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가려졌던 실미도 ( 實 尾 島) (silmido)
면적은 7만 5870평, 둘레는 6km 이다.인천광역시에서 남서쪽으로 20km정도 떨어져 있으며 영종도( 永宗島)인천국제공항 바로 아래쪽 무의도(舞衣島)와는 하루 2번 썰물때 갯벌로 연결된다. 섬 대분의 해발고도는 80m이하의 야산으로 이루워져 있고, 해안은 모래와 갯벌로 뒤 섞어 있다.
1968년 (32년전) 북한의 무장 게릴라들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 세검정 고개까지 침투했던 1.21사태에 대한 보복으로 당시 중앙정보부가 창설한 북파부대원 31명이 3년 4개월동안 지옥훈련을 했던 뼈아픈 장소이기도 하다.그러나 이 북파 부대원들이
1971년 8월 23일 실미도를 탈출하여 버스를 빼앗은 뒤 서울로 진입했다가 자폭한 실미도 사건 이후에도 이섬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실미도 북파공작원의 실상을 파헤친 백동호씨의 소설 (실미도) 가 1999년 발표 된 뒤, 이 소설을 원작으로 각색한 강우석 감독의 동명영화 (2003년12월개봉)가 개봉 58일 만에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32년간 베일에
가려 있던 실미도의 역사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아직도 북파 공작원들의 최종목표로 삼았던 김일성 주석궁과 평양 시가지의 축도등 당시의 훈련장 흔적을 엿 볼 수 있다. 지금은 주말이면 영화 촬영 장소를 둘러보고, 역사의 현장을 직접 느껴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실미도를 찾는다. 이웃 섬 무인도에는 실미도 해수욕장이 있는데 ,실미도와 이어 진다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였다.
" 실미도 사건 생존자 있다"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 .....가사중.
684 북파부대 이름도 없었다. 존재도 없었다. 살려둘 이유도 없었다. 32년을 숨겨온 진실... 이제는 말한다.
684부대는 1968년4월 창설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정식 명칭은 2325 전대 209 파견대였다.)훈련병 31명이 훈련도증 이런 저런 사고로 7명이 숨지고 21명이 난동범들이고 나머지 3명은 ?????
mbc 방송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에서 당시 특수부대 소대장으로 마지막까지 남아있다 살아남은 김방일씨, 그동안 실미도에 대하여 드러나지 않은 새로운 사실들이 그를 통해 알게 되었다.
60년대 말 김신조사건 이후 대북 보복 침투를 위해 비밀에 만들어진, 이른바 실미도 부대 사람들. 71년 8월 부대가 위치한 서해상의 실미도를 탈출해 인천에서 버스를 탈취한 뒤 서울 한 복판까지 진입했던 이들 특수요원은 대북침투를 위해 조직된 만큼 말투도
옷차림도, 오리지 북한식으로만 훈련됐다. 그러나 상상을 초월하는 지옥훈련과 불안감을 이기지 못한 이들이 반란사건을 일으켰다가 서울 노량진 유한양행 앞에서 자폭하거나 군사재판에서 전원 사형당했다.
그런데 최근 당시 훈련병들 중 생존자가 남아 있다는 증언이 나와 군 관계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최근 실미도 사건을 묘사한 소설 ,실미도,를 펴낸 백동호씨가 주인공. 전과자 출신인 백씨는 자신이 교도소에서 만난 , 소설 ,실미도, 의 주인공 강인찬(가명) 가 실미도 훈련병 중 생존자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백씨는 이 인물의 증언을 토대로 2년간의 취재를 통해 실미도 사건의 진상을 복원해 냈다.
실미도 특수부대는 당시 권력실세였던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대북 공작책 제1국장 이철희에 의해 만들어졋고 부대관리와 훈련은 공군이 맡았다.
71년 8월23일 난동 당시 총알을 피해 살아남은 기관요원은 모두6명, 변소간에 숨어거나 메트리스에 몸을 숨겨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이 사건은 이데오르기 시대 한반도 역사의 씻을수 없는 모욕으로 남아있다. 30년전 실미도에서는 데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가??
당시 생존자 강인찬(가명)은 "실미도 영화" 에서 기관병으로 특수부대요원들의 반란 당시 변소간에서 몸을 숨겨 목숨을 건진 주인공이다.
조국의 부름에 목숨을 걸고 응답한 청년 기관병들과 분단 조국이 내몰았던 사지의 땅에서 자기 자리를 찾기 위해 울부짖으며 죽어간 서른 한 명 훈련병들의 영혼이 영면 하길 바란다.
역사의 뼈 아픈 현장 실미도 한 번 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영생 산악회 회원들과도 .....
@ 잠진도 선착장에서 불과 직선거리 약 50 여m, 큰무리 선착장까지는 약 400여 m, 그러나 풍량이 거세 유람선이 접안을 할 수 가 없었다. 배삵 대인 1인당 2.000원 무의도에서 실미도까지 배삵 2.000원 (썰물때는 그냥 갯벌로 갈 수 있다.)
@ 북파부대원 31명이 3년4개월동안 피를 뿌리며 지옥 훈련을했던 뼈 아픈 장소이다.
@ 실미도해수욕장(silmi Beach) 모래사장은 A 급이대요.
@ 북파부대원들의 모습
@ 북파부대원들의 실제 훈련 ..
@ 지금도 흔적이 남아 있다는 훈련장.
@ 강우석 감독의 영화 "실미도" 포스터
@ 북파부대원들의 생전 모습들...
@ 몰라. 몰라유.. 죽었다..
@ 비도 오고 해서 뭐 살 것 없나??
@ 실미도 역사의 현장 ..
@ 썰물시 실미도의 전경 71년 8월 북파부대원들이 이 곳을 통해 실미도를 탈출했던 곳!
@ 잠진도 선착장 버스는 진입했지만 30분전 접안 통제 ... 저 앞이 실미도 라는디요. 섭섭하대요...
@ 그냥 커피나 마시고 산행을 못한 아쉬움 달래며...
@ 일단 오시면 제가 실미도 안내 하죠.
@ 그냥 돌아 가는데 웬지 섭섭 ...
@ 잠진도 선착장 - 무의도 섬 - 실미도 국사봉에 가려 보이지않네요.
2009년 7월 14일 익산 삼성산악회 회원 약 70여명과 2대의 버스을 나누워 타고 역사의 현장을 ...
그러나 소낙비는 내리고 거센 바람이 불어 그저 바라보고 올 수 밖에 없었다.
실미도! 역사의 현장을 직접 보면서 추억을 담아 오려 했지만 아쉽게도 빗속에서 끓인 삼계닭만 먹고 돌아 왔어요.
@ 산행안내
산행시간 : 1코스-4시간 , 2코스-3시간
산행코스: 1(코스): 큰무리 선착장 - 국사봉(230m) - 구름다리 - 호룡곡산(245,7m) - 하나개 해수욕장 - 실미도 해수욕장 - 실미도 관광 - 큰무리 선착장 - (물때 맞춰 하산 ) 4시간
2(코스): 큰무리 선착장 - 국사봉 - 실미 해수욕장 - 실미도 관광 - 큰무리 선착장 -(물때 맞춰 하산) 3시간
도로이용: 서해안 고속도로- 영종도 약 3시간 30분
* 호룡곡산에서 국사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제법 웅장한 산세와 계곡, 숲을 헤치고 발아래 흐르는 계곡물을 밟으며 자연 의 신비함을 느끼게 하고, 국사봉에서 바라보는 서해의 장관앞에 보이는 실미도를 비롯해 실미 해수욕장이 한눈에 들어오며 가슴이 탁 트이며 시원 해진다. 그 곳엔 사슴목장과 응유초등교 /무의분교 /무의 경찰초소/ 쉼터(조망대)/ 무의보건소/실미도영화세트장/
약수터/천사의계단 영화 세트장 등이 있다.
"실미도 사건" 이데오르기 시대 한반도 역사에 씻을수 없는 모욕으로 남아있는 흔적을 볼수 있는 역사의 뼈아픈 현장!
한번 산행해도 후회는 없을 것입니다. - 문의 tel (032) 752- 4466
주의: 물때(썰물) 시간을 확인후 떠나야 할 것 같다.
사랑하는 영생 산악회 회원들과 한번 가보고 싶다...... 아 쉬운 ~~ 실미도도도도 .
아참! 실미도 산행을 주관하신 익산 삼성산악회 회장님 그리고 총무님, 일기 관계로 아쉬운 산행은 불발 이지만
그래도 즐겁고 잊지 못할 하루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삼성 산악회의 발전과 안전을 기원합니다.
총무님! 실미도 불발 산행사진 퍼 가세요. -011-9448-0832 -
후기` "실미도 산행 역사의 현장" 을 들러보고 많은 생각을 담아 영생회원님들에게 전해드리려 했는데 날씨가 훼방을 놓아 불발,
그러나 근접해서 얻은 정보와 사진 그리고 자료을 통해서 일차적으로 기고해 봤습니다
담엔 다시 갈 수 있다면 더욱 생생한 뉴-스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익주-
첫댓글 실미도는 영화로 초등학교 동창 남자애랑 봤었는데 감회가 새롭네요 감사합니다
한번은 가서 뭔가 느낄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하네요^^
좋은 정보 잘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