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생일맞이
밤 10시반 아들한테서 전화가 왔다. 지금 내려가는 중이라고
추석전 주말인데 일이 있어 내려오기로 되어있어 내일 오려나 했는데. 집에는 아무도 없다. 집 출입문 키번호를 알고 있다며 걱정말란다.
당초에 내가 쉬는 날이었는데 직장내 젊은동료가 몸이 안 좋아 수술 후 퇴직하여 근무하게 된 것이다. 내 나이에 직장 새로이 다닌다는 게 정말 행복하다. 봉사한다 생각하고 건강 유지하고 아주 좋다.
야근을 하고 집 현관문을 여는 순간 쇼파에 앉아있던 손자 이건이가 반갑게 맞아준다.
멀리 떨어져 있어 만날 수 없어도 이제 내가 전주 할아버지로 불리며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때마침 태풍 링링이라는 이름의 초대형급이 필리핀에서 발생되어 이번에는 제주도지나 서해로 진입하여 재난대책본부에서도 각종 매스컴응 통해 시시각각으로 예상진로 강도 피해예방 등 대비책과 산사태 강풍에 의한 가로수, 건물피해 대비에 홍보하고 있는데 우산이 있어도 쓸 수가 없다.
조용하던 하늘에 먹물이 물에 희석되듯 빠르게 파란하늘에 소리없이 밀려들더니 떨어지는 나뭇가지와 바람에 날리는 이파리들이 멋대로 춤을 추는가 하면 퇴근하려고 앉아있는 버스에도 영향을 미쳐 정지해 있는데도 흔들거린다.
애통리사거리에서 우회전해서 들어섰는데 승용차 한 대가 비상등켜고 도로가운데 서 있다. 진입하지 말라며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돌아가란다. 바로뒤에 가로수가 강풍에 쓰러져 있다.
완산구청앞에서 내려 곧장 집에 들어오지 않고 어제 개업했다는 식자재마트에 들려 몇가지 물건을 사려는데 이른시간이라서 손님은 별로 없고 도로변에 쌓아놓은 물건들 비에 젖지않게 비닐씌우는 직원들의 손길만 바쁘고 내부물건 진열하느라 아직은 어수선하다.
구입한 계란과 우유 바나나 등을 넣을 빈 박스 챙겨 우산도 쓸 수 없어 집까지 오는 길에 비를 맞으며 멀지않은 거리지만 온몸에 피곤함과 팔에 무게감이 더해진다.
집에서는 추석대비하느라 어제 김제 식자재마트에 가서 충동구매해온 장보기물건들을 가지고 며느리와 장만하기에 바쁘다.
역시 밤 근무 끝나고 나보다 조금 전에 왔는데.
나는 곧바로 소양에 있는 떡방앗간에 어제 떡 하려고 맡긴 가래떡 찾으러 다녀와야 한다.
어머니들이 농사지은 들깨 참깨 씻고 볶고 짜서 고소한 냄새 풍기는 기름을 병마다 주전자로 따라 담는다. 객지나간 자식들 돌아갈 때 주려고 정성들여 챙기는 것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함이 묻어난다.
나는 따듯한 가래떡을 가지고와 손자에게 한가닥 주었다. 긴혓바닥 같다며 한입 베어 먹는다. 껴안아 주고 먹는 것 바라만 봐도 사랑스럽다.
요즈음 자녀가 별로 없어 형제간보다 어린이집에 가서야 사회생활과 단체활동하는 것 배우며 혼자서도 노는 법 잘 한다. 어른손바닥크기의 모니터에 나오는 로봇변신자동차에 온통 정신이 빠져있다. 우리는 이해가 안 되는 것에 즐거이 놀며 반응하고 있다.
낮에는 아들이 친구결혼이 있다하여 다들 나갔다 2시 넘어 들어왔는데 이번 태풍으로 냉방장치가 고장나서 예식장이 찜통되고 식사도 재대로 못하고 왔다한다.
그곳에서 10살된 친구아들녀석이 손자의 재잘거리고 부산나게 돌아다님에 체력은 인정(?)해 주더라 한다.
좌우지간 활동량이 많아 먹는 것 에너지 소모하느라 살찌우고 키 크게 하는 여력이 없나보다.
그리고 모처럼 인근에 사시는 할머니 인사드린다하여 같이 갔는데 할머니가 놀라시며 증손자왔다고 용돈을 주는데 돈에 대한 개념이 없어 고마움을 모른다. 그길로 김제 용지에 있는 산소에 갔다. 태풍으로 큰비가 온다고 했는데 시원한 바람과 파란하늘이 보인다.
지난주 형과 함께 벌초하여 파란잔디가 보기좋고 평장으로 조성하여 양탄자 같다. 위치, 전망이 좋다며 아들도 좋아한다.
술한잔 따라놓고 성묘를 하고 인접해 있는 외조부모산소에도 성묘를 했다.
여기는 김제 처남이 관리를 한다.
종영이는 나를 근무하는 곳에 내려주고 집으로 갔다.
마찬가지 집사람도 또 저녁근무하러 출근하여 집에서는 아들과 며느리 손자가 지키게 됐다. 이제 일요일 아침이 되어 근무마치고 집에 도착해서 점심이라도 같이 해야겠기에 대충 씻고 두어시간 잠을 자고 일어났다.
그러다 보니 손자와 인연만들기 시간이 부족하다.
이 녀석에게 할머니가 공부 잘 해야한다며 다그치니까 싫은 눈치다.
네 아빠와 고모는 초등학교에서 공부 잘하고 가장 유명한 학생이었다며 너도 그래야 한다고 하니까 공부안할거야 하면서 짜증을 낸다.
둘이 언쟁이 생긴다. 한쪽은 약 올리듯 놀리는데 손자는 갈수록 목소리가 커지며 반발한다.
그렇다고 화를 낼 수도 없는데 표정을 보니 불그레해진다.
도가 넘으면 울게 생겼다. 중간에 내가 화제를 바꾸어 진정시켰다.
할머니도 그런뜻이 아니었다고 다독거린다.
내가 안아주고 등 뒤로 올려 빙빙 돌려주니 금방 풀어진다.
그러던 중 사위한테 영상전화가 왔다. 21개월된 외손자얼굴이 보인다.
말도 잘 못하는 놈이 눈치는 있는지 약간 아는체 하며 손을 흔들고 인사한다고 끄덕끄덕하고 큰눈을 말똥거리며 돌방똘방 쳐다본다.
오늘이 내 생일이다. 손자는 케익이 없다며 그래도 생일축하 노래는 부른다. 대신 와인 한잔씩으로 쨍하고 끝냈다.
서로 일정이 안 맞아 식사도 재대로 못하고 집에는 장만할 음식재료들이 있어도 외식하기로 했다.
아중리식당에 들어서자 손자는 장난감있는 방으로 들어가 혼자 잘 논다. 밥은 엄마가 몇 번 부탁해야 와서 한숟갈씩 먹는다.
그렇게 식사 후 아들가족은 서울로 출발하고 우리는 집으로 와서 나는 또 야근을 위해 집을 나섰다.
추석은 며칠 남았지만 우리집은 이미 시작했다. 물론 추석날엔 다시 내려오지 않지만 그때는 딸 사위 외손자가 내려오니까.
태풍이 별다른 비도 내리지 않고 어제오후 벌써 햇볕이 나고 끝났다. 워낙 빠르게 서해바다 지나 황해도로 상륙해서 소멸되었나보다.
그 후유증으로 하루지난 오늘 비가 조금 내린다.
미리 벌초못한 사람들은 자칫 벌초도 못하게 생겼고 쓰러지고 떨어진 농작물은 농민들에게 일년농사 망치게 만들었다.
그래도 시간은 간다. 추석대목으로 빠져들어간다.
국내적으로는 장관들 임명위해 우여곡절 끝에 실시한 청문회가 특히 법무장관 건으로 전국이 들썩이고 국외적으로는 미.중무역갈등, 북한의 비핵화 지지부진, 일본과의 군사적,외교적,무역마찰등으로 시끄러워도 풍성한 결실의 계절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고 있다.
2019. 9, 8 김 수 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