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는 수많은 자지영역을 가진 연방국가였다. 백제엔 22담로가 있었다.
담로는 백제의 자치기구를 뜻하며 당시의 발음으론 다물(담울;담은 달처럼 둥글다는 뜻이며 울은 울타리를 뜻한다) 또는 '다라'라 불렀다
백제의 영토가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
우리의 역사책과 기억 속에서 왜소하고 약소한 국가로만 기억된 백제의 영토를 찾는다는 것은 무언가 새로운 기분이다.
동방의 로마제국이라고 표현된 백제를 왜 그토록 왜소한 나라로, 또 의자왕과 삼천궁녀로만 대변되는 나라로 인식하고 있을까?
백제의 영토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백제의 담로제를 이해하는 것이다. 백제인들의 독특한 지배양식인 담로를 정확히 이해하여야만 백제를 왜소한 패망국으로부터 광대한 영토를 지녔던 대제국으로 기억할 것이다.
담로가 무엇인지 잠시 살펴보자. 삼국사기 백제본기 어디를 읽어봐도 담로란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담로란 지명이 태평양에서 인도양까지 해안을 중심으로 퍼져있는 것을 볼 때, 절대 가공의 이름이 아니며, 수 백년 이상 존재했음이 확실하다.

거기에 5세기의 백제사신이 중국에 가서 지방 통치제도인 담로를 설명하고 있다. 담로제는 백제가 영역을 넓혀감에 따라, 점령한 지역에 자국민을 이주시킨 후, 왕족을 담로왕으로 삼아 다스리게 한 지방 통치제도의 일종이다. 이 통치제도는 담로국이 다시 담로국을 만들어 가는 형태로 퍼져나간 것으로 추정되는데, 토착민의 자치를 어느 정도 보장하는 지방 분권적인 정치제도로서, 강력한 독재나 중앙집권과는 관계가 멀다. 이 제도는 백제가 삼국 중 가장 빠르게,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게 되는 원동력이 되었지만, 고구려나 신라처럼 강력한 왕권이 존재하는 곳은 설치하기가 어렵다.
담로제는 백제가 광개토왕과 장수왕의 공격에서도 망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이며, 동시에 백제가 삼국을 통일할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6세기 이후 백제가 중앙집권화에 나서 담로제가 사라지지만, 그 결과 나당 연합군에 망하고 만다.
일본은 백제의 속국이었다.
두 말 하면 입 아프다.
위에서 살펴 본 데로, 담로는 고구려의 다물(多勿)과 같은 어원에서 나왔으며, 거점 또는 분국(分國)이라는 뜻으로, 요즈음에 식민지와 비슷한 성격의 것이다. 각 담로는 백제의 왕족이 통치했으며, 이들 왕실사이에서는 빈번한 혼인 관계가 이루어졌다. 한 가지 흥미있는 사실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고사기>>에 보면 일본열도를 만든 창조신이 맨 처음 만든 것이 바로 이와지섬(談路島)이라고 쓰여 있다. 아마도 처음 담로(談路)를 설치한 사실을 근거 삼아 이런 신화를 만들었을 것이다.
이러한 담로를 추적해 가면 백제 사람들이 한국의 서해안, 남해안, 그리고 제주도 등을 거쳐 일본 규슈에 건너가 다마나를 거점으로 동쪽으로 진행하여 일본 이와지 섬으로 가고, 다음으로 야마토, 즉 대왜(大倭:大和)로 본거지를 옮겨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그 후 AD 4세기 초 고대 일본 국가가 건설되고 백제계(百濟系)의 고대 국가가 건설된다.
실제로 확인되는 최초의 천황은 응신(應神)인데, 여기서 응(應)은 웅(熊)과 같으며, 백제의 웅진(熊津)과도 깊은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일본에 처음으로 통일국가를 형성한 왕가는 백제계이며 곰나루 출신이었다.
<<일본서기>>에는 일본 왕가 조상의 무덤이 구마나리(久麻那利)에 있었음을 명기하고 있다.구마나리는 '곰나루', 즉 지금의 공주인 웅진(熊津)으로, 5세기 전후 일본의 통일국가를 건설한 오진(應[熊]神)왕은 곰나루 지역에서 건너간 것으로 믿어도 될 것이다
좀더 보충하여, 사기(史記) 오제기(五帝記)에 보면,
백제(百濟)는 동남아의 큰섬 15군데나 속국으로 가지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특히 사기 본문에서는 왜국(倭國)이 큰섬에 있었으며, 대만, 미얀마, 태국은 물론 필립핀, 보루네오, 자바 등이다, 호주를 제외한 아세아의 큰 섬들은 모두가 백제의 제후국이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 중에서 중요한 것은 왜국이 있었는데 왜국(倭國)도 백제의 속국이었으며, 벡제는 당(唐)나라 때 왜국을 일본(日本)이라 고쳤다고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정말중요한 역사이다. 그들이 죽자살자 외치는 일본, 니폰 이라는 말이 우리의 백제왕족이 하사하여준 명칭이라고 생각하면 그 얼마나 통쾌하고 즐거운 일인가, 그 뿐만 아니다. 백제(百濟)는 해상국가를 포함해 백나라(百國)가 넘는 적은 나라 즉 소국(小國)인 제후국을 갖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출처: http://blog.naver.com/knightblack/10003620027

백제 22담로의 비밀
고대국가시기에는 영토의 크기로 강대국임을 알 수 있었다. 백제는 약소국이 아니었다.
놀라운 해상능력의 바탕으로 동아시아 국제무대로 누비는 강대국이었다. 그 열쇠가 바로 담로(22담로)이다.
중국 사서(양서)에는 왕족을 파견하여 지방을 통치 백제 고유의 담로제가 있었다고 한다. 이 기록에 백제 왕성을 "고마"라고
하여 22개의 담로에 왕의 왕족에 의해 다스리게 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담로.. 백제 멸명후 왕족들의 마지막 피난처, 담로의 어원은 고구려에서는 빼앗은 점령지를 담월이라 했고 백제는 다물-담라-
담로(담은 경계,로는 나라) 새로 개척해서 자신의 것으로 함을 뜻한다.
곰은 백제의 상징이다.
일본의 구마모토 즉 구마,고마(곰)-즉 백제의 왕성임을 가리킨다. 또한 TAMANA(다마나)-담나,탐나와 같은 개열의 소리이다.
일본 구마리 구마가와의 상류에 사카모도촌(구마모토현)이라는 곳이있는데 1961년 이전에는 구다라기 라고 불렸다.
학교의 이름이 구다라기 초등학교라고 불리웠다. 또한 고문서에 의하면 백제의 달솔(지금의 장관)이 와서 통치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또한 일본에 남아있는 많은 고대 고분들이 백제의 무덤양식은 물론. 출토유물까지도 일치함을 알 수 있다.
백제의 22담로 일본뿐만 아니라 많은 중국대륙에 남아있는 백제의 흔적들을 볼수가 있다.
흑치상지 백제의 왕족으로 백제 부흥운동을 주도한 인물인 그는 원래는 부여씨였으나 흑치라는 지역에 봉해져 자손들이 흑치
라는 성을 따라 쓰게 되었다. (흑치- 이상한 열매를 먹어서 이 빨이 검었기 때문에 흑치국으로 불렸다고 함)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보면 일본에서 바다로 4천리를 가면 흑치국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들로 추정해 본 결과, 중국
양자경 일대라고 생각되어진다. 지금의 필리핀, 인도네시아 지역이다.
또한 일본서기에는 백제의 부남(지금의 캄보디아 지방)으로 노예를 보냈다(565년) 라고 기록되어 있다.

백제22담로 이렇듯 백제는 한반도의 작은 약소국이 아니었다. 대륙의 광활한 영토를 가진 거대한 나라 백제인 것이다.
※아직까지는 그저 추정에 불과한 여러 백제의 흔적들을 보다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거대한 나라 백제를
다시 만날수 있는 날을 기다려 본다.
.......................펀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