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미는 중학교 졸업을 눈앞에 둔 어느 날 교통사고로 인해 하체
마비와 골반 장기 마비의 장애인이 되어 퇴원해야만 했다. 대소변
감각까지 잃은 그녀는 송장처럼 날마다 누워 있어야 하는 자신의 처
지를 비관, 마침내 자살을 시도하였으나 미수에 그치고 만다.
그 후 그녀는 어머니의 설득으로 자신은 장애인이 되었으나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어 우선 어머니의 노고를 덜기 위해서
기저귀에서 해방되기 위해서 소변의 경우에는 두 시간마다, 대변의
경우에는 아침 식전에 변기에 가서 앉았다.
그것이 습관화되어 차츰 기저귀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또 휠체어를
타고 그녀의 집에서 운영하고 있는 목장에 나가보기도 하고 마을의
골목길에 나가보기도 했다.
어느 날 그녀는 신문의 광고를 보고는 컴퓨터를 배우기 위해서 아침
마다 목장에서 우유를 싣고 가는 목장 트럭 편으로 어머니의 부축을
받으며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부모님에게 부탁하여 컴
퓨터를 구입하여 집에서도 실습했다.
그녀는 곧 마을 사람들의 부탁을 받아 안내장 같은 것을 컴퓨터에
입력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아버지의 도움으로 이전에 도장포에서
도장을 새기고 있었던 사람의 지도를 받아 도장 새기는 기술까지
습득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고 있던 그녀는 부모님의 도움으로 시청 근처에다 아담한
집을 마련하여 컴퓨터 전산 입력과 복사 그리고 도장 고무인을 새기
는 서비스업을 시작했다.
하루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상일이라는 남자가 찾아왔다.그도
고교시절 교통사고로 한쪽 발목을 잃은 장애인이었다.
그때 상미는 나이 서른이었다. 그들은 어느새 같은 장애인으로서 친
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그들은 같은 남양주시에 살고 있으나 상미는 제일 동쪽의 호평동에
집이 있어 금곡동에 나와 있었고 상일이는 제일 서쪽의 도농동 형
의 집에서 같이 있었고 그가 운영하고 있는 시계, 금은방은 상미와
같은 금곡동에 있었다.
상일이는 장애인이 되기전에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 공부를 계속
해왔으나 장애인이 되고 나자 진학을 포기하고 지금의 직업을 가지
게 되었다고 했다.
그들은 친구 사이가 되어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전화로 안부를
묻고 있었다. 상미는 상일이와 자신을 생각하면서 차츰 친구관계를
넘어서는 애정 문제에까지 발전되어가지 않을까하는 걱정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자신의 몸은 이미 골반 장기 마비로 인해 남자를 알
수 없는 몸이며 아기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친구로서의 상일이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상일이는 한쪽 발목을 잃고 퇴원하게 되자 대학 진학을 포기한 채
장차 무엇을 해야 할까를 생각하고 있던 중 어느 날 고장난 자신의
시계를 고치기 위해서 시계방을 찾아갔다가 시계방 주인이 시계를
수리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장차 시계와 귀금속을 취급하는 직업
을 택하게 되어 거기에 대해서 수년 동안 열심히 배웠다. 그리고
아버지가 생존해 있을 때 금곡동 네거리에다 점포를 내주었다.
어느 날 상일이가 그날의 일을 마치고 저녁 늦게 도농동의 집으로
돌아와보니 형 상근이는 없었고 동생 상건이와 형수가 수심에 찬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형 상근이가 맡고 있던 건축 공사장에서 불의의 사고가 발생했는데
흙이 무너지면서 한옥 한 채가 파괴되고 집에 있던 노파가 사망한
사고였다.
형이 현장에서 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서 동생 상건이와 형 상근이의 집을 은행에
잡히고도 부족하여 상일이는 가게 전세금을 빼고 가게의 고급 시계
와 귀금속을 팔고 그동안 저축해놓았던 예금을 인출하여 겨우 사고
의 뒷수습을 끝낼 수 있었으나 상일이는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한편 상미는 하루에 한 번씩 꼭 전화로 안부를 묻던 상일이로부터
여러 날 전화가 없자 너무나 궁금하여 휠체어를 타고 상일이의 가게
를 찾아갔다가 교통사고로 인해 찰과상을 입어 병원에 옮겨졌다.
상일이는 상근의 일이 수습되어가자 그때 비로소 상미에게 전화를
했으나 전화를 받는 사람이 없어 여기저기에 알아보고는 상미가
금곡동에 있는 모 병원에 입원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상일이는 상미가 왜 교통사고로 입원하게 되었는가를 알게 되어 깊
은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다. 상일이는 상근이를 위해서 빈터리가 되
었으나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10년 동안 형의 집에서 신세를 지
고 온 것을 생각하여 응당 해야 할 것을 했을 뿐이다 하고 제로의
상태에서 다시 일어날 것을 결심하여 거리에 나가 리어카에다 시계
수리와 부품을 파는 노점을 차렸다.
물론 리어카를 끌고 노점 자리에 나올 때와 집으로 들어갈 때는 형
수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상미는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노점에
나가 있는 상일이에 대해서 궁금하여 불편한 몸인데도 부축해주는
사람을 구하여 상일이의 노점을 찾아가보았다.
너무나 비참해진 상일이의 모습을 본 상미는 그를 도울 수 있는 방
법이 없을까 하고 생각한 끝에 자신의 사무실이 넓어 거기에 와서
이전처럼 시계방을 차리는 것이 어떻까 생각되어 다시 상일이를 찾
아갔으나 거절당하고 말았다.
상일이로서는 아무리 친구 사이라 하지만 지나친 도움을 받지 않아
도 다시 이전처럼 일어날 수 있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미
는 또다시 상일이를 찾아갔을 때는 자신의 사무실을 쓰는데 수입금
의 일부를 내고 쓰라 그러면 지나친 도움이 되지 않느냐고 했다.
상일이는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상일이는 생각한 끝에 결국 상미의 사무실에 다시 시계방을 내게
되었다. 그 후 상미는 시계의 수리와 귀금속의 가공기술에 한하여
상일이로부터 배우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에 자꾸만 정을 주게 되
어 마침내 자신은 성 불구자이며 아기도 가질 수 없는 몸이지만 여
자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면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어
상일에게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호소하게 되었다.
상일이는 아기를 가지기를 원하고 있지 않았다. 장애인이 아기를
가지게 되면 그 자식에게 고통을 주게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끈질긴 상미의 호소에 상일이는 마침내 결혼에 동의하게 되었다.
그러나 상미 부모는 그들의 결혼에 동의하지 않았다.
골반 장기가 마비된 여자로서의 결혼은 불행을 자초할 뿐이다. 너는
조용히 살다가 우리 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 너에게 주어진 복은
그것뿐이다. 그 복 속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상미와 상일이의 끈질긴 설득으로 어쩔 수 없이 결혼에 동의하게
되었다.
3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상일이의 귀금속, 시계방은 순조롭게 운
영되어가고 이전처럼 종업원을 두게 되었다. 그 어느 날이었다.상미
가 내과 의원에 다녀오더니 임신했는지 알 수 없으니 산부인과 가보
라고 하면서 구리시에 있는 ○산부인과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라는
말을 듣고 크게 놀라며 당황했다. 그녀는 급히 어머니에게 그 사실
을 알리고 어머니와 함께 ○산부인과 의원을 찾아갔다.
의사는 하체와 골반 장기까지 마비된 여자는 임신할 수 없다는 것이
정설(定說)인데 어떻게 임신할 수 있었는가? 하여 놀라며 임신부의
안전을 위해 임신 중절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상미 어머니도 그
녀의 몸을 생각하여 의사의 말에 따라야 한다고 했다.
상미의 번민은 계속되었다. 임신 중절이냐? 출산이야? 자신의 몸을
생각하여 혹시 태아가 기형아가 아니냐? 그러나 그녀는 마침내
출산을 결심했다. 다시 ○산부인과 의원을 찾아간 그녀는 출산하겠
다고 했다. 의사는 자신의 의원에서는 시설이 완비되어 있지 않아
H대학병원의 산부인과 과장 허 박사에게 소개장을 써주었다.
상미는 허 박사를 찾아가 자신의 의사를 밝힌다. 허 박사는 산부
인과 의사들에게 상미의 진찰 결과를 설명하고 출산이냐, 임신 중절
이냐를 놓고 토의했다. 의사들은 상미의 몸을 생각하고 임신 중절을
주장했다.
그러나 허 박사는 상미와 같은 신체상의 조건을 가진 여인이 일본에
서 10년 전에 출산에 성공했다는 보고가 학계에 제출되었다는 실례
를 들어 매달 정기적으로 진찰해보기로 하고 내시경 검사를 통해
태아의 상태를 진찰해보기로 하고 상미의 골반 장기의 마비로 인해
출산이 어렵게 되면 외과 의사에 의해 개복 수술을 시술하여 임신
부의 뜻에 따라 출산시키도록 주장했다.
상미는 마침내 개복 수술을 받아 남아를 출산하는 데 성공했다.
상미는 한 아기의 어머니가 된 것을 기뻐하며 불편한 몸이지만 정성
을 다해 키워나갔다. 이름을 대일이라고 지었다.
13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어느 날 상미는 대일이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몸을 맡기고 이전에 상일이와 함께 가보았던 홍유릉에
나가보았다.
그때 대일이가 "저는 아버지와 엄마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 행복해
요" 하고 했다.
"아니, 아버지도 엄마도 장애인인데도?"
"그래서 저를 생각해주시는 마음이 몸이 성한 사람들보다 더했을
거 아니에요."
상미는 대일이의 말에 감격하여 대일이를 끌어안았다. 맑게 갠 하늘
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괴어 겨울의 햇살을 받아 방울방
울 빛나고 있었다. 그 겨울 하늘에 커다란 꽃이 피어 있었다.
그것은 환상의 꽃이었다. 상미의 일생은 언제나 겨울이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살아온
상미에게만 볼 수 있는 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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