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이씨 과암공 이무 묘비(韓山李氏 果菴公 李무 墓碑)
보령시 대천동 387-19번지 내 600㎡ 일원에 한산이씨 조상(祖上) 분묘(墳墓) 3기와 정경부인(貞敬夫人) 문화유씨(文化柳氏) 묘(墓) 1기와 더불어 세워진 묘비(墓碑)로 과암공(果菴公) 이무는 숙종(肅宗) 연간에 대사헌(大司憲), 예조판서(禮曹判書) 등을 두루 거쳐 기로소(耆老所)에 들었던 조선중기(朝鮮中期)의 대표적인 행정가였다.
그의 조부는 영의정(領議政)을 지낸 아계(鵝鷄) 이산해(李山海)이며 묘비(墓碑)는 한산이씨 과암공파(果菴公派) 종중(宗中)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묘비(墓碑)의 소박한 조형미와 조선중기(朝鮮中期) 사대부가(士大夫家) 관직(官職)에 따른 분묘(墳墓)의 규모와 묘비(墓碑)의 형태를 알 수 있는 유적으로 보령시 향토문화유적 제4호로 지정되었다.
묘비(墓碑)의 건립(建立)은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삼갑자(三甲子)인 1804년(순조4년) 12월 27일이며 묘비(墓碑)의 전면부와 후면부에 기록(記錄)하고 있는 문구(文句)는 5대손(五代孫) 가의대부(嘉義大夫) 한성부(漢城府) 좌윤(左尹) 겸(兼)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부총관(副總管) 이수하(李秀夏)가 기록하고 6대손(六代孫)이 썼다.
묘비(墓碑) 전면(前面)에는 “숭정대부(崇政大夫) 행예조판서(行禮曹判書) 겸(兼) 지경연판의금부(知經筵判義禁府) 춘추관(春秋館) 성균관사(成均館事) 이공지묘(李公之墓) 정경부인(貞敬夫人) 문화유씨(文化柳氏) 묘(墓) 재후(在後) 망양좌원(望良座原)”의 기록이 있으며 묘소(墓所) 4기의 전면부에는 원통형의 석물(石物)이 각각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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