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1975김성중2009개그맨
「개그맨(2009)」
김성중(1975-), in 2010 제1회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 2010, 문학동네, pp. 269-289 (P.325).
김성중이란 작가를 이름만으로는 남성인줄 알았네. 여기서 ‘나와 개그맨의 어떤 만남은 삶에서 한번쯤은 거치는 작은 사건 정도이다. 이 사건은 국내에서 개그민이 살아있을 때 만남이고 다른 한번은 개그맨이 먼 타국에서 죽고 난 뒤에 그의 삶의 흔적과 만남이다. 이 두 우발적 사건에서, 한 인간으로서 개그맨을 대하기란 쉽지 않다.
화자인 ‘나“가 정태적 삶에서 어항 속에서 살아왔다면, 어항 밖의 삶은 산 개그맨은 결이 다르다. 개그맨은 국내에서는 이 익숙한 사회 속에 있으면서도 사회 밖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상연의 재현을 실행했다. 그런데 먼 타국에서는 말도 통하지 않고 살아온 방식도 달라 그 사회 속에 속하지 않지만 그 사회의 구성원인 것처럼 재현하면서 살아갔다. 한번은 무대 밖에 있어도 이해하는 부류들이 있었고, 다른 한번은 무대 안에 있어도 이해하는 부류들이 드물 수밖에 없다.
사키야족의 현자 무니, 즉 고다마 싯달다에게 알려진 설화로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을 태어나서 사방을 걸으면서 설했다고들 한다. 이 말이 미래를 살아가면서 혼자서 득도할 것이라고 설명하든, 삶에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 점수돈오(漸修頓悟) 또는 돈오점수(頓悟漸修)이든 간에 깨닫는 것은 홀로서 깨닫는다고 설명하든, 누구든 살아봐라 그 삶에서 항상 함께 어울려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여진히 혼자야 라고 하든, 그리고 삶(une Vie)라는 것이 우여곡절을 겪고서 공동체 안에서 허우적 거리지만 그래도 자아는 역시 한 덩어리이지만 혼자야 라고 하든, 안과 밖에 관련짓지 않아도 삶의 총체적 과정이 혼자임을 알게되리라. 개그맨은 자신이 이중적 또는 이분화된 삶은 살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2권의 책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여긴다. 책은 한 권일 것이고, 그 장이 2장일 수도 있지만, 그에게서 책은 쪽을 넘길 때 마다, 삶의 길을 걸어갈 때마다 상연(재현)이었을 것이라고.
우리가 작가를 좀 더 안으로 이해한다면, 작가는 개그맨의 삶에서 니체가 말한 주사위 놀이의 두 경우의 수만을 보여주었을 뿐일 것이다. 개그맨의 삶에서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들이 있다는 것을 누가 부정하겠는가. (53P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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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맨(2009)」 267/269-289 김성중
김성중(1975-) 서울(여성),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에 단편소설 「내 의자를 돌려주세요」가 당선되어 등단. 소설집 개그맨(2011), 국경시장(2015), 이슬라(2018)를 출간했다. 2018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한 인간의 생애를 표현하는 방식에서, 여기 화자인 ‘나’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개그맨’의 생애는 책 두 권이라 한다. 화자가 개그맨을 만나서, 그가 국내에서 살아온 과정이 제1권이고, 우리나라를 떠나 먼 타국에서 지낸 과정이 제2권이리라. 그 개그맨의 1권의 앞에서 서장에 해당하는 권도 있을 것이고, 두 과정 사이에도 여러 권이 있을 것이다.
공자의 책은 여섯 장으로 되어 있다. 15세를 지학(志學), 30세를 이립(而立), 40세를 불혹(不惑), 50세를 지천명(知天命), 60세를 이순(耳順), 70세를 종심(從心)이다. [<논어(論語)>“위정(爲政)”편] 이 표현이 학문의 과정으로 보이지만, 생물학적으로 살아가는 신체의 능력의 과정으로 읽어도 무방할 것 같다. 이 삶을 거쳐 가는 데, 그의 몸이 받쳐 준 것이리라.
이 단편을 읽으면서 책이라는 표현에서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말라르메와 보르헤스이다. 둘 다, 들뢰즈가 자신의 사유에서 나온 “고른 평면”이란 개념을 설명하는 데 이용한다. 아직 쓰여지지 않은 내용으로 쓰여진 내용과 같은 것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의 전개를 할 수 있다. 공중에 뜬 주사위의 수가 무엇이든 간에,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있을 수 있는, 즉 결말나지 않은 이야기도 있을 수 있다. 말라르메가 ‘시’라고 하지 않고 ‘책’이라고 하고, 보르헤스가 ‘픽션(허구)’이라고 한다. 단편 소설이 있음직한 가상적 세상을 서술하고 있다들 하지만, 현존하는 세계의 고른 평면에서, 70억 인구 중에서, 어느 인성에서 어느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태들 중의 하나라고 느낄 수 있다. (53PLE)
* 내용 중에서 ********
내가 사랑하는 남자는 TV 안에 있다. 그는 개그맨이다. 그는 신중하게 공을 때리는 프로 당구선수처럼 말 사이의 타이밍을 노려 공기를 한 곳으로 얼어붙게 만드는 개그를 구사한다. 느린 말투에 느린 움직임, 한순간 던진 말로 주변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후 각자의 연상 끝에 터지는 폭소. 대중이 그의 개그를 좋아하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269)
사소한 수치심 하나까지도 깊숙이 간직하고 살아가는 나로서는 자신을 재료 삼아 대중과 줄다리기를 하는 그가 세상에서 가장 용감해 보였다. (273)
“난 웃을 수 없어서 웃기는 사람이 된 것 뿐이야. 우스운 얘기지?” / 수화기 너머로 똑똑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를 알고 있다.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을 때 갖고 다니는 볼펜의 꼭지를 누르는 소리다. (275)
마중 나온 키키는 여자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남자도 아니다. 샴페인색 머리와 페이즐리 문양의 원피스를 멀리서 볼 때까지도 나는 여자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각이 진 어깨나 툭 튀어나온 눈썹뼈, 커다랗고 억센 손은 키키가 남자로 태어났던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녀는 내 이름이 적힌 작은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277)
어느 날 손님으로 온 그가 무대에 서고 싶다고 했을 때, 키키는 말도 어눌한 동양인 뭘 할 수 있을까 의아했다고 한다. 첫 공연에서 개그맨은 모피 레깅스를 입고 벗은 상체에 나비넥타이만 두르고 나와 ‘매번 섹스에 실패하는 풀’이라는 캐릭터를 펼쳐 보였다. 박수 소리가 늘어날수록 폴의 인생에는 살이 붙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온 폴, 섹스를 두려워하면서도 동경하는 폴,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구식인 폴, 실패한 모험을 음탕한 공상으로 메워가는 폴, 사막식물처럼 끈질긴 폴‥… / 이것이 그의 2권이었다. (281)
‘버드케이지’의 사람들은 모두 인생의 1권을 들추지 않는다. 만약 그녀가 이런 관행을 깨고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어항에서 왔어요. 투명하고 편안한 곳이었지만 진짜 물길은 아니었지요. 나는 고통스럽고, 고통을 느낄 수 있어서 거의 행복할 지경이었다. (288, 둘째 마지막 문단) (53PLE)
(2:39, 53P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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