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공연예술제 초청작 극단 뿌리의 한윤섭 작 김도훈 연출의 조용한 식탁
공연명 조용한 식탁
공연단체 극단 뿌리
작가 한윤섭
연출 김도훈
공연기간 2014년 10월 16일~18일
공연장소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관람일시 10월 16일 오후 8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초대작, 극단 뿌리의 한윤섭 작, 김도훈 연출의 <조용한 식탁을 관람했다>
한윤섭은 아 동문학가이자 희곡작가 겸 연출가로 현재 호서예술전문학교 교수다. <만적의 난> <후궁 박빈> <아! 바그다드> <엄마. 지구랑 놀아요.> <굿모닝 파파> <조용한 식탁> <봉주르 뚜르> <이 세계 드래곤> 등의 희곡과 소설을 집필하고, 2014년 서울연극제에서 <성호가든>을 집필·연출해 탁월한 기량을 드러낸 앞날이 기대되는 연극인이다.
무대는 한 주택의 거실이다. 회백색의 벽이 무대좌우로 펼쳐지고, 하수 쪽 배경 가까이 아버지의 방, 객석 가까이 주방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있다. 상수 쪽에는 이집으로 들어오는 현관이 있고, 객석 가까이 아들 방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있다. 무대 중앙 객석 가까이 긴 식탁이 가로 놓여있고, 식탁 양쪽에 고풍스런 의자가 놓였다. 연극 전개에 따라 의자를 한 개 더 들여와 식탁 가운데, 객석을 향해 앉도록 배치한다. 천정에는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다.
식탁 위에는 유리잔과 물병이 있고, 극 진행에 따라 그리고 접시와 찻잔이 놓인다.
음악은 청명한 피아노곡을 낮게 깔아 사용하고, 종반에는 토마스 멘데즈 쏘사가 1956년에 작곡해 가수이자 영화배우인 해리 벨라폰데가 불러 세계에 널리 알려진 “쿠쿠루쿠쿠 팔로마 (Cucurrucucu Paloma)”를 까에따노 벨로스(Caetano Veloso)의 애절한 음성으로 깔아 극적분위기를 상승시킨다.
연극은 도입에 빈 식탁을 정리하며 아들이 새 어머니가 될 여인을 기다린다.
아버지가 상처를 한지 15년 만에 새 장가를 들 결심을 하고, 아들도 아버지의 재혼을 찬성한다는 설정이다. 현관문의 초인종 소리와 함께 새 어머니가 될 여인이 도착한다, 백색계열의 정장을 하고, 중절모까지 쓴 여인의 모습은
외국영화에 등장하는 미모의 명 여배우들의 모습에 뒤지지 않아, 무대가 다 환해지는 느낌이고, 관객들의 감탄과 함께 시선이 그 여배우에게 집중된다.
마주앉아 차를 마시는 아들과 새 어머니, 두 사람의 첫 대면과 대화가 시작된다. 그런데 아들은 새 어머니가 초면이 아니라는 것을 차츰 의식하게 된다. 여인도 마찬가지임을 느낀다.
아들의 사춘기 시절, 기차와 전철이 만나는 지역에 집이 있었고, 집과 그리 멀지 않은 동네에 홍등가가 있었다는 설정이다. 상처한 아버지가 퇴근하면서 가끔 주점에 들러 만취한 모습으로 귀가를 하고, 아들은 그러한 아버지를 마중하거나 기다리면서, 어느 날 아버지가 바로 그 지역의 홍등가를 출입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아들은 길 건너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쳐다보고,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홍등 아래 서있는 여인의 미모와 관능적인 모습을 황홀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여인도 자신을 바라보는 남성을 마주보던 중, 문득 길 건너에 남성의 아들인 듯한, 소년이 자신과 아버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남성은 여인의 요염한 모습에 이끌려 성매매업소 안으로 들어가고, 아들은 그 장면을 계속 지켜본다.
다음날엔가 소년은 아버지의 은행신용카드를 들고, 아버지가 출입했던 바로 그 업소를 찾아든다. 그리고 나이를 감추기 위해 자주 홍등가를 출입했던 것처럼 요즘은 얼마를 받느냐는 질문을 한다. 그리고 아버지와 관계를 맺었던 여인에게 동정을 바친다는 설정이다.
그러한 아들의 기억 속의 여인이 바로 새어머니로 등장하고, 두 사람의 대면과 대화에서 아득한 과거이지만, 상대와의 접촉사실을 기억해 내고, 발설을 못하지만 충격을 받는다. 아들이 몰래 사용한 신용카드로 인해 아버지는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비용유출문제로 우왕좌왕했던 모습이 극 중에 잠시 묘사되기도 한다.
아버지가 등장을 하고, 아들과 새 어머니가 될 여인과의 사이가 왠지 모르게
서먹서먹한 것을 의식하게 되고, 세 사람이 함께 식사를 한 후 차를 마시며, 평소 아버지가 마시지 않던 커피 이야기가 화제가 되면서, 여인이 한동안 커피 점을 운영했던 사실이 드러나기도 한다. 동시에 과거 그 지역의 홍등가와 그곳에서 성매매를 한 아들이 아버지의 신용카드로 성매매대가를 지불한 것이라는 아버지의 오랜 궁금증이 풀리면서, 아버지와 아들이 한 여인과 몸을 밀착시켰다는 것을 부지불식간에 깨닫게 된다. 대단원에서 이룰 수도 없고, 이뤄져서는 아니 되는, 아버지와 여인의 재혼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이야기와 함께, 여인의 아름다운 눈망울과 그 눈 속에 가득 찬 눈물, 그리고 여인의 쓰러질 듯 것 같은 발걸음으로 떠나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한 여인을 두고 아버지와 아들간의 사랑의 갈등은, 그것이 욕정이건 애정이건 간에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킹>이나, 라신의 <페드라>를 비롯해, 영화나 연극의 소재가 되었고, 소설가 최인훈이 <둥둥 낙랑 둥>에서 왕자호동과 낙랑공주의 사랑이 아닌, 호동이 부왕과 동시에 낙랑공주를 사랑하는 것으로 설정한 공연도, 건전한 이성을 갖고 생활하는 사람에게는 독특한 구경꺼리로 여겨져 왔기에, 영화에서는 적나라한 정사장면으로, 연극에서는 심리극적 표현방법으로 제작되고 공연되어 왔다.
한윤섭의 <조용한 식탁>도 아버지의 새 여인이자 아들에게는 새 어머니가 될 아름다운 여인과의 사이에 벌어지는 진실게임 같은 연극인데, 15년이나 된 과거에 아들이 아버지의 현금인출 카드로 매음을 했던 상대여인이 15년 후 아버지의 새 결혼상대로 등장하며, 차츰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카드의 사용처와 매음행위의 상대가 아버지의 새 여인이라는 것이 들어나지만, 진실을 발설할 수 없는 세 사람의 입장을, 아버지의 집에서 식탁을 사이에 두고, 세 명의 연기자가 철저하게 계산된 연기로 격렬한 갈등과 감정의 표출을 절제하고, 억제와 극기로 일관하며 1시간 30분을 객석에 숨 쉴 틈조차도 주지 않고 팽팽한 긴장감으로 시종일관 관객을 연극 속으로 빨아들인다.
다른 연출가 같으면 동선을 이리저리 다채롭게 구성 처리했을 것임에도 김도훈은 대가답게 독백이건 대화건, 단선으로 대범하게 처리하고, 바로 그것이 객석에 직격탄을 쏘듯 관객의 가슴에 명중되어 관객은 극 속의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상처 입은 가슴을 부여안고 귀가를 하게끔 만든다.
세 명의 연기자, 아버지 역의 한기중과 아들역의 민준호 그리고 여인역의 박리디아는 세밀한 감정까지 객석에 전달시키고, 발설은 않지만 그 결과까지 관객의 가슴에 깊은 아픔으로 심어놓는 뛰어난 연기력을 보인다.
무대디자이너 민병구, 무대감독 태준호·장준연, 조연출 신영은·이보영, 기획 아나경·조은별·박다혜, 분장 김수양, 음악 이지연, 진행 조혜진·최진호·유승철, 조명디자이너(한국공연예술센터) 이인연, 음향디자이너(한국공연예술센터) 도명호 등 제작진의 열의와 기량이 드러나, 극단 뿌리의 한윤섭 작, 김도훈 연출의 <조용한 식탁>을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초청작 수준에 걸 맞는 고품격, 고수준의 명작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10월 16일 박정기(朴精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