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농업강국인 프랑스에서 농촌관광이 발전해 온 역사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후를 대비해 농가주택을 개량하는데 소요된 투자비를 회수도 할 겸, 충분하지 않은 연금소득을 보충도 할 겸해서 시작된 농가민박(지트- 국내에는 펜션으로 알려짐) 사업은 이미 1950년대부터 관광지 주변의 농촌지역에서 은퇴를 앞둔 농민이나 지역주민 사이에서 노후대비를 위한 활동으로 많은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나 프랑스 농촌관광이 농업활동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발전하게 된 것은 1980년대 초 이후이다. 국제농산물 시장이 공급과잉 국면에 들어서면서 프랑스는 물론 유럽각국에서는 농업정책의 후퇴가 예고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많은 농가들이 경영다각화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되고, 그러한 고민은 새로운 활동으로서 농업활동과 연계된 관광활동에참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 관광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농촌관광부문은 전체 관광매출의 20%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프랑스 관광산업의 GDP 점유비율이 7%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농촌관광 매출규모는 GDP의 1.4% 규모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농촌관광이 숙박과 외식은 물론 교육체험분야로 서비스의 다양화를 이루고, 동호회와 장애인등 특수계층을 상대로 한 관광활동으로까지 확대된 것은 어려운 경제적 환경 속에서도 새로운 대안적 시장을 창출하고, 이를 ‘농민의 것’으로 돌리려는 프랑스 농업계의 조직화 노력이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을 통해 농산물 시장을 조직화했듯이, 농가의 농촌관광 서비스 생산활동 또한 농업회의소를 통해 시장을 조직화하고 있다.
프랑스 농업계는 1988년 농가의 농촌관광활동을 ‘농업활동’으로 인정하는 법률적 지위를 얻는 데 성공한다. 이를 계기로 지방농촌지도기관인 농업회의소를 중심으로 농촌관광의 정체성 유지와 차별화된 서비스 개발을 위해 전담지도사를 두어 약 4천여 농가들을 9개 서비스 유형별로 지도하고 있다. 이밖에도 농촌지역의 은퇴농 또는 은퇴자들이 참여하고 있는 약 4만여 개에 이르는 농가민박사업(지트)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농촌민박 브랜드로 성장했으며, 이들의 활동이 농촌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만도 연간 10조원 규모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현재 프랑스 농촌관광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는 체험교육 분야이다. 관광활동을 너머, 교육활동으로서 전국의 1200여 체험교육 농가들은 프로그램 개발과 학교교육과의 연계에 주력하고 있다.
사례 # 1 : “상업적 가능성보다는 열정이 필요한 활동” - 중농의 리그노씨 부부
프랑스 파리근교의 밀 곡창지대에서 중농규모의 농사를 짓고 있는 리그노(Ligneau)씨는 최근 들어 아내인 이사벨(Isabelle)이 한산하기만한 농촌마을에서 새로운 일거리로 나날이 분주해지고 있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30여 헥타르의 초지에서 비육우를 사육하고, 사료작물과 밀 생산을 위해 각각 30 헥타르의 농지를 관리하기에는 부부노동력만으로는 빠듯한 형편이어서, 아내가 체험교육 분야의 농촌관광 활동에 나서는 것에 대해 리그노씨는 처음에는 의아스러움과 함께 부담스러움을 감추지 않았었다.
체험교육 활동을 시작한 초기에는 부모를 동반한 어린이들이 5-6 명 정도의 소규모 그룹으로 간헐적으로 농장을 방문했으나, 해를 거듭할수록 그룹의 규모와 방문횟수가 늘어나면서, 현재에는 20-25명 규모의 유치원 또는 초등학교 학급 단위의 학생들이 농장을 방문하고 있다. 이처럼 방문객이 늘어나자 리그노씨는 아내가 농업체험프로그램을 전담해 운영하는 것에 동의하기에 이르렀고, 약간의 투자를 통해 말 사육을 위한 축사를 개조해 체험장을 마련했다. 30평 규모의 체험장에는 화장실, 세면장, 조명시설, 교재, 체험도구 등을 갖추었다.
체험교육은 부모들과 교사들이 함께하는 가운데 어린이들에게 가장 익숙한 것을 소재로 시작된다. 빵의 원료인 밀을 갖고 곡물과 축산과의 관계를 이야기하면서 가축과 인간의 관계에 이어 궁극적으로는 어린이 자신의 일상과 농업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이해시킨다. 농장체험은 반나절 또는 한나절 단위로 진행되며, 반나절의 경우 어린이당 3유로(우리 돈으로 약 4500원), 한나절의 경우에는 6유로 정도의 체험비가 부과된다.
리그노씨 부부는 현재의 교육체험활동이 상업적 투자를 고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조만간 그럴 필요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전망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몇 년 전 광우병 사태로 농업이 위기에 몰리면서 농업에 대한 사회적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뭔가 해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이 활동에 참여하게 됐다는 리그노씨 부부는 농촌관광이 상업적 측면에서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현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들 부부에게 아직까지 농촌관광활동은 무엇보다도 농업과 사회간의 새로운 접촉방식이며, 농촌관광을 계기로 농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는 문제에 보다 큰 관심을 두고 있다. 그만큼 이들 부부에게 농촌관광은 상업적 노력보다는 열정이 요구되는 일이다.
사례 # 2 : “지역사회와 보다 튼튼한 연대를” - 오똥마을
파리 근교의 곡창지대에 섬처럼 떠있는 오똥(Le Tilleul Othon) 마을은 거주인구가 채 300 명이 안 되는 작은 농촌마을이다. 부락인구보다 200 배나 많은 방문객들이 연간 이 마을을 찾는 이유는 ‘아꿰이으 뻬이장(Acceuil Paysan)'이라는 마크가 걸려있는 체험농가가 있기 때문이다. ‘농민적인 접대‘라는 뜻을 가진 마크가 의미하는 데로 이 농가의 농촌관광 활동은 방문하는 사람들을 재우거나 대접하는 등의 일반적 의미의 접객활동과는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도 농업적 정체성이 강하게 느껴지는 활동이다.
농장규모 확대를 통해 시장경쟁력을 높여나가기 보다는 다른 활동들을 농업활동에 결합함으로써 지역사회와 시장의 변화에 적응하는 것을 경영철학으로 실천해 온 이 농장은 1981년도에 처음으로 농업체험학습을 위해 농장을 개방한 이래, 1986년부터는 포니클럽에 이어 말사육과 함께 승마교육을 행하고 있다. 농장은 장인이, 포니클럽은 첫째 사위 부부가, 승마교육은 둘째 사위 부부가 담당하고 있어, 3대가 함께 농업과 농촌 체험활동을 공동으로 하고 있다.
아꿰이으 뻬이장의 주된 활동은 어린이들을 위한 농업과 자연, 환경 체험학습이다. 인근 도시 지역의 유치원과 초등학교 선생님들과 함께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개발해 어린이들에게 다양한 농촌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체험프로그램은 한 나절에서부터 몇 주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어린이들을 위한 체험학습에서 가장 중요한 컨셉은 ‘시골스러움’과 ‘자연’이다. 아꿰이으 뻬이장은 농장을 체험시설로 개조하면서, 무엇보다도 건축공간이 농촌스러움을 최대한 유지하도록 개보수 했다. 축사를 개조해 단체급식시설을 만들거나, 학습장을 만들 경우에도 가급적 목재로 구성된 오래된 뼈대는 그대로 유지한 채 나머지 부분을 현대적 시설로 교체했다. 어린이들이 먹는 음식은 이 곳 마을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최대한 이용하되, 최소한의 것만을 외부에서 구입해 마련하고 있다.
보통 체험프로그램은 1주 또는 2주전에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선생님들과 상의해서 만들어진다. 농장과 마을이 제공할 수 있는 체험거리와 체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육효과와 즐거움이 운영자와 선생님들 사이에서 깊이 있게 논의된다. 이밖에도 어린이들의 안전문제가 중요하게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