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주의 그 감질맛 나는 빙벽 훈련에 일주일 내내 벼르고 있었다.
이번 주부터는 화악산 자락밑의 록키 빙장에서 훈련이다.
동문 홈페이지 사진 자료실에 게재된 사진을 보니 높이와 규모가
무지개 폭포 이상가는듯 보였다.
토요일 오전 업무를 하는둥 마는둥 경기도 가평군 북면 화악리로 달렸다.
어서 도착하고픈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양평가는 길의 그 멋진
강변드라이브 길을 놓칠 수 없다.
양수리 읍내에서 북으로 서종면을 통과하여 청평댐 바로 앞으로
떨어지는 북한강변의 정취도 빼놓을 수 없다.
강변으로 빼곡이 들어찬 무슨무슨- 텔, 이리저리-카페가
북한강변의 호젓함을 방해한다.
근데 최근의 출산율은 왜 꽝인가?
청평 읍내 외곽으로 도는 간선도로변에 '젤 싼 슈퍼마켓'
간판이 보이기에 산이슬 한 되와 괴기 한 덩이 챙겨들고
록키펜션 앞마당에 들어섰다.
너른 주차장에 차는 별루 없고, 그림같은 별장 한채가 독립되어
서 있는데 제법 그럴싸 하다.
때는 어스름 땅거미가 질 무렵이어서 화악산 흘러내리는 자락의
암회색 물감과 펜션의 희고 붉은 물감이 묘하게 어우러져 요염한 낭자가
반기는 듯하다.
직감적으로 저 집이 우리의 숙박장소로구나!
삐죽이 현관문으로 고개를 밀어도 인기척이 없다.
어디로들 갔지?
지겨운 얼굴들이 보고파 본채 인듯한 곳으로 수소문하니
뒷편의 빙장으로 가보란다.
포장된 아스팔트 길을 100여미터 거슬러 오르는데 퍽퍽 휘두르는 소리가 들린다.
'어서와! 형!'
우리 1조 우 명숙님(4기)이 먼저 나를 보았다.
그 뒤로 반쯤 언 록키빙벽 위 아래로 흐릿하게 동계5기 훈련생들의 모습이 보인다.
에이, 배신을 때리다니!
휴대폰으로 그러게 불러봐도 대답없더니 죄다 미리 와 있었군!
멀리서 바라보는데 이 동포들이 이번 주 내내 과외공부들 열심히 한 모양이다.
30여미터쯤 되는 중앙의 빙벽을 펄펄 오르고 있지 않은가?
명숙누이와 그 요염한 펜션으로 들어서니 주방시설에 화장실이
두 개이고 1층과 2층과 3층의 다락방에 페치카까지 아주 호사스럽다.
뭐 훈련이라고 고생스럽게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호사스런 훈련과정이 있으면 거지같은 훈련도 있는 법이니깐!
(전국의 거지 여러분, 오해 마시라. 거지란 극기의 의미를 말함입니다.)
이번 주도 한국산악회에서 동계반에 지대한 관심을 갖으시고 여러분이 오셨다.
예습도 할 겸, 접대도 할 겸해서 청평의 그 괴기덩이를 풀어 지지고 구웠다.
우 명숙님이 주경야독하며 취득한 요리사 자격증을 실습한다.
좌우지간 비빔밥이 입맛을 돋구더니 얼큰 담백한 오징어 무국이
그날 저녁의 하이라이트였다.
옆에서 전 지협님(11기)와 정 은기님(일반)은 조수로 다음날까지
설거지며 허드렛일을 도왔다.
김 영범님(6기)의 아주 맛있는 오겹살이 떨어질 무렵
2층의 너른 방에서 동계5기 훈련생을 위한 이론교육이 시작 되었다.
빙벽등반 장비들의 사용법과 각 부분의 명칭 또는 그렇게 만든 이유에
대한 강의와 많은 질문이 오갔다.
정 민영강사님과 유 학재과정장님의 강의로 왜 아이스 툴은
그렇게 생겼는가를 어슴프레 알게 되었다.
나는 장비에 대해 관심이 많다.
왜냐구? 요령피우기 좋아하니깐!
뭔 야그냐면, 예를 들어
바일은 찍는 것만이 아니라 걸기도 하고 매달리기도 하고
비틀기도 하고 때려 박기도 하고 심지어 미운 놈 뚜드려 팰 때도
아주 유용하게 만든 것이란 야그다.
그리고 그것은 빙벽등반 모험가들이 많은 희생과 노력의 결과로
만들어진 거란 거다.
Jeff Lowe도 그 중의 한 분이고. 그 날 우리 앞에 서서 가르침을 준
Trango사 사장님도 그렇다.
못믿겠으면 www.trango.co.kr 가서 확인해 보시라.
여러분들이 들고 있는 그것이 어찌 만들어져 있는가를!
가격표만 보지 마시고(뭐, 젤 싸더라!).
그리고 그러한 장비설명을 5주차 설악산 집중훈련 때 응용해 봤는데
진짜더라!
이 외에 많은 장비에 대해서 질의 응답이 있었는데 궁금하시면
6기 동계반에 들어오시면 5기보다 더욱 발전된 장비에 대해 아시게 될 겁니다.
지금도 정 민영강사님은 밤을 밝히며 금형제작비 산출에 골몰하고 있을테니깐.
이론교육 후 복습도 겸해서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김 근생강사님의 후사 민태군이 아주 신나게 좌중을 휘젓고 있었다.
그 날 바깥 날씨가 제법 사나웠는데도 김 근생강사님과 함께
지원오신 일행분들은 펜션옆 오막살이 천장 아래서 노숙을 하였다.
훈련생들은 허리가 쭉 펴지도록 끓는 구들장에서 허리를 지지고 있을 때,
민태군 마저도 아래층 화장실옆 조그만 공간에서 대자로 잠자고 있었다.
강사님, 지원 오신 선배들이 상전이 아니라 훈련생들이 상전이었다.
적당한 아침 시간에 일어나 명숙누이와 도희누이가 차려내 온
조반으로 든든히 챙겨 먹고 훈련빙장으로 향한다.
빙장 아래 서서 올려다본 빙벽은 온통 한국산악회 동계반 5기를 위한
여러분의 노고와 정성으로 뭉쳐져 있었다.
한국산악회 이사이고 동문이신 한 영길님의 땀방울과
겨우내, 교육기간 내내 상주하며 관리하신 양 병옥님(10기),
이 영준강사님 및 한국산악회 기술위원회 여러분의 결실이 그대로
빛나고 있었다.
저들의 땀방울에 우리 동계 5기 훈련생들은 땀땀이 내리꽂는 피크마다
포인트마다 님들의 노고를 깊이 간직하리라!
첫 주에 이어 둘째 주의 주요 교육내용은 빙벽에서의 삼지점자세,
균형감각 훈련과 프론트 포인팅 자세 훈련이었다.
4개 루트를 강사님들이 설치하고 유 과정장님의 시범등반이 있었는데
전혀 예상 밖의 등반시범을 보여준다.
삐올레는 내리 찍는 것이 아니라 손목 스냅으로 살살 콕콕!
삐에는 딥따 갈기지 않고 톡톡, 폭폭하면서 슥슥삭삭 등반을 한다.
유 과정장님식의 빙벽등반을 보여주는 것이다.
굳이 따라 하지는 말지어다!라는 말씀과 함께 체중 이동과 손과 발의
올바른 사용이 체력안배에 중요하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시범하였다.
이어 간간이 강사님들의 시범등반과 함께 조별로 주어진 과제를
염두에 두고 훈련에 열중한다.
나도 예의 톡톡폭폭 슥슥삭삭식으로 등반을 하고자 했으나
높이가 내 키의 두배 쯤 오르니 바일에 온 힘이 들어가고
두 발은 허공에서 허우적 대는데 살살 콕콕의 바일로는 도무지
안심이 되질 않는다.
냅다 후려갈겨 박은 피크에 두 팔은 잔뜩 오그리고 펌핑은 오고
손가락 마디는 얼음장에 부닥쳐 얼얼한데 떨어지면 쪽 팔린다는 일념으로
두 팔로 온 몸을 끌어 올려 빙벽 중간쯤의 확보점까지 무사히 등반(?)했다.
이마에 땀이 흐르고 두 손에도 흥건하다. 팔뚝은 돌덩이가 되어 있었다.
조 유동강사님의 흐릿한 미소에 무엇이 잘못 되었는 지 금방알 수 있었다.
차라리 떨어지자!,
엉터리 자세로 오르느니 댓 번 떨어지면 의자현(義自見)하리리다.
옆 루트로 옮겨 바일 한자루만 허락 받고 본격적으로 프론트 포인팅과
바일은 균형잡기에만 열중하였다.
정말 댓 번을 떨어지니 의자현(義自見)이라
훗 워크에 어슴프레 느낌이 오기 시작했다.
그제사 동료들의 훈련모습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번 동계5기에는 이미 동계반을 마친 동문들이 여럿 있다.
그들은 생초짜인 나보다야 월등히 자세가 좋으나 강사님들의
등반 모습과는 뭔가 허전한 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모두들 실습과 도전과 수정작업을 하며 열심히 훈련한다.
천지는 온통 하얀 눈으로 덮이기 시작했고 쌓이는 눈만큼
우리들의 자세도 향상되어간다.
오후 훈련시간에는 빙폭 꼭대기까지 등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어느정도 프론트 포인팅에 감각을 느꼈으니깐 오전의 첫 등반처럼
두 팔에 펌핑나서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정환강사님의 '교육종료 10분 전!'
훈련생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에이, 1시간만 더 해요!!!'
휘둥그레지신 이 정환샘을 뒤에 두고
각 루트마다 훈련생들은 한 번이라도 더 교육루트를 오르고자
새치기 하는 훈련생도 있었다.
'진짜로 교육종료, 5분전!'
"아유, 5분만 더 해요! 네?'
... ...
이 날 홀로 커피 팔러 나오신 김 덕자님(9,10기)는 완전히 장사 망쳤다.
왜냐구?
커피 마실 시간이 어딨어!
그 시간 있으면 새치기하는 훈련생 잡느라고
두 눈들이 벌개서 줄서 있었는데...
나는 그날 세 번 올랐다. 확보점까지.
물론 새치기했지, 원래는 두 번인데. 헤헤헤.
어둑해져서야 교육훈련을 마쳤다.
교육루트 확보물 설치 회수하러 등반하시는 조 유동강사님을
내가 확보하게 되었다.
3번 루트 확보물을 회수하고 트래버스로 2번 루트로 이동해서
확보물을 회수하였다.
아래서 확보하는 나를 향해 '날아 갑니다!' 낮게 말하더니
내 몸이 휙하고 날아 바닥에 쓰러졌고 쓰러지는 중에 바라본 조 쌤은
펜들럼으로 간신히 간신히 우당탕하며 쓰러질 듯하다가 자세를 잡았다.
뭔가 잘못 됬음직한데 조 쌤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확보물 주렁이며 하강하였다.
뒤풀이가서 뱃겨 본 조쌤의 무릎 옆부위에 그런 상처가 나 있었다.
'괜찮으세요?( 이럴땐 이 말 밖에 달리 할 말이 없을까?)'
'괜찮아요! (괜찮기는 뭐가 괜찮겠냐, 이 눔아!)'
'뭐가 잘못 됐죠?'
'그 상황에서는 이렇게 하면 됩니다.!'
'아, 그렇군요, 다시는 그런 일이 되플이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정신없어 펜션에 벗어놓고 온 빙벽화와 헬멧을 최 종원님이 들이내민다.
'어? 그게 왜 거기 가 있냐?'
그래서 한 짝을 팔았다.
목이라도 축이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