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시인을 만나다|시집 리뷰
“슬픔이 천사가 되는 시간”
-『이팝나무 가지마다 흰 새들이』, 노태맹 시인의 제4시집을 읽고
김수상(시인)
하늘의 별들이
모두 지상으로 내려왔네.
사다리 맨 꼭대기에서 천사들이
별이 된 눈물과 그 고통의 기도를 내려다보고 있느니
지상의 어둠들은
천사의 발목을 강물로 덮고
밤이 깊어도 사람들의 꿈은 너무 환하고 밝아서
천사들은 지상의 별들에게 내려갈 수도 없네.
오 우리 반짝이는 슬픔,
오 아득한 천사의 사다리여,
사람들이 사라지고 없는 찬란한 별들만의 지상이여.
말할 수 없는 천사들이 울고 있네.
들을 수 없는 사람들은 어둠으로 스며들어서
어둠을 아는 별들만
지금 컴컴한 침묵으로 하늘에서 빛나고 있네.
울음은 강이 되고
슬픔이 천사가 되는 시간이네.
-「천사들이 울고 있다」, 『이팝나무 가지마다 흰 새들이』, (한티재, 2021)
노태맹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이 세상에 나왔다. 노태맹 시인 특유의 슬픔과 색채의 미학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노태맹에게 있어 색(色)은 존재를 더욱 단단하게 포획하는 강력한 수사(修辭)가 된다. 대상에게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색으로 대상을 형용함으로써 단번에 대상을 시적으로 포획하는 데 성공하는 것이다. 이질적인 색이 존재를 덮침으로써 강력한 이미지를 들끓게 한다. 이것은 노태맹 시인이 가진 일종의 ‘전매특허’ 같은 수사법이다. 가령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의 제목인 “푸른 염소를 부르다”와 이번 시집의 표제작인 “이팝나무 가지마다 흰 새들이”의 이미지도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이번 신작 시집에 등장하는 “당신은 푸른 고래처럼 오시고” “황금이 들끓는 용광로” “입 없는 검은 돌멩이” “보랏빛 오동나무여” “불타는 붉은 새여” “저 화염의 꽃밭” “붉은 백일홍 꽃나무 위” “용암의 붉은 바다” “산하의 검은 노을” “저 불의 단지 속에 뿌려진 흰 씨앗들” “불의 붉은 성문” “저 피의 늪에 푸른 갈대로 서서” “고요가 붉은 빛이 되나이다” “뜨거운 불의 돌” “산정에서 푸른 소가 금빛 나팔을 불고” “자귀나무 붉은 꽃 어머니” 등과 같은 이미지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색은 존재를 더욱 강렬하게 부각하는 반면, 어떤 색은 존재를 아주 낯설게 만듦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시를 다시 한번 더 돌아보게 만들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노태맹은 시를 ‘기획’하는 능숙한 전략가이기도 하다. 시집 맨 앞머리에 ‘시집 사용설명서’가 있다. 거기에서도 이번 시집은 ‘기획’되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잠시 소개해 본다.
“1. 이 시집은 레퀴엠, 즉 진혼(鎭魂), 혹은 ‘다시 쉼으로 돌아감’(requies)을 위한 것이다. 2. 이 시집은 소리 내어 읽기 위해 제작되었고, 그렇게 사용하기를 권장한다. (중략) 4. 이 시집은 원래 물의 레퀴엠, 불의 레퀴엠, 공기의 레퀴엠, 대지의 레퀴엠으로 기획되었으나 사용자들의 편의를 위해 섞고, 대신 숫자로 그 의미를 표시하였다. 물은 1, 불은 2, 공기는 3, 대지는 4와 같은 방식이다. (중략) 6. 이 시들을 낭독하다가 자꾸 막히거나 입에 돌처럼 걸리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시인의 잘못이다. 그러나 시집은 반품되지 않는다.”
-(『이팝나무 가지마다 흰 새들이』 시집 사용설명서)
사용설명서가 있어서 다행이다. 죽은 자를 위한 미사곡, 스물여덟 편이 이 시집에 담겨 있다. 나는 마치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마리아께 드리는 소녀들의 기도」가 노태맹을 통해서 다시 부활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부러움과 놀라움으로 이 시집을 읽었다.
“저희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목숨을 향하여 이렇게 보채임을 굽어보소서 저희들은 모두 상승하고자 하옵니다 빛처럼, 노래처럼”
-(릴케, 「마리아께 드리는 소녀들의 기도」 부분)
“살펴보소서 저희들의 나날은 이렇게 좁고 밤의 거실은 불안에 가득합니다 저희들은 모두 열렬히 붉은 장미를 그리워합니다 마리아여, 저희들에게 자비로우셔야 합니다 저희들은 모두 당신의 핏줄에서 태어납니다”
-(릴케, 「마리아께 드리는 소녀들의 기도」 부분)
“저의 맑은 머리카락이 짐스럽습니다 봄이 거의 무르익었음을 알기에 꽃이 피어나면서도 퇴색하여 무거워진 레몬나무의 가지 하나가 하늘거리며 머리카락 속에서 자라나는 것 같습니다. 이 불안한 장식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옵소서”
-(릴케, 「마리아께 드리는 소녀들의 기도」 부분)
릴케의 기도는 빛처럼 노래처럼 ‘상승’하고자 한다. 그러나 노태맹의 기도는 천사들의 ‘하강’을 간구하고 있다. 지상에 발이 붙들린 사람들의 눈물과 고통의 기도를 “사다리 맨 꼭대기에서 천사들이” 내려다보며 울고 있다. 말할 수 없는 천사들의 슬픔을 시인이 대속(代贖)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 시집은 물(슬픔)과 불(분노와 탄식), 공기(상승과 구원)로 꽉 차 있다. 대지(수평적 삶과 죽음)는 시인이 훗날(사라짐)을 위해 남겨 두었다고 한다. 물과 불과 공기로 가득 찬 이 시집은 먼저 눈으로 읽고 그다음은 소리 내어 읽어야 한다. 소리 내어 읽으면 자기도 모르게 슬픔이 가득 차오를 것이다. 인생의 본래면목은 슬픔이기 때문이다. 바람이 있다면 이 시집이 일요일 미사 때마다 한 편씩 성당에서 낭송되었으면 좋겠는데, 신부님들의 안목이 이 시집에 미칠지는 의문이다.
노태맹 시가 기도의 형식으로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조금 더 살펴보도록 하자.
“하루의 노동이 끝나고/ 아이들의 웃음이 둥글게 시간을 구부릴 때/ 마주 앉고픈 저들 가슴속 주름 접힌 시간들이/ 검은 재 속에 묻힌 잉걸불처럼 다시 펼쳐지게 하소서.”
-「저들에게 붉은 석양의 안식을 주소서, 레퀴엠 2-1」 부분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 물로 만들어진 노래밖에 부를 수 없으니/ 물로 만들어진 엄마 아빠와/ 물로 만들어진 세상의 거울/ 물로 만들어진 우리를 태우고 온 배와/ 물로 만들어진 하늘의 물고기들/ 그리고 저 흔들리는 별들의 자리처럼/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물로 만들어진 노래를 부르다, 레퀴엠 1-2」 부분
아이들은 지상의 천사다. 노동이 끝나고 아이들의 웃음이 피어나는 시간을 간구하지만 아이들은 물속에서 돌아오지 않으니 우리는 물로 만들어진 노래밖에 부를 수 없다. 물로 만들어진 기도는 어디에 가서 닿을까.
“굴뚝으로밖에는 올라갈 길 없는 연기처럼/ 더 잃을 것도 없는 이들은/ 그저 영토 없는 깃발처럼 펄럭이고 있나이다./ 여기의 여기를 잃었나이다”
-「자비와 두려움의 왕이시여, 이 뜨거움은 붉은 바위에 새기나니, 미카엘 천사에 의한 레퀴엠 2-3」 부분)
대지를 디딜 다리마저 잃은 노동자들은 굴뚝으로 올라간다. 시인은 그들을 천사여, 하고 불러 달라고 간구한다. 시인은 자신의 기도가 누구의 기도를 대신한 것인지 이 시집에 실린 <시인의 산문>에서 고백하고 있다.
“그 수많은 천사들을 다 열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내게 온 천사들을 열거해 보기로 하자: 이념 없는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서 학살당한 수많은 천사들, 힘겨운 노동의 현실 속에서 떨어지고, 불타고, 부서지고, 숨이 막히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천사들, 이유도 모른 채 물속에 갇혀 흰 파도가 된 어여쁜 천사들, 내 어머니 천사들, 일찍 떠난 내 동생 천사, 물대포에 머리가 부서진 농부 아저씨 천사, 그리고 내가 식별하지 못한 수많은 별빛의 천사들…”
숨 가쁘게 열거한 이들의 기도를 시인이 대신하려면 시인은 얼마나 아파야 했을까. 대신(代身). 신체를 바꾸어 대상의 역할과 책임을 떠맡는다는 말이다. 이 시집의 노래가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운 까닭은 몸을 바꾸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경험을 노래하는 시인은 많아도 몸을 바꾸어 노래하는 시인은 희유(稀有)하다. 대신(代身)은 대속(代贖)으로 이어진다. 남의 죄를 대신하여 받는 것이다. 시인은 레퀴엠을 통해서 대신 앓는 자. 대신 고통받는 자, 대신해서 매를 맞고 벌을 받고, 마침내 대신 죽는 자로 다시 태어난다. 노태맹의 기도가 뜨겁고(분노, 불) 눈물(슬픔, 물)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이런 까닭일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이렇게 스스로 되묻고 있다.
“천사들은 아파하지 않는다. 신간의 날이 끝나도 천사들은 인간만의 천사가 아니어서, 천사는 울지 않는다. 그래서 나의 레퀴엠은 천사의 목소리만을 꿈꾼 것은 아니었다. 내가 원했던 것은, 우리의 아픔과 슬픔에 우리가 동시대적으로 아파하고 슬퍼해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두가 ‘쉼’에 이를 수 있도록 천사는 요청된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과연 천사처럼 고요히 머물러 있었던가? 서사 없는 통곡과 서정만을 보여준 것은 아니었을까?”
-「시인의 산문」, 부분
그러나 눈이 밝은 독자들은 이번 시집의 “통곡과 서정”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눈물의 서사를 발견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노태맹은 사석에서 자신을 “백일홍 시인”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의 시에는 백일홍이 많이 등장하고 그의 일터인 성주의 요양병원으로 가는 길가엔 백일홍이 줄지어 피어있다. 백일홍을 보며 시인은 많은 시를 썼다가 지우고 다시 썼을 것이다.
“나는 허공에 매달린 붉은 백일홍 꽃이나이다./ 비는 노래하는 법을 잊어버렸고/ 수평의 바닥을 향해 비는 수직의 기도를 바치지만/ 녹슨 청동의 혀는 기도하는 법을 앗아가 버렸나이다./ 당신을 향해 오르던 음계는/ 날카로운 못이 되어 허공중에 박혀 있나이다.”
-「나는 오직 붉은 백일홍 꽃이나이다, 레퀴엠 1-4」 부분
시인의 기도는 수평(지상의 평화와 평등)의 바닥을 향하지만 녹슨 청동의 혀는 기도하는 법을 앗아가 버렸다. 지상에서 고통받는 존재들의 기도를 대신하기에는 그들의 삶이 “기도조차 할 수 없는 입안 가득한 모래여서” 시인의 기도는 하늘에 아직 닿지 못하고 지상에 붙들려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지상의 탄식과 절망의 노래야말로 하늘에 가장 먼저 닿을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지상에서 가장 약한 숨을 쉬고 있는 존재들의 ‘상승과 구원에의 의지’가 시인이 들려주는 바람의 레퀴엠을 통해 이팝나무 가지마다 무성하게 울려 퍼지고 있다.
시인은 이 시집의 출간기념회를 화가들과 먼저 가졌다. 질투가 났지만 언어에 색(色)을 입혀 존재를 들끓게 만드는 시인이 노태맹이므로 그게 맞다 싶었다. 이 시집의 맨 끝에는 차규선 작가의 ‘화원(花園)’이라는 불과 물의 이미지를 넘나드는 멋진 그림도 있다. 작은 낭독회라도 열어서 시집을 같이 읽자 했더니 시인은 이번 시집은 눈물이 나서 도저히 읽어나갈 수가 없다며 낭독회를 고사했다. 그러나 이번 시집이 시 전문 계간지 《사이펀》의 특집에 실리는 것을 계기로, 나와 몇몇 지인들이 우겨서 낭독회를 마련했다. 노태맹의 눈물로 짜인 이 시집의 낭독회를 2022년 4월 23일(토) 오후 3시에 《사이펀》 주최로 대구에 있는 ‘라포엠’에서 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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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상
김수상 시인은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2013년 《시와표현》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사랑의 뼈들』, 『편향의 곧은 나무』, 『다친 새는 어디로 갔나』가 있으며 2018년 제4회 박영근작품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