (사이) 절대 잘못된 길로 빠져들지는 않을 겁니다. 일단은 믿음을 갖고 지켜봐 주십쇼.
조모-(소리) 믿다니요? 무얼 말입니까? 사람들이 저 아이를 손가락질 할 것 아닙니까?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 시정잡배 주먹패가 되었다고 말입니다. 누가 뭐래도 주먹패라는 건 사실이 아닙니까?
두한-.............?
씬 4 동 박인애의 방
박인애가 책상 앞에 앉아 미스터박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박인애-그 분을.... 다시 만났단 말이에요?
미스터박-그래.. 극장으로 찾아갔는데 정말 대단한 사람인가 보더라. 그 사람 앞에선 모두들 기를 펴지 못하고 굽신 대러라구.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도 인사를 해대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박인애-...............? 그렇게 나이가 들어 보이지는 않던데... 무슨 일을 하는 분이신데요?
미스터박-글쎄.. 자세한 건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극장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더라. 젊은 나이에 크게 성공한 사업가인 게지. 거기에다가 사람들을 대하는 예의도 깔끔하고... 신사도 그런 신사가 없었다.
박인애-...............
미스터박-오늘만 해도 찾아와 준 걸로 고맙다면서 먼저 찻값을 계산하는게 아니냐. 남자인 내가 봐도 정말 괜찮은 사내였어.
박인애-어떻하죠, 오라버니? 우리도 뭔가 보답을 해야 할텐데요.
미스터박-그건 걱정하지 마라. 내가 김두한 씨를 우리 집에 초대하기로 약속을 받아 놓았으니까.
박인애-........집으로 초대를요?
미스터박-부모님께 말씀드리고 내일이라도 당정 모셔올 작정이다. 인애 너도 그 분이 보고 싶다면서....?
박인애-........그런.. 데 뭘 준비해야죠? 전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는데......
미스터박-그런 건 어머니께 맡기고 넌 그 분에게 잘 보일 생각이나 해.
박인애-.........?
미스터박-혹시 아니? 그분이 너한테 관심이 있을지....?
박인애-오라버니?
미스터박-그럴 수도 있다 이런 말이야. 네 혼사 얘기가 오고 가니까 하는 말이다. 아버지도 아마 김두한씨를 직접 보시면 마음이 흔들리실 걸.. 워낙 셈이 빠른 분이니까 말이야... 아, 나도 빨리 그 사람을 다시 보고 싶은데... 그런 의혈남아를 만나다니... 이건 행운이라구. 안 그러냐, 인애야?
박인애의 얼굴은 어느새 어떤 기대감으로 물들어 있다.
씬 5 삼청동 마당
두한은 그대로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다. 벌써 많은 시간이 흐른 듯 산 동네에는 불빛조차 보이지 않는다.
최동열-(소리) 어르신, 아직도 제 말을 못 믿으십니까?
씬 6 동 집 방안
최동열이 여전히 조모를 설득하고 있다. 조모는 눈을 지그시 감고 있다.
최동열-두한이는 분명 다른 아이와 다릅니다. 저한테 이런 이야기도 한 적이 있습니다. 독립운동은 만주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조모-.....(꿈틀한다)....?
최동열-힘없는 시장 상인들을 위해서 싸우는 것도 독립운동이라고 했습니다. 불의를 위해서 싸우는 것 말입니다.
조모-..............
오씨-어머님, 벌써 두 시간이 넘었습니다. 그만 안으로 들이시지요. 제사를 뫼시러 온 아이입니다.
조모-.............
오씨-저렇게 몇날 몇일을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어머님?
조모-......(한참만에 눈을 뜨며 긴 한숨) 들이도록 해라.
오씨-어머님...! (안도) 알겠습니다. 그리하겠습니다, 어머님...
최동열-........(안도의 표정이다)
오씨가 밖으로 나간다. 최동열이 낮게 한숨을 내쉰다. 잠시 후 두한이 들어오면 그러나 조모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오씨-밤이 깊었다. 아버님께 어서 술을 따라 올리거라.
두한-예.
두한이 숙연한 표정으로 제상에 술을 올리고 절을 한다. 모두들 말없이 두한을 지켜보고 있다. 두한이 차가운 표정의 조모에게 머리를 조아린다.
두한-할머님, 할머님의 뜻을 따르지 못해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두한이를 믿어주십쇼. 절대 아버님의 이름을 더럽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조모-.............
두한-오늘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두한은 외면하는 조모에게 다시 한 번 큰 절을 올린다. 최동열도 일어서고 오씨의 배웅을 받으며 두 사람 밖으로 나간다. 그들이 모두 방을 나갈 때까지 조모는 끝내 돌아보지 않는다. 그리고 나서 한숨을 쉬는 조모. 답답한 듯 허공을 본다.
조모-(소리)가엾은 것. 그래, 시장통의 불쌍한 이들을 돌보는 것도 독립운동일 수가 있지. 허나 너는 범의 아들이다. 결코 거기에 머물러서는 아니된다. 너는 호랑이 새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해.
씬 7 그 언덕 길 (수정)
산 아래 집들이 즐비하다. 최동열은 담배연기를 길게 날린다.
최동열-두한아...
두한-예, 아저씨.
최동열-그토록 완강하시던 할머님께서 왜 제사를 허락하신 줄 아느냐?
두한-모르겠습니다.
최동열-네가 거리의 독립군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풀어지신거다.
두한-......?
최동열-기왕에 종로를 버릴 수가 없거든 나름대로 열심히 해보거라. 한번 네 뜻대로 네 세상을 만들어 보란 말이다.
두한-..........?
최동열-..............
씬 8 거지촌 외경 (밤, 첨가)
씬 9 동 진영의 방
진영이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육법전서를 옆에 놓고... 그렇게 공부를 하다가 피곤하지 기지개를 편다. 그 때 인기척이 나고 진영모가 들어온다.
진영모-오늘도 밤을 세우려느냐?
정진영-....(돌아보며) 아직 안주무셨어요?
진영모-나도 통 잠이 오지 않는구나.. 시장하지 않니? 뭣 좀 먹어가면서 해야지...
정진영-저녁을 든든히 먹어둬서 괜찮아요. 그리고 배가 부르면 머리가 맑지 않거든요.
진영모-그래도 몸을 생각해야지.. 공부도 좋다만 몸이 상하면 안되지...
정진영-예, 어머니..
진영모-이런... 공부하는데 방해가 됐겠구나.. 에미는 그만 건너가마..
정진영-아니예요... 잠시 쉬려던 참이었어요.
진영모-그래...? (사이) 사법시험을 본다고 하였느냐?
정진영-예, 어머니..
진영모-변호사가 되겠다구...?
정진영-예... 물론 시험에 붙는게 우선이겠지만, 판검사가 된다면 어쩔 수 없이 원하지 않아도 일본에 협력하게 될 거예요. 그래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변호사를 생각하게 됐어요.
진영모-그래... 장하구나... 그래 그래.. (한숨... 그리고 마음의 소리) 하지만 에미는 한편으로는 걱정이구나.. 일본 사람들이 과연 너를 뽑아줄지 말이다.. 돈많고 지체 높은 집안의 도련님들이나 보는 시험이 아니더냐? (눈물이 흐른다)
정진영-어머니...?
진영모-아니다.. 그만 일어서마.. 열심히 하거라. (일어서면)....
정진영-........?
씬 10 혼마찌깡 외경(낮)
씬 11 동 거실
하야시가 마주 앉아 대립하고 있는 나미꼬와 가미소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미우라와 시바루가 함께 자리해 있다.
가미소리-나미꼬양, 사쿠라에 배치한 아이들을 돌려보낸 것은 경솔한 행동이셨습니다. 그 사이 종로패가 쳐들어오기라도 했다면 어쩔 뻔 했습니까? 오늘부터 다시 애들을 배치시키겠습니다.
나미꼬-아니요. 우리가 먼저 그들을 자극하지 않는한, 김두한은 절대 힘으로 우리를 몰아내지 않을 거예요. 직접 만나본 김두한은 정말 사내다운 사람이었어요. 힘없는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를 사람은 아니었다구요.
가미소리-하지만 나미꼬양...
하야시-그만.. 사쿠라는 이미 처제에게 맡기기로 하지 않았나? 알아서 하도록해.
나미꼬-고마워요, 형부.
하야시-하지만 그곳은 이제 우리에게 더 이상 큰 의미가 없어. 유지가 어렵다면 포기할 수도 있다는 말이야.
나미꼬-......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저는 제가 맡은 일은 언제든지 확실히 한다구요.
무사1이 잠시후 그들을 데리고 들어온다. 아사히마찌 패거리1, 2가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아사히1-그간 안녕하셨습니까, 하야시 오야붕?
하야시-무슨 일인가?
아사히2-대단히 중요하고도 시급한 사안입니다. 상해에서 우리가 거래하던 마약이 어떤 조선인에 의해 강탈 당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자가 경성으로 들어 왔다는 정보가 입수되었습니다.
가미소리-(발끈하며) 우린 마약에 손대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나?
아사히1-물론 알고 있습니다만... 이번 경우는 본토에서 혼마찌깡의 도움을 받으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가미소리-뭐, 본토에서..?
하야시-.............
아사히2-아시다시피 저희는 종로에 들어갈 수가 없을뿐더러 이 일은 은밀히 처리되어야 하겠기에 이렇게 협조를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말씀 드렸다시피 이 일은 대단히 중요한 사안입니다. 협조를 부탁 드립니다.
하야시의 심각한 얼굴에서....
씬 12 우미관 앞
삼수와 병수, 털보 등 우미관패들이 도열해 있다. 그 한쪽으로 문영철, 김무옥, 개코, 번개가 긴장한 채, 종로 거리를 쳐다본다.
문영철-오야붕 모임에 과연 몇명이나 올까?
김무옥-글쎄 말이여. 생각 같아선 우르르 몰려왔으면 좋겄는디.....
개코-그래두 한 대여섯은 오지 않겠어?
번개-(궁시렁) 지가 뭘 안다고?
개코-.....잉?
번개-(딴청..휘파람).....
문영철-그렇게라도 되면 대성공이지. 아마도 한두 패 정도가 고작 일거야. 그 이상은 힘들어.
개코-설마......
김무옥-올라면 빨리들 와부러야 할텐디...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개미 새끼 한 마리 눈에 띄지 않는구먼.
그때 멀리서 인력거 한 대가 다가온다.
번개-이제 슬슬 오기 시작 하네요.
번개가 얼굴이 밝아지며 잽씨게 뛰어가고 김무옥과 문영철, 개코도 그 앞으로 다가간다. 그런데 정작 내리는 사람은 전혀 낯선 얼굴의 와싱턴이다. 영철과 무옥이 서로의 얼굴을 보며 의아해한다. 최고급 양복 차림에 묵직한 가방을 든 와싱턴은 근엄한 표정으로 잠시 주위를 둘러본다.
번개-어서 오십시오. 제가 모시겠습니다, 형님.
와싱턴-....?
문영철-그런데 어느 패에서 오셨습니까?
와싱턴-허허허.. 뭔가 오해를 한 모양이군.
개코-오늘 오야붕 회의에 오신 게 아닙니까?
와싱턴-나는 상해에서 왔네.
개코-상....해요? 무옥아 경성에 상해라는 곳두 있냐?
김무옥-허 참말로 무식한 놈일시... 상해는 중국에 있는 곳이여.
개코-그, 그래?
번개-하여간 무식하기는...
개코-무야?
와싱턴-자네들 보스 안에 계신가?
김무옥-예? 보스...라니요?
와싱턴-하하하. 오야붕 말일세. 그걸 서양말로 보스라고 하네.
문영철-...? (미심쩍다)
와싱턴-나는 중요한 사업 때문에 구마적 오야붕을 만나뵈러 왔네. 그러니 어서들 안내하게.
그러자 문영철들이 험악하게 인상을 구긴다.
와싱턴-뭣들 하는가? 어서 안내하지 않구.
김무옥-이 양반이 세상이 워찌 돌아가는지 모르는 모양인디.... 구마적 형님은 우미관 뜬지 오래 되야 부렀소.
와싱턴-구마적 오야붕이 우미관을 뜨다니...? 그럼 누가 우미관의 주인이란 말인가?
김무옥-아따 고것도 모르고 우미관에 왔소? 그럼 터진 귓구녕으로 잘 들으시오. 바로 김두한 오야붕이오. 김두한 오야붕! 이제 알겄소?
와싱턴-(대수롭지 않다는 듯) 김두한이라구.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어쨌거나 좀 만나봐야겠네. 중히 할 이야기가 있어.
문영철-무슨 일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안됩니다. 오야붕께서 중요한 회의가 있으십니다. 다음에 다시 와주십시오.
와싱턴-.... (잠시 머뭇거리며)
개코-말 못들었어요? 다음에 오라고 하잖아요.
와싱턴-하하하. 젊은 친구가 성격이 급하구만. 알았네. 다음에 다시 오지. (자신의 명함을 꺼내 건네며) 조지가 다녀 갔다구 전하게. 반드시 전해야 하네. 조오지일세. 그럼 난 가네.
와싱턴은 그렇게 사라진다. 개코는 명함을 손에 쥐고 머리만 글쩍거린다. 온통 영어로 써있는 명함이다. 그것은 김무옥과 문영철도 마찬가지다.
개코-도무지 이게 무슨 말인지?
김무옥-겉모습을 보아하니 대단한 사람같은디....
개코-그러게 말이야..
번개-대단하긴... 내가 보기엔 사기꾼 같은데요 뭘. 나이도 별로 안되어보이는 게 꼬박꼬박 반말이야. 재수 없게스리... 그나저나 오라는 오야붕들은 안 오구, 순 이상한 사람들만 오네요.
김무옥-그러게 말이여. 시간이 많이 지났는디......
문영철은 걱정스럽게 우미관 사무실 창쪽을 쳐다본다.
씬 13 씬 동 사무실
두한이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 보고 있다.
김영태-오늘 모임은 무산될 가능성이 매우 크네. 몇 명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들과 회의다운 회의를 하기는 어려울 게야.
두한-...........
김영태-하지만 우리는 충분히 그들을 기다려 주었어. 이미 명분만은 확실히 얻은 셈이지.
두한-아직은 시간이 이릅니다. 좀더 기다려보죠.
김영태-물론 그렇게 해야 하겠지만 너무 기대하지는 말게. 경성일대의 오야붕들도 꽤나 골머리를 썩고 있을 걸세. 아무래도 종로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겠지.
두한-....(끄덕인다)....
김영태-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후일세. 우리에게 우호적인 세력과 적대적인 세력이 확실이 구분될 테니까.
두한-어떻게든 조선 주먹패들이 힘을 합쳐야 합니다. 그래야 하야시패와 당당히 맞설 수 있습니다.
김영태-(미소) 결국 자네의 뜻은 거기에 있었구만.. 역시 두한이답구만..
두한-그건 쌍칼 형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김영태-그야 그렇지.. 하지만 쉽지만은 않은 일일세. 경성 주먹을 통일한다는 것도, 하야시와 맞선다는 것도... 아무래도 상하이가 마포 뿐 아니라 다른 오야붕들에게도 손을 쓴 것 같네. 생각보다 상하이가 만만치 않아..
두한-..........
씬 14 마포 포구 전경
씬 15 동 마포 사무실
상하이와 용식을 비롯해서 서대문 작두, 시구문 짝코, 동대문 황소등 오야붕들이 모여 있다.
상하이-하하하.. 보기 좋게 한 방 먹였습니다. 지금쯤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눈에 선합니다. 그 가소로운 김두한이 말입니다.
용식-뭔가 깨달은 것이 있겠지. 우미관을 차지했다고해서 경성의 오야붕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야.
작두-하지만 난 영 개운치가 않소. 두한이가 건방진건 사실이지만 어쨌든 이번엔 예의를 갖춰 우리를 불러들이지 않았소?
짝코-맞는 말이야. 부딪칠 때 부딪치더라도 오늘 회의는 갔어야 했어.
상하이-지금 무슨 소리들을 하시는 겁니까? 이번 기회에 철저하게 밟아 놓지 않으면 우리가 당합니다. 구마적 형님이 왜 당했는지 벌써들 잊으셨습니까?
모두들-..............
상하이-이 상하이를 믿고 따라 주십시오. 영등포와 노량진은 물론 경성 일대의 그 어느 오야붕도 오늘 회의에 참석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알아듣도록 얘기를 해놓았습니다.
황소-이미 그곳까지 손을 써놓은 걸 보니 상하이 자네가 수고가 많았구만..
상하이-그렇기도 했지만 모두들 마음이 같았습니다. 두한이 같은 애송이를 오야붕으로 모실 수 없다는 거죠. 그건 너무도 당연합니다. 이제 일은 끝난 거나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가 뭉치면 우미관을 밀어버리는 것은 시간 문젭니다. 날짜만 정하면 되는 일이지요.
짝코-그렇게 되면 우미관의 주인은 누가 되는 건가? 설마 상하이 자네가....
상하이-하하하. 그 점은 염려 하지 마십시오. 저는 그 자리에 관심이 없습니다. 제 목표는 두한이 그 놈일 분입니다.
짝코-그렇다면 누가 그 자리에 앉는 거지? 우미관의 새 자리에 누가 앉게 되는 거냐구?
오야붕들 모두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말이 없다. 그런 정적이 한동안 계속된다. 상하이는 답답한 듯 탁자를 내려친다.
상하이-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게 아닙니다. 두한이를 제거하고 나서 결정해도 늦지 않다 말입니다.
황소-상하이 자네 말이 다 맞다고 치세. 그런데 누가 두한이를 잡는다는 건가? 나는 계속 의문이 들었어. 이 자리에서 과연 두한이와 상대할 사람이 있냐는 거야?
모두들-.............
상하이-(권총을 탁자위로 내려치며) 그 일은 제가 합니다. 이 상하이가 말입니다.
용식-그건 안돼. 그런 걸 쓴다는 것은 건달의 수치야.
상하이-상관 없습니다. 두한이를 끝장낼 수 있다면 저는 목숨이라도 내어 놓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꼭 그렇게 하고 말 겁니다. 구마적 형님의 복수를 하고야 말 겁니다. 복수 말입니다.
모두들-...........
씬 16 씬 우미관 외경(저녁)
모두들 철수한 듯 한산하다. 미스터 박이 서성거리며 서있다. 두한을 기다리는 것이다.
씬 17 동 사무실
창밖으로 어둠이 내리고 있다. 모두들 어느 누구하나 말을 꺼내지 못하는 처참한 분위기다.
김영태-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아무도 오지 않을 줄이야.
문영철-다른 패들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영등포에서 오지 않은 것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은근히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었는데.......
김영태-틀림없이 상하이야. 상하이가 손을 쓴 게 분명해.
김무옥-그 석을 놈에 자슥이 아작까정 정신을 못 차리구......
두한-상하이는 지금 마지막 충성심을 보이고 있는거야. 구마적에 대한 충성심 말이야.
개코-상하이고 마포구 시구문이고 모조리 박살을 내야해. 두한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 상하이한테 넘어간 놈들도 다 똑같단 말이야.
두한-.............
김영태-두한이... 개코 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 이제 뭔가를 보여줘야 할 때가 아닌가 싶네. 우리들의 힘을 보여줘야해.
두한-그래야겠죠. 그들이 오지 않는다면 우리가 찾아나서는 수밖에 없겠죠.
씬 18 우미관 앞
두한들이 막 밖으로 나오는데 멀리에서 극장을 지켜보던 누군가가 이쪽을 향해 달려온다. 김무옥과 문영철이 보호하듯 두한의 앞을 가로 막는데 그 앞으로 서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미스터박이다.
미스터박-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두한-.........
미스터박-언제 나오실 줄 몰라서 저 앞에서 계속 서 있었습니다.
두한-들어오시지 않구요.
미스터박-아닙니다. 하시는 일도 바쁘실텐데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요. (김영태들에게) 안녕들 하십니까?
모두들-...........(어정쩡하게 인사를 받는다)
두한-저한테 무슨 볼 일 이라두...?
미스터박-벌써 잊으셨습니까? 제가 한 번 초대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두한-아 네...
미스터박-오늘 선생님을 저희집으로 모셔가려구 이렇게 온 겁니다. 시간이 괜찮으시겠습니까?
두한-아.. 아닙니다. 저는....
미스터박-또 사양하시면 안됩니다. 저희 부모님께서도 김 선생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제 여동생도 그렇구요.
두한-죄송합니다만 그냥 성의만 받겠습니다. 그러니......
미스터박-무슨 말씀이십니까? 오늘은 그냥 갈 수 없습니다. 꼭 선생님과 함께 가야합니다. 여기서 멀지 않습니다.
두한-......(난감한데)
김무옥-아 무슨 일인디 그려...?
두한-...............
두한은 간절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 미스터박의 태도에 어쩔수 없는 체념한다.
두한-알겠습니다. 어딥니까?
미스터박-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두한-잠시 다녀오겠습니다.
김영태-무슨 일인가? 무슨 일인지는 대충 알아야...
두한-별 일 아닙니다.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시죠.
미스터박-예.. 어서 가시죠. 모두들 기다리고 계십니다.
두한-......예.
두한은 미스터박과 함께 그렇게 간다. 영태가 잠시 지켜보다가..
김영태-병수, 삼수......
두 사람-예, 형님.
김영태-혹시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잘 따라붙어. 너무 가까이 붙지는 말고....
두 사람-예.
병수와 삼수는 두한의 두를 따라간다.
김영태-우리들도 가자.
모두들-예.
문영철-(뭔가를 떠올리고) 저 형님.... 경황중이라 말씀을 못 드렸는데, 낮에 어떤 손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와싱턴의 명함을 건네며) 성함이 조지라고 하셨는데, 오야붕을 만나뵙겠다는 걸 다음에 오시라고 했습니다.
김영태-(명함을 보며) 조지... 조지 와싱턴.....?
개코-누군지 아는 분이십니까?
김영태-당연히 알지. 미국이라는 나라의 초대 대통령이 바로 조지 와싱턴이야.
개코-네.....?
김영태-이름만 같다는 거야. (사이) 와싱턴이라.... 어디서 들어본 것도 같은데.... 와싱턴... 와싱턴....
씬 19 사쿠라 외경
씬 20 동 사쿠라 안
와싱턴이 테이블에 홀로 앉아 온갖 폼을 잡으며 양주를 마시고 있다. 그의 뒤에 서있던 웨이터가 다가온다.
웨이터-저 손님... 더 필요하신 것은 없으십니까?
와싱턴-아니...나는 울적한 마음을 달래줄 이 술 한병이면 더 바랄 게 없는 사람이네.
웨이터-아... 예.
그때 나미꼬가 안으로 들어와 지나쳐가자 그 미모에 와싱턴의 눈이 반짝거린다.
와싱턴-어이 잠간.. 그런데... 저 숙녀는 누군가?
웨이터-이곳 사쿠라의 사장님 이십니다.
와싱턴-사장이라구..... 저렇게 젊은 숙녀가 말인가? 놀랍군. 정말 놀라워. (명함을 주며) 이건 내 명함이야. 가서 사장님께 전하고 상해에서 온 사업가가 좀 만나 뵙고 싶다고 청하게.
웨이터-....예.
나미꼬는 웨이터에게 명함을 건네받고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와싱턴은 짐짓 점잔을 빼고 있다. 그들 옆으로 시바루의 눈길이 매섭다.
나미꼬-(다가와) 저를 찾으셨다구요?
와싱턴-(고개를 끄덕이며) 앉으시오.
나미꼬-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와싱턴-아름답고도 고독한 밤이오, 마담.
나미꼬-........?
와싱턴-잔을 받으시오. 나는 조지라고 하오. 조지 와싱턴.....
나미꼬-예... 나미꼬라고 불러주세요.
와싱턴-그대의 맑은 눈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혼탁했던 내 영혼마저 맑아지는 것 같소.
나미꼬-호호호. 칭찬이라면 감사합니다.
와싱턴-농담이 아니오. 마담을 본 순간, 내 가슴 속에서 꺼져가던 정열의 불씨가 활활 타오르는 것을 느꼈소. (은근히 나미꼬의 손을 잡으며) 사실 나는 이 자리에 앉아 지난 인생을 돌이켜보며 인생을 비관하고 있었소. 내가 가진 재산이며 나를 따르는 수많은 여인들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이오.
시바루-.....(부르르 주먹을 쥔다)
나미꼬-(손을 빼며) 선생님께선 참 재미있으신 분 같아요. 그런데 무슨 사업을 하시기에 그 먼 상해에서 경성까지 오시게 된 거죠?
와싱턴-그저 보잘 것 없는 작은 상업 회사를 운영하고 있소. 경성에는 사업확장차 오게 되었소이다. 사실 종로는 내 고향과도 같은 곳이오.
나미꼬-...........?
와싱턴-떠나 있는 동안 종로의 모습도 많이 바뀐 것 같소. 듣자하니 우미관의 주인도 새파란 녀석이라니...... 참 기가 막히는 일이오.
나미꼬-김두한 오야붕 말인가요?
와싱턴-그렇소. 한때 나도 종로를 주름잡는 협객이었소. 그저... 어딘가에 소속되는 게 싫어 고독한 야수처럼 혼자 다녔을 뿐이오. 그렇게 따지면 두한이라는 그 아이는 내게는 까마득한 아우뻘이 되는 거요.
나미꼬-..........
와싱턴-형님으로 모시기는 했지만 구마적도 예전에는 이 와싱턴을 무시하지 못했지. 헌데 오늘 사업처 두한이라는 아이를 찾아갔더니 그 부하 녀석들이 나를 몰라보더란 말이오.
나미꼬-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헌데 김두한 오야붕과는 무슨 사업을 의논하시려고 하는 거죠.
와싱턴-(얼버무리듯) 그건 차차 말해 주리다. 이러 술이 다 떨어졌군.
나미꼬-제가 맥주 몇 병 대접하죠. 그 대신 김두한 오야붕과 사업 이야기를 하실 땐 꼭 저희 영업장을 찾아주세요.
와싱턴-이렇게 미인이 계시는데... 내 꼭 그렇게 하리다.
나미꼬-감사합니다. 여기... 술좀 가져와.
웨이터-예.
한쪽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시바루는 다시 한 번 와싱턴을 주의깊게 살피고 있다.
씬 21 박인애의 집 앞
미스터박이 두한과 함께 집 앞에 서있다. 환하게 불을 밝힌 그 집은 그야말로 대저택이다. 두한의 눈에 놀라운 빛이 스쳐 지나간다. 박인애가 문을 열어주며 두한을 맞는다.
박인애-(인사하며) 어서 오세요.
두한-(엉겁결에 허리를 숙이며)아...예.
박인애-저희 집에 잘 오셨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세요.
박인애는 은은한 눈빛으로 두한을 본다. 두 사람의 눈이 잠시 허공에서 부딪치고 두한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진다.
미스터박-자... 어서요. 어서 들어가세요.
두한-예. (들어간다)
씬 22 동 집 거실
박인애의 부친과 모친이 거실에 서 있다. 그들 부모는 기모노 차림이다. 두한의 표정이 잠시 굳는다. 그러나 두한은 이내 정중히 인사를 한다.
두한-처음 뵙겠습니다. 김두한이라고 합니다.
부친-우리 집에 잘 오셨소이다.
모친-환영합니다. 자, 어서 이쪽으로 앉으세요. (부친에게) 일단 차부터 준비 시키겠어요.
부친-그렇게 해요.
그들 모두는 소파에 앉는다. 두한은 잠시 집안을 둘러본다. 일본풍의 장식품들 뿐 아니라 한쪽에는 일장기가 보란 듯 걸려있다. 주변을 보는 두한의 표정이 계속 어둡다.
부친-우리 아이들을 구해주셨다니 정말고 고맙소.
두한-그저... 우연히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부친-아니에요, 아니올시다... 우리 아이들한테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런 용기를 내는 것은 절말로 어려운 일이오. 불의를 참지 못하는 것은 진정한 사무라이 정신에 속하는 것이오. 그것은 아무나 흉내내는 것이 아니지요. 암...
두한-..........?
박인애-아버님... 그런 재미없는 이야기는 그만 하세요.
부친-알았다. 허허허. 저 녀석은 남자들의 이야기를 무척이나 싫어한답니다. 영락없는 여자 아이지요.
곧 모친이 쟁반을 들고 와 부치의 옆으로 앉는다. 박인애는 두한의 앞으로 찻잔을 놓아준다.
모친-곧 식사가 준비 될 겝니다. 차부터 한 잔 하세요.
두한-예. 잘 마시겠습니다.
모친-(두한을 보며) 우미관에서 일하신다구요? 그곳에서는 무슨 일을 하고 계신가요?
두한-그저... 극장을 돌보고 있습니다. 그곳에 딸린 식구가 많아서....
모친-결혼은... 하셨나요?
두한-예....?
부친-하하하. (모친을 가리키며) 이 사람은 잘 생긴 청년만 보면 이러게도 관심이 많아요. 딸 가진 부모 심정이라는 게 다 그런 게 아니겠소.
박인애-아버님......
그러다가 두한은 다시 박인애와 시선이 마주친다. 박인애 가만히 시선을 내린다. 두한의 가슴도 두근거린다. 뭔가 자꾸 어색하다.
부친-김두한군이라고 했던가... 본관은 어디요?
두한-안동 김씹니다.
부친-아, 안동 김씨....? 그랬구려, 어쩐지... 안동 김씨라면 뼈대있는 양반 가문이지요. 그런 댁의 자손이였구려. 그래요, 그 가문에서는 훌륭한 인재들이 아주 많이 배출되었지.
두한-..............
부친-그래... 부모님은 모두 생존해 계시오?
두한-(잠시 생각하다가) 부모님은 돌아가셨습니다. 계모님과 할머님이 계십니다.
모친-저런, 저런.... 이렇게 훤칠한 아들을 두고 어쩌다가 일찍 세상을 뜨셨을꼬...?
두한-... 두 분 모두 일본 때문에 그렇게 되셨습니다.
부친-뭐, 뭐요....? 일본.... 때문에?
두한-예...
순간 인애 부모의 얼굴이 굳어진다. 놀란 것은 박인애와 미스터박도 마찬가지다.
부친-그, 그게 무슨 소린가? 일본 때문에 그렇게 되다니?
두한-저희 아버님은 독립군 장군이셨습니다.
부친-(더욱 놀라며) 뭐라...? 독립군.. 장군...? 독립군 장군?
박남매-.... (역시 충격)
부친-아버님 함자가.....?
두한-저희 아버님은 좌자 진자 되십니다. 사람들은 백야 김좌진 장군이라고 들 불러 주시지요.
부친-(놀라며) 김...좌진...? 청산리에서 천화페하의 군대를 몰살시켰다는 바로 그 김좌진 말인가?
두한-그렇습니다. 바로 그 분이십니다.
모두들 경악스러운 표정이다. 한동안 어색한 분위기가 오고간다. 박인애의 부친이 헛기침을 날리며 일어선다. 모친도 표정이 굳어졌다.
부친-그랬구먼, 그랬어.... 허허 참... 별난 인연이었구먼... 손님대접 잘하거라. 나는 속이 좋지 않아서 방으로 좀 들어가 봐야겠다.
미스터박-아버지...?
부친은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자리는 완전히 얼어붙어 버렸다. 두한은 이미 눈치를 챘다.
두한-아무래도 제가 올 자리가 아니였던 것 같습니다. 차 잘 마셨습니다.
미스터박-저... 선생님.... 식사가 다 준비됐습니다. 그렇죠, 어머니?
모친-(싸늘하게) 오늘 식사는 어렵겠구나. 조심히가세요. 멀리 안 나가겠습니다.
두한-예. 그럼...
두한이 그렇게 밖으로 나가면 미스터박은 홀린 사람처럼 멍해져 있다. 그저 입술만 질끈 깨물고 있던 박인애가 말릴 사이도 없이 현관으로 뛰어나간다.
모친도 따라 나와 현관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다. 두한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문을 나선다. 두한이 가다말고 다시 돌아본다. 박인애도 본다. 두한이 약간 고개를 숙이고는 다시 멀어져간다. 그렇게 안타까운 박인애의 모습에서......
씬 24 권번 외경 (밤, 첨가)
씬 25 동 어느 방안
설향과 애란이 앉아 있다.
애란-(한숨) 오늘도 또 공치는구나.. 에이 잘됐지뭐.. 이젠 술손님 시중드는 것두 지겹다구...
설향-기방 나간 지 얼마나 됐다구?
애란-얼마가 됐건... 아무튼 난 기생될 팔자가 아닌가봐. 이렇게 지겨워하는 걸 보면 말이야..
설향-그래도 어쩌겠어? 기생될 팔자가 따로 있다니... 우리도 모르게 여기까지 온 거잖아?
애란-그럴 수만 있다면 다 때려치우고 고향으로 가고 싶다. 팔자 한번 고쳐보고 싶다구....
설향-.....영철씨가 나중에 데려간다고 했다며..조금만 침고 기다려봐.
애란-(한숨) 어느 세월에... 영철씨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어디 돈많은 놈팽이나 물어야....
설향-또 그 소리.. 왜 마음에도 없는 소릴 자꾸 하니?
애란-내 팔자가 한심해서 그런다, 왜? (사이) 참, 물어본다해놓고 깜빡 잊고 있었는데, 너 얼마 전에 그 젊은 사장님이 불러서 간거라며?
설향-.... 응....
애란-뭐라 그러디? 왜 대낮부터 불렀데? 너한테 마음이 있대?
설향-아니야.. 그런거 아니야..
애란-그럼?
설향-(미소)... 내 가야금 소리가.. 듣기가 좋대.. 그래서 가야금만 타다가 왔어. 그게 다야.
애란-에이.. 그게 그거지.. 맞아, 너한테 마음을 두고 있는 게 분명해.. 설향이 너한테 흑심을 품었다구 이것아.
설향-아니야.. 그럴 리 없어...
애란-아니긴 뭐가 아니냐? 아무튼 설향이 넌 좋겠다. 장안에 난다긴다 하는 기생년들이 그 분하고 같이 자리를 하려고 난리라는데..
설향-그만해...
애란-우리 설향이 잘하면 인생이 피겠구나.. 너 나중에 모른 척하면 안돼.
설향-(어이없어 하며 보다가) 심심하면 잠이나 자 아휴...
두한이 김영태들과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두한이 밥을 먹다 말고 뭔가 생각에 사로잡힌다. 수저를 놓는다.
김무옥-왜 그런당가...? 왜 벌써 숟가락을 놓는 것이여...? 무슨 고민이라두 있는 것이여? 통 먹지도 않구 왜 그려?
두한-..............
개코-신경이 곤두서 있어서 그런거지 뭘. 사방에서 우릴 잡아먹으려고 하는 놈들밖엔 없으니..............
김영태-억지로라도 몇 술 뜨도록 해.
두한-전 괜찮습니다. 모두들 든든히 먹어둬.
김무옥-어제 밤부터 영 기분이 안 좋은것 같던디.... 그 비실비실한 친구 집에 다녀와서부터 말이여.
문영철-뭐하는 친구야? 겉으로 보기엔 좀 사는 집 도련님쯤 되는 거 같던데....
두한-얼마 전에 잠깐 곤란을 당할 때 도와준 적이 있었어. 그것 뿐이야.
문영철-도와주다니, 뭘.....?
두한-그 이야기는 그만하자. 영태 형님, 오늘부터 경성일대를 돌아봐야겠습니다.
김영태-그래야겠지.. 우선 가장 가까운 서대문부터 시작하도록 하지.
개코-한판 붙는 거야? 우리 애들도 불러올까? 거지촌 아이들 말이야. 떼거지로 몰려가야...
두한-아니.... 여기 있는 사람들만 간다. 우리 다섯이면 충분해. 식사 끝내면 바로 출발한다.
모두들-..........?
씬 28 동 포구 어느 창고
구석에 술병들이 일렬로 세워놓여져 있다. 상하이가 총을 겨누고 있고 부하 몇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상하이가 방아쇠를 당기면 차례로 병 모가지가 날아가 버린다. 신기에 가까운 사격솜씨에 모두들 입을 다물지 못한다.
상하이-어제 회의에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단 말이지?
부하1-예, 형님. 그것 때문에 우미관 전체가 숨죽인 듯 조용했다고 합니다.
상하이-하하하. 두한이 놈 면상을 봤어야 하는건데.... 그 소태 씹은 면상을 말이야. 하하하
부하2-하지만 형님. 두한이가 그렇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텐데요. 앞으로 어떻게 하실 작정이십니까?
상하이-곧 눈이 벌개져서 이 상하이를 찾겠지. 그게 바로 내가 노리는 것이야.
상하이가 다시 한 번 총알을 난사한다. 병 하나가 완전히 형체도 없이 날아가 버렸다.
씬 29 동숭동 어느 주택가
헌병들과 경찰들이 곳곳에서 검문 검색을 하고 있다. 그 한족에 문달영과 김태서가 서 있는데, 미와와 오무라가 급히 그 쪽으로 다가온다.
문달영-경부님! (인사를 하면)....
미와-수고가 많구만... 잠깐 나 좀 보세...(어느 한 쪽으로 가 주위 눈치를 보다가) 문형사, 지금 즉시 우리 경찰들을 빼내 은밀히 이동 시키도록해.
문달영-예?
미와-놈이 숨어 있는 곳을 알아냈다.
문달영-(크게)예?
미와-조용...
문달영-아니 어떻게...?
미와-놈이 외부와 전화통화한 내용을 잡았다. 그렇게만 알고 있어.
문달영-과연... 대단하십니다, 경부님..
미와-은밀히 움직여야 한다. 놈을 헌병대에게 넘겨줄 수는 없지 않나? 그리고 대규모 병력이 움직이면 놈이 눈치챌 수가 있어?
문달영-알겠습니다. 그럼..
문달영이 그렇게 달려가고 나면... 미와의 모습에서..
씬 30 그 곳 어느 집 안
학생복 차림을 한 사내(이재유)와 노교수가 마주해 있다.
이재유-그럼 가보겠습니다, 교수님..
노교수-(손을 잡으며) 몸조심하게.. 자넨 조선 프로레타리들의 희망일세..
이재유-고맙습니다, 교수님..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노교수-은혜라니.. 나도 사회주의자일세. 자네들의 동지라구..
이재유-(미소)..... 건강하십쇼. 그럼..
이재유가 학생모를 눌러쓰고 밖으로 나간다. 그 모습을 보는 노교수의 모습에서..
씬 31 그 골목길
미와와 형사들이 몰려 오고 있다. 그 앞으로 이재유가 오다가 순간 긴장한다. 이재유가 천천히 내려오는데 미와와 형사들은 무심코 스쳐지나간다. 오무라가 잠시 돌아보며 갸우뚱하지만.. 다시 달려간다.
씬 32 노교수의 집
미와와 형사들이 들이닥친다. 신문을 보고 있던 노교수가 태연하게 묻는다.
노교수-무슨 일이오?
미와-(다가가) 종로서 미와 경붑니다, 미아케 교수님.. 교수님 같은 학식이 높으신 분이 왜 그런 일을 하셨습니까?
노교수-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게요?
미와-교수님이 숨겨준 그 조선인이 누군지 아십니까? 조선 공산당 재건그룹의 총책 이재유라는 불령선인입니다. 모르셨습니까?
노교수-글세...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겐지...?
미와-그래요? 그렇다면 곧 알게 해 드리지.. (형사들에게) 샅샅이 뒤져라.. 비밀 지하실 같은 것이 있을 수도 있다. 놈을 찾아내라. 어서!
노교수-허허.. 이런...(도리질).....
미와-...(비열한 웃음)...
씬 33 종로서 고등계 (첨가)
미와가 문을 박차고 들어오며 소리친다. 오무라, 김태서, 문달영 등이 그 뒤를 따라 들어온다.
미와-칙쇼.. 칙쇼..! 이런 망신이 있는가? 분명히 거기 있어야 얘기가 되는게 아니야...!
미와가 집기를 걷어찬다.
오무라-(눈치를 보다가) 아무래도 우리가 한 발 늦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아깝게 됐습니다.
미와-분명히 거기 있었어. 그 여우 같은 늙은이가 오리발을 내미는 게야.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일본인이, 그것도 경성제대 교수라는 작자가 일급 사상범을 숨겨주다니.. 빠가야로.. 빠가야로...!
문달영-진정하십쇼, 경부님.. 놈의 은신처가 발각됐으니 얼마가지 못할 겁니다. 곧 그 자를 검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경부님..
그러나 미와는 흥분을 억누르지 못하고 있다. 다시 집기를 걷어찬다.
미와-빠가야로...
씬 34 까페 비너스 (첨가)
최동열이 안으로 들어온다. 김이수가 반갑게 맞는다.
김이수-오 동열이... (정중히 인사하며) 요즘 저희 집을 자주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 이리로.
최동열-사람하고는... (미소).....
김이수-허허허.. 신문사를 그만두더니 자주 보게 되는구만.. 그만큼 일이 없다는 얘기두 되겠고..
최동열-일이야 많지... 하지만 이수 자네가 명색이 우리 잡지사의 대주주 아닌가? 그러니 이렇게 보고차 자주 오는 수밖에..
김이수-그게 그렇게 되는건가? 하하하... (사이) 근데 참, 백야 장군의 기일은 어땠는가? 두한이와 함께 간다고 하지 않았나?
최동열-다녀왔지... 잘..
김이수-근데 표정이 왜 그러나? 안좋은 일이라도 있었던겐가? 음.... 두한이가 주먹패가 된 걸 어른들께서 아셨구만...
최동열-이미 알고 계시더군.. 두한이 할머니께서 실망이 대단하셨다네..
김이수-그랬구만...
최동열-집에 들이지도 않으시겠다는 걸 겨우겨우 해서 무사히 제를 올리기는 했네..
김이수-그렇게 완강하시던가?
최동열-참으로 대쪽 같은 양반이시지.. 그런 분이 계셨으니 백야 장군 같은 아드님이 나신 게 아니겠나?
김이수-....(끄덕인다)....
최동열-돌아오는 길에 두한이에게 그랬네.. 기왕 종로를 버릴 수 없거든 열심히 살아보라고 말일세..
김이수-잘했네... 자네의 격려가 두한이에겐 큰 힘이 될 게야... 걱정하지 말게... 두한이는 잘 할 걸세.. 자 마시세... 마시고 또 마셔 조선 팔도의 모든 술을 다 말려버리세.. 자 건배.. 하하하...
최동열-...............
씬 35 서대문 거리
두한들이 오고 있다. 건장한 다섯 청년들의 그 서슬에 길을 지나던 행인들이 슬금슬금 피해 지나간다. 작두패의 사내 하나가 화들짝 놀라며 지나쳐 가는 두한들을 쳐다본다. 그렇게 한참 보다가는 죽어라고 내달린다.
씬 36 서대문 작두패 사무실 외경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치는 소리와 함께 작두의 노기등등한 목소리가 들려나온다.
작두-뭐, 종로패들이 몰려오고 있어?
씬 37 동 사무실
거리의 그 사내가 작두에게 보고를 하고 있다.
작두-이놈들이 기어코.... 그래 몇 명이나 오고 있냐?
사내1-다섯입니다.
작두-뭐...? 겨우 다섯? (실소하다가) 너, 잘못 본 거 아니야?
사내1-똑똑히 봤습니다. 다섯명이 확실합니다.
작두-다섯이라...? 이 작두가 그렇게 우습게 보였단 말이야?
사내1-나가 보시겠습니까, 형님?
작두-우리 애들은 물론 준비 시켰겠지?
사내1-예. 한명도 빠짐없이 모두 불러 모았습니다. 숫적으로는 우리 상대는 아닙니다.
작두-앞장서라
사내1-예.
그들 그렇게 나간다.
씬 38 거리
두한들이 서대문 패거리의 사무실 근처로 다가온다. 그들의 표정에는 긴장감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여유가 있다. 곧 몇 명의 서대문 패거리가 그들의 앞을 가로 막자, 사방에서 무수한 사내들이 두한들을 둘러싼다.
서대문2-종로패가 여기는 무슨 일이냐?
김영태-작두 형님을 뵈러 왔다.
문영철-어서 길들 비키지 못해!
서대문2-감히 서대문에 와서 큰 소리를 치다니 죽고 싶어 환장한 모양이구나.
김무옥-저... 싸가지 읎는 자석좀 보소. 뭐 환장을 혀?
서대문2-넌 또 뭐야? 아.... 사투리를 쓰는 걸 보니 네가 바로 김무옥이란 놈이구나.
김무옥-알았으면 썩 물러들 나드라고.
서대문2-그렇게는 못하겠는데...
그때 두한이 천천히 앞으로 나온다. 저희들끼리 낄낄대며 난리를 치던 서대문패들이 갑자기 조용해진다.
김영태-이 분이 우미관의 김두한 오야붕이시다.
그 말 한 마디에 서대문패들은 얼어붙는데 저 뒤에서 부하들을 거느리고 작두가 나타난다.
작두-두한 아우가 왔다구?
두한-그렇습니다, 작두 형님.
작두-하하하. 만난 적도 없는데 용케도 날 알아보는군. 형님이라..?예의는 아는 구먼 그래? 그래, 두한 아우가 여긴 웬일인가?
두한-형님께서 오야붕 모임에 참석하지 않으셔서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이 세계의 법칙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작두-그래서.....?
두한-항복을 받으로 왔습니다.
작두-(발끈하며) 이런 죽일놈... 여기가 종로인줄 알아? 여긴 서대문이다. 서대문 한 복판이란 말이다.
두한-애들을 물리쳐 주시겠습니까? 형님과 둘이서 해결을 보고 싶은데요?
작두-그래..? 역시 간뎅이가 크구나. 내 허락도 없이 서대문에 발을 들어놓았다는 것 자체가 이미 전쟁이다. 건방진 놈들... (부하들에게) 쓸어 버려라!
작두가 뒤로 빠지자 서대문패들이 우르르 둘러싸며 대결자세를 펼친다. 두한들은 서로등을 맞댄 채, 둥글게 모여있다. 서대문패들이 동시에 두한들을 덮치면서 수십대 오의 패싸움이 펼쳐진다. 처음에는 열세로만 느껴졌던 두한들은 하나 둘 서대문패들을 제압해나가기 시작한다. 싸움이 시작한지 불과 수분도 안되서 서대문패들은 눈에 띌 정도로 부상자들이 속출한다. 담배 한 개피를 미처 태우지도 못하고 작두가 다시 앞으로 나선다.
작두-그만들 해! (모두들 멈추면) 김두한... 역시 듣던 대로다. 대단해. 나 작두와 해볼만 하다. (담배 꽁초를 버리며) 좋다. 내가 너를 상대해 주마. 오거라.
두한-고맙습니다.
작두는 상의를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두한을 향해 달려든다. 서대문의 오야붕답게 날카로운 작두의 공격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피아 공방이 수십 합 계속 된다. 어떻게 보면 두한이 밀리고 있다.
작두-이 놈, 두한아... 너도 별거 아니구나. 그렇게 빙빙돌지만 말고 들어와봐. 어서 덤비란 말이야.
두한-좋습니다. 들어갑니다.
작두-좋아, 오라구......!
작두가 그렇게 손짓을 하자 두한이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둘은 또 다시 몇 번을 주고 받는다. 그러다가 두한이 몸을 돌리며 회심의 일격을 가하자 작두가 정면으로 얼굴을 맞았다. 모두들 우 하며 본다. 거세게 두번, 중심을 잃은 작두는 그렇게 무너져 내린다. 그걸로 끝이다. 서대문패들이 작두에게로 달려간다. 스러져 일어나지 못하는 작두 앞으로 두한이 천천히 다가간다.
두한-(손을 내밀며) 일어서시지요, 형님.
작두-....... 소문이 정말이었구나. 너는 센 놈이다. 내가 졌다. 오늘로 서대문을 뜨겠다.
부하들-형님..... (울분을 참지 못한다)
작두-서대문 식구들을 잘 부탁한다, 김두한..
두한-작두 형님... 저는 형님을 쫓아내기 위해 이곳에 온 게 아닙니다. 식구가 되기 위해서 인사드리러 온 겁니다. 앞으로 계속 서대문을 지켜주십시오.
작두-......?
두한-(손수 일으키며) 어서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한 잔 사겠습니다.
작두-.....?
두한-어서요, 일어나십시오.
김영태-........(미소) 일어나시게, 작두. 오야붕의 명령 아닌가?
두한-일어나십시오, 형님.
작두-내가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네, 두한이. 여기는 서대문일세 술은 내가 사야지.
두한-(미소) 고맙습니다, 형님..
작두-뭣들 하고 있냐? 어서 김두한 오야붕께 인사를 드리지 않구.
모두들-(그 자리에서 고개를 숙이며) 큰 형님, 죄송합니다.
두한-.......... 자, 술들하러 가자구...
김영태들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씬 39 마포 창고
상하이가 노기등등해 소리치고 있다.
상하이-뭐, 서대문이 떨어져?
부하1-예, 형님. 두한이한테 충성을 맹세하겠다며 모두들 고개까지 숙였다고 합니다.
상하이-충성맹세? 이런 병신 같은 자식들..
부하1-..........
상하이-이 상하이가 방심을 했어. 마포부터 치고 들어올 줄 알고 너무 안심하고 있었어. 김두한.... 이 여우 같은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