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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공주의 미모에 대한 온갖 상찬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지만, 황홀공주의 아름다움도 이 여인의 세외적이고 초탈적인 면모에는 미치지 못할 것 다는 느낌이, 다시 일한의 가슴에 강렬하게 몰려왔다.
“열한 시 정각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녀가 시계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아, 지금 시각이 열한 시가 훨씬 넘고 열한 시 반이 다 되어 가요.”
김일한은 전자수첩을 꺼내 확인했지만 문자메시지 같은 것은 도착하지 않았다.
‘그럴 분이 아닌데? 이상하다···?’
김일한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둘이 어색하게 서 있는데, 여인은 현장을 속히 떠날 맘이 없는 것 같다.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정오 가까이 되고 말았다.
“그 분이 오시지 않으려나 봐요. 그냥 오늘 저를 도와 저번 날에 호흡기도를 했던 그 곳에 가시는 게 어때요?”
“좀 더 기다려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저도 기다려 볼 게요.”
“네? 네, 그러시든지요.”
김일한은 그녀가 싫지 않았으므로 그냥 가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정오가 넘었는데도, 황홀공주는 나타나지 않는다. 김일한은 전자수첩을 꺼내 루비 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네, 루비 운이에요. 무슨 일이시죠?”
“열한 시 정각에 사해제일관 앞에서 여기서 만나 뵙기로 했잖아요?”
“네. 그럼 혹시 아직 만나지 못하신 거예요?”
“그렇습니다. 제가 약속된 시각의 한 시간 전부터 여기서 기다렸는데 오시지 않았습니다.”
“아, 이런! 어쩌죠? 시간에 맞춰 나가시는 것을 저희가 목도했거든요.”
“혼자 가셨습니까?”
“네.”
루비운이 대답하며 약속한다.
“정말 죄송해요. 제가 연락을 취해 본 후 공자님께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래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일한은 황홀공주를 기다리면서 자신과 두 번째로 만난 이 소녀의 자태를 이제야 눈여겨보니, 위아래 연분홍 투피스 스타일인데, 얼굴과 잘 어울려 매우 고상해 보였다. 굽이 높은 구두를 신어서인지 키도 훤칠하게 커 보인다.
그녀는 먼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선녀가 하강해서 하늘을 그리는 것 같다는 착각에, 김일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환영幻影도 유분수지, 이런 엉뚱한 상념도 떠오르다니.’
그 때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저 김일한입니다.”
“아, 네, 정말 죄송합니다.”
루비 운의 목소리다.
“저희 공주마마께서요, 혼자 마차를 타고 가시다가, 마차에서 내리는 순간 발목이 삐끗해, 도저히 걸을 수가 없어서 마부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급히 병원으로 가셨답니다. 괜찮으시다면, 응급 처치 후 1시 반까지 다시 그리로 가신답니다.”
일한은, ‘그렇다면 왜 미리 연락을 취하지 않았느냐?’는 반문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겸손히 대답했다.
“아, 뭐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발목을 다치셨다면 걷기 곤란하실 터인데, 그냥 치료를 받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 말씀드렸더니, 한사코 1시 반까지 갈 터이니 공자님께서 꼭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과 함께. 있다가 만나서 정식으로 사과를 드린답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기다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김일한이 기다리는 여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저, 아가씨. 그 분이 급한 사정이 생겨서 1시 반까지 오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그냥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럼 토요일에 뵙겠습니다.”
“거긴 위험하니까, 아가씨, 가지 마시고 꼭 집으로 돌아가세요.”
김일한이 진심으로 우려어린 표정을 지으며 부탁했다.
“네, 고맙습니다.”
그녀를 보낸 후 김일한은 길가에 우두커니 서 있기도 어색해서, 다시 사해제일관 경내로 들어갔다.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사해제일관을 재건할 방안이 없을까 궁리해 보았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시간에 맞추어 1시 20분에 정문 밖으로 나왔다. 이번에는 전과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 인적이 드문 쪽으로 뛰어나왔다.
잠시 후 마차 한 대가 사해제일관 정문에 도착하고, 아름다운 의복을 걸친 어느 처자가 마차에서 내리는데, 다리가 약간 불편해 보인다. 그녀는 머리에 아름다운 모자를 깊숙이 눌러 쓰고 있었고 얼굴에는 큰 마스크를 착용했을 뿐만 아니라, 바깥쪽에서 투시되지 않는 커다란 안경까지 걸쳐 얼굴 전체를 완전히 가리고 있었다.
김일한은 예감에 황홀공주가 남의 이목을 피하고자 일부러 그런 차림으로 나온 것 같아 다가가 물었다.
“혹시···?”
일한이 입을 열자마자 그녀가 자기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댄다.
“아, 안녕하세요? 다리도 불편한데, 제가 너무 죄송합니다.”
김일한의 인사에 그녀가 대답하는데, 구화口話가 아닌 수화手話다. 김일한은 난감했다. 수화는 어느 정도 알긴 하지만,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에요. 제가 할 소리를 공자님께서 하시네요. 제가 백배 사죄드리겠어요.”
그녀가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한 차례 절한 후, 갑자기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그에게 큰 절을 올린다. 소스라치게 놀란 김일한은 엉겁결에 자신도 역시 길바닥에 엎드려 맞절을 올렸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별 희한한 광경을 다 본다는 듯, 힐끔힐끔 쳐다본다. 김일한이 고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는데, 그녀는 아직까지 상체를 일으키지 않고 엎드려 있다. 김일한은 놀라서 다시 엎드렸다.
한참 후 그녀가 일어서는 기색이 보이자 김일한도 같이 바닥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이런 처사가 김일한으로서는 너무 괴팍하게 생각되었다. 그녀가 일어서서 수화로 말했다.
“제 목이 착 가라앉아서 소리가 나오질 않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수화를 아시나요?”
“예, 조금 압니다.”
“제가 사죄하는 의미에서 우선 점심식사를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기다리시느라 배가 고팠죠?”
“괜찮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만나자 하셨는지요?”
“그냥이에요. 그냥 오늘 하루는 공자님과 단 둘이 함께 지내고 싶었습니다.”
“저를 좋아하시나요?”
김일한이 갑자기 생경한 질문을 던진다.
그녀가 다소 놀란 듯 일한을 쳐다보다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네, 좋아해요. 하지만, 후보 공자님들 모두를 똑 같이 좋아한답니다.”
그 때 일한의 뇌리에 번개처럼 스치는 게 있었다.
‘아, 이건 하루 종일 걸리는 개인면접 시험이구나. 괜히 왔군.’
“혹시 괜히 왔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녀가 손을 들어 수화로 말한다.
“아, 아닙니다!”
김일한의 황급한 대답에 무엇이 우스운지 황홀공주는 연신 웃는다.
“혹시 잘 아는 음식점이 있나요?”
황홀공주가 물었다.
“근사한 곳으로는, 황홀객잔 외에 아는 데가 없습니다.”
“그럼 거기로 갈까요?”
“네, 좋을 대로 하시죠.”
“황홀객잔엔 자주 가보셨나요?”
“몇 번 가보았고, 지금도 거기서 머물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그러지 말고 도시락을 사서 여기 백악산공원으로 소풍을 가는 게 어때요?”
“그것도 좋습니다. 공주마마 좋을 대로 하십시오.”
“쉿!”
그녀가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는 시늉을 한다.
“오늘은 저를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그럼 뭐라고 부를까요?”
“그냥 중국식으로 평범하게 메이뉘美女(아가씨) 아니면 소저小姐(아가씨)라 불러주세요.”
“잘, 알겠습니다.”
“실수하지 않도록 꼭 조심해 주세요.”
그녀가 일한에게 신신당부한다.
두 사람은 근처의 도시락판매점으로 향했다. 일한이 그녀의 거동을 보니, 아무래도 다리가 약간 불편한 것 같아서 물었다.
“저, 죄송한데요, 소저, 제가 부축해드려도 괜찮을까요?”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에요. 그래주시면 너무 고맙겠어요.”
일한은 곁으로 다가가 왼팔로 그녀의 오른팔을 살짝 잡았다. 그녀가 오른 팔을 빼어 오히려 일한의 왼팔을 붙잡는다. 누가 보면 영락없는 연인의 모습이다. 일한은 그녀의 보조에 맞추어 천천히 걸었다.
고급 도시락 두 개와 물을 사는데, 일한이 요금을 결제하려 하자, 그녀가 먼저 재빨리 계산한다.
일한은 그녀를 부축해서 백악산공원으로 올라갔다.
‘이게 도대체 무슨 꼴이야?’
황홀공주 같은, 신분이 고귀한 여인과 함께라지만, 일한은 자기 속에서 투덜거림이 나오려 함을 감지했다. 하지만 이것도 좋은 기회라고 여겨져 마음을 고쳐먹고 오늘 오후 내내 그녀에게 최대한의 친절을 베풀기로 결심했다.
가는 동안 그녀는 말이 없다. 김일한은 일전에 갔던 그 장소, 방금 전 만난 그 천사 같은 여인과 함께 호흡기도를 했던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호젓한 그 공간을 미리 점유한 자는 없었다.
잠시 묵도를 올린 후 두 사람은 도시락을 펼쳤다. 그녀는 몸을 돌려 앉은 채, 마스크를 약간 젖혀 올리며 음식을 먹는다. 김일한은 그 꼬락서니가 한심스럽게 생각되었으나, 일부러 그녀를 바라보지 않고 음식 먹기에만 열중했다.
식사 도중 곰곰 생각해보니, 김일한은 자신들의 이 광경이 참으로 희한하기 짝이 없었다. 두 사람만의 데이트 아니, 일대일 데이트 면접이라면, 군중이 많이 모이는 화려하고 멋진 장소에서 웃고 떠들고 즐겨야 할 것 같은데, 이런 외진 곳에서 둘이 도시락을 까먹고 있다니. 그것도 서로 돌아앉아서.
한편으로 웃음이 터져 나오려 하는 걸 애써 참았다.
식사 후에 황홀공주가 수화로 물었다.
“공자님은 혹시 종교를 가지고 계신가요?”
“네, 크리스천입니다.”
“어머나, 저하고 똑같네요. 믿은 지는 오래 되셨어요?”
“모태 신앙이라서 그저 어영부영입니다.”
“그렇군요. 여기서 대화 좀 나누어도 될까요?”
“오늘은 소저께서 시험관이고 저는 응시생이니까, 소저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호호호! 오늘의 만남의 의미를 벌써 파악하셨군요. 근데, 공자님은 저와 혼인하실 의향이 전혀 없다면서요?”
“네.”
“그럼, 시험관과 응시생의 관계는 아니겠네요.”
“듣고 보니, 그 말씀도 옳은 거군요.”
“근데 왜 뭇총각들이 우러러보는 황홀공주와 결혼하실 의향이 없는지, 여쭈어봐도 괜찮을까요?”
“괜찮지 않습니다. 묻지 마세요.”
일한이 단호하게 잘라 말한다. 황홀공주는 잠시 멈칫 하다가 용기를 내었는지 직설적으로 다시 묻는다.
“혹시 사귀는 여자친구나 맘에 드는 여성분, 아니면 결혼하실 상대자라도 있는가요?”
“결혼상대도, 사귀는 여자친구도 현재로서는 없지만, 맘에 드는 여성분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언감생심, 저 같은 사람이 쳐다볼 나무가 아닙니다.”
일한은 ‘에라, 이판사판이다’ 생각하면서 솔직하게 터놓았다.
“어머나! 그 여성분은 행복하시겠어요. 공자님 같은 분에게 호감을 얻으셨다니.”
“공주님은 제가 맘에 드시나요?”
일한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묻는다.
“네. 지금까지는요. 근데 공자님의 배우자상은 어떤 거예요? 저같은 사람을 싫어하시는 것 같으니.”
“공주님은 제가 결혼상대자로서,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또 고려하고 싶지도 않은, 그런 놀라운 분입니다. 제 말뜻을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잠시 끊었다가 일한이 말을 잇는다.
“저는 그저 단순 소박 우직 평범한 여자, 정직 진실 순결 정숙한 여자가 좋습니다.”
“얼굴은요?”
“보기에 역겨울 정도만 아니면 되겠죠.”
“그런 여자를 만날 수 있을까요?”
“못 만나도 할 수 없죠.”
그 밖에도 그들은 결혼관에 대해, 신앙에 대해, 무예에 대해, 기타 다양한 주제를 놓고 장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어느 사이엔가 서쪽 하늘로 해가 크게 기울어져 있다.
“이제 하산할까요?”
공주의 말에 김일한이 그녀를 부축하자 그녀는 올 때처럼 자신이 스스로 일한의 팔에 팔짱을 끼며 왼손으로도 일한을 붙잡고 의지한다.
“저녁식사는 근사한 양식집으로 가서 할까요?”
황홀공주가 두 팔을 떼어 수화로 먼저 물었다.
“네, 좋습니다.”
황홀공주가 마차로 인도한 곳은 황궁에서 그리 멀지 않은, 북부에 속한 지역이었다.
리을성은 “ㄹ”자 모양의 속말수를 안에 품고 있는 성으로서, 방위에 따라서 ㄹ 자 공간 속의 위쪽을 북부, 아래쪽을 남부라 한다.
리을성의 모든 가옥은, 크든 작든, 단층이든 2층, 3층 건물이든 외관이 기와를 입힌 전통 한옥이다. 날렵한 용마루와 웅장한 구조 및 현란한 장식은, 중국의 투박한 전통가옥이나 일본의 오밀조밀한 옛 건물과는 다른, 특유의 한옥미韓屋美를 선사한다.
드넓은 대지 안의 삼층 한옥은, 김일한이 들어가 보니, 최신 인테리어를 갖춘 양식집이었다. 손님들이 북적거린다. 황홀공주와 김일한이 들어갈 때 그들에게 유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두 사람은 종업원의 안내에 따라 이층으로 올라갔다. 전망 좋은 곳들은 이미 다른 손님들이 점유하고 있어서, 두 사람은 중앙 부분의 테이블에 앉았다.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에는 칸막이로 약간의 비밀 공간이 형성되어 있었다.
실내에는 우아하고 아늑한 조명과 아울러 차이콥스키의 음악이 애잔하게 흐르고 있었는데, 처음 착석했을 때 느낌이 그리 좋지 않았다.
‘음식점에 왜 하필 이런 음악이야?’
음식을 주문하고 조금 지나자 실내 음악의 분위기가 아주 새롭게 바뀐다. 헨델의 “왕궁의 불꽃놀이”가 연주되기 시작하더니, 이내 곡이 변경되어 유명한 “메시아”가 선율을 천정과 좌석 사이로 날린다.
김일한은 딱히 할 말도 없어서 그저 음악이나 감상하며 음식 먹기에 여념이 없다. 황홀공주 역시 별 말이 없고, 먹기에만 열중한다. 식사가 끝나자 커피를 마시면서 황홀공주가 물었다.
“공자님은 음악을 좋아하시나요?”
“네.”
“무슨 음악이요?”
“동서고금의 것들을 두루두루 좋아합니다.”
“지금 연주되고 있는 음악이 뭔지 아세요?”
“헨델의 ‘메시아’ 가운데 베이스의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라’라는 부분 같은데요?”
“공자님은 정말 자세히 알고 계시군요.”
“서양음악에 약간의 관심이라도 있다면, 그 곡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거듭 물었다.
“제가 듣기로 공자님은 수만 권 독서가라 하시더군요. 공자님이 지금까지 읽으신 책 중에서 정말 감명 깊었던 것 하나만 소개해주시면 안 될까요?”
김일한이 빙긋 웃는다.
“안 될 건 없죠.”
그가 고개를 들어 천정을 쳐다보았다.
“감명 깊었던 것들이 너무 많아서, 음, 뭐가 적합할까? 딱딱한 학문서적들은 제외하고 좀 감각적이고 감동적인 작품들로 말씀 드릴까요?”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다가 돌연 탄성을 발한다.
“맞다! 바로 그거다. 그게 좋겠어요. 혹시 소저께서도 읽어보셨는지 모르겠군요.”
“뭔데요?”
“두 권인데요, 하나는 성녀 젬마의 전기이고 다른 하나는 20세기와 21세기에 살았던 우리나라 인물의 작품인데 <연연세세 모란화야>라는 소설입니다.”
“어느 것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어요.”
“양자 가운데 어느 것을 들려드릴까요?”
“둘 다요.”
“그럼 먼저 성녀젬마의 전기를 꺼내죠.”
“네!”
그녀가 열정적인 수화로 대답한다.
“그녀는 19세기 말에 태어나 20세기 초에 별세한 이탈리아 출신의 가톨릭 신자였는데, 스물다섯의 꽃다운 나이로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어머나!”
“그녀는 아주 부유한 집의 딸로 태어났으나 어릴 적에 가정이 파산해 남의 집에서 식모처럼 살았다고 합니다.”
“안타깝군요.”
“근데 그 주인집의 사람들은 그녀를 몹시 존경했답니다.”
“왜요?”
“그녀의 행실이 극히 순결하고 거룩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사랑과 섬김이 너무나 정성스러웠대요.”
황홀공주가 고개를 끄덕인다.
“특히 그녀는 일을 할 때도 늘 무언가에 홀린 사람 같았는데, 일은 조금의 실수도 없었다고 합니다.”
“뭐에 홀린 건가요?”
“스물네 시간 내내 그녀는 오로지 자신이 그토록 그리워하고 연모해 마지 않는 하늘임금님께 집중하고 있었답니다.”
“오, 그래요?”
“한번은 장부계산을 하느라, 하늘임금을 깜빡 잊었답니다. 나중에 이것을 깨닫고 회개했대요.”
황홀공주가 웃음을 터뜨린다.
“어떤 경우에는 일을 하거나 길을 가다가, 입신入神에 들기도 했는데요,”
“어머, 좋겠다!”
황홀공주가 부러운 듯 대꾸한다.
“그녀가 입신에 들 때는 얼굴이 약간 위로 쳐들리고 두 눈을 뜨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해맑고 아름다운지, 보는 이들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해요.”
(다음 회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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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2026. 10. 30. 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