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초대석(이은화 시인)
‘타인과 나’ ‘사회와 나’와의 관계성을 담은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 출간한 이은화 시인
-본인 소개
서울예술대학을 졸업한 저는 그곳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할 때가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때는 시가 무엇인지 몰라 별과 달 그리고 바람까지도 시에 담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니까요. 이후 2010년 계간지 『詩로 여는 세상』으로 등단한 저는 20년 가까이 학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번 첫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를 출간하기까지 헤진 시간을 깁고 덧댄 시편들로 제 소개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첫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를 소개하면?
이 시집은 ‘타인과 나’ 그리고 ‘사회와 나’라는 관계성에 대한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매 순간 자유의지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노력할수록 상처받는 현대인들의 모순적 삶과 부조리한 현실을 조명합니다. 시집 속의 아웃사이더로 밀려나기를 거부하는 춤과 노래는 마리오네트의 실처럼 타인들의 관계와 연결되어 있지요. 이로 인해 사회적 관계를 끊거나 거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누구이며, 우리의 주체적인 삶은 왜 부자유한가에 대한 실존적 물음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첫 시집을 내게 된 소감
1월에 나온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에 대한 흥분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 기쁨은 책을 출간하기까지 응원하고 지지해준 분들의 고마움이 담긴 결과물입니다. 학원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집필을 게을리할 때 시간 속 글도 함께 늙는다며 이윤학 시인과 ‘시계제작소’ 동인들이 저를 마리오네트처럼 각성시키고 일깨워 주었으니까요. 무엇보다 학원에서 은거하듯 생활하는 제게 이번 시집 발간은 고래가 바다 위로 점프하며 물뿜기를 하는 행위와 유사합니다. 큰 호흡과 소통의 포물선을 그리는 시작이랄까요.
-시 공부는 어떻게 해왔는지?
초등학교 4학년 때 장래 희망을 ‘시인’이라고 발표하자, 누군가 내뱉은 ‘귀신이래’라는 말 한 마디에 제 별명은 ‘귀신’이 되었고 놀림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당시 시골 초등학교에서 시인은 낯선 단어였던 것 같습니다. 그 꿈을 28년 만에 이뤘습니다.(웃음) 저의 시 쓰기는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며 많이 배웁니다. 날카로운 감각의 함축적 묘사와 추상적 관념의 구체화 또는 제재를 환유로 치환하는 등 내재적 관점에서 간접적 시 쓰기가 되었는지 체크하곤 합니다.
-이번 시집을 읽으실 분들께 팁이 있다면?
4부로 묶인 시집은 병풍에 계절을 옮기듯 서로 결이 다른 편들로 묶었습니다. 전반부는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마리오네트 움직임처럼 순응적 삶에서 오는 좌절 그리고 후반부는 유년의 아름다움과 상실감에 이어 에로시티즘의 이미지 변주를 통한 자기연민입니다. Beauty Life 독자 여러분께서 제 시집을 만나게 된다면 이 시집의 주제가 담긴 20쪽과 개인적으로 제 내면의 형상을 빚은 44쪽을 읽어주시길 청합니다. 44쪽은 라스베가스 어느 시골 맥도날드에서 노부부의 식사 모습을 훔친 모티브입니다.
-애착이 가는 시 한 편 소개
국수掬水
달을 품고 걸어본 적이 있다
달의 면은 늘 붉은 이유로 생각은
자주 충혈 되었다
사는 동안 안전한 직장과
꽃밭과 아늑한 방을 가져본 적 없는
세월 속 사소한 기쁨마저 불안한
안개로 내려앉았다
우리라고 믿던 이들은 여러 얼굴을
가진 이유로 웃음과 돈 뒤로 숨곤 했다
늦은 깨달음을 다독이면 달의 면이
쉽게 붉어졌다
함께 걸었으나 혼자 남은 안개 숲
명치 끝 멍울을 풀기 위해
절창을 피우던 계절을 품은 적이 있다
움켜쥐려던 물들은 빠져나가고
몸 안에는
뭉클한 달들만 떠 있어
가끔 회전문에 갇혀 사라질 때가 있다
-앞으로의 계획
Break News에 실린 이인철 시인의 인터뷰 기사에서 ‘부자는 자신이 쓰고 싶은 시간이 충분한 사람이’라고 답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 기사 내용에 크게 공감했습니다. 그동안 학원에 갇혀 생활하며 사람들의 관계와 시에게서 제가 이방인으로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먼저 저를 위한 시간을 확보한다면 그 시간을 오롯이 시 쓰기와 저를 만나는 일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가끔 일 속에서 제가 지워지는 느낌이 들 때 시를 만나는 일은 저를 비추는 거울이며 곧 일상적 자아이기 때문입니다.
-뷰티라이프 독자들께 한 마디
현대의 미적 관점은 다양합니다. 과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美’는 우리 삶에 유리될 수 없는 어휘입니다. 예술을 뛰어넘을 수 있는 유일함이 사랑이라면, 아름다움을 뛰어넘을 수 있는 유일함은 무엇이 있을까요. ‘美’란 국한적인 의미로는 개인의 정원과 같습니다. 이 정원을 가꾸는데 있어 창의적인 삶을 경작하는 분들이 많길 희망합니다. 자본주의의 실상은 우리 노력의 속도보다 변화가 빠릅니다. 그러기에 노력할수록 상처받는 분들이 많지요. 이런 사회 구조 안에서 우리는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키워드를 찾아야합니다. 무용한 것에도 감사가 생길 때쯤이면 우리의 삶이 안빈낙도를 걷고 있지 않을까요.
<뷰티라이프> 2025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