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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호관 이인상,난고 김삿갓 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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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삿갓 사랑방 스크랩 기구한 신세에 남의 눈총만 받다 살다 간 김삿갓(김병연(金炳淵)
임종혁 추천 0 조회 6 09.05.16 11:3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기구한 신세에 남의 눈총만 받다 살다 간 김삿갓(김병연(金炳淵)
 

-= IMAGE 1 =-

기구한 신세에 남의 눈총만 받다 살다 간 김삿갓(김병연(金炳淵)

김삿갓(1807∼1863)조선 후기의 방랑 시인. 본명은 김병연(金炳淵),호는 난고(蘭皐), 속칭은 김삿갓, 김립(金笠).
조선 말기(1807) 당대 명문 안동 김씨 가문에서진사(進士) 김안근(金安根)의 둘째 아들로 태어남. 5살(1811)때 황해도 선천부사(宣川府使)로 있던 할아버지 김익순(金益淳)이 홍경래(洪景來) 반란군(叛亂軍)에게 투항한 후 처형당하고, 아버지마저 화병으로 돌아간 후 어머니를 따라 곡산, 광주, 가평 등지로 도망 다니다 강원도 영월 땅에서 숨어 살았다. 열살 전후에 사서삼경(四書三經)을 통달, 특히 글재주가 뛰어 났다.

20세(1826)때 어머니의 간곡한 요청으로 영월 고을 향시(鄕試)에 장원 급제하였는데 그
시제(試題)는 論鄭嘉山忠節死 嘆金益淳罪通于天(정가산의 충성스런 죽음을 논하고, 김익순(金益淳 자기 할아버지)의 죄가 하늘에 이를 정도였음을 통탄하라)로 장원하였다.
급제한 후 가문의 내력을 알고 죄책감에 빠져 금강산 유람을 시작으로 각 지역의 서원을 주로 돌아다니며 가는 곳마다 풍자와 해학으로 퇴폐해가는 세상을 개탄,조소하는 시를 쓰면서 세월을 보내다 1863년(56세) 3월 29일 전라도 동복에 있는 적벽강(赤壁江) 기슭에서 한 많은 생애를 마쳤다.

김삿갓의 절명시(絶命詩)

鳥巢獸巢皆有居 顧我平生獨自傷
조소수소개유거 고아평생독자상

芒鞋竹杖路千里 水性雲心家中方
망혜죽장로천리 수성운심가중방

날짐승도 길짐승도 다 제 집이 있건 만은
나는 한평생 홀로 상심(傷心)하며 살아왔노라.
짚신에 대지팡이 끌고 천리길 떠돌며
물처럼 구름처럼 가는 곳이 내 집이었다.

尤人不可怨天難 歲暮悲懷餘寸腸
우인부가원천난 세모비회여촌장

初年有謂得樂地 漢北知吾生長鄕
초년유위득락지 한북지오생장향

사람도 하늘도 원망할 일 못 되어
해마다 해가 저물면 슬픈 회포만 가슴에 남았노라.
어려서는 이른바 복(福)된 집에서 태어나
한강 북녘 이름 있는 고향에서 자라났노라.

簪纓先世富貴門 花柳長安名勝生
잠영선세부귀문 화류장안명승생

隣人來賀生弄璋 早晩歸期冠蓋場
린인래하생롱장 조만귀기관개장

조상은 구슬갓끈 늘인 부귀한 사람들이었고
호화로운 가문은 장안에서도 명망이 높았다.
이웃 사람들도 귀공자 태어났다 축하해 주며
머지않아 출세한다. 기대 했건만

貧毛稍長命漸奇 小劫殘門變海桑
빈모초장명점기 소겁잔문변해상

依無親戚世情薄 哭盡爺孃家事荒
의무친척세정박 곡진야양가사황

어린 머리칼 차츰 자라면서 운명이 기박해져
화를 입은 집안은 상전(桑田)이 벽해(碧海)로 변했다.
의지할 친척없고 인심도 각박한데
부모마저 돌아가서 집안이 망했도다.

終南曉鐘一納履 風上異邦心細量
종남효종일납이 풍상이방심세양

心猶異域首丘孤 勢亦窮途觸藩羊
심유이역수구고 세역궁도촉번양

끝내 새벽 종 소리에 방랑길에 오르니
생소한 객지라서 마음 애달팠노라.
마음은 고향 그리는 떠돌이 여우같고
신세는 궁지에 몰린 양같은 나로다.

南州從古過客多 轉蓬浮萍經幾霜
남주종고과객다 전봉부평경기상

搖頭行勢豈本習 設口圖生性所長
요두행세기본습 설구도생성소장

남쪽 지방은 자고로 과객이 많은 곳
부평초처럼 떠돌기 몇 몇 해런가.
머리 굽신거림이 어찌 내 본성이리요
먹고 살기 위해 버릇이 되었도다.

光陰漸向此市失 三角靑山何渺茫
광음점향차시실 삼각청산하묘망

江山乞號慣千門 風月行裝空一囊
강산걸호관천문 풍월행장공일낭

그런 중에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가
삼각산 푸른 모습 생각사록 아득하네.
떠돌며 구걸한 집 수없이 많았으나
풍월 읊은 행장(行裝)은 언제나 비었도다.

千金之家萬石君 厚薄家風均試嘗
천김지가만석군 후박가풍균시상

身窮每遇俗眼白 歲去偏傷髮髮蒼
신궁매우속안백 세거편상발발창

큰 부자 작은 부자 고루 찾아다니며
후하고 박한 가풍(家風) 모조리 맛보았노라.
신세가 기구해 남의 눈총 받다 보니
흐르는 세월 속에 머리만 희었구나.

歸兮亦難佇亦難 幾口彷徨中路傍
귀혜역난저역난 기구방황중로방

돌아가자니 어렵고 머무르기도 어려워
얼마나 긴 세월 길가에서 헤매기 그 몇몇해런가

김삿갓은 여기까지 읊어보다가, 마침내 기운이 다해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시를 읊을 기력조차 없어져 버렸던 것이다.
배는 가벼운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고, 김삿갓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리하여 삼천리 방방곡곡을 두루 다니며 수많은 시를 뿌려 놓던 시인 김삿갓은 마침내 전라도(全羅道) 동복 적벽강(赤壁江) 범선 위에서 영구 귀천(歸天)했으니, 때는 철종(哲宗) 14년(1863년) 3월 29일이요, 향년 56세였었다.

艱飮野店.간음야점(주막에서)

千里行裝付一柯 餘錢七葉尙云多
천리행장부일가 여전칠엽상운다

囊中戒爾深深在 野店斜陽見酒何
낭중계이심심재 야점사양견주하

천릿길을 지팡이 하나에 맡겼으니
남은 엽전 일곱 푼도 오히려 많아라.
주머니 속 깊이 있으라고 다짐했건만
석양 주막에서 술을 보았으니 내 어찌하랴.

竹(죽 될 대로 되라. 대로)

此竹彼竹化去竹
차죽피죽화거죽

風打之竹浪打竹
풍타지죽낭타죽

飯飯粥粥生此竹
반반죽죽생차죽

是是非非付彼竹
시시비비부피죽

賓客接待家勢竹
빈객접대가세죽

市井賣買歲月竹
시정매매세월죽

萬事不如吾心竹
만사부여오심죽

然然然世過然竹
연연연세과연죽

이대로 저대로 되어가는 대로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생기는 이대로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른 부치는 저대로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시정 매매는 세월대로
온갖 일 내 마음대로 함만 못하니
그렇고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지내세.

〈竹〉이란 작품이다. 세속을 초월한 고고한 선비의 절개를 표상하던 대나무는 이 시에서는 급전직하 '될 대로 되라'는 '대'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이두의 원리를 이용한 '낯설게 만들기'가 시도되고 있는 해체시의 현장이다. 이 시만 해도 조선 후기 시화집인 《夢遊野談》에는 세사에 달관한 어느 정승의 일화 속에 포함되어 실려 있다.

論鄭嘉山 忠節死 嘆金益淳 罪通于天 -장원 시제와 시
논정가산 충절사 탄금익순 죄통우천

정시 가산 군수의 충성스런 죽음을 기리고, 하늘에 사무치는 김익순(金益淳)의 죄를 탄식하노라.

一爾世臣金益淳 鄭公不過鄕大夫
일이세신금익순 정공부과향대부

將軍桃李?西落 烈士功名圖末高
장군도리롱서락 열사공명도말고

대대로 임금 섬겨온 김익순은 듣거라.
정공(鄭公)은 시골 선비에 불과했으나
도리장군 이릉이 농서에서 붙잡혀도
열사들의 공명이 기린각에 높았노라.

詩人到此亦慷慨 撫劍悲歌秋水溪
시인도차역강개 무검비가추수계

宣川自古大將邑 比諸嘉山先守義
선천자고대장읍 비제가산선수의

시인도 이에 이르러 비분강개하노니
칼 어루만지며 가을 물에 슬픈 노래 부르노라.
선천은 예로부터 대장이 맡아보던 고을
가산보다 먼저 충의로써 지켜야거늘

淸朝共作一王臣 死地寧爲二心子
청조공작일왕신 사지영위이심자

升平日月歲辛未 風雨西關何變有
승평일월세신미 풍우서관하변유

깨끗한 조정의 모두 한 임금의 신하로서
죽을 마당에 어찌 두 마음을 품었더란 말이냐.
태평세월 신미년에
관서 지방에 비바람 몰아치니 이 무슨 변고인가.

尊周孰非魯仲連 輔漢人多諸葛亮
존주숙비노중련 보한인다제갈량

同朝舊臣鄭忠臣 抵掌風塵立節死
동조구신정충신 저장풍진입절사

주(周)나라 받듬에 어찌 노중련(魯仲連) 밖에 없겠으며
한(漢)나라 세움에도 제갈량 같은 자 많았노라.
우리 조정에도 옛 신하 정충신(鄭忠臣)이 있어서
맨손으로 병란 막아 절개 지키며 죽었노라.

嘉陵老吏揚名旌 生色秋天白日下
가릉노리양명정 생색추천백일하

魂歸南畝伴岳飛 骨埋西山傍伯夷
혼귀남무반악비 골매서산방백이

가산에 묻힌 늙은 관리 그 이름 드날리어
가을 하늘 밝은 햇빛아래 찬란히 빛나리라.
그의 혼은 남쪽 들로 돌아가 악비와 함께하겠고
그의 뼈는 서산의 백이의 곁에 묻혔으리라.

西來消息慨然多 問是誰家食錄臣
서래소식개연다 문시수가식록신

家聲壯洞甲族金 名字長安行列淳
가성장동갑족금 명자장안항렬순

서쪽에서 날아온 소식 슬프기 그지없어
묻노라 너는 누구의 녹을 먹는 신하더냐?
가문은 으뜸가는 장동(壯洞) 김씨의 갑족가문이요
이름은 장안에서도 제일가는 순(淳)자 항렬이구나.

家門如許聖恩重 百萬兵前義不下
가문여허성은중 백만병전의부하

淸川江水洗兵波 鐵甕山樹掛弓枝
청천강수세병파 철옹산수괘궁지

너의 가문 이처럼 성은을 두터이 입었은즉
백만 대군 앞이라도 의를 저버릴수는 없어라.
청천강 맑은 물에 병마를 씻기며
철옹산 나무로 만든 활을 메고서

吾王庭下進退膝 背向西城凶賊脆
오왕정하진퇴슬 배향서성흉적취

魂飛莫向九泉去 地下猶存先大王
혼비막향구천거 지하유존선대왕

임금의 어전에서 꿇어야 할 무릎을
배반하여 서쪽의 흉적에게 꿇었나니.
네 영혼은 죽어서 황천에도 못 가리니
지하에도 아직 선왕들이 계심이니라.

忘君是日又忘親 一死猶輕萬死宜
망군시일우망친 일사유경만사의

春秋筆法爾知否 此事流傳東國史
춘추필법이지부 차사유전동국사

임금 은혜 저버리고 부모를 저버린 죄
한번 죽음으론 가벼우니 만 번은 죽어야 하리.
춘추필법을 너도 또한 알고 있으리니
이번 일은 역사에 기록되어 천추에 전해지리.

수없이 많은 집에 구걸하며 떠돌면서 읊은 시
김삿갓이 어느 날이 저물어 하루 밤 신세 지려고 어느 양반 집에 갔다. 그 집 머슴이 하는 말 “우리 주인마님은 손님을 맞아들이는데 까다로우니 직접 찾아가 부탁하라”는 것이었다.
덧붙이며 하는 말 “주인장이 이마를 만지면 귀한 손님이니 저녁상을 푸짐하게 차리라는 표시이고, 콧등을 만지면 보통 손님이니 적당히 대접하고, 수염을 만지면 귀찮은 손님이니 쫓아버리라는 표시”라고 일러주었다.
김삿갓은 이 말을 듣고 주인 영감에게 찾아갔으나, 행색이 초라한 김삿갓을 아예 쳐다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때 하인이 달려와 주인의 분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삿갓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영감님, 이마에 모기가 앉았습니다.”라고 말하자 주인영감은 허둥대며 이마를 수 차례 비볐다. 그 모양을 본 하인은 무척 귀한 손님인줄 알고 상다리가 휘어지게 대접을 받았다.
한편 김삿갓에게 호되게 당한 주인영감은 이튿날 아침 아예 자신이 부엌으로 가 시커먼 꽁보리밥에 반찬은 짠지와 간장을 주었다. 김삿갓은 저 노인네가 내게 속은 것이 분해서 선수를 쳤구나. 야박한 늙은이 같으니라구…. 그렇다고 화낸다면 선비로서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라 아주 아침밥을 잘 먹은 뒤 작별을 고하면서
“하룻밤 잘 머물다 갑니다. 제가 가진 것이 없어 드릴 수 없고 시나 한 수 지어 드리고 갈까 합니다” 하자
영감은 “그렇게 하시구려” 하며 시큰둥한 얼굴이었다.
김삿갓은 단숨에 아래와 같이 시를 써 주고 떠났다..

天脫冠而得一点 乃失杖而橫一帶
천탈관이득일점 내실장이횡일대

천(天)자가 모자를 벗고 점을 하나 얻어 달았고
내(乃)자는 지팡이를 잃고 허리에 띠를 둘렀구나.

양반인 주인영감 체면 때문에 물어보지 못하고 낑낑거리다가 나중에 뜻을 알고 길길이 날뛰었었다고 한다.
그 뜻은
천(天)자가 모자를 벗고(一자 때고) 점을 하나 얻었다(점자를 찍었다)는 것은 개 견(犬)자이고,
내(乃)자가 지팡이를 잃고(삐침(별)을 떼고) 허리에 띠를 둘렀다는 것은 아들 자(子)로
즉, 개자식(犬子)이라는 뜻이었다.

집안이 멸족(滅族)을 당하였으나, 형 병하(炳河)와 함께 노복 김성수(金聖洙)의 도움으로 황해도 곡산(谷山)으로 도망가 살았다. 후일 멸족(滅族)에서 폐족(廢族)으로 사면되어 강원도 영월로 옮겨 살다가 과거에 응시하여 장원급제하였으나, 자신의 집안 내력을 모르고 할아버지 익순(益淳)을 조롱하는 시제를 택한 자책과 폐족자(廢族者)에 대한 멸시 등으로 방랑길에 올랐다. 57세 때 전라남도 동복(同福)에서 객사(客死)하기까지 삿갓을 쓰고 전국각지를 유랑하였으며, 발걸음이 미치는 곳마다 많은 시를 남겼다. 후에 둘째 아들 익균(翼均)이 유해를 영월의 태백산 기슭에 묻었다. 그의 한시는 풍자(諷刺)와 해학(諧謔)을 담고 있어, 희화적(戱畵的)으로 한시에 파격적 요인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이응수(李應洙)에 의해 김립시집(金笠詩集)이 간행되었다. 1978년 후손들에 의해 광주(光州) 무등산 기슭에 시비가 세워졌고, 1987년 영월에 전국시가비건립동호회(全國詩歌碑建立同好會)에서 시비를 세웠다. 수많은 한시가 아직도 구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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