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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田崗禪師
解脫과 죽음
인간에게는 인간을 죽이게 하는 두 가지의 죽음의 역사가 있다. 하나는 자연이 인간을 죽이게 하는 역사이고 또 하나는 인간이 만든 역사가 인간을 죽이게 한다.
망우리 공동묘지는 인간의 생노병사 즉 자연적 질서가 만든 죽음의 역사이보 동작동 국군묘지는 인간이 만든 전쟁의 비극적 결과가 만든 죽음의 역사이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자연이 우리의 생명을 빼앗아가는 것 보다 인간의 역사가 생명에 상처를 내고 죽음을 요구하고 있을 대이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세월이 흐르고 육체가 노쇄하고 병에 들면 죽기 마련이다. 그것은 봄에 핀 잎이 여름 한철 무성해 있다가 가을이 되어 낙하와 별리를 통해 소멸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온갖 사물에는 생명과 소멸의 섭리가 있는 반면 다시 태어나는 윤회의 섭리도 있다. 사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생노병사는 한 인간이 갖는 역사이다. 그런데 인간은 이러한 생사의 법칙을 삶의 공간에 집착되어 죽음이란 의미를 잃어 버리고 있다. 죽음이란 인간 내부에 던져진 씨앗처럼 서서히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불타]는 이러한 죽음의 의미를 먼저 깨달은 사람이다. 그리고 죽음의 의미를 통해 생의 철저한 허망을 깨닫게 하였다. 그래서 그는 인간은 공수래로 공수거로 간다고 일단생을 부정하고 나서 무소유의 무아적 삶을 우리에게 깨닫게 하고 있다. [자기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유형적 재산은 언젠가 버리고 없어질 존재이나 자기 자신은 버릴 수 없는 존재이다]고 진아의 영원성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불타는 인간의 육체를 가아리고 부정하고 육체를 참다운 생명의 진아라고 착각하지 않도록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불타의 육체 부정은 우주만물과 더불어 영원히 실존하고 있는 법신을 우리에게 인식시킬려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수행자는 그래서 임종에 다달아 자기 육신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행위를 초연히 한다. 일생동안 지탱하여온 육체가 시주의 은혜로 영위되었음을 철저히 파악하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임종을 하고 그 육체로 뭇 짐승들의 허기진 공복을 채우도록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반쯤은 흙빛 또 반쯤은 불빛과 바람기가 섞여 있는 육체를 화장하여 버렸다.
田崗선사는 이러한 육체의 혁망과 육체가 지니고 있는 소멸성을 자기내부에서 철저히 실험하고 확인한 선사이다.
중국 단하천연 선사가 법당에 모셔진 木佛을 도끼로 쪼개어 불을 지피다가 자기를 힐란하는 수행자에게 이놈들아 본불은 부처가 아니야. 나무토막에 불과해 만약 목불이 참다운 부처라면 분명히 ①舍利가 나올 것이야 힐란한 것처럼 田崗은 임종에 다달아 [나의 육체를 태우고 나서 사리를 찾지 말아라 그리고 한줌의 재는 서해에 갔다 버려라.]고 철저히 육체의 미련을 버리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와 달리 중국 神賛선사는 스승 戒賢을 통해 썩고 없어질 육체를 법당으로 파악한 일도 있었다. 신찬의 안목속에는 우주를 체험한 大乘의식이 있었고 중생의 고뇌와 번뇌가 오도의 주체임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스승 戒賢이 오랫동안 經典적 삶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노예가 되어 있음을 깨닫고 어느날 스승의 등을 밀면서 [好好法堂이여 無佛靈驗이다.]라고 공격하였다. 참으로 육중한 몸매를 갖고 있지만 오도적 자각이 없다는 의미이다.
田崗에게도 이러한 살벌한 선기가 있었다. 여기서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현재 살아있는 수행자에게 발길질을 [하면서 이놈 부처가 무엇인가 똑바로 이야기 해봐라. 만약 이르지 못하면 네놈은 흙덩어리에 불과하다]고 힐란한 일이 있었다.
이러한 田崗의 오도성 실험은 자아에 이르는 길은 자아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철저히 보인 것이다.
田崗은 1898년 11월 16일 全南 谷城에서 鄭海龍을 부친으로 黃柱秀를 모친으로 하여 이 세상에 오도의 순례자로 태어났다.
십육세에 해인사에서 印空和尙을 은사로 득도하고 김천 直旨寺에서 팔년 동안 두문불출 자기 내면과 대좌하여 오도적 자기 확인을 하였다. 불타가 六년을 통해 見性 실험 속에서 자기 개발을 얻었다면 그는 팔년이란 긴 세월속에서 소멸되는 육체의 허망을 버리고 우주와 더불어 영원하는 법신을 자기 내부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田崗의 이러한 오도이력 속에는 매우 중요한 사실이 발견되고 있다. 田崗의 출가가 16세에 이루어 졌다면 그는 24세에 자기 개안을 얻었다는 결과가 되고 나아가서 그 당시 한국 禪宗의 中興祖 경허, 만공, 혜봉, 한암, 용성, 보월 등이 생존해 있을 당시이고 또 이들을 낱낱이 찾아가 그들의 내부에 돌맹이질을 해 영혼과 自性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자아의 면목을 질문한 점이다. 그리고 위에 소개한 開眼宗師들이 갖고있는 미진한 번뇌까지도 불태워 주는 일까지 그는 서슴없이 하였고 또 이들의 총애를 받은 유일한 수행자가 되었다. 이런 결과로 인해 그는 한국 선종 뿐만 아니라 佛祖慧脈(불조혜맥)을 전승한 유일한 현대 한국 불교의 견성의 주인공이 되었다.
悟道의 美學
수행자가 생사의 속박에서 벗어날 때는 참으로 형언할 수 없는 즐거움이 따른다. 그것은 한 마리의 새가 새장을 탈출하여 무한대 허공을 비상하는 것과 같은 즐거움이 따른다. 그래서 수행자는 자기내면에 뿌리 깊게 존재해 있는 번뇌의 근원을 찾으며 절망과 좌절을 극복하는 것이고 나아가서 번뇌와 고뇌가 결탁해 있는 내면 깊숙이 파묻혀 있는 자아를 확인할려고 한다. 그렇지만 자아는 찾아지는 대상이 아니다. 불교적 논리로 볼때 자아는 찾아지는 대상이 아니고 찾고 있는 그 자체이며 또 시간과 空間을 초월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도 없으면서도 모든 곳에 그리고 모든 사물에 나타나 있는 것이 자아의 주체인 자성이다. 이러한 자아의 행동을 찾기 위해 禪宗에서는 오도적 도구인 화두를 만들고 그 함정속에 얼마동안 눈먼자 귀먹은자가 되게 한다.
중국 소동파는 어느날 유명한 [승호]선사를 찾아 화두가 만든 함정에 빠져 자신의 내적개안이 무엇인가 깨달은 일이 있었다. 그는 [승호]선사가 [그대는 누구세요?]하고 묻자
[나의 성은 칭(秤 -저울)가요.]하고 당돌하게 대답하였다.
[칭가라니요?]
[천한 선지식을 달아보는 칭가란 말이요]
소동파의 안하무인의 호언장담이 떨어지자마자 선사는 [으악!] 일갈을 동파의 면전에 퍼붓고나서
[그러면 이것이 몇 근이나 됩니까?] 하고 물었다.
동파의 지혜는 승호의 선에서 체득한 에스프리를 능가할 수 없었다.
田崗도 중국 [승호]와 같이 우리에게 수많은 오도적 함정을 수 없이 남겼다. 그는 구체적으로 어떻한 것이 본래의 자기라고 지시하지 않고 한편의 서정이 짙은 詩句를 던져 놓고 자아의 행방을 찾도록 유도하고 있다.
黃鶯上樹一枝花(황앵상수일지화)
白鷺下田千點雪(백노하전천점설)
노랑 꾀꼬리가 나무에 오르니 한떨기 붉은 꽃이요.
백노가 밭에 내리니 천심의 눈이다.
만약 이 속에서 諸佛諸祖의 면목을 보지 못하고 자기 실상을 파악하지 못하면 참으로 [漢나라 개는 흙덩이를 쫓는 것이요 獅子는 사람을 물 것이다.]
이러한 田崗의 오도적 육성속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난처한 선종의 비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위에 소개한 시는 시로서도 난해한 것도 아니고 눈앞에 보이는 사물을 자기 나름대로 형상화한데 불과하다. 그러나 선이란 이미 강을 설정해 놓고 볼때 자아의 主體인 자성이 어느 곳에도 없으면서도 모든곳에 그리고 모든 사물에 나타나 있음을 자각할 때 田崗에게 우주를 관통하고 있는 오도의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昨夜月滿樓(작야월만누)
窓外蘆花秋(창외노화추)
佛祖喪身命(불조상신명)
流水過橋水(유수과교수)
어젯밤 달빛은 누간에 가득하고
창밖에 가을 갈대꽃이 눈처럼 희다.
부처와 조사도 몸과 목숨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고 지나간다.
田崗의 오도송이다. 이 오도송이 이루어진 배경속에는 불교의 해학적 설화가 있는 반면 인간이 생존해 있는 의미가 적나라하게 투입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설화가 지니고 있는 내용은 인간내부를 파헤치는 불빛이 되고 나아가서 본질에 문을 열고 들어서는 결과를 갖게하고 있다. 사실 禪宗의 화두란 일정한 규칙속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실상을 규명하는 미오의 중간에 놓여있는 사람들에게 개오의 충격을 가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중국 [조주 종념]선사는 어떠한 것이 도냐고 물었을 때 [喫茶去]차나 한잔 마시고 평범히 말하였고 또 길을 지나가다 개를 발견하고 개에게 불성이 있느냐고 묻는 수행자에게 [無]하고 부정해 버리기도 하였다.
田崗이 자기내부에서 자기를 말할 수 있었던 오도적 계기나 화두의 도구는 이미 중국불교에서 이루어진 기성화두가 아니고 岸樹井藤이 갖고 있는 의미를 그 당시 도봉산 망월사 祖室로 있던 白龍城이 전국 수행자에게 함정을 던지는 데에서 화두가 이룩되었고 田崗은 이 함정에서 말려들지 않고 諸佛諸祖가 들어선 자성공간에 들어설 수 있었다. 岸樹井藤은 불교가 만들어 낸 훌륭한 비유문학이다.
한 마리의 코끼리와 네 마리의 독사, 그리고 흰 쥐와 검은 쥐, 연못과 칡넝쿨, 또 꿀물이 주제로 되어 있는데 인간의 적나라한 한계상황을 떠올리면서 그 속에서 자심의 능력으로 자신을 구제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코끼리에게 쫓기다가 문득 발견된 연못 가운데 서 있는 나무와 칡넝쿨을 잡고 코끼리를 피해 있을 때 연못 가운데에서는 네 마리의 독사가 기다리고 있었고 잡고 있는 칡넝쿨은 흰 쥐와 흑쥐가 서서히 번갈아 썰고 있었기 때문에 사나이는 사방을 통해서 탈출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이때 굶주린 공복을 채우는 꿀물이 입안을 통해 스며들자 사나이는 네 마리의 독사와 코끼리 그리고 흰 쥐와 흑 쥐를 잃어버리고 만다. 여기서 코끼리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무상과 시간을 비유한 것이고 백 쥐와 검은쥐는 낮과 밤을 네 마리 독사는 인간구성체인 [물, 바람, 불, 흙] 四大를 비유한 것이다. 꿀물은 인간이 일상을 통해서 자기 낭비의 요인이 되어 있는 오욕락을 비유한것이다.
白龍城은 이와같이 극한적 한계상황에 놓여 있을 때 수행자는 어떻게 하겠는가 근본적 의미와 해답을 물은 것이다.
이때 만공선사는 [昨夜夢中事]라고 가볍게 대답하였고, 慧峰은 [다시 부처가 부처를 지을 수 없다]고 하였다.
慧月은 [알래야 알수 없고 모를래야 모를 수 없는 念得不得이다.]
古峰은 [아야 아야]
란 대답으로 각기 자기 개인에게서 흘러나오는 육성을 그대로 전하였다 그러나 田崗은 위에 인용한 시구로 [안수정등]이 갖고 있는 의미를 분석 해체하고 자기 나름의 소견을 피력하였다. 이것은 田崗이 견성체험을 통해서 얻어진 자기 내면을 우리에게 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선이 지니고 있는 세계나 오도적 개안의 시적 현실은 우리가 흔히 일상생활에서 말하는 현실과 다르다는 것을 자각케 해주고 있다. 田崗의 시적 현실은 內心自證을 통해서 체득된 선적 이미지의 현실이란 것을 명증하게 떠올려 주고 있으며, 그리고 田崗은 시인들이 평범하게 떠올려주고 있으며 그리고 田崗은 시인들이 평범하게 언어와 감각으로 발굴해 놓을 수 있는 가치를 자아의 실존과 관계를 지어 미적효과를 창조하고 일상인이 상상력으로 도달할 수 없는 의미를 던져 주고 있으며 평범한 언어를 부정하면서 불립문자와 불가해의 존재를 건설하여 우리에게 깨달음으로 유도하는 분위기를 제공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선이 언어란 기능을 차용하고 있을 때 본질적 상황에까지 의식을 확대케 하는것이 선적 역할이란 것을 田崗은 자각케 하고 있다. 선사는 그래서 견성을 하므로서 자아확인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확대시켜 宇宙와 동일한 세계임을 확인한다.
田崗의 견성순례
田崗은 해인사에 출가를 하였지만 해인사에서 개오를 얻지 못했다. 해인사는 田崗에게 개오의 입문처였고 직지사 선원이 무명을 불태우게 하는 개안처였다. 그가 팔년동안 두문불출하며 자기 손으로 장작을 쪼개듯 자기의 허상을 낱낱이 파괴해 버린 상태에서 直我의 행방을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게 하고 있다. 그것은 달마의 9년 면벽과 비교되고 불타의 육년 고행과 결산의 의미를 같이 하고 있다. 이때 田崗의 나이는 24세였고 경허, 만공 , 혜월, 한암 등 기라성 같은 개안자들이 자기 가풍을 진작하고 있을 때 田崗은 흙을 쫓는 개새끼가 아니라 사람을 무는 한 마리의 건강한 사자였다. 이때 田崗은 오도적 횡포는 부처와 조사를 죽이고도 후회가 없을 만큼 자존과 자족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田崗은 경허, 만공 , 혜월, 혜봉 등을 찾아 다니며 부처를 알고 있는 선사들인가 철저한 시험을 감행하였다.
당시 麻谷寺 아래 구암리의 토굴에 주석하고 있던 慧峰을 찾아 대뜸 [조주의 無字 無旨는 천하 선지식도 반쯤 이르지 못했습니다. 스님께서 참으로 진실하게 일러 주십시요.] 하고 대들었다.
[無]
혜봉은 지그시 눈을 감고 [전강]의 호이포를 [무자]한 마디로 받아 넘겼다.
[그것은 반쯤도 되지 않읍니다.]
[그러면 전강이 말해 보라.]
전강도 [無]라고 하였다.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서로를 확인하였다.
한번은 漢岩노사를 찾았다. 한암은 전강의 자만을 익히 알고 있었다.
[어떠한 것이 본래 無一物인가?]
田崗은 손벽을 세 번 치며 문밖을 나가자 과연 사람을 물고 다니는 사자이군. 한암도 기뻐하였다.
그는 수덕사 金仙臺에 있는 만공을 찾았다.
[부처님은 계명성을 보고 오도를 했지 않는가? 자네는 저 많은 별 중에 어느 별을 보고 깨닫겠는가?]
田崗은 만공앞에서 짐승마냥 엎드려 땅에서 물건을 찾는 시늉을 해보였다.
[부처도 훔치고 祖師도 훔칠만 하다 착한 자여.]
佛祖未曾傳(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아역무소득)
此日秋色慕(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원소재후봉)
佛祖가 못전한 것
나 또한 얻음 없네
이 날은 가을빛도 저물어 가는데
뒷산 봉우리에 원숭이 울음소리.
만공은 훌륭한 법제자를 만났다는 기쁨으로 전강에게 위와 같은 傳法偈를 주었다. 전법의 의미는 스승과 제자의 윤리적 관계를 맺는데 그치는것이 아니라 중생과 부처를 한데 묶어 위상이 없는 일체화를 이루는 의미를 갖는다.
중생의 心田에 불의 원초적 의미가 내재해 있음을 서로 확인해 주는 일이 사제가 할 일이다.
만공과 전강은 전법의 윤리적 관계를 맺음으로서 덕숭산을 중심해서 이루어진 경허와 만공의 가풍을 전승한 사람이 되었고 아울로 전강은 수행자로서 화려한 출발은 하게 되었다.
오늘날 禪家(선가)에서 가장 위대한 선지식을 자적이라 하면 수행자는 서슴없이 전강을 떠올리는 것도 바로 이러한 관계에서 이루어진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전강은 이후 통도사 조실, 범어사 조실 ②無門關(무문관) 조실, 望月寺, 龍洙寺, 仁川 法寶院 조실 등을 역임하면서 한국선종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누구보다 화려한 이력을 가질 수 있었다.
九歲小林自虛淹(구세소림자허엄)
爭似當頭一句傳(쟁사당두일구전)
板齒生毛猶可事(판치생모유가사)
石人踏破謝家船(석인답파사가선)
구년 동안 小林에서 면벽만 하고 있었으니
어찌 머리를 맞대고一句을 전한 것만 같으리요
판치에 털이 솟는 것도 신기한 일인데
石人은 謝家에 배를 밟고 지나간다.
田崗이 일생동안 사용한 화두이다. 板齒生毛(판치생모)를 田崗이 오도적 도구로 사용한 이면적 배경은 잘 알 수 없지만 그는 이 화두를 즐겨 사용하였다. [조주]가 개에게 불성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한마디로 없다고 부정해 버리듯이 田崗은 [판치생모]를 諸佛諸祖(제불제조)의 면목이라고 생각하였고 불타가 이룩한 자유스런 自性(자성)공간에 도달하는 통로라고 그는 우리에게 수 없이 강조하였다. 이러한 田崗은 이제 가고 없다. 무명으로 더럽혀진 수행자의 가슴에 지혜의 돌맹이를 던지고 미오의 기로에서 방황하는 선객들에게 시퍼런 칼날을 휘두르고 몽둥이질을 하던 田崗이 가고 없다. 그는 입적하기전 [나의 몸에서 舍利를 수습할려고 하지 말라 육체를 태워 西海에 뿌리고 말아라.]하고 仁川 法寶院에서 눈을 감고 말았다. 불치의 병이 田崗을 점령한 것도 아니고 다만 자기를 버릴 때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田崗은 우리에게 껍데기를 벗는 이완동물 처럼 육체를 버리고 말았다. 진아의 주체인 자성은 육체를 유지하고 있을 때 부자유스럽지만 육체를 떠나 있을 때 참으로 자유스러워진다.
화장을 하던 날 그의 몸에서 참으로 화려한 불빛이 일어났고 70년을 지탱한 불빛은 갯벌에 나타난 한마리의 게처럼 서해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田崗의 몸 전체를 움직이게 하던 바란기는 서해안에서 돌아온 소금기에 젖어 있는 바람과 어울려 田崗의 자성을 따라가고 있었다. 仁川 앞바다에 나아가 타고 남은 뼈가루를 뿌리고 돌아오며 참으로 진실한 田崗의 법신이 어데 있을까 하고 물었을 때 山川은 수만개의 눈을 뜨고 있었고 하늘에 새 한마리가 서쪽으로 가고 있었다.
註 ① 舍利(사리) : 身骨 ‧ 遺身 ‧ 靈骨이라고도 한다. 사리에는 다보불과 같이 전시이 그대로 전시사리와 석가불의 사리와 같이 몸에서 나온 낱알로 된 쇄신사리, 여래가 멸도한 뒤에 전시사리나 쇄신사리를 남겨두어 人天이 공양케 하는 생신사리와 대승 ‧ 소승의 일체 경전을 법신 사리라 한다. 본래는 신골이나 주검을 모두 사리라 하였는데, 후세에는 화장한 뒤에 나온 작은 구슬을 모어으로 된 것만을 사리라고 한다.
② 無門關(무문관) : 여러 禪錄중에서 公案四八칙을 뽑고 각각 拈提(념제)와 頌(송)을 붙인 것, 또한 서울 도봉산 천축사에 있는 선방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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