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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사이코레인 우먼(Psychorain woman) / 김진학 1. 여자는 꼭 궂은 날만 골라서 찾아오는 버릇이 있었다. 최근 몇 년째 날씨가 우중충하고 비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흰 바지에 노란색 블라우스를 입고 나타나곤 하였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녀가 어깨에 맨 커다란 가방은 늘 불룩했는데 속에 뭐가 들었는지 무척 무거워 보였다. 소나기가 심하게 오는 오후였다. 간호사를 따라 진료실을 들어오는 여자의 얼굴이 오늘따라 더 침울해 보였다. 의자에 앉으면서 여자가 먼저 말을 꺼냈다. 묻는 말에도 대답도 잘 안하던 여자가 먼저 말을 꺼내는 모습도 신기하였다. “선생님, 귀비온담탕(歸脾溫膽溫)한제 지어서 달여 주세요.” “네?” 12년째 한의원을 하면서 환자 스스로가 혈(穴)자리를 정하고 침을 놓아 달라거나 화제(和劑)를 내어 약을 지어달라고 하는 일은 이 여자 밖에 없었다. 여자는 말없이 가방을 열었다. 몇 년간 궁금하던 실마리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속에서는 각종 의학서적과 한의서들로 가득하였다. 천금방(千金方), 방약합편(方藥合編), 동의보감 등의 한의서들과 각종 해부학과 내과질환, 정신과질환에 관한 현대의학서적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많은 책들을 어떻게 어께에 메고 다니는지 여자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보았다. “제가요. Y대 의과대학을 다니다 몸이 안 좋아서 예과2학년에 그만두고, 다시 공부하여 K대 한의대를 들어가서 거기서도 결국 본과 1학년에 몸이 약해서 그만두게 되었어요. 웬만한 의학지식은 있으니 제 처방대로 약을 좀 써주세요.” 거의 명령이나 강압적인 수준이었다. 어이가 없어 대답을 하지 않자 그녀는 또 말을 이었다. “선생님, 제 병은 제가 잘 알아요. 제 처방대로 지어주세요.” 아무리 우울증환자라도 좀 심하다 싶었다. “그건 곤란합니다.” 사실 한의학에서는 정신과 육체의 관계가 애매모호하며 몸과 마음 중에서 어디에 이상이 생겨도 병은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의학의 경락(經絡)에는 오장육부만 있고 머리(腦)라는 기관은 없다. 정신은 그냥 정신이고 몸은 몸일 뿐이며 정신과 육체를 따로 분리하여 생각하지 않기에 이론은 형이상학이고 치료는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복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우울증이라는 일종의 정신병이라면 그게 정신과 육체 중에서 어디가 병의 원인이 되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정신병은 한방의 병인론으로 본다면 칠정(七情)이라 하여 희(喜), 노(怒), 우(憂), 비(悲), 사(思), 경(驚), 공(恐)이라는 일곱 가지 감정이 지나치거나 모자라서 오는 병으로 본다. 결국 사람의 정신이라는 것은 조상으로부터 받은 정(精)이라는 물질을 바탕으로 신(神)이 생겨난다고 보는데 이 여자는 음양으로 볼 때 지독한 음증(陰症)임이 분명하였다. 여자는 막무가내였다. 다른 한의원도 많은데 굳이 그의 한의원만 몇 년간 궂은 날만 골라서 고집스럽게도 찾아오는 것도 그렇고, 진료가 끝나면 약값과 진료비 외에 간호사들에게 하다못해 음료수 몇 병이라도 꼭 사주고가야 직성이 풀리는 환자였다. 그렇다고 해도 의사가 환자에게 끌려가면서까지 진료는 할 수 없었다. 딱히 히포크라테스선서를 접어두고라도 그건 도리가 아니었다. 여자가 의대와 한의대를 다니다 중퇴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안 될 일이었다. “한번만 제 처방대로 지어주시면 안 될까요?” “저는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한의원이나 병원을 찾아가 보시지요. 저는 의사로서 제가 진찰한 처방 외에는......” 그가 완강히 거절하자 여자는 금방 풀이 죽었다. “그럼 선생님 처방대로 해주세요.” 늘 그런 식이었다. 자신의 처방대로 고집하다 결국은 포기하고 그의 처방대로 약을 짓고 침을 맞고는 알지 못할 미소를 띠며 문을 열고 나가는 여자였다. 겉보기에는 전혀 아픈 사람 같지 않았다. 여자의 알지 못할 미소 외에는 적어도 병원에 와서 웃거나 밝은 모습을 한 번도 본 사람이 없었다. 날씨가 흐리거나 비나 눈이 오는 날엔 그녀가 나타나지 않으면 잘 됐다 싶다가도 혹시나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았나 하는 걱정이 생길 정도였다. 그는 창백한 모습의 여자를 처음 진료하던 날이 생각났다. 하마터면 놀라서 기절할 번 하였다. 세상에 이럴 수가 없었다. 그는 이름과 주소가 적힌 진료차트를 보며 ‘휴~’하고 한숨을 내 쉬었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나요?” 여자는 손목을 그의 앞으로 쑥 내밀며 진찰해보라는 시늉을 하였다. 그는 다시 한 번 물었다. “어디가 불편하신지 말씀해 주십시오.” “선생님이 진찰해 보시고 제가 어디 아픈지 알아맞혀 보세요.” “네?” “저는 선생님이 잘 보신다는 소문 듣고 이곳에서는 꽤 먼 곳에서 찾아 온 사람 이예요.” “..........” “그동안 방송에 나오는 유명하신 한의사에게 다녔어요. 그분은 처음 제가 같을 때 진맥만 하고도 무슨 병인지 아시던데요.” “그러면 그 한의원에 계속 다니시지 왜 오셨어요?” “그래도 진맥을 잡아 주세요.” “사모님의 병력과 무슨 증상이 있는지 말씀하시기 전에는 진찰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그냥 눈으로만 봐서는 가슴의 깊은 병 같습니다만... 저는 그 이상 알 수도 없고 알지도 못합니다.” 진찰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기에 그녀가 무슨 병을 앓고 있는지 자세히는 몰랐지만 여자는 우울증이 심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가 그렇게 밖에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은 현대의학의 화상진단(畵像診斷)이나 수치진단(數値診斷)과는 달리 환자의 입으로 듣는 병력과 피부의 색깔, 대소변의 상태, 맥진, 목소리의 상태 등, 가능한 모든 진단방법을 동원하여 진찰하고 처방을 내려야하기 때문이었다. 아무 치료도 못하고 돌아간 여자가 다시 찾아 온 것은 그 후 달포쯤 지나서였다. 진료실 문을 열고 고개만 약간 내밀면서 여자가 처음 내뱉은 말은“선생님, 미안해서….”였다. 아무튼 그런 일이 있은 후 여자는 날이 궂은 날은 어김없이 나타나서 침을 맞거나 약을 지어가곤 하였는데 그렇게 되니 장마철에는 거의 매일 나타나서 치료를 하게 되었다. 그 뿐이었다. 여자를 만나는 날은 궂은 날 밖에 없으니, 간호사들 사이에서는‘사이코레인 우먼’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다. 간호사들 말에 의하면 그것은 ‘비오는 날 약간 맛이 간 여자’라는 뜻이라고 했다. 여자는 무척 세련됐지만 항상 어두운 모습이었다. 깊은 우수에 젖은 여자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정신과 의사가 안 되고 한의사를 택한 것이 잘됐다고 생각할 정도 였다. 여자가 왔다 간 후의 몇 시간 동안은 직원들 대부분이 말 수가 적어지고 항상 생글거리던 간호사얼굴까지 굳어있는 것을 보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그는 그 여자가 싫지 않았다. 그는 문득 오래전 기억을 더듬었다. 서울이 고향인 그는 박사학위를 두 개나 받을 때까지 공부하느라 바닷가 한번을 가보지 못한 사람이었다. 유일한 취미가 있다면 고등학교 때부터 가끔씩 손에 들고 놀던 기타였다. 오래된 기타였지만 그에게는 소중한 물건이었다. 한의원개업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어느 가을,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에 기타하나만 달랑 메고 평소에 가고 싶었던 강릉바닷가를 찾았다. 한 이틀 묵어갈 요량으로 민박을 정한 그는 밤이 되자 바닷가 갯바위 근처에서 기타를 만지작거리며 밤바다를 즐기고 있었다.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하였다. 먼 바다엔 오징어잡이 배들의 불빛이 줄지어 서 있었고, 그가 켜는 로망스가 별들과 함께 파도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기타를 잘 치시네요.” 흠칫 놀라서 돌아보니 이십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작은 갯바위에 앉아 건네는 말이었다. 그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아, 네…. 잘 치기는요. 그냥….” “아까 서울서 같은 고속버스를 타고 오셨잖아요. 제 앞에 앉아 계셨는데….” “그랬군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이곳에 친척이나 아는 사람이 살고 계세요?” “전혀 낯선 곳입니다. 믿기지 않을지 모르지만 저는 태어나서 오늘 처음 바다를 봤습니다.” “네에?” “공부하느라고 시간이 없어서요.” “그렇군요. 그럼 아직도 학생이세요?” “졸업하고 군대에 다녀오고…. 한 달 쯤 후엔 개업합니다.” “개업이라면….” “네, 한의대를 나왔습니다.” “그럼 한의사?” “그런 셈이지요.” “어머머, 그러세요. 전 H간호대학을 나온 간호사예요“ “아, 그러세요. 그러면…. 지금은 어느 병원에 계시는지?” “좀 쉬려고 다니던 곳에서 몇 달 전 사직을 했는데, 노니까 또 좀이 쑤시네요. 역시 사람은 일을 해야 하나 봐요.” “그렇군요. 밤인데 여성분이 혼자 바닷가를…….” “아, 저도 숙소를 정하고 잠시 밤바다를 걷다가 기타소리에 이끌려 여기까지 왔어요.” 상현달이 파도 위에서 넘실대고 있었다. 그녀는 조용하면서도 할 말은 다하는 성격 같았다. 이곳에 며칠 바람 쐬러왔는데 심심해서 내일아침엔 돌아가야겠다는 그녀, 밤이라서 그런지 상현달보다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저어기요….” “네?” “아까 올 때 보니까 저기 창이 넓고 바다가 보이는 횟집이 있던데 혹시 술 마실 줄 아시면 함께 소주한잔 어때요?” “좋아요. 대신 이따 열시까지만….” 밤을 깨우는 해변의 폭죽소리를 들으며 그들은 횟집에서 가을밤을 즐기고 있었다. 오징어 회에 곁들인 소주가 짝을 찾은 것 같았다. 학위를 받고 선배가 운영하는 한의원에서 몇 년간 병원실무를 배우면서 늘어 난 것은 술 실력 밖에 없었다. 공부하느라 데이트 한번 제대로 못한 그는 이상하게 마음에 드는 여성 앞에서는 말이 더듬거려지는 것을 감추려고 연거푸 몇 잔을 마셨다. “술을 잘 하시네요.” 초장에 오징어를 찍으면서 그녀가 말을 건넸다. “아, 의대에선 술 못 마시면 선배들에게 혼납니다.” 강릉바닷가가 그들의 중매를 서준 셈이었다. 비가그치고 하늘이 개었다. 그는 천천히 여자의 차트를 꺼내 인적사항을 다시 한 번 살피고 있었다. 분명히 성도 다르고 이름도 비슷하지 않은데 왜 그렇게 똑 같을까? 지난 몇 년 간 여자를 진료해 왔지만 볼 때 마다 닮아도 너무 닮아서 똑같다는 생각을 할 지경이었다. 그는 진료실 한 편의 서랍장 속에 있는 작은 앨범 속에서 오래된 사진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고 얼마 전 새로 온 간호사를 불렀다. “미스 김, 이 사람 누군지 알겠어?” “원장님도 참, 이분은 박인숙 환자잖아요.” “음 그래…….?” “틀림없어요. 근데 왜 그분 사진이 원장님 방에 있어요?” “응, 그게 말이다. 좀 그런 일이 있어….” 창밖엔 매미소리가 처량하였다. ‘맴맴맴, 매애앰~’ 그는 두 손으로 귀를 막아봤다. 그래도 들리는 매미소리, 이명(耳鳴)이었다. 최근 몇 년째 이명으로 고생하고 있지만 매미소리와 이명이 분간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는 자신의 이명도 고치지 못하는 돌팔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맴맴맴, 매애앰~’ 땅위에서 겨우 20일을 살기위해 17년간이나 흙속에서 유충으로 보낸 덧없는 삶이 슬퍼서 처량하게 우는 걸까? 그들은 세상에 나와서 슬프게 우는 것 외에 또 무엇을 할까? 인도양의 안다만 제도의 전설에는 도마뱀이 나무에 있는 매미와 땅속의 유충을 모두 찾아내어 조상들 앞에서 죽여 버리자 세상은 어두워졌고 매미들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숲속의 벌레와 새들이 나와서 밤새워 춤추며 노래하자 매미들은 다시 울었고, 그 때부터 낮과 밤이 생겼다는 그 원시신화의 숲속주인공들처럼 작은 한의원이 그래도 버티고 있는 것을 고마워하며 춤이라도 추어야하나? 워낙 불경기라 그나마 단골들이 찾아 주는 것이 고마울 뿐이었다. 그는 깊은 정성으로 환자를 사랑하지 않으면 적어도 의사로서는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한의원도 비용이 많이 드는 직업이고 보니 경영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의사는 돈이 너무 많거나, 말을 너무 잘하거나, 머리가 너무 좋아도 안 된다는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다. 돈이 너무 많으면 자칫 가난한 서민의 아픔을 잊을 수가 있고, 말을 너무 잘하면 적을 많이 만들 수 있고, 머리가 너무 좋으면 항상 외로울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동의보감을 지은 허준보다도 조선후기, 벼슬은 하지 않았지만 한양의 필동에서 개업을 하며 방약합편(方藥合編)과 부방편람을 비롯한 여러 한의학서적을 집필한 황도연이란 의사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황도연이 어느 여름날 깊은 몸살로 누워있고, 대신 제자들이 환자들을 보고 있었는데 아직 실력이 모자라고 경험이 부족한 제자들이 아무리 봐도 알 수 없는 환자들만 오기에 몸져 누워있는 스승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스승님 중풍환자인데요.”하면 스승은“곽향정기산(藿香正氣散)!”하였고“스승님, 속이 거북한 환자인데요?”해도 "곽향정기산!”하였고“두통환자인데요?”해도 “곽향정기산!”했으며“부종이 심한 환잔데요?”해도 역시 “곽향정기산에 사령산!”하였다. 황도연은 누워서 환자의 목소리만 듣고 처방을 내고 있었다. 제자들은 사람마다 체질과 병이 다른데 어째서 처방은 줄 곳 한가지인가하고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스승에게 감히 묻지를 못하다가 약을 지어간 사 람들의 병이 모두 나았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물었다. 황도연은 빙그레 웃으면서“중초(中焦)가 근본인 게야. 두통환자는 양명두통이었으니 당연이 중초를 다스리는 곽향정기산이고, 복통환자는 중초를 다스려야 하니 곽향정기산이고, 중풍환자는 기(氣)가 정체되어 오는 병이니 중초를 다스리고 기를 바로잡아야 하니 곽향정기산이고, 몸이 붓는 환자는 중초를 다스리고 비습(脾濕)을 제거해야 하니 곽향정기산에 사령산을 쓴 게야.”라고 한 말은 한의학계에서는 전설이 되어있었다.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평민계급이나 천민계급들을 나라에서 무료로 치료해주는 활인서(活人署)에서 정성을 대해 의료봉사를 한 의원이었기에 그는 황도연 같은 의사가 되고자 하는 열망에 한의사가 되었지만 막상 개업을 하니 경영이 무척 어렵다는 생각을 하였다. 모처럼 일찍 퇴근한 그는 저녁상을 앞에 놓고 아내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펴보았다. “새삼스럽게 왜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봐?” “내가 그랬나? 아니야, 그런 일이 있어….” “당신도 참, 그런 일이라니 무슨 일인데?” “몇 년째 오는 환자 중에서 당신과 너무 닮은 사람이 있어, 아무리 봐도 내가 놀랠 정도니 당신을 다시 한 번 본거야.” “그래? 세상에 닮은 사람은 많잖아.” “그게 아니야, 입가에 점만 빼면 너무 똑같아서 말이야.” “설마 그럴 리가….” “아니야, 뭔가 이상해. 당신과 내가 한해 두해 산 게 아니잖아, 그런데도 내가 착각할 정도로 너무 닮아서…. 그런데 그 여자는 당신과는 분위기는 달라, 항상 침울하고 우울한 얼굴이야 꼭 비나 눈이 오거나 몹시 흐린 날만 골라서 오고 있어. 근데 말이야, 그 여자가 오고 간 날은 병원 분위기까지 침울해져, 직원들이 모두 말이 없어지고 암튼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이상한 일들이 3년째 일어나고 있어, 오늘도 왔다갔는데 기분은 영 안 좋지만 그 여자가 싫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어. 당신과 닮아 선가? 암튼 이상해, 그렇다고 진료거부를 할 수는 없잖아. 좀 그래..... 오늘은 간호사에게 몇 년 전 당신 사진을 보여주면서 누군지 알겠느냐고 했더니 그 여자라는 거야 정말 미치겠어.” “그래? 그거 참 이상한 일도 다 있네.” 밤새 내리던 늦여름비가 아침에는 걷혔지만 몹시 흐린 날이었다. 여자는 여느 때처럼 침울한 모습을 하고 첫 번째 환자로 나타났다. 평소와 달리 워낙 일찍 나타났기에 그는 약간 당황한 모습으로 여자를 맞았다. 간단한 진료를 끝낸 여자는 잰걸음으로 치료실로 향했다. 시간은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며 아내에게 전화를 하고나서야 익숙하게 여자에게 침을 놓고 나오며 긴장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 여자가 스스로 말한 귀비온담탕이 그가 내린 처방보다 더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침 치료를 끝낸 그가 원장실로 들어와서 앉는데 바닥에선 바퀴벌레 한 마리가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이놈들의 화석에 의하면 3억 2천만 년 전의 모습이나 지금의 모습이나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하니 놈들의 적응력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퀴벌레라는 놈은 원래 습하고 어두운 곳을 좋아하기에 어쩌다 밝은 곳에 나오면 빠르게 도망가 버리는 것이 당연한데 바닥에 기어가는 놈은 달랐다. 조선시대 양반걸음이나 되듯 천천히 움직이다가 갑자기 돌아서더니 더듬이를 좌우로 흔들면서 그를 노려보았다. 그리곤 무슨 말인가 하는 것 같았다. 그는 노려보는 바퀴벌레를 자세히 내려다 봤다. 긴 더듬이를 서로 반대방향으로 흔들면서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얌마, 치료실에 침 맞고 있는 저 여자의 처방이 맞아, 이 돌팔이 같은 놈아!’하는 것 같았다. 그는 ‘야, 이놈 봐라!’하면서도 머리를 한방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천천히 바퀴벌레 쪽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실내화를 벗어들고 놈을 향해 내리쳤다. 느릿느릿하게 걷던 놈이 그가 손을 내리치는 순간 30~40센티미터 이상 재빠르게 자리를 이동하여 역시 더듬이를 상하로 흔들며 노려보고 있었다. ‘야이! 돌팔이 자식아, 아직도 못 알아들어,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이놈아 저 여자는 너보다 한의학을 더 많이 알고 있어 정신 차려 이놈아!’하는 것 같았다. 화가 난 그는 놈을 잡으려고 몇 번이나 실내화를 내리쳤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놈은 더듬이를 몇 번 돌리더니 유유히 E.O.G소독기 밑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맴맴맴, 매애앰 맴~’ 흐린 날인데도 매미소리가 들렸다. 같은 곤충이지만 매미와 바퀴벌레는 삶의 생활방식과 습관이 전혀 다르다. 한 녀석은 지하의 어둡고 축축한 땅속에서 죽은 듯 오랜 세월을 보낸 후 여름이 되면 이른 새벽 나무에 올라 우화를 하고, 화려한 음악으로 짝을 찾고, 찬란한 태양을 맞으며 최후를 맞이하지만 저놈은 성충이 되어서도 어둡고 습한 곳만 찾아다니며 온갖 세균을 옮기는 매개체잖아. “그래, 네 놈이 나를 조롱하고도 살아남을 것 같으냐?” 그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책장 아래에서 살충제를 찾아 E.O.G소독기 밑으로 뿜어댔다. “흐흐흐, 이놈아 너는 이제 죽은 거야” 그러는 사이 간호사가 들어오면서 말했다. “원장님, 박인숙 환자 왔는데요.” “무슨 소리냐?” “박인숙 환자 왔다고요.” “지금 그 환자, 치료실에서 침 맞고 있잖아.” “틀림없어요. 원장님, 노란 블라우스에 흰바지를 입고 악어가죽 핸드백까지 들었던데요.” “치료실에 들어가 봐 침 맞고 있어. 미스 리는 우리 한의원에서 제일 고참 간호사잖아 그런 말이 어디 있나.” 그가 웃으면서 말하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치료실을 다녀 온 미스 리가 사색이 되어 들어왔다. “원장님! 박인숙 환자가 둘이예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요?” 그는 아침에 집을 나오기 전, 아내와의 일을 생각하였다. “미스 리, 당황하지 말고 지금 오신 그분, 10분 후에 진료실로 모시고 와.” “네, 원장님.” 간호사가 나가자 그는 E.O.G소독기를 들어내고 그 뒤를 살펴보았다. 분명히 살충제를 맞고 죽어있어야 할 놈이 사라진 것이다. 그는 소독기가 놓였던 뒤를 찬찬히 살폈다. 벽 틈 사이에 있는 작은 구멍으로 놈이 들어간 것 같았다. 그는 살충제를 구멍에 대고 벽에 흘러내리도록 듬뿍 뿌린 후 종이를 작게 접어 놈이 들어간 구멍을 막고 볼펜 끝으로 꾹꾹 눌렀다. “흐흐흐, 이놈아 네가 도망쳐봐야 부처님손바닥이지 이제 넌 이 밝은 세상에서는 영원히 아웃이야 흐흐흐 자식, 별것도 아닌 놈이 나를 조롱해.” 소독기를 벽에 붙이고 일어서는데 매미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맴맴맴, 매애앰 맴~’ 그는 진료실 창문을 열고 가로수를 쳐다보았다. 분명 매미가 울고 있었다. 바람이 창을 타고 들어와 커튼을 매만지고 있었다. 그는 약간 삐뚤어지게 놓인 E.O.G소독기를 바르게 놓으려고 움직이는 순간, 소독기아래에서 수많은 바퀴벌레들이 쏟아져 나왔다. 놈들은 매미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주위로 모여들고 있었다. 몸통과 더듬이가 다른 놈의 두 배는 됨직한 대장의 진두지휘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그를 포위하고 있었다. 그는 눈에 살기를 품은 채 살충제를 마구 뿌려 댔지만 놈들은 끄떡도 하지 않고 더듬이를 더 크게 흔들면서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이미 살충제엔 면역이 된 놈들 같았다. 포위망은 이중삼중으로 겹쳐지며 점점 좁혀지고 있었다. 대장이 앞발을 높이 들고 말했다. “이 돌팔이 새끼야, 환자들 상대로 얼마나 도둑질 해 먹었어? 네놈이 아프고 불쌍한 환자들에게 꼴 난 침 몇 대, 약 몇 첩 지어주고 많게는 수 백 만원씩이나 받아 처먹었지. 맴맴맴, 매애앰 맴~” 그는 살충제를 더욱 흔들며 뿌렸지만 놈들은 아량 곳 하지 않고 그의 몸에 기어오르기 시작하였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있었다. “안 돼, 올라 오지마!!!” 아무리 털어내도 끝없이 밀려오는 벌레들이었다. “원장님, 손님 모시고 들어가도 돼요?” 간호사가 부르는 소리에 그는 책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머리가 멍하였다. 바퀴벌레들이 그를 조롱하며 몸에 기어오르던 꿈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정신을 가다듬은 그가 말했다. “들어오시라고 하세요.” 머리스타일과 옷의 모양, 색깔, 가방과 구두까지 여자와 흡사한 모습의 아내를 보면서 신기하기까지 하였다. 간호사를 진료실 밖으로 내보낸 그는 아내를 데리고 치료실로 향했다. 여자는 둘레에 커튼이 처진 침대를 반쯤 일으킨 채 비스듬히 누워있었다. “선생님, 한 시간 됐는데 간호사보고 침 빼달라고 할까요?” 뭐든지 고집하다가 포기하고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만 돌리는 우울증환자의 전형적인 특징이 여자에게 있었다. 여자가 말하는 사이 아내가 커튼 속으로 따라 들어왔다. 마주친 두 사람의 표정이 잠시 멈칫하더니 둘은 동시에 입을 손으로 가렸다. “어, 어, 어, 어머머 ….” 두 사람의 벌어진 입이 닫혀 지지 않고 있는 동안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두 분이 너무 닮아서 제가 집사람을 잠시 오라고 했습니다. 환자와 의사로 만난 것도 인연이지만 박인숙씨를 볼 때마다 저희 집사람을 보는 것 같아서요. 분명히 성과 이름이 다른데 어떻게 이렇게도 닮을 수가 있나 늘 생각했습니다. 이따 치료 끝나고 오늘 점심은 제가 살 테니까 괜찮으시다면 식사라도 함께 하시지요.” 그들이 식사하러 병원 밖을 나오는 모습을 본 간호사들 역시 입을 다물지 못했다. 2. 그가 있는 병원은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있었다. “지인수씨 주사 맞을 시간입니다.” “이봐, 간호사! 내가 한의산데 주사는 무슨 주사야?” 경희는 남편에게 면회 갈 짐을 챙기면서 눈물이 났다. 국내에서 가장 좋다는 한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한방병원에서 충분한 연수를 마치고 한의원을 개업하고 웬만큼 자리도 잡았는데 3년 전부터 한방정신과 공부를 하려면 빙의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한다며 서울미아리 쪽에서 신 내림을 받고난 다음부터는 사람이 좀 이상해진 것 같더니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고야 말았다. 경희는 남편이 즐겨먹는 건오징어와 김밥을 싸고, 일주일간 입을 속옷과 약간의 다른 간식을 준비하여 버스를 타고 Y시의 병원입구에 내렸다, ‘맴맴맴, 매애앰 맴~’ 매미가 우는 나무 아래에는 다람쥐 한 쌍이 앙증맞은 모습으로 아직은 설익은 도토리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서울에서 승용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병원은 깨끗하고 정갈했다. 주말마다 찾는 곳이지만 오늘따라 숲과 어우러진 병원풍경이 더 좋아보였지만 마음은 그리 편치 못했다. “원장님, 남편병세는 요즈음 좀 어떤 것 같아요?” 원장실부터 찾은 경희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물어봐야 답변은 늘 같겠지만 그래도 의지 할 곳은 의사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남편께서는 현실과 환상사이를 구별을 못하는 망상적 정신장애와 편집성정신분열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장애가 심해지면 실지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훨씬 과장되게 평가하여 실생활에서 행동하게 되는 병입니다. 남편께서는 환청과 환시가 다른 사람보다 심하게 나타나서 치료하는데 애를 먹고 있습니다. 사실 정신병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환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이기에 약물치료 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면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그래서 지난주부터는 남편분도 사이코드라마를 시작하였습니다. 사이코드라마를 한다고 다 좋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해 볼 수 있는 모든 방법은 동원해야지요. 며칠 전부터 남편분이 사이코드라마 도중에 함께 출연하는 환자에게 꼭 노란색 블라우스와 흰색바지를 입혀달라기에 그렇게 해 줬더니 드라마 도중에 그 환자를 진료한다면서 맥을 잡고, 여러 가지 한방정신과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느닷없이 제게 오더니 비밀을 지켜달라면서 저 여자가 자신의 부인과 똑 같이 생겼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번 면회 때 만났더니 자신이 보는 환자 중에 나와 똑같이 생긴 여자가 있다고 해서 무슨 소린가 했습니다.” “환자를 볼 진료실을 달라고 떼를 쓰기에 비어있는 병실 한 칸에 책상과 의자를 놓고 진료실처럼 꾸며놓았더니 매일 거기에 않아서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는 전형적인 편집 증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멀쩡하던 사람이 빙의에 관한 연구를 한다고 어디 가서 신 내림을 받고는 저러니 정말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앞길이 막막합니다.” “치료는 하겠지만, 비가 오거나 날씨가 흐리 날은 아주 심해집니다. 이 병의 특징이 어떤 땐 아주 멀쩡한 정신이 됩니다.” “고칠 수는 있는 병인지요?” “남편분과는 좀 다른 증상이지만 사이코드라마 형식을 빌어서 치료한 사례가 많습니다. 실지로 저희 병원에서 있었던 일인데 심한 편집증상이 있는 고등학생이 있었습니다. 이 학생의 증상은 누구에게나 끝없이 질문을 던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필요 없는 질문 말입니다.” “필요 없는 질문이라니요?” “쉽게 말하면 ‘아주머니 어디 가세요?’하고 학생이 묻고 상대가 ‘응, 서울 간다.’라고 말하면 ‘서울은 왜가세요?’하고 끝없이 말꼬리를 잡는 거지요.” “네….” “마침 그 때 우리병원에 잠자는 시간외에 새끼만 꼬는 시골서 오신 할아버지 한분이 계셨어요. 함구증(Mutism)이란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는데 절대로 말을 하지 않고 한 가지 행동만 계속하는 분입니다. 아시다 시피 서울은 짚이 없기에 아무거나 있으면 노끈을 꼽니다. 노끈꼴 것이 없으면 자신의 옷은 물론 팬티까지 찢어서 꼬기에 할 수 없이 병원에서 헌 모포를 넣어 줬더니 찢어서 하루 종일 노끈만 꼬고 있는 거예요. 우리는 학생을 할아버지와 같은 방에 넣어줬어요. 학생은 지치는 법도 없이 ‘할아버지 뭐하고 계세요?’하고 묻는 겁니다. 일주일 정도 지치지도 않고 묻자 할아버지는 자신이 생각해도 이상했는지 대답을 했답니다.‘응, 노끈 꼰다.’ ‘노끈 꼬아서 뭐하세요?’ ‘응, 모포 산다.’ ‘모포 사서 뭐 하세요?’ ‘찢어서 노끈 꼰다.’ 정말 웃기는 이야기지요. 이런 어처구니없는 대화가 할아버지와 학생 사이에 끝없이 이어지고 시간이 흐르면서 학생의 묻는 횟수가 줄어들면서 결국 두 사람이 증상이 완전히 나아서 모두 퇴원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증세는 사실 약을 거의 쓰지 않고 나아버린 전형적인 사이코드라마 치료입니다.” “그런 치료도 있네요.” “미술치료나 음악치료가 있듯이 사이코드라마치료도 정신치료의 한 분야입니다. 환자들 끼리 배우가 되어 서로 역할을 바꾸어가면서 드라마를 엮어 제 3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아, 그러면 희망을 가져도 되겠네요?” “그렇지요. 희망은 우리 모두의 힘이 되는 겁니다. 해봐야 알겠지만 지인수씨의 병도 희망을 가지고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치료해 봐야지요.” “선생님, 잘 부탁드릴게요.” 원장실을 나온 경희는 곧장 남편이 기다리는 면회실로 향했다. “여보, 여기 나가고 싶어 내가 이곳에 왜 왔는지 모르겠어.” “지금 당신은 정상이 아니야 이곳에서 몇 달 푹 쉬면 괜찮아질 거야 집 걱정은 하지 말고 당신 몸이나 완쾌하고 나와서 예전처럼 오순도순 살자.” “여보, 난 멀쩡해 정말 미치겠어.” "여기 원장 선생님이 당신은 희망 있다고 했으니 조금만 참아, 곧 나오게 될 거야.“ “여보, 당신조차 나를 믿지 않아? 왜 그래 정말, 난 정신병자가 아니고 정상이란 말이야 제발 날 좀 나가게 도와줘.” “의사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해, 그게 당신이 빨리 낫는 길이야. 자주 올 거니까 또 봐.” 인수는 면회실 밖으로 사라지는 아내를 바라보며 허탈감에 빠졌다. 여기서 또 내 보내달라고 소리치거나 소란을 피우면 틀림없이 항우울제나 수면제가 든 주사를 강제로 놓을 것이 틀림없기에 그는 이를 악물고 참으며 방으로 돌아왔다. 3. ‘맴맴맴, 매애앰 맴~’ 귀를 막아도 들리는 매미소리, 정신병원에서 나온 후 부쩍 심해진 이명이었다. 고개를 흔들어 하늘을 봤다. 여름이 저문 하늘엔 가을이 얇은 구름에 깔려 있었다. 구름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감미롭도록 따뜻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최근 몇 달간의 시간을 거슬러 오르면서 생각에 잠겼다. 모든 것이 분하고 억울하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 무서운 세상이었다. 아무리 돈에 눈이 멀었다지만 그건 용서 못할 일이었다. 친동생이 구해주지 않았다면 몇 년이고 정신병자들과 어울려 살 수 밖에 없었던 지난 몇 달이 악몽 같았다. 잘못하면 영원히 폐인이 되어 살아갈 번 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강제로 맞은 항우울제와 항정신성약물들로 완전히 기력이 빠져서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했는지도 모르던 지난 몇 달이 악몽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한밤중에 집으로 들이닥친 장정 여러 명에게 끌려서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하던 일이 엊그제 같았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늘이 도왔다고 할까, 주사를 놓으러 온 간호사가 잠시 병실에 놓고 간 휴대폰으로 동생에게 구원을 요청하여 간신히 구출된 그였다. 이미 그의 주민등록증을 이용하여 부정하게 인감증명을 뗀 후 그가 운영하던 한의원을 비롯한 그 많은 재산을 모두 가로챈 후였다. 그는 대학병원정신과에서 정상이라는 진단서를 첨부하여 고소장을 접수시키고 그녀들을 유치장에 넣어 버렸다. 경찰서 유치장 면회실에 함께 나온 아내와 여자의 얼굴을 번갈아 보면서 혼란이 왔다.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여보, 당신이 나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남편보다 돈이 더 소중한 거야?” 경희는 함께 나온 여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애는 나의 쌍둥이 동생이야, 초등학교 2학년 무렵 형편이 어려워 남의 집에 보내졌지…. 그동안 소식을 모르다가 내가 몇 년 전에 수소문해서 찾아낸 거야 혹시나 하고 유전자 검사까지 해봤어.” “이런 죽일….어떻게 자매가 짜고 남편을 정신병원에 넣고 재산을 가로챌 수가 있어?” “그래, 당신은 정말 내게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분명 내 남편이 맞아 법적으로 보면,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이기도 하지. 하지만 당신이 정신병원에서 나오지 못했다면 우리자매는 지금쯤 외국에 가서 있었을 거야 그걸 생각하면 너무 억울해.” “저런, 저런, 죽일….” “우리 자매가 여기까지 같이 온 이유와 왜 쌍둥이면서 성(姓)이 다른지 그것부터 말해줄까? 이미 한을 품고 저세상에 가 있는 우리 부모님들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야기 말이야. 당신 집안이 원래 그렇게 부잔 줄 알았어? 당신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 회사의 경리담당부장이었다는 사실을 알기나 해? 왜 우리부모님이 돌아가신 줄을 알기나 하냐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아직도 막내 남동생은 행방불명이야. 우리 가족은 처절한 가난과 설움으로 살았지. 이게 다 머리 좋은 경리부장을 둔 덕분이었지, 난 너무 가난하여 하루 한 끼를 먹으면서 부모님을 모시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잠을 안자고 공부해서 간호사가 됐고 당신을 만났지. 그래, 어쩌면 하늘이 만들어준 기회를 내가 잡은 지도 몰라. 하지만 내 인생은 이제 없어, 아직도 살아계신 당신 부모님이 아들인 당신이 처절하게 망하고 쓰러져 가는 꼴을 보며 가슴 치며 우리 부모님과 똑 같이 화병으로 쓰러지길 기도해 줄게, 저 세상에 계신 우리 부모님이 보고 계실거야. 내가 간호사가 된 것도, 오래전 당신이 강릉으로 여행할 때 몰래 따라가서 당신을 유혹하고 당신 한의원의 간호사로 있었던 것도, 당신과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지 않은 것도, 모두 나의 계획이었어. 물론 내 쌍둥이동생을 우연히 찾게 된 덕분에 당신이 정신과 공부와 빙의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되었고 그래서 기회는 더 빨리 온 거지. 호호호, 당신이 유산으로 받은 그 많은 재산이 모두 우리아버지 재산이라는 사실을 아냐고?” 그는 순간, 머리가 너무 혼란스러웠다. ‘맴맴맴, 매애앰 맴~’ 면회실바닥에서 수많은 바퀴벌레들이 매미소리를 내며 그의 주위에 모여들고 있었다. 커다란 대장 바퀴벌레가 더듬이를 흔들며 말하고 있었다. “저 여자의 말이 전부 사실이야, 이 돌팔이새끼야!!!” 아내와 여자의 모습이 바뀌고 있었다. 몸은 바퀴벌레, 머리는 사람이 된 두 여자가 매미소리를 내며 울부짖고 있었다. ‘맴맴맴, 매애앰 맴~’ - 끝 - 2011년 3월에 쓰고 2018년 제 3의 문학에 발표 20011년 3월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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