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리문답, 88문
제88문,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구원의 유익을 전하는 표현적이며 일반 방법,
답,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구원의 유익을 전하는 표현적인 일반적인 방법은 그의 규례인데 특히 말씀과 성례와 기도를 의미하며 이 모든 것이 구원을 위하여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 효력이 있는 것이며 특히 말씀과 성례와 기도이다
은혜의 방편이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구속의 은혜를 베푸시고 인간에게 적용하셔서 구원을 위하여 택한 자들에게 효력이 있게 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규례를 통해서 구원의 유익을 전하는 은혜의 방편 즉 은혜의 방법을 삼으셨다. 은혜의 외적인 방편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례와 기도이다.
마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지상명령이라고 하는 이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모든 족속으로 재자를 삼고 세례를 주고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행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때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고 말씀하심으로 성령강림 이후에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사도들의 말씀의 가르침을 받고 기도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고전3:6‘ 바울 사도는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게 하셨다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효력 있게 역사하셔서 은혜가 되게 하시고 또한 그 은혜 아래 자라게 하셨다.
위의 언급한 이 모든 것을 은혜의 외적 방편이라고 하는데 은혜의 수단이라고도 한다, 세례와 성찬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다. 이것은 외적인 방편으로 적용해서 죄인에게 생명을 얻는 회개와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자라게 한다는 것이다.
생명을 얻는 회개란 구원의 은혜이다.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죄인인 것과 죄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깨닫고 자기 죄를 원통히 여기고 미워함으로 하나님께 돌아서고 하나님께 나아가 마음과 힘을 다하여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구원 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생명의 법칙과 존재와 삶의 법칙으로 알아 순종하도록 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이 외적인 은혜의 방편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 아담 안에서 죄인된 인간이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는다. 그리고 그것은 성령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은혜의 방편을 사용하여 구원을 위하여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 효력이 있게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것에만 의존하여 역사하신다는 것도 조심해야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제한성을 의미라는 것이라면 그것은 맞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규례, 곧 말씀과 성례, 그리고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의 방편들도 삼으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방편들에 의해서 해석되고 합당하게 될 때에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의미와 맞닿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성령님에 의해서 구원 얻도록 택함 받은 자에게 효력이 있다는 것도 강조되어야 한다. 이 은혜의 역사도 하나님께서 구속의 유익을 위하여 계속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이것 외에 더하여 은혜를 그하는 것을 배제되어야 한다는 것도 의미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정교한 은혜의 모든 것들을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재편해서 사용하려 하는 경함이 있는데 이것은 성경에 합당하지 않고 또한 그것으로 인해 영적으로 부요해지지 않는다,
이 은혜의 방편 자체가 신비한 능력을 가ㅣ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은혜를 주실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방법이요 하나님만이 은혜의 수여자요 주관자라는 것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기도가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독자적인 효력을 발휘 할 수 있는 가라는 것이다. 물론 그렇 수 없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성경적인 생각을 갖지 않고서는 온갖 이론과 이단들의 의견이 횡행하기 때문에 진실한 신자까지 도 이에 미혹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은혜의 방편이라는 자체에 매여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가 약화된다든지 은혜의 방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보다 더 강조되는 우를 법해서는 안 된다. 방편은 본질이 아니다. 그러나 은혜의 본질이신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방편을 적절하게 사용하시도록 말씀하셨고 그것으로 은혜를 주시기를 기뻐하셨다는 것을 알고 은혜의 방편을 효력있게 되도록 하는 은혜의 수단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마치 믿음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의 신앙에 이르지만 그 믿음 자체가 인간의 공로나 그 믿음이라는 것 자체가 구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 그리고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은혜의 방편들을 통해서 구원을 위해 택함을 받는 자들에게 효력이 있도록 하시고 또한 그것들을 통해서 구원과 그 모든 부요함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것은 그 은혜의 방편을 사용함으로 인해서 모든 효력과 유익이 있는 것이고, 반대로 이것을 무시하거나 소홀하거나 경솔하게 대하는 자들에게는 커다란 영적인 손해가 있다는 것도 필히 알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은 유익을 위함과 동시에 그렇지 않았을 때는 그 유익이 없거나 현저하게 영적인 손해를 보거나 그 반대편의 해악이 있기 때문이다.
소위 말해서 직통기도와 직통응답,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의 방편들을 무시하는 소위 신비주의자들의 영적인 해악은 자신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고 또한 은혜의 방편 자체에 어떤 효력을 갖는다고 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본질과 방편에 대한 해악도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규례인 말씀과 성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가 효력있게 하시는 것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구원의 유익을 전하는 방편이라는 것을 잘 알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신자의 도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