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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누리 공동체 생태마을조성 기초자료
1. 설립과정
푸른누리는 무소유 공동체를 표방하며 1995년 12월 1일 경기도 안성군 죽산면 산골 마을에서 최한실 씨와 박의준씨가 시작한 생태 공동체이다. 97년 2월 에 죽산에서 경북 상주군 화북면으로 이사를 하여 지금은 새로운 보금자리를 가꾸고 있다.
2. 설립목적
○무소유 세상
본래 인간의 참모습인 내것, 네것이라는 분별을 뛰어넘는 진정한 의미의 무소유. 이 세상에 있는 어떤 것이라도 모든존재에게 유익하게 쓰여야 한다는 의미. 이것이 푸른누리의 무소유 세상이다.
○무아집
내 생각이 옳다는 단정과 편견과 아집과 고집에서 벗어나 다른사람의 생각을 같은 무게로 생각 그 자체로 바라보고 늘 진실을 살펴가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 이것이 무아집 이다.
○늘 행복한 세상
살아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인생은 늘 행복한것이므로 모든 것에 감사하고 행복한 세상이라는 의미이다.
○절대 평등 세상
세상모든 것이 다 소중하고 그것 자체로 우주이기 때문에 인간사이에도,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 사이에도 높고 낮음이 없다는 것이다.
3. 구성원
최한실 선생님 가족외에 3명의 식구들이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참 나를 찾아서와참 사람살이의 수련을 통해 푸른누리의 이념에는 동조하면서도 경제나 교육문제 등 현실적 여건으로 푸른누리의 가족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농번기때가 되면 일시적이지만 푸른누리 가족의 일원으로서 공동체 생활을 경험하고 있다.
4. 경제
이곳에서는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 옷, 신발, 돈 등 일체를 공동체에서 함께 사용하고 있다. 옷 보관하는 방, 책 놓는 방 등이 있어 누구나 필요한 대로 사용할 수 있고 농기구 등도 모두 한 곳에 보관하고 같이 사용한다. 큰 돈이 필요한 경우 참 밝힘에서 함께 의논하여 정하고 일상적으로 필요한 돈은 금전 담당자와 상의하고 사용한다. 공동체의 생활비는 수확물 일부의 판매대금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수련 프로그램의 참가비로 충당한다. 가끔씩 외부의 일을 해주고 받는 품삯이 있기도 하다.
5. 생활
전혀 남남인 사람들이 모여 한 지붕밑에서 한가족을 이루고 산다. 집도 옷도 신발도 돈도 모두 공동소유이고 자기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가사일에도 남녀 구분이 없다. 보통 아침 6시에 온 식구가 앞마당에 모여 맨손체조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하루 두차례, 오전 10시와 저녁 6시에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하는 식사시간을 갖는다. 저녁식사가 끝나면 한자리에 모여 참밝힘의 시간을 갖는다. 하루의 일을 돌아보고 좋았던 일, 언짢았던 일 등 모든 것을 터놓고 이야기 한다. 행위를 강제하는 규율 또는 의무적으로 해야되는 것은 없으나 참밝힘에서 함께 결정한 일은 해나간다.
6. 갈등해소
공동체 생활에서의 구성원들간의 대립이나 갈등은 참밝힘을 통하여 모두 풀어낸다. 참밝힘이란 어떠한 편견이나 고정관념 없이 오직 정말은 어떤가,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가를 모든 구성원들이 지혜를 모아 구명해 나가는 자리이다.
7. 의사결정
공동체의 의사결정은참밝힘을 통하여 만장일치로 이루어진다. 결정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합의점이 찾아지지 않으면 다음으로 미루기도 한다.
8. 수련
푸른누리에서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참 나를 찾아서(4박 5일)와 참 사람살이(8박 9일)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참나를 찾아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기라는 고정관념을 포함하여 일체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진정한 나는 어떤 것인가를 살펴가는 수련이다. 그리하여 자기라는 관념의 벽이 허물어질 때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 화가 나지 않는 사람, 누구와 도 친해질 수 있는 사람, 늘 행복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참 사람살이는나혼자의 사람에서 우리모두의 사람으로 드넓게 열린 자기를 체험하는 수련으로 우주와 동료와 자신이 한 몸임을 체득할 수 있다.
방학을 이용하여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자연과 하나되어(4박 5일)라는 수련과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청소년 수련도 진행하고 있다.
9. 주변마을과의 관계
공동체가 나름대로의 문화를 정립할 때 까지는 당분간 문화적으로 떨어져 있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공동체가 지향하는 새로운 문화와 생활방식은 기존마을의 문화와는 방향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동체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온 세상 사람들이 다 행복해지는 것이므로 지역에서 눈에 보이고 할 수 있는 일은 해가고 있다. 실제로 지금 주변 마을 사람들과 몇 가지 일을 함께 하고 있는데 그 예로 푸른누리 한문교실을 들 수 있다. 주변 마을 초등학생들을 모아 빈 교실에서 한문과 생태문제, 자연과 하나되어 사는 문제 등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또한 인근 새터 마을 뒷산에 돌광산을 개발하려는 석건회사를 상대로 마을 사람들과 연대하여 저지운동을 펼쳤고속리산을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단체를 결성하여 온천개발을 중지시키기도 했다. 장기적으로는 이 지역에 유기농업단지 조성과 이상적인 삶이 모두 이루어지는 마을을 계획하고있다.
10. 앞으로의 계획
무엇보다도 환경적인 면에서 모범적인 공동체가 되기를 바란다. 쓰레기를 내부에서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생활을 계획하고 있다. 삶 자체가 모든 것이 순환되어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삶을 지향한다. 또한 생산과정에서 오염을 일으키는 생산물인 전기, 시멘트 등을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등도 참밝힘에서 논의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주력할 부분은 각종 대안교육이다. 이미 수련이란 이름으로 어른․아이․청소년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의 교육 형태를 실험과 모색하고 있다. 앞으로 푸른누리의 이념을 실현할 수 있는 학교를 세울 계획을 가지고 있다.
11. 행정구역상 위치
경북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 654번지
12. 생활권
행정구역상으로는 상주시에 속하지만 청주와도 가깝고 서울에서의 교통편은 청주에서가 편리하다. 학생들은 주로 청주시로 상급학교 진학을 하며 농산물 구입 및 판매는 상주로 많이 다닌다.
설립자인 최한실 선생님은 70년대 혁명운동을 하다 오랫동안 감옥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독일의 녹색사상을 접하고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자본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기존 사회운동의 가치관을 뛰어넘어 산업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에 관심과 의문을 제기했던 녹색사상은 기존의 세계관을 부정하는 신선한 충격이었던 것이다. 사람뿐 아니라 자연속의 모든 생명체와의 공존과 조화, 상보적 관계를 추구하는 녹색운동은 인간 중심의 관점속에서의 운동과 사상에 대한 성찰과 반성의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후 녹색사상의 실천을 위해 공동체 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출감후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많은 논의를 하게되었지만 대부분이 실행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고한다. 경제문제나 자녀교육문제 등 기존의 생활방식을 부정하기엔 무엇보다 당사자의 의지가 부족했고 생태라든가 자연에 대해 확고한 의식과 믿음의 세계관이 갖추어지질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공동체와 생명에 대해 기존의 가치관과 단순한관심수준을 뛰어넘는 인식의 대 전환이 필요함을 절감하게 되었고 이것은참 나를 찾아서라는 프로그램으로 이어진다. 참 나를 찾아서는 자연과 세계에 대해 단지 머리로 만 이해하고 공부하는 차원이 아니라 우리가 본래 자연과 하나이고 뗄래야 뗄수없는 관계라는 것을 며칠동안의 수련을 통해 근원적으로 깨닫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즉 자연은 생명의 근원이라는 자각, 인간은 수많은 생물종 중의 단지 한 종류에 불과하다는 사실, 인간에 의해 수많은 생물종들이 소멸되고 있을뿐아니라 자연 생태계가 심각하게 파괴되고 있다는 현실, 인간이 의지해야 될곳은 결국은 자연뿐이며 그런 자연을 떠나서 인간은 삶을 영위할수 없다는 사실을 지각하게 되는것이다. 그러므로참나를 찾아서는 아무것도 없는 빈손으로라도 자연속에 들어가 살수 있는 각오와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것이다. 또한 이 프로그램은 사람이 사람을 판단할때는 그 사람이 무슨일을 하고 어떻게 살았느냐를 직접보는 것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 사람은 자기가 가장 옳다는 방식으로 산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삶을 직접 보고 느껴서 아는 것이 진정으로 그사람을 아는 것이다. 말로는 그 사람의 사상을 판단할수 없다.라는 말에서 알수있듯이 말과 글을초월하는 경험과 근원적인 느낌을 통하지 않고는 진정한 앎이 아니라는 설립자의 인생관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론적이고 논리적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사변적 이해의 차원이 아닌 체험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근원적인깨달음을 강조한다는 데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푸른누리의생태마을觀
○사회
생태마을은 지도자가 없는 마을이어야 한다.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사회는 원시사회적인 특권없는 무정부 마을이다. 권력체제 라든가 사람이 사람을 조정하고 지도하는 제도가 없는 마을을 구상하고 있다. 지도자라는 언어속에는 지도나 지도받음으로 자연스럽게 일상화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함축되어있는 것이고 사실 오랫동안 어느한쪽이 해방되면 어느한쪽은 피해를 입는 악순환을 되풀이 하여왔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여기서 벗어나 모든사람이 해방된 자유인이 되는 것, 원시시대와 같이 지도자없이 모든 민중이 주인인 마을을 추구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배움터와 삶터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마을로 이어지는 것이다. 마을안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이 모두 갖추어진 마을-이 사회는 기본적으로 자기가 먹을 것은 자기가 생산해야 한다. 교수든, 목사든, 의사든, 법률가든, 자기 양식은 자기가 경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바깥 세상에 의존하지 않고 삶을 영위할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세상이 달라질수 있다. 이것이 과연 현실속에서 실현 가능한가라는 생각을 할수도 있는데 현실위기에 대한 근원적인 위기의식을 갖고 똑바로 사는 사람이 늘어나면 가능한 것이다.
○교육
기존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의 근본적인 변화만이 삶을 바꾸어줄수 있다. 그것은 기존의 교육과 생활구조에 바탕을둔 변화가 아닌 우주와 자연과 내가 어떤관계에 있는가를 이해하는 차원, 즉 어떤 깨달음의 차원에서의 변화를 뜻한다. 현대인들은 교육과 정보를 통해 많은 지식을 얻었지만 실제의 생활은 시험문제의 정답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옳은줄 아는것과 사는 것이 분리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에의한 가르침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따라 배운다. 행동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사상의 집중적 표현이다. 말하는 데로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럴듯한 말은 누구나 할수 있다.
이와같은 관점에서생태마을에서의 교육은 아이들과 함께 사는 것 그 자체일 것이다. 현대 사회가 전문화, 분업화, 다양화 되면서 교육도 세분화되어 왔다. 현대의 교육은 무엇을 자꾸 만들고 세우고 하는 것을진보또는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미화시켜 왔다. 많은 것, 빠른 것, 큰 것이 아름답다는 의식 속에서 필연적으로 파생한 현대교육의 이념은 인간의 감수성, 인간성, 인문적 지혜를 노골적으로 소외시켜 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 결과 인류는 전대미문의 사회적, 생태적 재앙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며 이것의 극복을 위해서는 이러한 진보사관이라든가 성장 사관에서 탈피해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축소지향적인 사고방식의 길로 들어가야 할것이다. 그 핵심은 교육이다. 교육이야 말고 사회황폐의 근본이자 문제 극복의 유일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지구를 파괴하는 정교한 체제를 유지 가능케하는 교육이 아니라 자연과의 평등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땀흘리고 일하며 생활하는 삶속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어야 한다.
○문화
생태마을에서의 문화도 교육과 마찬가지로 총체적 생활방식이다. 현대인들이 자연과 대립하고 자연 피괴적인 삶을 살다보니 일상의 삶과 문화를 동떨어진 것이라 생각하는데 문화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인간 삶의 근본인 의식주 문화이다. 농사를 어떻게 지을 것인가? 이것은 농사에 대한 문화이다. 밥은 어떻게 지어먹을것인가? 여러가지 잡곡을 섞을 것인가? 아니면 섞지 않을 것인가? 이것이먹는 문화이다. 곡식이 생산되기 까지 인간의 역할은 억만분의 일도 안된다. 땅과 물과 공기와 햇빛이 곡식을 키우는 것이지 인간이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농사를 짓고, 곡식을 생산하고, 그것을 나와 우리식구들이 먹고, 삶을 영위하고, 건강을 유지하고, 우주의 정기가 깃들어서 또다시 곡식을 생산하는것. 이것이 문화이다. 영화를 본다, 음악회를 간다, 연극을 본다, 텔레비젼을 본다, 하는 것을 문화라고 이야기 하는데 이것은 인간의 착각과 무지에서 나온 것이다. 뿌리에서부터 보아야 한다. 인간의 근원적 삶과 연계된 문화가 진짜 문화인 것이다.
○쓰레기 문제에 대해
쓰레기가 나오게 되어있는 삶의 체제가 변하지 않고는 해결되지 않을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쓰레기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삶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전자제품, 생활용품, 공업용품 등 생산되는 물품중 쓰레기 아닌 것이 없는 현실은 정말 심각한 것이다. 또한 도시집중적 생활구조에서의 쓰레기 처리는 거의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또다른 예산으로 이미 나온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하겠다는 정책 방향도 잘못된 것이다. 결국 쓰레기 처리의 유일한 해결방안은 개인이나 가정에서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 삶속에서 일상생활속에서 쓰레기가 되는 것의 사용을 가급적 줄이는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는 먹을 것을 생산해 그곳에서 먹고 그곳에서 처리하는 생활방식을 따르는 것이다.
○도시는 해체 되어야한다
좋은 세상이 되려면 도시부터 없어져야 한다. 현대인들이 소위 발전된 사회라고 부르는 것은 모두 생명체의 생존토대인 자연을 파괴해 만든 것이다. 산업화의 척도격인 도시는 산과 들과 강을 파헤쳐 우후죽순 형성된 것이고 심각한 것은 그것의 유지를 위해 보다 확대되고 철저한 자연의 파괴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것이다. 실제로 인간에 의한 자연착취의 심화는 갖가지 환경오염-오존층파괴, 산성비, 유독성 폐기물-과 생태계의 파괴-생물종 다양성붕괴, 유전자 오염-를 초래했을뿐 아니라 지금까지 나타났던 국지적 차원이 아닌 전 지구적 차원으로 악화되면서 지구생명체의 지속성 자체가 의문시되는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도시 집중적 생활구조 속에서 자연의 파괴는 필연적인 것이다.
○공동체생태마을에로의 시각
우리가 역사속의 공동체들에 대해 이야기할때 흔히 뜻은 좋지만 현실적 여건이나 역사발전 단계에 맞지 않게 이상적으로 치우쳐 실패하지 않았을까 생각할수 있다. 물론 그럴수도 있다. 그러나 보는것에는 틀이 있다. 어떤틀로 보는냐에 따라 다르고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기술의 발전과 그에 수반되는 편리함과 안락함, 풍족을 우리는 진보 또는 성장이라 부르지만 지구상에 사는 모든 존재들의 공존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파괴이고 재앙인 것이다. 지구를 온통 썩게 하고 쓰레기 장으로 만드는 자본주의 사회가 번창한다고 해서 올바른사회로 봐야하는 것인지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를 필요에 의해 죽이고 파괴하는것이 인류의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해서 이치에 맞는 것으로 봐야하는지 기술문명의 발전이 말 그대로 발전인지 아니면 악화인지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가 그러한 틀로 보니까 여기저기 공동체들이 많이 생겨나고 사람도 늘어나야 잘되는 것이고 유용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잘되가고 있다고 만 생명이 사는걸로 봐야될지 만 생명이 산다는 시각으로 봐서 잘되간다고 봐야할지 큰 시야로 봐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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