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림동 터미날 뒷편, 여관과 모텔이 있는 뒷골목을 지나 허름한 건물 하나가 나온다.
옛날 동사무소 건물이었던 이층 슬라브 건물인데, 도색이 벗겨지고 가정집 사이에 둘러싸여 누추하기 그지 없는 건물이다. 바로 그곳에 낯익은 현판 하나가 걸려 있다.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층 철계단을 올라가니 사무실에 벌써 여러 사람이 나와 있었다. 정갈한 모습의 이환희 여사를 비롯하여 향토사학자 이중근씨, 시청에 다니는 정재순씨, 공단에 근무하는 이상오씨, 여수사랑청년회장 정병일씨, 최간사와 이영일 소장 등이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철의자를 꺼내 앉자 테이블 위에 놓인 오늘 강의할 세미나 원고와 회의 문건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강사님이 오시는 중이니까 조금만 더 기다렸다가 세미나를 시작하도록 하지요.기다리는 동안 이번 여순사건 추모행사에 있어 각 단체들이 맡아야 할 일들을 간단히 논의해 봤으면 좋겠는데...추모제 행사를 치르려면 자금이 필요한데 각 단체들이 한 30만원씩 분담금을 내주시면 나머지 모자란 부분은 우리 연구소에서 충당하도록 하지요.
이영일 소장이 좌중을 둘러보며 조심스럽게 운을 떼자 모두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번 행사 주요 내용이 추모제 행사와 여순사건 사진 전시회인데, 이를 여수지역민들에게 적극 홍보하려면 언론의 협조를 구해야 될 것 같은데 보도자료는 최간사가 만들면 되겠지만 추모제는 공동행사로 치르자면 우선 사회자와 기조연설할 사람이 정해져야 하는데 전교조 쪽에서 맡아보는 게 어떨까요?
이 소장은 참석한 사람들의 면면을 훑어보며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려면 먼저 각 단체에서 참여할 인원을 어느정도 파악해야 되지 않을까요? 더군다나 매스컴에 보도됐을 때 참여 인원이 너무 적으면 초라해 보이지 않겠습니까?
스포츠형 머리를 한 여수사랑청년회 회장 정병일이 말을 받았다.
-이번 행사에 적어도 한 300명 정도는 모여야 되니까 각 단체에서 30명씩 동원하면 되지 않을까요? 이 숫자는 최소한의 인원이니까 더 동원할 수 있으면 힘닿는 데 까지...
갑자기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려 이소장이 전화를 받더니 손짓으로 강사가 도착했다는 메세지를 전했다.
-오늘 주제는 '여순사건과 군(軍)'인데 여기 계시는 이소장님이나 향토사학자이신 이중근님께서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 내용을 제가 국내외 자료를 정리한 연구논문을 토대로 간략히 설명드릴까 합니다.
강사는 조선대에 출강하는 젊은 사학자 노영기였다.
유인물 넘기는 소리가 일제히 나며 모두들 열심히 필기를 해가며 강의에 열중하고 있었다. 특히 백발이 하얀 이환희 여사의 모습은 나이를 초월해 젊은 사람들과 여순사건의 진상과 실체를 규명하려는 진지한 자세로 주변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강의는 두 시간 가량 이어졌고, 연구소 곁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그날 강의에 대한 소감과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이뤄졌다. 양복 차림에 작은 손가방을 든 노영기 교수를 중심으로 마주보고 앉은 좌중들은 삼겹살에 소주를 한잔씩 들면서 당시 군의 역할과 이승만 정권의 진압과정에 대해 자유로운 토론을 하였다. 식당 앞 도로 주변은 워낙 건물이 없고 지나는 사람들도 없어 썰렁해 보였지만 식당 안은 진지한 토론으로 뜨거운 열기를 품어 내고 있었다.
이 지역에선 젊고 의욕에 찬 젊은이들이 지역사회연구소를 중심으로 정기적으로 한달에 한번씩 체계적인 세미나를 갖고 현장 답사를 하면서 여순사건의 실체에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서고 있었던 것이다. 어디선가 일진강풍이 차가운 도로 위의 먼지를 휩쓸고 터미날가 연등천을 향해 불어 가며 벌써 초겨울을 재촉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