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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稀記念
韓璟植 作品展
2004. 11. 8 - 11. 12 포스코미술관
2004. 11. 22 - 11. 25 광양문화예술회관
빛과 色彩의 환타지,絢爛한 五方色의 파노라마
김남수 / 미술평론가
미술인의 본령은 아름다움을 구현하기 위한 자기만의 언어, 자기만의 사투리, 자기만의 언어구조, 누구도 닮지 않는 자화상을 갖는 일이다. 여느 작가와 차별성을 갖는 것은 자기완성주의와 맥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화성(畵聖)들은 그 누구나 고유한 자기언어를 가지고 있다. 이른바 모방이나 아류는 냉엄한 국제질서 속에서 생존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필자가 입 버릇처럼 되뇌이고 있는 명화의 조건은 “첫째 아름다워야 한다. 둘째 감동이 있어야 한다. 셋째 그 아름다움의 가치가 영원해야 한다”라고 역설한 적이 있다. 설치나 컨템폴러리 등 현대미술의 시각에서 볼때 그 가치기준은 달라질 수 있을지 모른 다. 그러나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나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의 고전은 세계가 공인하는 명화다. 다시말해 예나 지금이나 명화는 영원하다는 뜻이다.
창작행위와 학문은 꼭 정비례하지 않는다. 만일 이 양자의 상관관계를 긍정적으로 수용을 한다면 학문이 높은 사람만이 훌륭한 창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는 억지 논리에 빠지게 된다. 서양화가 박수근은 최고 학벌이 보통학교 출신에 선진국에의 유학 등 외국문물에 접해본 적이 없는 화가다. 그러나 그는 한국성을 완성한 화가로 뉴욕의 소더비나 영국의 크리스티 등에서 세계적인 한국의 작가로 공인 받고 있다. 가까운 일본의 국보급 화가 사까모도한지로(坂本繁次郞)도 국민학교가 최고의 학벌이다. 그의 동창이자 라이벌인 미야모도시게루(宮本茂)는 동경마술학교를 졸업하고 파리에 유학했지만 생애를 다하는 날까지 한지로를 따라잡지는 못했다.
세계적인 화성(畵聖)들도 미술대학을 나오지는 못했다. 물론 당시에는 교육기관이 없었기 때문에 미술을 전공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21세기 현대미술교육을 연구하는 후예들은 그들의 창작세계를 논제(論題)로 선택하는 등 다양한 시각의 학문과 실기고찰을 통한 많은 학위 수여자를 배출해 내고 있다. 어느 것이 진짜고 어느 것이 허구인가. 창작과 학문은 꼭 정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아이러니컬한 등식이 여기에서 성립된다. 굳이 역설적으로 이야기를 하면 풍성한 이론이나 잡다한 학문은 오히려 창작의 순수성을 해친다는 결론을 유추해 낼 수도 있다. 이미 고인이 된 서양화가 유경채씨는 창작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시계에 들어오는 잡다한 이미지를 뇌리에서 지워버리고, 하늘(허공)을 보고 맨 손가락으로 스케치를 한다고 필자에게 역설한 적이 있다. 이른바 하늘이 하얀 캔버스란 뜻이다. 그만큼 창작행위는 순수성과 불필요한 췌육을 배제한다는 뜻이다.
본란이 ‘전시초점’로 다루고 있는 서양화가 한경식은 칠순을 맞는 고희기념으로 첫 작품 발표전을 포스코미술관의 초대전으로 갖는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초중고 시절, 미술반에서 활동했던 학창시
절 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반세기가 흘러갔지만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한 것은 올해로 꼭 16년이 됐다. 한가지 분야에 천재는 다른 분야에서 바보라는 속설이 있지만 지금은 그 속설이 깨진지 오래다. 의사나 변호사 혹은 음악인이 취미로 시작한 그림이 지금은 아마츄어의 경지를 탈출하여 프로로 전향하는 등 또 다른 천재가 얼마던지 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그 소인(素人-아마츄어)이 공모전에서 심사를 하고 대학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프로와 아마츄어의 차이는 적어도 창작의 세계에서만은 꼭이 구별되지 않는다는 묘한 메타포가 이 진실 속에 숨어 있다는 뜻이다.
그동안 한국의 서양화단은 정신적인 주제의 빈곤, 표현의 한계, 국적불명의 예술양식의 추구, 우리보다 500년 앞선 서양사회의 모방과 아류 등으로 일관하는 불행한 전철을 밟아왔다. 한국의 서양화단에 세계적인 작가가 태어나지 못하는 숙명을 우리는 스스로 자의식 속에 안고 있었다. 그나마도 전술한 바와 같이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등은 한국성의 발현이란 의미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국제사회가 공인하는 작가가 된 것이다.
韓璟植의 作品世界
이번 고희전을 기념하여 첫 개인전을 갖는 한경식은 미술대학을 통하여 현대미술교육을 이수하지 못한, 스스로 아마츄어라고 자부하는 겸허하고 진솔한 화가다. 그는 동료이자 스승인 김덕기 선생에게 화우처럼 지난 16년 동안 함께 사생활동을 했으며, 그 밖에 ‘현대상생회’ 그룹활동, 전국 일요화가회 회원, 홍대미술대학원 최고위과정을 수료했다. 이른바 그가 교육적 의미의 작품활동을 해온 것은 이상의 경력이 그의 모든 것이요, 전부였다. 한마디로 그의 작품세계가 신선하고 순수하면서도, 개성주의가 강열한 것은 외풍이나 타의적인 영향보다는 작가 자신안에 천부적인 미술에의 재능, 독학으로 오늘을 성취한 연구와 노력이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른바 전술한 창작성의 강렬한 의미가 그의 화풍 속에 농축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자연을 디테일하게 관찰하고 그 실상을 정직하고 진솔하게 화폭에 담는 사실주의 회화양식을 추구했던 작가라고 볼 수 있다. 적어도 초기의 작업과정은 원칙을 쫓는 프로세스를 모두 착실하게 이수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세계는 완만하고 점진적인 변화와 함께 그가 선호하는 정신주의와 자의식으로 선회하면서 그의 예술세계는 심오한 경지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스케치현장에 도착하면 때론 신들린 사람처럼 현장에서 설채(設彩)를 하고, 현장에서 작품을 완성하는 습관까지 생겼다. 한마디로 대자연의 품에 안겨 그림을 그릴때면 스스로 신명이 나고 남모르는 희열을 만끽하는 그런 순간이 가장 행복하고 보람을 느낀다고 술회하고 있다.
작가의 최근작들을 보면 자연을 소재로하여 표현의 외연(被寫體)을 설정해 놓고 표현의 방법론에서는 마치 동양의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처럼 또 다른 자연으로 변환하고 있는 것이 특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시말해 자연을 관찰하는 시점분석(視點分析), 표현의 진수(眞髓)만을 설정한 디테일한 묘사방법, 색점의 이상적인 배열과 설채의 마술성, 독자적인 공간분할의 특이한 어법 등 작품의 주제와 정신주의에 이르기까지 개성있는 창작성이 표출되고 있다. 한마디로 첫 발표전을 갖는 화가로 생각하기에는 납득이 가지 않을 원숙한 경지가 펼쳐지고 있다.
이미 우리가 일상 보아온 낯익은 중견의 작품들, 아니 거기에서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형상의 이미지들이 전개되고 있다. 특히 필자가 감동을 한 것은 마치 동양화에서 많이 시연되고 있는 발묵법(潑墨法)을 원용한 덩어리진 원색의 빛깔들이 나무숲을 이루고 산이나 암벽의 이미지로 환치(換置)되는 것은 작가 한경식이 개발해 낸 독보적인 경지가 아닌가 싶으며 이러한 조형행위들은 의도적인 것이거나 인위적인 배려가 아닌 작가의 영감이 만들어낸 예술이 아닌가 싶다.
특히 그가 집요하게 추구하고 있는 ‘코리안 환타지’ 라고 명명할 수 있는 원색의 향연, 현란한 색채들은 환상적인 감각이나 감성적인 이미지로 화면을 눈부시게 수 놓고 있다. 마치 풍만하고 넉넉한 가을의 결실을 상징하는 행운의 마스코트가 화면을 밀도감있게 물들이고 있다. 즉, 색채의 조련사처럼 능숙능란한 설채로 자유의 미학을 누리고 있다. 이번 출품작 50 여점 가운데 대표작 7~8점을 선정하여 설명을 가해보기로 한다.
작가가 완성한 발표작들은 풍경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피사체를 관찰하는 시점(視點)은 세가지 유형의 양식을 천착하고 있는 것이 특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하나는 동양기법이 원용된 작품 ‘설악산 추경’을 들 수 있다. 근경의 덩어리진 단풍숲, 마치 꽃가루를 뿌려놓은 듯 원색의 이미지가 현란하다. 민족고유의 빛깔 오방색이 여기에 연출되고 있다. 중경의 암벽 능선, 원경의 산정과 주름진 산자락 등 흠잡을때 없는 수준 높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다음으로는 작품 ‘성불계곡의 가을’ ‘강천사 계곡의 단풍’ ‘매화축제’ ‘낙안 배꽃’ ‘설악산 울산바위’ ‘선암사 입구의 가을’ ‘무등산 하경’ ‘한라산의 새벽’ ‘섬진강 매화꽃’ 등은 빛과 색채가 어우러진 인상주의 화풍이 특질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화려한 색채의 미학이 구사되고 있으면서도 화면의 밀도감 있는 분할, 물상의 이상적인 배열 등 자유분방한 작가의 기량이 돋보이고 있다. 작가가 추구하고 있는 문제의 세 번째 예술양식은 환상과 꿈이 피어오르는 초현실주의를 연상케하는 작품이다. ‘산동에 봄이 왔네’ ‘화계의 벗꽃’ ‘화성 방화 수류정’ 등은 섬득하리 만치 예리한 선묘로 작품을 완성하고 있는 다양한 영역의 진폭을 읽을 수 있다. 선을 통한 기하학적인 콤퍼지션, 도식적인 화면의 구성 등 실로 작가는 다양한 실험의 역정을 걸어온 화가임을 작품을 통하여 확인하고 발견할 수 있다. 그 밖에도 작품 ‘복숭아 꽃 피었네’ ‘아 백두산’ ‘낙안 추경’ ‘귀면암’ ‘북한강 정경’ ‘다압계곡’ ‘겨울 마이산’ 등 그대로 간과하기에는 아쉬운 작품들이 많다. 이번 그의 고희기념 작품전은 비록 고희에 이르렀지만 백전노장의 기백이 작품세계에서 노정되고 있다. 한마디로 작가 한경식의 예술가로서의 인생역정은 이제부터 출발이라는 기대를 걸어보는 것이다. 작가 스스로가 망각해온 잠재력과 가능성이 평자의 시선을 끌고 있기 때문이다.
結 論
東村 韓璟植의 고희기념전은 필자의 시각에서 볼때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림을 수업한지 16년이 흘러갔음에도 불구하고 수준이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개인전을 고사해 오다가 고희전을 빌미삼아 발표전을 갖게된 겸허하고 때묻지 않는 작가의식, 정작 작가 스스로가 의식하지 못했던 상당한 수준의 작품들, 작가로 하여금 창작의욕을 고취할 수 있는 불필요한 여건의 단절 등 그에게는 홀로 설 수 있는 행운의 미술환경이 조성되어 있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세계는 비록 유재를 매재로한 서양화를 하고 있지만 동양적 사유의 한국성 정신주의나 혹은 표현의 방법론 등에서 부분적인 편린들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를 작가의 기지로 원용하면 좋은 작품의 발현을 기대할 수 있지 않나 기대를 해보는 것이다. 그만큼 작가에게는 소질과 잠재력,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이번 작품전을 통하여 확인하는 것이다.
프로필
동촌 한경식은 1935년 전남 나주군 영산포에서 출생했다. 그는 광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3기 해군사관학교에 진학 4년을 중퇴하고 다시 전남대학교 공과대학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아오면서 입지전적 주인공이 된 그는 포항제철 상무이사, 동 건설본부장, 제철정비철구공업(주) 사장, 제철설비(주) 사장, (주) 승광, 승주골프장 대표이사, (주)전남프로축구, 전남 드래곤즈 대표 이사, 월간 아트코리아 홈페이지(www.art-korea.com) 사이버갤러리 담당 고문(www.galleryweb.co.kr-운영) 등 화려한 경력과 함께 명사의 길을 걸어왔다.
作家의 畵歷
필자는 앞서 지적한 바 있다. 천재가 다른 분야의 바보라는 속설은 이젠 지나간 시대의 유물이다. 작가만 하더라도 국내 정상기업의 엔지니어요, 최고 경영자이며, 스포츠맨이요 골퍼이자 기사(碁士)요, 갤러리웹사이트의 프로그래머이다. 그가 이젠 문화예술의 중심핵을 이루는 미술인으로 뛰어든 것이다. 홍익미대 현대미술 최고위 과정을 수료한 그는 그동안 포항 광양, 일본의 후꾸야마 자매도시 교류전, 광주 가고시마 교류미술전, 홍미작가회전, 현대사생회전, 아세아미술초대전, 아름다운 서울 그림전, 제주 비엔날레 사생단체연합전, 순천 광양 일요화가회전, 95년 전국일요화가회 사생대회 회장(선암사) 등 국내외 초대전 등 엄청난 작품활동을 해왔다.
그는 이번 초대전의 인사 말씀에서 -앞생략-”그러나 이제는 인생을 정리할 때라는 생각이 들어 그동안 그려왔던 분신들을 모아 고희전을 갖게 되었습니다”라고 술회한다. 올곧고 순수한 미술인, 때묻지 않은 동심처럼, 앞으로 그의 예술세계는 보다 아름답게 빛나리라.
작가 에세이
그림은 즐겁다
내가 사생 나가서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보고 지나간다.
그냥 보고만 무관심하게 지나가는 사람,
고개를 끄덕 끄덕하며 지나가는 사람,
측은하게 보며 지나가는 사람,
빙그레 웃으며 지나가는 사람,
자꾸만 뒤 돌아보며 지나가는 사람,
둘이서 손 가락질 하며 수근수근하며 지나가는 사람,
어디서 오셨어요? 어느 화가 단체에요? 하며 관심주고 지나가는 사람.
처음에는 신경이 쓰이고 부끄러워서 어절 줄 몰랐으나
지금은 나도 만성이 되어서 별로 신경 쓰지 않고 그저 그리기만 한다.
그래도 가끔은 참여형이 있어서 심심치는 않다.
‘할아버지는 화가세요?” “아아니..”
아저씨라고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할아버지라고 불러도 낯설지 않다.
‘그러면 왜 고생하며 그리세요?”
“그냥 그리는 것이 즐거우니까.”
“그래도...!” 갸우뚱!
시골마을에 가서 한참 그리고 있으면 시골 아이들이 어느새 모여든다.
신기한 듯 둘레에 서서 구경하다가 끼어든다.
“할아버지! 이 물감은 무슨 물감이에요?” 제법 큰 놈의 질문이다.
‘유화물감이다. 학교에서는 무슨물감을 쓰지?” “예..”
‘할아버지! 코스모스는 언제 그리세요?’ 어느 놈의 참견이다.
‘지금 그릴까!” 분홍빛, 보라빛, 하얀 코스모스를 먼저 그린다.
‘하아! 잘 그린다.’ 어린 놈의 신나는 말.
‘그럼 너도 한번 그려 볼래?”
머뭇거리는 아이 손에 붓을 쥐어주고 같이 그린다.
그리고 혼자서 그리도록 유도한다.
“아주 잘 그린다”고 칭찬해 주면 너도 나도 그리겠다고 야단이다.
차례차례 그리도록 지도하고 칭찬하면 그냥 신이 난다.
완전히 합작품! 노소동락 합작품이다. 모두가 박수치며 즐거워 한다.
그리기를 다 마치고 짐을 쌀 때면 애들이 너도 나도 도와서 거들고
차에까지 운반해서 실어준다.
고맙다 얘들아! 즐거웠다 얘들아! 빠이빠이!
할아버지 또 오세요! 손을 흔든다.
무아지경으로 한참 몰두해서 그리고 있을 때
“잘 그리시네요. 참 좋네요.’ 옆에서 말을 걸어오는 분도 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칭찬해 주면 나이 들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요. 감사합니다..” 화답하면
“나도 학생때는 소질 있다고 했는데..”
“아 그러세요. 그러면 그림을 시작해 보세요.’
‘그러고도 싶은데 바쁘기도 하고 가르쳐 줄 사람도 잘 모르고...”
‘그러면 일요화가회에 나오세요. 나오시면 지도교수도 계시고...”
어쩌고 저쩌고 열심히 설명해 준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잘 그리세요.” 그리고 떠난다.
어떻든 잘 그린다는 칭찬 한마디에 어린애처럼 즐거울 뿐이다.
순천광양 일요화가회 월례회에서도 회원들과 사생을 즐긴다.
오랜만에 만나서 한참 이야기들이 한창이고
이리 저리 좋은 구도를 잡느라고 야단이다.
그리고 조용해진다. 그림에 모두 몰두해지기 때문이다.
점심은 각자 집에서 싸와서 서로 나눠가며 먹는데
그 맛은 정말 꿀맛이다. 곁들여 소주 한잔! 하하!
또 각자 그림에 열중하고 끝날 때 모여서 작품을 펴 놓는다.
지도교수의 평이 시작된다. 또 서로가 평을 한다.
오늘 하루 얼마나 즐거운 시간인가.
연말에 서너점씩 출품하여 회원전을 갖는다.
각 가족들과 친지들이 감상하고 칭찬하고... 즐거운 시간이다.
현대사생회에서도 개강식 때나 하기사생여행 때 참여해서
원로 화가들의 스케치 과정을 구경하며 함께 그리는 즐거움도 있다.
뭉뚝뭉뚝 점을 찍듯이 아름다운 색채로 화려하게 그려 나가는 안영목 화백,
아름다운 색채를 큰 붓으로 대범하게 덩어리로 그려나가는 강길원 화백,
정말 멋진 색깔로 척척척척 즐겁고 세밀하게 묘사해 나가는 정의부 화백,
등등 옆에서 보기만해도 즐겁고 배운 바가 너무나도 많다.
그렇게 희생적으로 열심히 봉사하는 회장단!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그렇게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회원들!
나는 현대사생회에 참여하여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은 화가들과 교류를 가진 것을 큰 보람으로 생각한다.
내가 그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다.
영산강 넘어 가을 들판과 멀리 보이는 산들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것을 수채화로 그림을 그렸다.
또 보름달 저녁 달빛과 달빛에 비친 구름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그 달빛 아래서 달빛과 구름의 아름다움을 그려보기도 했다.
그 당시 남농 화백(지금 생각)의 소나무 그림이 너무 좋아서 증조 할머니
사진 뒤에다 소나무를 크레용으로 그려서 사진을 뒤집어 걸어 놓았다가 혼이 난 일도 있다.
중학교(당시 6년제 광주농업학교) 때 미술시간에 도화지도 없고 도화 연필도 없어서 앞면이 인쇄된 이면지가 있어서 거기에 보통 연필로 비너스상을 그렸는데미술선생님이 보시고 잘 그렸다고 칭찬하며 미술 지도를 해 주셨고 6.25로 헤어졌다.
광주고등학교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그 미술선생님을 또 만났다.
그분이 김인규(金麟奎) 선생님으로 일본 태평양 미술학교를 유학하고 돌아오셔서 오지호(吳之湖) 화백과 광주미술연구회를 결성하여 전남미술발전에 기여하신 분이셨는데 우리가 졸업 후 그리 오래 살지 못하고 작품도 남기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또 미술부에 들어가서 김인규 선생님의 지도를 받았으나 그 당시는 반공 포스터 그림을 그리는데 시간을 많이 소비하기도 했다.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미술부는 없어서 사진부에 들어가서 암실작업 등 흑백사진 작업을 배웠다.
다시 사회에 나와서는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1968년 포항제철에 입사하여 초기에 건설현장 사진을 찍어 서울 본사에 보고하는 일도 맡게 되어 사진과 인연을 맺으면서 포항의 사진작가 박원식씨를 만나게 되었다. 그분과 서예가 박인호 당시 포항문화원장 등 몇 사람이 모여 새빛 클럽을 만들어 회장을 맡아 일요일이면 경주 계림 등 사진 찍으러 다니기도 하고 박원식씨와 수채화도 병행하기도 하여 그림을 조금씩 그렸다.
회원전도 사진 그림 합쳐서 포항시내 다방과 포항제철 효자단지 내에서 개최한 바 있다.
1970년 1기 설비 종합 착공에 맞춰 상황실을 꾸미고 공장부지 모형에 제철소 각 공장모형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상황실 책임을 내가 맡게 되었다.
그러나 제철소를 한번도 구경 한 적이 없는데 공장 모형을 만들려니 책 그림들을 보고 만들 수 밖에 없었다.
당시 포항의 백마 미술사에서 모형을 제작하기로 하고 우리는 금속과 출신 신입사원들을 모아 사진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설계를 하면서 공사를 진행해 나갔다.
각 공장에는 불이 반짝이도록 스위치를 설치하는 작업 등 2주일 이상을 모형공장 위에서 밤낮 없이 지내며 공사를 완료하여 성공리에 박정희 대통령을 모시고 1기 설비 착공식을 마친 바 있다.
나의 전기 전공과 미술감각의 도움도 기여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 후 모든 것을 잊고 포항제철 건설에 매진했기 때문에 미술은 멀리 간줄 알았다.
그런데 1988년 건설 본부장으로 광양에 부임하여 우연히 김덕기 화백의 전시회에 참석하게 되어 그림을 보는 순간 너무나도 감동했다.
화려한 색채, 아름답게 그린 장미꽃, 큰 터치로 자연경치의 정확한 묘사 등 나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나도 저렇게 그리고 싶은 충동을 이길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서 지도를 부탁해서 쾌히 승낙을 받고 그 다음주부터 사생을 나가기로 약속했다.
그때부터 매주 일요일이면 건설현장을 아침 일찍 둘러보고 김화백과 사생을 나갔다.
때로는 고향 후배인 현대소방 윤중구 사장도 동행(이제는 그림에 안목이 있는 수집가가 되었다)하여 주었다.
선암사, 백양사, 선운사, 마이산, 월출산, 대대포구, 낙안 민속마을, 무등산, 돌산 향일암, 여수 오동도 등등 주변의 많은 곳을 찾아 다니며 김화백님의 지도를 받으며 그리고 또 그렸다.
순천광양 일요화가회, 현대사생회, 광주전남 일요화가회 합동 스케치, 전국 일요화가회 합동 스케치 대회에도 참석하고 대회를 유치하기도 했다.
그 동안 그린 것들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회원전에도 출품하고 광주전남-가고시마 교류전, 아세아 미술 초대전, 아름다운 서울 그림전, 홍미회전 등에도 출품하여 미술교류를 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미술대학에서는 무엇을 배우며 학생들은 무엇을 생각하는가에 대해서 알고 싶어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현대미술 최고위 과정에 입학하였다.
유명한 강사들로부터 미술사조의 변화, 현대미술의 특징 등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 원로작가 특강으로 박서보 화백의 작업실을 방문하여 교육 받은 것, 대학 주변의 민가 건물 담벼락에 대학생들이 각각 현대 취향에 맞게 그림을 그려 놓은 것, 대학로 앞에서 설치미술 하는 것, 대학가 주변 호프집에서 맥주 마시며 담론하는 것 등은 인상적이었다.
우리 6기 회장을 맡아 홍미현우회전도 2회 열었다.
인터넷 시대에 작품 전시를 화랑 등에서만 갖고 일정기간 지나면 치워 버리는 것이 너무나 아까워 보였다.
그리고 우리나라 구상미술 잡지로 유명한 월간 아트코리아 잡지사의 좋은 자료가 창고에 갇혀 잠자고 있는 것이 너무나 아까웠다.
그래서 아트코리아와 협의해서 사이버갤러리(http://www.galleryweb.co.kr)를 만들어 누구나 언제라도 영구히 전시 가능하도록 운영하고 있으며 아트코리아(http://www.art-korea.com) 창간호부터 현재까지의 전 잡지를 홈페이지에 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현재 2002년부터 현재까지 인터넷에 올라있으며 1996년 12월 창간호부터 2001년까지는 자료가 준비 되는 대로 모두 올릴 예정이다.
월간 아트코리아 홈페이지를 직접 만들면서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을 많이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즐겁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즐겁고 유명한 작품을 마음껏 감상하는 것도 즐겁고 나이 들어 할 일이 많은 것도 즐겁다.
그래서 그림은 나의 안식처다.
喜壽記念
韓璟植 作品展
2011.11.28(월) - 12.2(금)
초대일시 : 2011.28. 오후5시
POSCO 미술관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892번지 POSCO센터
Tel : 02-3457-1665
2011.12.12(월) - 12.16(금)
초대일시 : 2011.12.12. 오후5시
광양문화예술회관
전남 광양시 광양읍 우산리 536
Tel : 061-797-2528
인사의 말씀
70세 고희(古稀)기념 작품전을 포스코미술관에서 연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7년이란 세월이 흘러 77세 희수(喜壽)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나이드니 문중일도 맡아서 해야 하고, 친구들과 만나서 담소도 하고 운동도 하며, 컴퓨터로 카페나 부로그를 만들어 좋은 작품이나 글을 올리기도 하며, 또 이메일로 약 100여명의 친구 후배 옛 직장의 동료들과 매일 좋은 정보를 주고 받으며 정보교류도 하지만, 주로 나머지 시간은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 일과가 되어 버렸습니다.
일요일이면 순천일요화가회 회원들과 야외에 나가 스케치도하고 여름이면 현대사생회 회원들과 5박 6일, 또는 4박 5일간의 여름연휴사생 여행에 참가하여 흑산도, 연평도, 동해안, 남해, 진도, 완도, 고흥 등지로 돌아다니며 함께 어울리며 그림을 그리는 즐거움이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이렇게 그린 작품들을 제가 가입된 대한민국미술협회, 광양미술협회, 현대사생회, 대한민국미술단체일원회, 대한민국회화제, 순천일요화가회, 등 미술단체 전시회에 출품도 하며 모아온 작품들을 정성껏 다시 손질하여 희수전(喜壽展)이라는 이름으로 이번에 전시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막상 전시회를 열어 작품들을 선보이려 하니 너무나 서툴고 부족한 면이 많아 부끄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마는 그래도 제딴에는 열심히 그리려고 노력해온 그림이고 희수를 맞이하는 기념전이므로 너그럽게 보아 감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 희수전을 갖기까지 항상 제 옆을 지키고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게 도와준 저의 아내 김남진과 가족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포스코와 관련 자회사에서 약 35년간 몸담아 왔던 인연으로 금번 포스코미술관에서 초대전으로 전시회를 허락해 주신 정준양 회장님, 최종태 사장님을 비롯한 관계자 여러분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2011. 11.28. 한경식 올림.
圓熟의 境地에 接近해 가는 五方色의 絢爛한 파노라마
김남수 / 미술평론가
미술인의 본령은 아름다움을 구현하기 위한 자기만의 언어, 자기만의 어법, 누구도 닮지 않는 자화상(自畵像)을 완성하는 일이다. 다른 작가와 차별성을 갖는 것은 자기완성을 위한 창작성과 맥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화성(畵聖)들은 그 누구나 고유한 자기언어를 가지고 있다. 이른바 모방이나 아류는 냉엄한 국제질서 속에서 생존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필자가 입버릇처럼 되뇌이고 있는 명화의 조건은 ‘첫째 아름다워야 한다. 둘째 감동이 있어야 한다. 셋째 그 아름다움의 가치가 영원해야 한다’고 자주 역설하곤 했다. 설치나 컨템폴러리 등 현대미술의 시각에서 볼때 그 가치기준은 달라질 수도 있다. 창작행위와 학문은 꼭 정비례하지 않는다. 만일 이 양자의 상관관계를 긍정적으로 수용을 한다면 학문이 높은 사람만이 훌륭한 창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는 억지 논리에 빠지게 된다. 서양화가 박수근은 고등보통학교 출신에 선진국 등 외국문물에 접해본 적이 없는 화가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한국성을 완성한 화가로 뉴욕의 소더비나 영국의 크리스티 등 세계적인 경매시장에서 한국의 화가로 공인 받고 있다. 가까운 일본의 국보급 화가 사까모도한지로(坂本繁次郞)는 국민학교가 최고의 학벌이다. 그의 동창이자 라이벌인 미야모도시게루(宮本茂)는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파리에 유학했지만 생애를 다하는 날까지 한지로를 따라잡지는 못했다.
21세기 현대미술교육을 연구하는 후예들은 학문과 무관했던 선인들의 창작세계를 논제(論題)로 선택하는 등 다양한 시각의 논문을 통한 많은 학위 수여자를 배출해 내고 있다. 창작과 학문은 꼭 정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아이러니컬한 등식이 성립되고 있다는 말이다. 굳이 역설적으로 이야기를 하면 장황한 이론이나 학문은 오히려 창작의 순수성을 해친다는 결론을 유추해 낼 수도 있다. 서양화가 고 유경채씨는 창작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시계(視界)에 들어오는 잡다한 이미지를 뇌리에서 지워버리고, 하늘(虛空)을 보고 맨 손가락으로 스케치를 한다고 필자에게 역설한 적이 있다. 이른바 하늘이 하얀 캔버스란 뜻이다. 그만큼 창작행위는 순수성을 확보하기 위해 불필요한 덧살을 배제한다는 뜻이다.
프로와 아마츄어의 차이는 적어도 창작의 세계에서만은 꼭이 구별되지 않는다는 묘한 메타포가 이 진실 속에 숨어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따져 볼때 고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등은 한국성의 발현이란 의미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국제사회가 공인하는 예술가가 된 것이다. .
韓璟植의 作品世界
서양화가 단체인 일원회, 현대상생회 등에서 그룹활동을 해온 작가는 홍대미술대학원 최고위과정을 수료했다. 한마디로 그가 미술교육과 관련한 작품활동을 해온 것은 이상의 경륜이 그의 모든 것이요, 전부였다. 다시 말해 그의 작품세계가 신선하고 순수하면서도, 개성주의가 강열한 것도 외풍이나 타의적인 영향보다는 작가 자신안에 천부적인 미술에의 재능, 끈질긴 잠재력 등 오늘을 성취한 연구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창작정신의 강렬한 의지와 신념이 그의 화풍 속에 농축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올해로 창작활동 어림잡아 40년을 해온 작가는 지난 2004년 고희(古稀)를 기념하는 초대전으로 첫 개인전을 포스코(POSCO) 미술관에서 가졌다. 그로부터 7년이 경과한 희수전(喜壽展)을 다시 포스코에서 두 번째 초대전을 갖게 됐다. 팔순을 눈앞에 두고 이제야 겨우 두 번째의 작품전을 갖는다니 참으로 과묵하고 겸허한 작가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 해마다 작품전을 갖는 요즘의 세시풍속(歲時風俗)과는 어울리지 않는 보기 드문 화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희전과는 뚜렷하게 비교될 만큼 원숙한 예술세계의 경지를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자연을 디테일하게 관찰하고 그 실상을 정직하고 진솔하게 화폭에 담는 사실주의 회화양식을 추구해온 화가라고 볼 수 있다. 초기의 작업과정은 원칙을 쫓는 프로세스를 모두 착실하게 이수한 것이다. 가령 아카데믹한 사실주의 화풍, 빛과 색채가 조화된 인상주의 화풍, 남국의 정열적인 태양을 연상케 하는 포비즘 양식 등 모두를 넓고 깊게 섭렵을 했다. 말하자면 작가의 40년의 역정이 화면 속에 농축되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작가의 작품 세계는 완만하고 점진적인 변화와 함께 신자연주의 화풍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가 있다. 그가 선호하는 예술양식과 표현의 방법론 등이 이를 말해 주고 있다. 특히 작품의 주제와 작가가 표현코져 하는 정신주의는 독창적인 자의식의 세계의 추구 등 예술성이 돋보이는 경향으로 선회하는 심오한 경지를 읽을 수가 있다. 유니크한 단색조의 설채법(設彩法), 정열적이고 강열한 인상을 심어주는 주홍과 에메랄드 빛깔의 화법, 기하학적인 구성을 통한 명징한 화면 분할, 물상의 이상적인 포치(布置)와 경영 등 나무랄 때 없는 연출이 돋보이고 있다.
작가의 최근작들을 보면 자연의 외연(外延)을 설정해 놓고 표현을 위한 방법론에서는 마치 동양의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처럼 또 다른 자연으로 변환하고 있는 것이 특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시말해 자연을 관찰하는 시점분석(視點分析), 표현의 진수(眞髓)만을 설정한 디테일한 묘사방법, 색점의 이상적인 배열과 설채의 마술성, 독자적인 공간분할의 특이한 어법 등 작품의 주제와 정신주의에 이르기까지 개성있는 창작성이 표출되고 있다.
우리가 일상 보아온 낯익은 작품들, 아니 종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상의 이미지들이 전개되고 있다. 특히 필자가 감동을 한 것은 비록 서구적인
매재(媒材)를 쓰고 있지만 마치 동양화에서 많이 시연되고 있는 발묵법(潑墨法)을 원용한 덩어리진 원색의 빛깔들이 나무숲을 이루고 산이나 암벽의 이미지로 환치(換置)되는 것은 작가 한경식이 개발해 낸 독보적인 경지가 아닌가 싶으며 이러한 조형행위들은 의도적인 것이거나 인위적인 배려가 아닌 작가의 영감이 만들어낸 예술이 아닌가 싶다.
특히 그가 집요하게 추구하고 있는 ‘코리안 환타지’ 라고 명명할 수 있는 원색의 향연, 현란한 색채들은 환상적인 감각이나 감성적인 이미지로 화면을 눈부시게 수 놓고 있다. 풍만하고 넉넉한 가을의 결실을 상징하는 행운의 마스코트가 화면을 밀도감있게 물들이고 있는 것이라던지 능숙능란한 색채화가 한경식만의 자유의 미학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이번 출품작 7~8점을 선정하여 설명을 가해보기로 한다.
작가가 완성한 발표작들은 풍경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피사체를 관찰하는 시점(視點)은 세가지 유형의 양식을 천착하고 있는 것이 특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하나는 동양화기법이 원용된 작품 ‘흑산도 성당’은 연록과 진록의 우거진 숲 속에 성당의 붉은 지붕의 탑이 맑고 산뜻하게 묘사되고 있다. 구름처럼 덩어리진 청록의 숲은 이름 그대로 영겁의 신이 베푼 영감이 흐르고 있는 것 같다. 매우 감동을 주는 새로운 양식의 그림이 아닌가 싶다. 작품 ‘아! 초출선(初出銑)’은 용광로가 창설되고 처음 생산되는 제품을 이미지로 완성한 작품이다. 얼핏 보기에는 몇천도의 물성이 용융(鎔融)되는 형상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황금색과 검붉은 색의 빛깔이 보여주는 단층과 쇳물과 불의 예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같은 계열의 작품 ‘쇳물이 춤춘다’는 표현파적인 광란과 형상이 연출되고 있다. 이글 아글 타오르는 용광로에 쇳물이 춤을 추듯 들끓고 있는 형상이다. 포항제철에서의 건설본부장 시절 작가가 체험한 미학을 작품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다음은 작품 ‘선암사 일우’다. 사찰의 와당 문양의 지붕이 푸른 숲 속에서 고개를 내미는 이미지가 황토벽 담장과 앙상불을 이루며 묘사되고 있다. 근경의 야생화와 중경의 녹색 숲이 조화를 이루면서 적요(寂寥)한 불심을 더욱 환기시키고 있다. ‘축산항의 머구리배’는 출항을 기다리며 정박하고 있는 어선단이 잘 묘사되고 있다. 근경의 보랏빛 선박의 설채와 황토빛 기관실, 중경의 녹색산의 빛깔과 원경의 하늘색 산의 준령이 싱그런 단색조로 물들이고 있다. 같은 기법의 ‘오동도에서’는 디테일한 피사체의 묘사와 강한 색상의 이미지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 ‘울릉도의 낙조‘는 뉘엇뉘엇 해가지는 정경이 마치 천지가 개벽하는 외경스러움을 느낄 만큼 신비스러움을 더해주는 작품이다. 고즈녁한 밤의 여신이 솟구칠 것 같은 숙연함이 떠오르는 작품이다. ’승선교의 설경‘은 계곡의 바위에 쌓인 하얀 눈이 융단을 깔아 놓은 듯 정취가 물씬나는 작품이다. 또한 ’이서의 설경‘은 한겨울의 암반위에 보료처럼 묘사된 하얀 설경이 매우 인상적이다. 작품 ‘설악산 추경’은 근경의 덩어리진 단풍숲, 마치 꽃가루를 뿌려놓은 듯 원색의 이미지가 현란하다. 민족고유의 빛깔 오방색이 여기에 연출되고 있다. 중경의 암벽 능선, 원경의 산정과 주름진 산자락 등 흠잡을때 없는 수준 높은 작품이다. ‘설악산 울산바위’ ‘선암사 입구의 가을’ ‘무등산 하경’ ‘한라산의 새벽’ ‘섬진강 매화꽃’ 등은 빛과 색채가 어우러진 인상주의 화풍이 특질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작가가 추구하고 있는 문제의 세 번째 예술양식은 환상과 꿈이 피어오르는 초현실주의를 연상케하는 작품이다. ‘산동에 봄이 왔네’ ‘화계의 벗꽃’ ‘화성 방화 수류정’ 등은 섬득하리 만치 예리한 선묘로 작품을 완성하고 있는 다양한 영역의 진폭을 읽을 수 있다. 선을 통한 기하학적인 콤퍼지션, 도식적인 화면의 구성 등 실로 작가는 다양한 실험의 역정을 걸어온 화가임을 작품을 통하여 확인하고 발견할 수 있다. 그 밖에도 작품 ‘복숭아 꽃 피었네’ ‘아 백두산’ ‘낙안 추경’ ‘귀면암’ ‘북한강 정경’ ‘겨울 마이산’ 등 그대로 간과하기에는 아쉬운 작품들이 많다. 이번 희수기념 작품전은 비록 팔순을 몇 년 앞둔 전시회지만 백전노장의 기백이 작품세계에서 노정되고 있다.
한마디로 작가 한경식의 예술가로서의 인생역정은 이제부터 출발이라는 기대를 걸어보는 것이다. 작가 스스로가 망각해온 잠재력과 가능성이 평자의 시선을 끌고 있기 때문이다.
結 論
동촌 韓璟植의 희수기념전은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림을 수업한지 40년이 흘러갔음에도 불구하고 겸손한 자의식 때문에 개인전을 고사해 오다가 희수전을 빌미삼아 두 번째의 발표전을 갖게 되었으니 작가의 진솔하고 겸허한 때묻지 않는 작가의식, 정작 작가 스스로가 의식하지 못했던 상당한 수준의 작품들, 작가로 하여금 창작의욕을 고취할 수 있는 행운의 미술환경이 조성되어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세계는 비록 유재를 매재로한 서양화를 하고 있지만 동양적 사유의 한국성 정신주의나 표현의 방법론 등에서 상당한 경지에 가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만큼 작가에게는 소질과 잠재력,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이번 작품전을 통하여 확인하는 것이다.
작가의 주요 프로필
동촌 韓璟植은 1935년 전남 나주군 영산포에서 출생했다. 그는 광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3기 해군사관학교에 진학 4년을 중퇴하고 다시 전남대학교 공과대학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홍대미술대학원 최고위 과정을 졸업한 그는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아오면서 입지전적 주인공이 됐다. 전업작가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그는 주요 약력으로 포항제철 상무이사, 동 건설본부장, 제철정비철구공업(주) 사장, 제철설비(주) 사장, (주) 승광, 승주골프장 대표이사, (주)전남프로축구,전남드래곤즈 사장을 지냈다. 대표전화 : 061-721-3344 HP : 010-4621-2002
Homepage : www.galleryweb.co.kr/handra
E-mail : handra@galleryweb.co.kr
이력서
1935.10.16 (음력). 전남 나주군 영산포읍 오량리 71번지에서 출생
1952. 4. ~1955. 3. 광주고등학교 4회 졸업
1955. 4. ~1958.10. 해군사관학교 13기 4년 중퇴
1959. 4. ~1961. 3. 전남대학교 공과대학 전기공학과 졸업
1968. 5. ~1990. 8. 포스코 상무이사, 건설본부장
1990. 8. ~1991. 5. 제철정비철구공업주식회사 대표이사 사장
1991. 5. ~1993. 3. 제철설비주식회사 대표이사 사장
1993. 3.~1994.10. ㈜승광, 승주골프장 대표이사 사장
1994.10.~2003. 3. ㈜전남프로축구 전남드래곤즈축구단 창단,
대표이사 사장, 고문 역임
서양화 화력 : 동촌 한경식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현대미술 최고위과정 수료
고희기념 서양화 작품전(2004, 포스코 미술관, 광양문화예술회관)
2006 한국미술조망전 초대(부스전, 세종문화예술회관)
섬진강 그 주변 이야기전(2002~2008)
포항 광양 후꾸야마 자매도시 교류전(2002)
광양 포항 미술 교류전2003~2011)
광주.가고시마 교류미술전(2000~2011)
아세아 미술 초대전 (1993~2010)
아름다운 서울 그림전 (1997~2005)
제주 비엔나래 사생단체 연합전 (1995)
현대사생회 회원전 (1992~2011)
대한민국미술단체 일원회 회원전(2005~2011)
대한민국 회화제 회원전(2010~2011)
순천 광양 일요화가회 회원전 (1989~2011)
대한민국 현대미술 1000인전(2008.10)
대한민국 미술단체 페스티벌(2011.9 예술의 전당)
현재:대한민국미술협회,광양미협 회원, 순천일요화가회 회원,
현대사생회, 대한민국미술단체 일원회, 대한민국회화제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