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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국어대사전』에 반영된 어문 규범의 원리와 실제
정희창/국립국어연구원 학예연구사
1. 『표준국어대사전』의 '어문 규범'
'×'의 이름을 '가위표'라고 하면 틀리고 '가새표'라고 해야 맞다고 하면 그 반대가 아니냐고 되묻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가새표'는 여러 사전에 실려 있고 '가위표'는 한 사전에만 실려 있다.
흔히 어떤 말을 '맞다, 틀리다'라고 할 때 근거로 삼는 것이 '어문 규범'이다. '어문 규범'은 국가에서 언어 생활의 표준을 제시할 목적으로 제정한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외래어 표기법', '로마자 표기법' 등을 이른다. 그런데 '어문 규범'은 원칙과 약간의 예들로 되어 있어서 '가새표', '가위표'처럼 구체적인 단어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한 까닭에 지금까지 국어 생활의 길잡이 노릇을 해 온 것은 국어사전이었다. 국어사전은 어느 말이 맞고 틀리는지에 대한 판정이 나와 있는 '표준말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다.
『표준국어대사전』 또한 다른 국어사전과 마찬가지로 '어문 규범'의 원리와 내용을 구체화한 '표준말 모음집'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어문 규범'의 담당 기관인 '국립국어연구원'이 직접 편찬했다는 것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국립국어연구원'이 편찬자라는 것만으로도 그 사전이 '표준'일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하기 때문이다.
2. 표준어 선정
『표준』에서는 표준어를 선정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기초 작업을 실시하였다. 먼저 기존 사전을 비교하는 작업을 통해 표준어·비표준어의 판단이 일치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 것을 목록화하였다. 기존 사전끼리 일치하는 것은 전통적인 처리를 존중하여 인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야멸차다/야멸치다'의 경우 현실적으로는 "야멸차게 거절할 수가 있어야지."처럼 '야멸차다'가 널리 쓰이지만 기존 국어사전의 처리를 존중하여 '야멸치다'를 표준어로, '야멸차다'를 비표준어로 처리했다.
기존 사전 간에 처리가 서로 다른 경우에는 별도의 기준에 따라 처리했다. 기준으로 제시할 만한 것으로 형식 면에서는 ① 국어사전의 수록 여부 ② 말뭉치 자료의 출현 빈도 ③ 서울토박이말 조사와의 일치 여부 등을 들 수 있고, 내용 면에서는 ① '어문 규범'의 원리에 맞는가의 여부 ②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가의 여부 ③ 역사적인 설명이 가능한가의 여부를 들 수 있다. 『표준』에서는 ① 기존 사전 간의 차이를 바로잡은 경우 ② 언어 변화를 수용한 경우 ③ 뜻풀이를 세밀하게 분화하거나 추가한 경우로 '어문규범'의 조정 작업을 한정하였다.
귀에 다는 장신구가 '귀걸이'인가 '귀고리'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자. 한 사전에서만 장신구의 뜻으로 '귀걸이'를 인정하고 있고 다른 사전들에는 모두 '귀고리'만을 인정하고 있다. 옛말 '귀옛골회'에서 온 '귀고리'가 전통적인 표준어임에는 틀림없지만 '귀걸이' 또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속담에 나올 정도로 널리 쓰이게 되었으므로 '귀걸이', '귀고리' 모두 표준어로 처리하였다.
'가새표'와 '가위표'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 전통적인 표준어 '가새표'와 새로 널리 쓰이는 '가위표'를 모두 표준어로 인정하였다. 그렇다고 모든 경우 '가위'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대각선 방향으로 빗댄 나무'를 의미하는 건축 용어 '가새'나 어긋맨다는 의미의 '가새지르다'는 '가위'나 '가위지르다'로 대체되는 경우가 없다.
'칭칭'과 '친친'의 경우도 전통적인 어형과 새로운 어형을 둘 다 인정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기존에는 '친친' 만을 인정한 경우가 많지만 현실적으로는 "붕대를 친친 감다."와 "붕대를 칭칭 감다."가 모두 가능한다. '친친'은 실제로 잘 쓰이지 않는 것 같지만 '작은 말'인 '찬찬'이 있는 것을 볼 때 '친친'이 전통적인 표준어임을 알 수 있다.
'좇다'와 '쫓다'의 경우는 의미에 따라 두 말을 구분하도록 한 경우다. {큰사전}에서 '좇다'는 '남의 뜻을 따라서 그대로 하다.'로, '쫓다'는 '있는 자리에서 빨리 떠나도록 몰다.'와 '급한 걸음으로 뒤를 따르다.'로 뜻풀이해서 뜻을 따르는 것은 '좇다'이고 직접 발걸음을 떼서 따라가는 것은 '쫓다'라는 구분이 분명했다.
그런데 어떠한 까닭인지 이러한 구분에 혼란이 생겨서 이후의 사전에는 '좇아가다/쫓아가다'와 '좇아오다/쫓아오다'가 서로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예를 들면 '아이가 친구를 좇아간다.'인지 '아이가 친구를 쫓아간다.'인지 분명하지 않다. 이러한 문제는 '좇아온다'와 '쫓아온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표준』에서 '좇다'와 '쫓다'를 구분하는 기준은 '물리적인 공간의 이동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공간의 이동이 있을 경우는 '쫓다'가, 공간의 이동이 없을 때는 '좇다'가 된다. '그윽한 눈길로 그 사람의 시선을 좇았다.'는 '이동'은 있지만 직접 발걸음을 떼서 옮기는 물리적인 것이 아니므로 '좇다'이다.
'어문 규범'에 명시되어 있는 것 중에서도 혼란이 있는 경우가 있다. '어문 규범'의 해석이 다른 경우가 그것이다. 예를 들어 '雄性'을 의미하는 접두사를 '수-'로 할 것인가 '숫-'으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표준어 규정 제7항'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1) 제7항 수컷을 이르는 접두사는 '수-'로 통일한다.
… 다만 2. 다음 단어의 접두사는 '숫-'으로 한다. 숫-양, 숫-염소, 숫-쥐
『표준』에서는 위의 밑줄 친 부분이 예시한 단어에 한정되는 것으로 해석한다. '양'과 '쥐'를 예시한 것은 'ㅇ'과 'ㅈ'으로 시작하는 말은 '숫-'이 연결된다는 뜻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어문 규범'에서 그러한 방법으로 예시한 경우가 없으므로 '숫-'은 '양', '염소', '쥐'와만 결합하는 것으로 처리하는 것이 온당하다. 『표준』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러한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2) ㄱ. 수-(('양', '염소', '쥐'를 제외한 암수의 구별이 있는 동식물을 나타내는 대다수의 명사 앞에 붙어)) …
ㄴ. 숫-(('양', '염소' '쥐' 앞에 붙어)) …
또한 '수-' 다음에 거센소리가 나는 경우를 밝히기 위해 '부가 정보란'에서 그 목록 전체를 보임으로써 '표준어 규정 제7항'의 내용을 모두 반영하였다.
(3) '수-'가 결합한 단어 중에서 '수-캉아지, 수-캐, 수-컷, 수-키와, 수-탉, 수-탕나귀, 수-톨쩌귀, 수-퇘지, 수-평아리'는 '수' 다음의 첫소리를 거센소리로 적는다.
'어문 규범'의 설명이 부족하여 관련 사항의 적용에 해석이 다른 경우에도 어문 규범의 원리에 따라 그 내용을 보충하거나 구체화하였다. 예를 들어 '표준어 규정 제26항'에는 '-이에요'와 '-이어요'가 복수 표준어로 제시되어 있다. '복수 표준어'는 의미가 유사한 두 말을 모두 표준어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이에요'와 '-이어요'에서 부딪히는 첫 번째 문제는 '-이에요/-이어요' 전체가 어미인가 아니면 서술격 조사 다음에 '-에요'와 '-어요'가 붙은 형태인가 하는 것이다. 만약 전체가 하나의 어미라면 '공책이-+-이에요'에서 '공책이에요'가 된다고 설명해야 하고 '-에요'와 '-어요'만이 어미라면 '공책'에 서술격 조사 '-이-'가 연결된 구조에 '-에요'와 '-어요'가 연결된다고 설명해야 한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이에요/-이어요'의 '에요/어요'만이 어미라고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어요'는 '밥을 먹어요'의 '어요'와 같은 어미임이 분명하고 '에요'는 '어요'가 '이다'와 '아니다'의 어간 다음에 나타나는 형태이다. 따라서 체언 다음에는 '-이에요/이어요'가, 용언의 어간 다음에는 '-에요/어요'가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4) ㄱ. 이것은 공책이에요/공책이어요 (체언 다음)
ㄴ. 이것은 공책이 아니에요/아니어요 (용언 어간 다음)
그런데 체언의 경우 받침이 없을 때에는 '-이에요/이어요'가 '-예요/-여요'로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제로 '저는 철수이에요'나 '저는 철수이어요'라고 하기보다는 '저는 철수예요'와 '저는 철수여요'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받침이 있을 경우에는 '*이것은 연필예요', '*이것은 연필여요'에서 알 수 있듯이 '-예요'와 '-여요'가 연결되지 않는다. 정리하면 '-이에요/-이어요'는 받침이 있는 체언 다음에 연결되고, 받침이 없을 때에는 '-예요'와 '-여요'로 축약된 형태가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보를 사전에 어떻게 반영할 수 있을까? 각각의 경우를 모두 표제어로 올리면 될 것 같지만 '-이에요/이어요'는 어미가 아니므로 사전에 올리기가 어렵다. 축약형 '-예요'와 '-여요' 또한 마찬가지이다. 무엇보다도 '-이에요'와 '-에요'의 뜻풀이를 달리 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표준』에서는 '-에요'와 '-어요'를 동의어로 처리하고 '이다'와 '아니다'의 어간 다음에 쓰인다는 정보를 제시했다. '-이에요/이어요', '-예요/여요'에 관한 설명은 '부가정보란'을 두어 덧붙이는 것으로 처리했다.
다음의 경우도 '어문 규범'이나 국어사전에서 설명이 부족해서 해석에 혼란이 있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표준어 규정 제16항'을 보면 '머무르다', '서두르다', '서투르다', '가지다'의 준말 '머물다', '서둘다', '서툴다', '갖다'에는 모음 어미가 연결되지 않는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 말을 국어에서 준말 다음에는 모음 어미가 연결되지 않는 규칙이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 말의 뜻은 준말에 모음 어미가 연결된 '*머물어', '*서둘어', '*서툴어', '*갖아'가 비표준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준말 다음에 모음 어미가 연결된 형태가 언제나 비표준어인 것은 아니다. '외우다'의 준말 '외다'는 '외어, 외었다'처럼 모음 어미의 연결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준말의 연결이 불가능한 말과 가능한 말을 구분하는 기준이 필요하다.
(5) ㄱ. 어간의 형태가 달라짐: 모음어미의 연결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건들다('건드리다'의 준말) 건들어(×), 건들었다(×), 건드니(○), 건들고(○)
ㄴ. 어간의 형태가 달라지지 않음: 모음어미의 연결이 원칙적으로 가능하다.
개르다('개으르다'의 준말) 갤러(○), 갤렀다(○), 개르니(○), 개르고
(6) ㄱ. '건드니'류: 모든 'ㄹ'받침을 가진 어간. '건드니, 건드는, 건들고, 건들며…로 활용.
건들다(건드리다), 굴다(구르다), 까불다(까부르다), 깨뜰다(깨뜨리다), 꺼둘다(꺼두르다), 뒤까불다(뒤까부르다), 들까불다(들까부르다), 머물다(머무르다), 서둘다(서두르다), 서툴다(서투르다), 썰다(써리다), 쓸까슬다(쓸까스르다), 일다(이르다)
ㄴ. '기닿다'류: 'ㅎ'받침을 가진 어간. '기대, 기다니, 기닿소'로 활용
곱닿다(곱다랗다), 기다맣다(기다마하다), 기닿다(기다랗다), 아무렇다(아무러하다), 아스랗다(아스라하다), 자그맣다(자그마하다), 잗닿다(잗다랗다), 조그맣다(조그마하다), 커닿다(커다랗다)
ㄷ. '마지않다'류: '아니하다'에서 준 말. '마지않아, 마지않으니, 마지않소'로 활용.
마지않다(마지아니하다), 얼토당토않다(얼토당토아니하다)
ㄹ. 나머지: 자음어미의 연결만 가능.
가직다(가직하다), 갖다(가지다), 내딛다(내디디다), 뉘웇다(뉘우치다), 문다(무느다), 및다(미치다), 부릍다(부르트다), 붓다(부수다), 빅다(비기다), 잡숫다(잡수시다), 지정닺다(지정다지다), 헗다(헐하다), 흖다(흔하다)
그동안 국어사전에서 문법 사항은 아주 소략하게 다루어져 왔다. 조사나 어미의 뜻풀이는 바로 조사와 어미의 용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뜻풀이가 불충분해서 그 쓰임을 알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의문을 나타내는 '-니'와 '-으니'에 관해서는 사전마다 처리가 다르거나 설명이 불충분해서 '철수가 밉니?'와 '철수가 미우니?' 중에서 어느 하나만 옳은 것인지 아니면 둘 다 옳은 것인지 알기가 어려웠다. 『표준』에서는 이러한 경우 뜻풀이에서 그 용법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니'는 역사적으로는 '-니>-늬>-니'의 과정을 겪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니'는 앞에 '으'를 가지는 일이 없었다. 옛말 '--'가 앞에 '으'를 갖지 않는 말이기 때문이다. '먹니?'는 가능하지만 '먹으니?'가 불가능한 것도 여기서 비롯한다. 또한 '*-니'는 '--'와 마찬가지로 동사와만 결합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니'가 형용사의 어간과도 결합하게 되는 변화를 겪게 되면서 '-니'만 쓰이던 것에서 벗어나 '-으니'로도 쓰일 수 있게 되었다. 현실적으로 '철수가 밉니?'와 '철수가 미우니?'가 모두 가능하다. 『표준』에서는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형용사의 경우 '좋니/좋으니?'를 모두 인정하여 혼란이 없도록 했다. '-니'의 용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7) '-니/-으니'의 쓰임
동사 받침 없음 -니 철수가 번개같이 달리니?(←달리-+-니)
받침 있음 철수가 책을 읽니?(←읽-+-니)
형용사 받침 없음 산이 높니?(←높-+-니)
받침 있음 -니/-으니 날씨가 좋니/좋으니?(←좋-+-니/좋-+-으니)
3. 한글 맞춤법
'한글 맞춤법'은 [나무]로 소리 나는 표준어를 '남우'가 아닌 '나무'로 적도록 하는 표기의 원칙을 이른다. '사이시옷'의 문제를 예로 들어 보자. '장미빛/장밋빛', '만두국/만둣국', '맥주집/맥줏집'은 서로 혼란을 보인다. 그런데 [장미삗]으로 발음하면서 '장미빛'으로 적는 것은 잘못이다. [장미삗]으로 발음하면 '장밋빛'으로 적어야 하고 [장미빋]으로 발음하면 '장미빛'으로 적는 것이 맞춤법에 맞는 것이다. 사이시옷에 혼란을 겪는 대부분은 [장미삗]으로 발음하면서 '장미빛'으로 적는 경우다. 『표준』에서 '장밋빛', '만둣국', '맥줏집'으로 적은 것은 [장미삗], [만두꾹], [맥주찝]이 표준어이기 때문이다.
'廣告欄'을 '광고난'으로 적지 않고 '광고란'으로 적는 것도 발음이 [광고란]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표준 발음을 잘 모르기 때문에 '欄'이 고유어와 외래어 다음에 결합할 때에는 '난'으로 적고 한자어 다음에 결합할 때에는 '란'으로 적는다는 원리가 더 적용하기가 쉽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표준』에서 제시한 원리는 다음과 같다.
(8) 한자어 다음에는 두음 법칙을 적용하지 않고 고유어·외래어 다음에는 두음 법칙을 적용하는 경우.
문주-란(文珠蘭)/거미-난, 가정란/어린이난, 노동량/구름양, 부담롱(負擔籠)/옷-농, 단백-뇨(蛋白尿)/알칼리-요(alkali尿)
(9) 한자어·외래어·고유어 다음에 두음 법칙을 적용하지 않는 경우.
태양-력/율리우스-력(Julius曆), 전기-로/가스-로(gas爐), 마찰-력(摩擦力)/디자인-력(design力), 강의료/모델료(model料), 감귤-류(柑橘類)/거미-류( - 類)/볼복스-류(volvox類), 경험론(經驗論)/반뒤링-론(反Duhring論), 경회-루(慶會樓)/황허-루(Huanghe樓)
'ㅎ' 받침을 가진 형용사의 활용은 혼란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렇다'의 활용과 '퍼렇다'의 활용을 동일하게 다룰 것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가 있다. '그렇다'가 '그래, 그랬다, 그렇고'와 같이 활용하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퍼렇다'가 '퍼레, 퍼렜다'인지 '퍼래, 퍼랬다'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표준』에서는 '그렇다'는 '그래, 그랬다, 그렇고'로 활용하고 '퍼렇다'는 '퍼레, 퍼렜다'와 같이 '모음조화'에 따라 활용하는 것으로 처리했다. 그 까닭은 이미 {표준어 모음}(1990, 국어연구소)에서 '퍼레지다'를 표준어로 다루었고 그러한 사실이 국어사전에 수록되는 등 어느 정도 정착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Nbsp;또 다른 문제로는 '노랗네/노라네', '노랗니/노라니' 중에서 어느 쪽이 표준인가 하는 것이다. 『표준』에서는 '노라네', '노라니'가 표준인 것으로 판정하였다. '노랗다'의 활용란에 '노래, 노라니'를 기본적으로 제시하였고 부록의 '용언 활용표'에 더욱 자세한 활용형들을 제시하여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4. 띄어쓰기
'띄어쓰기'는 '어문 규범'에서 가장 혼란이 많은 부분이다. 그 까닭은 '띄어쓰기'의 기본 단위가 단어라는 불분명한 개념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띄어쓰기'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합성어와 구를 구분하는 문제이다. 사전에서 개선할 점으로 '띄어쓰기'의 일관성 문제가 지적되는 것도 근본적으로는 합성어와 구의 구분이 어렵기 때문이다. 일관된 기준을 세우기 어렵기 때문에 비슷해 보이는 두 단어의 연쇄가 어떤 경우에는 합성어로, 어떤 경우에는 구로 처리되기도 한다.
『표준』에서도 이러한 문제는 마찬가지다. 이 곳에서는 몇 가지 원리의 적용이 가능한 경우를 한정하여 '띄어쓰기' 문제를 다루어 보기로 한다.
먼저 '어문 규범'에 따르면 일반어와 전문어의 띄어쓰기가 갈라진다. 그렇지만 전문어 중에서도 한 단어로 여겨지는 부류의 것들은 단어별로 띄어 쓰되 붙일 수도 있다는 '한글 맞춤법 제50항'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예를 들어 '노루오줌', '강장동물', '염화나트륨', '임진왜란', '경국대전'과 같은 말들은 전문어에 속하지만 언제나 한 단어로 취급된다. 그것은 이들을 둘로 나누었을 때 하나의 '의미 단위'가 깨지기 때문이다. '노루'와 '오줌', '염화'와 '나트륨', '경국'과 '대전'이 하나의 의미 단위를 구성하지 못한다면 이들을 띄어 쓸 이유는 없다고 할 만하다.
'첫 번째'와 '두 번째'의 문제는 일관성과 관례가 충돌하는 경우다. '첫번째'만 붙이고 '두 번째'부터는 띄어 쓰는 관례가 있다고 하지만 '첫번째'의 의미가 특별하지 않을뿐더러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와 같이 연결 가능성이 무한하므로 '첫 번째'로 띄어 쓰는 것이 좋을 것이다.
'띄어쓰기'를 결정하는 데 문법적인 지식이 기준이 되는 경우도 있다. '형만 하다'를 예로 들면 '형만 하다'로 띄어 쓸 것인지 '형만하다'로 붙여 쓸 것인지가 문젯거리다. 그런데 이 문제는 '만하다' 전체를 접미사로 처리할 경우 '형만하다'로 붙여 쓰게 되고 '만'을 보조사로 처리하고 '하다'를 용언으로 처리할 경우 '형만 하다'와 같이 띄어 쓰게 된다. 즉 문법적으로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띄어쓰기가 달라진다.
그런데 만약 '만하다'를 접미사로 처리하고 '형만하다'로 붙여 쓸 경우에 '형만 못하다'와 같이 부정을 나타내는 '못'이 끼어드는 현상을 설명하기가 어려워진다. 국어에서 접미사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파생어의 내부로 다른 요소가 끼어드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랑스럽다'와 '도둑질' 사이에 다른 요소가 들어가 '*사랑안스럽다'나 '*도둑나쁜질'처럼 되는 일은 없다.
그러므로 '형만하다'의 '만하다'를 접미사라고 하는 한 '형만 못하다'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형만은 하다'나 '형만이나 할까'와 같이 '만' 다음에 보조사가 결합하는 현상도 '만하다'를 접미사로 처리하는 한 설명하기 어렵다. '형만은 하다'처럼 접미사 내부로 보조사 '은'이 끼어든다고 해야 하는데 국어에서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을 보조사로 다루면 이러한 현상은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즉 '너만은 나를 믿을 줄 알았는데'와 '짐승만도 못 한 놈'과 같이 보조사끼리는 서로 겹쳐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을 보조사, '하다'를 용언으로 처리하여 '형만 하다'로 띄어 쓰는 것이 옳음을 알 수 있다.
'띄어쓰기'는 문맥에 의존적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쓴맛, 단맛, 짠맛, 신맛'과 같은 단어들은 띄어 쓰지 않지만 '달고 짠 맛이 느껴지는 음식'처럼 수식어가 있을 때는 띄어 쓴다. '노란색'도 '노란색 물감'이라고 할 때는 붙이지만 '너무 노란 색으로 칠했다'와 같이 부사의 수식을 받을 때는 띄어 쓰는 것이 옳다.
그런데 '띄어쓰기'는 고유어와 한자어뿐 아니라 외래어에도 적용된다. 외래어의 띄어쓰기 원칙은 원어의 띄어쓰기에 따라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 그렇지만 관용을 인정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홈런(home run), 아이스크림(ice cream), 골인(goal in)' 등은 원어에서 띄어 썼지만 국어에서는 한 단위로 기능하므로 띄어 쓰지 않는다. 원어에서 축약된 형태인 '에어컨(air conditioner), 오피스텔(office hotel)'도 띄어 쓰지 않는다. '고스톱(go stop), 애프터서비스(after service)'와 같이 원래의 언어에는 없고 우리말에서 만들어진 말 또한 띄어 쓰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외래어' 다음에 나타나는 '일음절 한자어'의 '띄어쓰기' 또한 문젯거리다. 외래어 표기법에 제시되어 있는 '프랑스 어', '아라비아 해'의 예를 외래어와 다른 요소를 구별해야 하는 원리로 해석하여 '크리스트 교', '이슬람 력(曆)'으로 '띄어쓰기'를 확대하는 것이 옳다는 견해와 비자립적인 일음절 한자어를 띄어 쓰기 어려우므로 붙여 쓰는 것이 옳다는 견해가 있다. 『표준』에서는 일 음절 한자어 중에서 앞의 외래어와 띄어 써야 하는 것, 띄거나 붙일 수 있는 것, 붙여야 하는 것, 세 가지로 구분했다.
'아라비아 해', '리오그란데 강', '에베레스트 산'은 띄어 쓰는 경우이다. 그것은 지명의 경우는 수가 많은 만큼 외래어와 일 음절 한자어의 구분이 문제가 될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외래어 표기법'에서 지명에 관해 특별히 언급한 것도 이러한 것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렇지만 특별히 언급한 경우가 아닌 '프랑스 어', '그리스 인', '게르만 족'은 띄거나 붙일 수 있는 것으로 처리했다.
'외래어 표기법'에 띄어 쓴 예가 있지만 '어, 인, 족'이 비자립적이라는 것을 고려한 결과이다. 이와는 달리 '이슬람력(Isram曆)', '디자인료(design料)'는 언제나 붙여 써야 하는 경우다. 띄어 쓸 경우 두음 법칙이 적용되므로 '이슬람 역'과 '디자인 요'가 되는데 두음 법칙이 적용된 '이슬람 역'과 '디자인 요'는 실제로 쓰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슬람력'과 '디자인요'로 붙여 쓰는 것이 옳다.
5. 전망과 과제
『표준』의 편찬으로 '어문 규범'에 관해 논의할 기반은 충분히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활발한 논의를 통해 내용이 더욱 가다듬어지고 『표준』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사전이나 서적의 출판이 이루어진다면 국어 생활이 더욱 풍요로워질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걸맞은 다양한 형태의 사전이 개발되어 누구나 쉽게 국어사전을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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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립국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