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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여인 아비가일
사무엘상 25:18~31
성경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신앙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 하나님께 반응하시는 인물들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역사 속에 드러나는 여러 행동과 말 속에서 우리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신앙과 지혜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모든 일들은 후세의 우리들에게 본이 되고 격려와 경계의 지침이 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아비가일이라는 여인은 몇 가지 점에서 우리가 본받을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아비가일은 총명하고 아름다운 용모를 가진 여자였습니다. 아마도 이 여인은 깊은 신앙을 가진 가정에서 자라난 것이 분명합니다. 이 여인은 그 아름다움과 총명함 때문에 당시 마온에 살면서 갈멜에서 양이 삼천 마리, 염소가 천마리나 되는 대규모 목축업을 하고 있는 큰 부자 나발에게 시집오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결혼 풍습은 야곱이 라헬과 결혼하려고 했을 때 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7년을 무일푼 봉사를 한 것처럼, 일정한 재물을 처녀 집에 드려야 데려올 수 있었습니다. 마온 사람 나발은 큰 부자 집이어서 이 좋은 규수를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마온 사람 나발은 무척 완고하고 자만심이 많고 표독스러운 성품의 소유자였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고 자기 재산이 많은 것을 믿고서 늘 사람들에게 안하무인으로 행동했습니다. 그의 종들은 그 주인의 성품을 잘 알았기 때문에, 늘 주인 밑에서 일하기가 고통스러웠습니다. 심지어 종들은 주인을 ‘불량자’라서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고 외면할 정도였습니다. ‘불량한 자’라는 단어는 ‘벨리알의 아들’이라는 단어로서, ‘마귀에게 속한 자’, 이미 ‘인격적으로 구제불능’이라는 뜻입니다. 참으로 이러한 불량자 나발 같은 사람에게 그 많은 재산도 어울리지 않고, 아름답고 총명한 아내도 전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아비가일의 집에 몹시 바쁘고 기쁜 일이 생겼습니다. 그 일은 바로 양털을 깎는 일이었습니다. 양은 그 고기보다 우유와 양털을 얻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습니다. 양털은 당시 옷감의 주원료였습니다. 그래서 여호사밧 왕 때 모압 왕 메사는 양을 치는 자로서 이스라엘 여호사밧에게 조공을 바치는 내용이 ‘새끼 양 십만 마리의 털과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을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양털을 깎는 날은 마치 농부가 한 해 농사를 지어서 탈곡하는 날처럼 큰 즐거움이 있는 잔칫날이었습니다. 그렇게 양털을 깎는 분주한 중에, 집에 있는 아비가일도 여종들을 이끌고 잔치 음식 장만으로 매우 바쁘게 움직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 양털 깎는 현장인 갈멜 목장에 다윗의 부하 열 명이 찾아왔습니다. 당시 다윗은 6백명의 부하를 이끌고 바란 광야 이곳 저곳을 떠돌며 사울 왕의 추격을 피하여 도망다닐 때였습니다. 다윗은 이제 혼자만 도망치던 사람이 아니었고, 그를 믿고 찾아온 용맹스런 부하들이 6백명이나 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먹거리를 챙겨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존심이 좀 상하긴 하지만 그는 잔칫날에 자기 부하 열 명을 보내어 먹거리를 좀 달라고 청했습니다. 이는 충분히 구할 이유가 있었던 것은 다윗의 부하들이 갈멜에서 양을 치는 나발의 목동들을 해치지 않고 도리어 산적들이나 불량배들이 양치는 일을 방해하지 않도록 보호해주었습니다. 이렇게 한 까닭은 다윗이 다윗의 부하들에게 명하기를, 백성들의 보호자 역할을 해야지, 백성들을 괴롭히는 산적과 같은 악행을 해서는 안된다고 당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발의 양털 깎는 날 다윗의 부하들이 찾아와 잔칫날 준비한 음식들과 양고기 등을 좀 가져가서 함께 먹을 수 있도록 은혜를 구했습니다. 청할 때에도 다윗은 그 부하들을 통하여 나발에게 겸손하게 구하였으니, 8절 말씀에 보면, “우리가 좋은 날에 왔은즉 네 손에 있는 대로 네 종들과 네 아들 다윗에게 주기를 원하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전해 들은 나발은 다윗의 보낸 사환들에게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 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고 말하면서 거절했습니다. 이 말은 다윗의 사람들이 주인에게서 도망친 종들의 패거리라는 모욕입니다. 다윗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인정하지 않는 말이요 자기의 귀중한 고기를 어디서 왔는지 근본도 없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주겠느냐는 모욕적인 대답이었던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돌아온 다윗의 부하들이 다윗에게 보고 들은 말들을 전하자, 다윗은 분노하였습니다. 다윗은 부하 중 400명에게 “각기 칼을 차라”고 하면서, 자기도 칼을 차고 나발의 집으로, 그리고 나발의 생업이 있는 갈멜의 목장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이는 그 집에 있는 모든 남자들은 다 칼로 죽여 이 모욕을 당한 일에 대한 보복을 하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 나발은 자기가 행한 언행으로 다윗이 이렇게 분노하여 칼을 차고 달려오는 것도 전혀 모릅니다. 나발은 지금 양털을 많이 깎아서 그 일로 돈을 많이 벌 기대감을 갖고 양털 깎는 일에만 골몰할 뿐이요 기뻐서 준비한 음식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즐겁게 흥겹게 먹고 마실 일에만 신경쓸 따름이었습니다. 참으로 미련하고 둔한 자입니다.
그러나 종들 중 한 사람은 그 진행된 일을 지켜보면서, 앞으로 이 일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불보듯 예상하는 한 총명한 종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윗의 부하들이 들판에서 있을 때에 자기들을 선대했던 일과 자기들을 지켜준 일들이 늘 고맙게 느끼고 감사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인 나발이 자기들의 말을 전혀 들어보지도 않고 다윗의 부하들을 모욕을 하고 내쫓아버리니, 주인을 설득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주인을 설득하려고 해도 주인이 전혀 말을 들어줄 사람이 아님을 잘 알았습니다. 나발은 완고한 사람이요 남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 고집 센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이 지혜로운 종은 주인 나발 대신에 여주인 아비가일을 급하게 찾아왔습니다.
무슨 일이냐 묻자, 그 종은 “주인마님, 다윗이 우리 바깥주인에게 문안하려 광야에서 전령을 보냈거늘 주인이 그들을 모욕했습니다. 우리가 들에 있을 때 그 사람들과 교제하는 동안 그 사람들이 우리를 매우 선대했으므로 우리가 다치거나 잃은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양을 지키는 동안에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어 밤낮 우리의 담이 되어 주니, 다른 산적패들이 우리를 해치거나 양들을 빼앗아갈 수 없어서 안전했습니다. 그렇게 고마운 사람들인데, 주인님이 오늘 그들과 다윗을 향하여 무시하고 모욕을 안겨주었으니, 이제 주인마님은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알아서 생각해야 하실 것입니다. 다윗 그분은 분명 우리 주인님과 주인님의 온 집을 해치기로 결정할 것이 분명합니다. 바깥주인님은 불량자라서 어떤 말을 해도 듣지 않으니, 알아서 하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비가일은 이 종의 말을 듣자, 다급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이 때부터 아비가일의 지혜와 신앙이 온전히 빛을 발하게 됩니다. 아비가일의 행동과 그가 다윗 앞에 행한 고백을 보면, 그녀의 탁월한 지혜와 깊은 신앙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첫째, 아비가일은 위급 상황에서 급하게 대처하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둘째, 아비가일은 다윗에게 지혜롭게 자기의 말을 아뢸 기회를 잡았습니다. 셋째, 아비가일은 다윗의 왕이 될 미래를 확실하게 믿는 신앙의 고백을 합니다. 넷째, 아비가일은 자기의 허물을 인정하며 다윗에게 실수하지 않도록 지혜롭게 조언합니다. 다섯째, 아비가일은 다윗에 대한 진정한 존경과 사랑을 담은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녀는 다윗을 향하여 ‘내 주여’라고 25번이나 부르고 있음으로써, 자기가 다윗을 얼마나 존중하고 사랑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아비가일의 고백은 당시 민중들에게서 받았던 가장 큰 존경과 사랑과 축복과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당시 몹시 불안하고 불안정한 삶 속에서 지냈으나, 이 아비가일의 말과 축복을 통하여 큰 용기를 얻고 기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축복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당시 험악한 세월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다윗은 힘들고 외로운 마음을 가졌으나, 처음보는 한 여인으로부터 이렇게 지혜롭고 진심어린 신뢰와 존경과 사랑과 복된 미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증거하는 말을 들으니, 크나큰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비가일의 선물을 받으며 아비가일의 말을 들으면서, 모욕을 당해서 격분해서 끓어올랐던 다윗의 분노감, 나발의 집의 모든 남자들을 다 칼로 죽이리라는 다윗의 복수심이 어느틈엔가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오직 남는 것은 아비가일의 그 현숙하고 총명한 처신과 지혜로운 말, 따뜻한 격려와 존경을 담은 말과 위로와 소망만이 마음에 남아 있었습니다.
다윗은 아바가일을 향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하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라도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오늘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복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 나를 막아 너를 해하지 않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급히 와서 나를 영접하지 아니하였더면 밝는 아침에는 과연 나발에게 한 남자도 남겨두지 아니하였으리라”
그리고 아비가일이 또 가지온 것들을 공손히 드리자, 다윗이 그 손으로 받고서 “네 집으로 평안히 올라가라 내가 네 말을 듣고 네 청을 허락하노라”고 대답했습니다.
폭풍이 무사히 지나갔습니다. 비명과 피비린내와 곡성이 가득할 뻔한 마온의 집안에 아비가일이 돌아와보니, 나발은 왕이나 벌일 듯한 커다란 잔치를 벌여놓고 대취해서 마음에 기뻐하였습니다. 그런 나발을 보면서 아비가일은 어떻게 처신하였습니까? 아침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비가일의 지혜 중 하나는 말을 할 때와 하지 않을 때를 가린다는 것입니다. 행동을 먼저 해야 할 때가 있고, 말을 나중에 해야 할 때가 있는데, 아비가일은 급하게 행동할 때는 급하게 행동합니다. 그리고 다윗 앞에서 말을 할 때는 진실하고 정중하게 지혜롭게 말을 해서 살인의 격분에 사로잡힌 사람의 마음도 가라앉게 합니다. 지금 또 남편 나발에게 말을 해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을 알기에, 그녀는 다음날 술이 깰 때까지 잠잠합니다. 그 다음날 밝은 아침에 나발에게 포도주가 다 깬 다음에 말을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나발은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몸이 돌과 같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큰 충격을 받으면, 온 신경이 마비되어 꼼짝하지 못하게 됩니다. 자기가 얼마나 무지하게 말을 했는지, 자기 행동이 얼마나 상대방에게 자극이 되었는지, 그래서 얼마나 무서운 재앙을 불러왔었는지, 아내 아비가일이 없었더라면 자기와 자기 집에 어떤 재난이 닥쳤을지 생각하니 큰 충격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열흘 후에 결국 죽고 맙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치셨기 때문에 죽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발이 자기가 돈이 있다고 안하무인이 되어서, 하나님의 기름부음받은 자를 우습게 여겼고 조롱하고 모욕했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께서 그를 직접 치셨기 때문에, 다윗이 직접 손을 대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은 자를 모욕하는 것, 대적하는 것이 이처럼 두려운 일인 것입니다.
다윗도 나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하나님을 찬양하며, “나발에게 당한 나의 모욕을 갚아주사 종으로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나발의 악행을 그의 머리에 돌리셨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다윗이 비록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행동과 말로 인하여 보복을 그만두었지만, 여전히 그가 나발의 모욕적인 말을 인하여 몹시 마음이 상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비록 당시 도망자 신세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산적 두목과 같은 초라한 처지였을지라도, 신앙의 관점에서 볼 때 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름부은 받은 이스라엘 목자,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모욕과 멸시는 그를 기름부으신 하나님께 대한 모독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 질서, 그것이 거룩한 영적 권위이든, 세상에서 세워진 세속의 권위이건 간에 함부로 욕하고 모독하는 일들은 피해야 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든 권세가 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행동이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죽고 과부가 된 아비가일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지혜로운 아내를 얻으면 자신에게 큰 용기와 힘이 될 줄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전령들을 또 다시 아비가일의 집에 보냅니다. 이번에는 양고기와 음식을 좀 달라는 부탁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랬다면 아비가일은 지난 번보다 곱절은 더 보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온 전령의 말은 뜻밖의 것이었습니다.
아비가일은 이렇게 전령에게 대답했습니다.
“내 주의 여종은 내 주의 전령들의 발 씻길 종이니이다”
그리고 아비가일은 급히 일어나 나귀를 타고 바로 전령들을 따라 나섭니다. 아비가일은 지금 큰 부자의 마나님입니다. 많은 종들도 있습니다. 그녀에게 평안하고 안락한 미래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다윗에게 시집가는 것은 앞날에 고생이 가득한 불안한 삶을 택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부하들을 위하여 밥짓고 설거지하고 빨래하며 어디로 갈 지 모르는 떠돌이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비가일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다윗과 그의 나라를 위하여 한 몸을 바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라나선 것입니다. 참으로 이 여인의 선택은 아름답고 복된 선택입니다. 그러므로 이 여인의 헌신이 수천년이 지나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서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녀의 이러한 희생과 사랑을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주님의 신부인 교회를 향하여 우리가 드려야 할 본보기입니다. 할렐루야.
아비가일의 지혜가 엿보이는 대목은 그의 후년에도 나타납니다. 훗날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처신을 알 수 있는 대목은 왕자의 난이 일어났을 때 아비가일의 아들은 화를 피한 점입니다. 아비가일은 길르압이라는 다윗의 둘째 아들을 낳습니다.
사무엘하 3:2~4, 다윗이 헤브론에서 아들들을 낳았으되 맏아들은 암논이라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의 소생이요 둘째는 길르압이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의 소생이요 셋째는 압살롬이라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의 아들이요 넷째는 아도니야라 학깃의 아들이요
다윗의 아들들은 배다른 형제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형제들끼리 서로 경쟁심이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연히 서로 죽이는 일이 생겼습니다.
다윗의 큰 아들 암논은 황태자의 자리에 있었지만 그가 불의한 악을 범하여 자기 이복동생 압살롬의 여동생 다말을 사랑하였으나 악을 범하고 몹시 수치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이 일로 그 오빠 압살롬이 형 암논에 대하여 원한을 품고 양털깎는 잔치를 벌여놓고 술을 먹인 후에 자기 하인들을 시켜서 칼로 그 자리에 참석한 암논을 죽입니다. 그리고 압살롬은 외갓집 그술에 피신했다가 다윗 왕이 용서를 받고 자기가 왕이 될 야망을 품고 나중에 반역하여 큰 난을 일으킵니다. 일로 나라가 큰 전란을 겪은 후에 다윗은 후계자를 어린 솔로몬에게 줄 것을 마음에 품고 아내 밧세바에게 맹세까지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말년에 넷째 아들 아도니야가 이러한 다윗의 심중과 상관없이 스스로 왕이 되려고 사람들을 포섭해서 왕위에 오를 계획을 세우고 잔치를 벌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솔로몬을 왕위에 세우는 원래 품은 뜻대로 그 날 갑작스럽지만 솔로몬의 왕위즉위식을 선포합니다. 넷째 아들 아도니야는 그 날 용서를 받았지만 나중에 욕심을 버리지 못하다가 결국 솔로몬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와중에 아비가일의 아들 길르압은 왕자의 난에서 화를 면합니다. 당연히 암논이 죽고 난 후에 차기 왕권 계승자의 최우선권을 가졌지만, 그는 어머니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권고를 따라 일체 왕권에 대한 욕심을 내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미 아비가일은 남편 다윗이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줄 것이라고 맹세했음을 알았고, 하나님의 뜻이 솔로몬에게 왕위가 계승되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그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던 아비가일은 무서운 왕자의 난 중에서 자기 아들의 목숨을 끝까지 잘 지켜냈던 것입니다.
참으로 아비가일은 남편 나발의 무엄하고 무지한 모욕적인 말로 인하여 닥칠 집안의 무서운 참극을 지혜롭게 처신해서 잘 막아낸 지혜로운 여인입니다. 아비가일같이 집안의 위기와 시련을 지혜롭게 막아내는 은혜가 있기 바랍니다.
또한 아비가일은 고난을 겪고 몹시 격분한 다윗을 만나 지혜롭게 말하여 그 격분을 가라앉게 만드는 침착하고 차분하고 겸손한 언변을 가졌습니다.
또한 아비가일은 다윗의 현재의 상태만 보지 않고 미래의 복된 이스라엘의 목자의 신분에 오를 것을 확실히 믿고 그러한 미래에 대한 소망을 피력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단지 떠돌이 산적 패로만 보지 않고 장차 위대한 왕으로 그를 본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진심으로 믿었던 증거입니다.
아비가일은 참으로 섬김의 여인입니다. 평안하고 모든 것이 구비된 큰 부자의 여주인으로 남은 생애를 안락하게 살 수 있었던 그녀는 모든 것을 버리고 다윗의 산채에 들어와 다윗의 부하들의 발을 씻고 밥을 해주며 빨래하며 고생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믿음과 더불어 아름다운 희생과 섬김의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아비가일은 하나님의 뜻에 언제나 순종할 줄 알고, 야망과 욕심을 품지 않았기에 그 아들 길르압의 생명과 평안을 끝까지 잘 지켜냈습니다.
다윗은 우리 주님을 상징하고, 아비가일은 지혜로운 성도를 상징합니다. 우리 모두 아비가일처럼 우리 주님과 교회를 지혜롭게 잘 섬깁시다. 한평생 발 씻기는 삶을 살고자 헌신했던 지혜로운 아비가일이 왕비의 영광을 훗날 누린 것처럼 우리 모두 주님을 위하여 고생하기를 힘씁시다. 그리하여 장차 주님 나라에서 아름다운 면류관을 쓰고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주님의 복된 신부로서 참여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