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패션위크에서 본 내년 트렌드]
허리 훤히 드러내는 '크롭 톱', 큼직큼직한 브랜드 로고 패턴, 작업복 스타일의 청멜빵 바지…
90년대 유행했던 디자인 쏟아져… '풍요롭던 시절'에 대한 향수 반영
"초심자로 돌아가고 싶은 고수(高手)의 마음." 지난 5~12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뉴욕패션위크 컬렉션을 분석하면 이런 결론이 될 것 같다. 뉴욕은 패션계의 선장(船長) 같은 도시. 예술과 상업을 가장 영악하고 세련되게 녹여내는 곳이다.
그런 뉴욕이 이번 패션위크에선 '추억 놀이'를 시작했다. 1990년대 유행했던 배꼽티와 로고, 청바지와 멜빵 바지, 꽃무늬가 쏟아져 나온 것. T매거진 칼럼니스트 에릭 윌슨은 "1990년대는 부유했고, 그걸 맘껏 과시하던 때였다. 촌스럽지만 즐거움이 넘쳤다"고 썼다. 1990년대는 미국 경제 호황이 절정에 달했던 시절. 따라서 이번 뉴욕패션위크의 무대는 단순히 옷 이야기를 넘어, '그 좋던 시절'을 향한 미국의 향수를 담아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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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티와 망사…1990년대의 추억뉴욕에서 가장 주목받는 디자이너로 꼽히는 알렉산더 왕(Wang)은 백스테이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1990년대가 그리웠다. 옷이 심각하지 않았던, 위트가 넘치던 그때 그 시절. 로고가 큼직하게 박힌 옷을 자랑스럽게 입고 다니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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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왼쪽부터) ①‘피터 솜’ 컬렉션에서 등장한 배꼽이 보이는 재킷. ②‘DKNY’ 무대에 오른 큼직한 로고 옷. ③‘3.1 필립 림’ 컬렉션에서 선보인 배꼽 블라우스. ④구멍을 내서 허리를 강조한 ‘토미 힐피거’ 티셔츠. ⑤추억의 멜빵 바지를 재해석한 ‘DKNY’. ⑥허리가 없는 상의, 로고 새긴 장갑을 보여준 ‘알렉산더 왕’ 컬렉션. /AP
그래서일까. 거의 모든 무대엔 1990년대에나 유행했던 배꼽티가 등장했다. 정식 명칭은 크롭 톱(crop top). 배꼽 위에서 댕강 잘려나간 옷을 이르는 말이다. 최근 2~3년 동안 슬금슬금 유행의 상승세를 타더니 이번 2014년 봄·여름 뉴욕 컬렉션에선 무대의 주인공이 된 것. 잘려나가는 정도도 파격적. 이제 웬만한 옷은 허리가 없다고 봐야 한다. 설령 허리에 천이 있더라도 대개 속살이 훤히 보이는 비침 옷(see through look)이다. "크롭 톱을 안 만든 디자이너 이름을 찾기가 더 어렵다"(미국 뉴욕타임스) "슬쩍 드러난 복부는 이제 새로운 패션의 성감대"(영국 가디언) 같은 평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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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와 로고, 부흥의 시대를 향한 헌사'한물갔다'고 여겨졌던 큼직한 로고도 부활했다. 알렉산더 왕은 이번 쇼에서 자신의 이름을 한껏 과시하는 놀이를 선보였다. WANG이라는 글자를 레이저 커팅으로 빼곡하게 박은 치마·원피스·장갑이 이어졌다. DKNY쇼 역시 추억 찬가의 절정. 브랜드 이름으로 도배한 옷과 늘어진 청바지, 작업복을 무대에 올렸다. 랙앤본(Rag and Bone), 3.1 필립 림 역시 말끔한 뉴욕 스타일에 작업복과 청바지 같은 아이템으로 1990년대 기억을 녹여 새 스타일을 제시했다. 마이클 코어스·랠프 로렌·마르케사·오스카 드 렌타 쇼에도 잃어버린 과거의 에너지를 선(線)과 프린트로 되새기려는 듯 긴 치마, 늘어진 바지, 꽃무늬가 넘쳐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