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령 ~ 한티재
1. 산행 일정
1) 일 시 : 2011. 04. 30. (토) 09:30 ~ 17:00(날씨 : 흐림)
2) 주요산 : 침곡산(728m) / 태화산(676.8m)
3) 소재지 : 경북 포항시 기북면, 죽장면
4) 동 행 : 백양동문산악회
5) 산 행 : 가사령 - 성법령 - 사관령 - 배실(벼슬)재 - 침곡산 - 태화산 - 한티재
2. 가사령 ~ 한티재 개요 (약18km)
가사령(약230m)에서 고도를 높이다가 성법령(약712m)에서부터 약700m내외의 봉우리를 연주하며 참나무와 진달래 숲의 무희를 따르면 사관령(약780m)에 이른다. 나무사이로 921번지방도의 굽이굽이 고갯길과 덕동마을을 만나며 부드럽게 미끄럼을 타고 내려가면 배실재(약470m)에 이른다. 배실재는 낙동정맥의 중간지점이면서 오늘의 중간지점으로 배를 많이 재배하는 덕동마을로 내려서는 곳이다. 이후 봉우리의 높낮이와 폭을 넓히며 침곡산(약728m)까지 상승하여 주변 산천을 둘러보고 서당골재를 지나서 태화산에 이른다. 태화산에는 산불감시초소와 돌탑이 2개 세워져 있고, 동쪽으로 비학산이 보인다. 이곳에서 먹골(270m)까지 하강한 후에 약350m여봉으로 인내를 실험받아야 한티재(230m)에 안착한다. 산행 중 동쪽으로 내연산(보경사)과 비학산이, 서쪽으로 보현산이 위치하며 산세는 대체로 육산으로 부드러우면서 경사가 심할 때도 종종 있다. 지명마다 특징적(임진왜란, 6.25동란, 지형적 특징 등)사연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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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산행의 흐름과 메아리
1) 들머리에서
빗발이 얼굴을 적시는 새벽을 달려서 모임장소에 도착하니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이 많다. 언제나 혼자 바쁘게 산다고 느끼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새벽에도 활동하는 것을 보며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새롭게 다짐하는 뒤로 망각이 바로 자리한다. 무수한 다짐과 망각의 연속선상에서 낙동정맥을 이어가는 것에 감사하며 포항을 거쳐서 죽장 가사령으로 달려가는 도로는 꼬불꼬불 많은 사연으로 길을 안내한다.
2) 가사령 - 600봉 - 성법령 - 732봉 - 사관령 - 692봉 - 배실(벼슬)재 (09:30~12:30)
가사령은 흐린 하늘에 자신을 희생하여 마을과 마을을 잇는다고 속이 훤히 드러났다. 상처 위에서 주위를 둘러보며 가사령의 의미를 담으며 정맥에 들어서니 공기도 시원하고 환경도 쾌적하다. 야생화도 봄을 전해주어 자연에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고도를 높이는 중에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데 무슨 산행을 하느냐고 전화가 빗발친다. 구름만 잔뜩 끼었을 뿐 비는 오지 않는다고 하여도 믿지를 못한다. 자신중심으로 판단하기에 이곳상황을 설명해도 믿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 성법령에는 헬기장이 갖춰졌고, 비학지맥, 내연지맥 분기점이란다. 고도 높은 구름 속이라 후두둑후두둑 빗방울이 얼굴을 때리기도 한다. 비에 대비해서 장비를 갖추며 ‘비가 안 왔으면 하는 바람이 역력해도 비는 내려야 한다. 물이 있어야 농사도 짖고, 생물도 성장한다. 그러나 순수하므로 산신령의 가호로 모세의 기적이 우리 주변에 일어나니 영광이다. 천둥소리에 불안해말고 우리의 순수성을 믿으며 산신령이 베푸는 영광에 감사하자. 덕을 세월만큼 쌓은 혜택이므로 휴지 한 장 꽁초 하나도 함부러 버리지 않으면 곧 덕이다. 사관령에는 여러 가지 흔적으로 헬기장이 어지럽고, 조망을 볼 수 없다. 밀운불우(密雲不雨)라도 비가 오지 않으니 활동하기 편하다. 그래 답답한 것이 모두에게 답답한 것은 아니다. 답답한 환경을 혜택으로 보느냐, 불행으로 보느냐에 따라 해결하는 방법이 달라진다. 현재의 환경을 포기보다 슬기롭게 해결하는 방법을 찾으면 기분도 좋고 불안감도 사라져 탈출 경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고목나무에 버섯이 빽빽한 자연미는 가공미보다 아름답고 형태도 묘해서 디자인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이런 디자인이 우리의 먹거리를 제공하고 부가가치를 높여주는데, 단순한 자연으로 인식하여 개발의 대상으로 삼으니 답답함을 금 할 수 없다. 싱그러운 연초록의 연출이 연속되고 이제야 피는 진달래도 길을 밝히니 자연이 있어서 사람이 선을 쌓구나. 겨울에 딸기를 구하여 어머니께 드렸다는 말이 허언이 아닐 것 같다. 믿음과 신뢰의 불안정 속에서 오늘의 중간지점이며, 낙동정맥의 중간지점인 배실재에 이른다. 배실재는 덕동과 내침곡을 연결하는 곳으로 제법 너른 터가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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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배실재 - 493봉 - 537봉 - 막실재 - 침곡산 - 615봉 - 안티터널 - 한티재(12:30~17:00)
배실재에서 낙동정맥의 의미와 여정을 새기며 얼마 남지 않은 낙동정맥과 지나온 시간을 회상한다. 세상은 계획하여 저지르면 수습하게 된다. 그 수습이 저지른 사람의 목이 될 수도 있고, 저질러 놓은 주변사람일 수도 있다. 복부인도 이런 연유의 하나이리라. 남자들이 잘 났다고 부인이 하는 일에 메주알 꼬주알 일일이 간섭하면 제대로 되는 일이 없는 경우가 많다. 남자는 투자정보도 어둡고, 한정된 범위로 운영하려니 제대로 돈의 흐름을 읽지 못한다. 그러나 잘되는 집안은 복부인이 과감하게 베팅하면 부인을 탓하지 않고 남자는 열심히 빚을 갚다보면 어느 날 부자의 반열에 들어서 있다. 부인이 베팅한 것을 닦달하는 것보다 마무리에 초점을 맞추고 노력하면 복이 쏟아진다. 그러므로 능력은 투자와 수습의 균형이 맞을 때 효과가 나타난다. 그러나 화투장과 도박 등으로 승부를 걸려면 그냥 주어진 범위 내에서 살아가는 것이 현명하다. 자연에서 제공하는 땅의 진리를 따르며 막실재를 지나서 침곡산에 이르니 아직도 구름 속 요지경이라. 침곡산은 주변 봉우리가 뾰쪽뾰쪽하고 골도 깊어서 지형에 맞게 붙여졌다는데 침곡의 진수를 볼 수 없어 애석하다. 경사도가 침곡산의 유래를 대변하는 능선을 따라가면 송전탑이 소식을 전하라고 하늘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다. 그 앞에 함박웃음을 짓는 산벚꽃이 어려움을 덜어준다. 그래 낙동정맥이 고행의 길이 아니라 자연의 벗을 사귀는 곳이요, 문화를 연결하는 곳이다. 봉우리를 넘어가는 어느 무덤가에는 할미꽃이 할미꽃의 전설을 들려준다. 할머니의 내리사랑에 가슴을 적시며 낙엽이 촉촉한 융단 길에 감사하며 태화산(676봉)으로 흡수된다. 산불감시초소와 두 개의 돌탑너머로 보이는 저산이 ‘비학산이리라. 구름으로 동행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담으며 돌탑과 이별하는데 상당히 많은 나무들이 잘려져 뒹군다. 깊이 생각을 말자. 이유가 있어서 그렇겠지.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끝없는 과오를 저지므로 옆의 나무들이 올바로 성장하도록 간벌작업을 한 것이리라. 드디어 먹골이다. 이제 330봉을 넘어가면 한티터널이고, 삼나무 숲이 신선한 환경을 제공한다. 군데군데 파인 구덩이는 무엇이지? 개활지에 사람내음 실려오니 한티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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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날머리에서
한티재에서 31번국도를 접하여 죽장방향으로 가다 ‘할매순두부’집에서 우리콩으로 만든 손두부 맛이 일품이다. 고향의 손맛을 찾아 미각을 높이는 이것도 행복이요, 지역발전에 이바지 하는 것이다. 밤하늘은 아직도 밀운불우이고, 내일은 황사가 최고조로 심하단다.
* 할매순두부(054-262-4479)
한티재에서 31번국도를 타고가면 죽장방향에 있으며, 집은 허물어져 가도 맛은 일품이다. 순수 우리콩을 갈아서 직접 손으로 만드는 자연의 두부 맛은 고향의 맛이요, 정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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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사령
병암산입암(立岩)에서 상옥으로 넘어가는 가사령(佳士領) 골자기에 가사천이 마을을 흐르며 가시내골, 가매골, 윗각단, 갈밭, 독골과 같은 자연부락을 1914년 가사리(佳士里)라 하였다. 옛전에 가마솥을 만들던 곳으로 이곳에서 생산된 솥의 질이 워낙 뛰어나서 장안의 기방(妓房)까지 소문이 자자하였다. 이를 빈정대는 뜻으로 가시내골이고, 가시내골이 한자로 음역되어 가사리가 되고 가사령이 된 것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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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옥리
고산분지의 마을로 신라 때부터 숨어 살던 사람들, 전란을 피해 온 사람들, 화전민들이 살았으며 ‘오강지두 팔령지하(五江之頭 八嶺之下)’의 산간오지였다. 예부터 피란지처(避亂之處)로 '첫째는 고래요. 둘째는 두마(斗麻)'라 할 때, 첫째에 해당하는 곳이다. 옥같이 맑은 냇물이 흘러 오십천(五十川)의 상류 한 지류가 되니 세칭하기를 옥계(玉溪)라 했으며, 고래 또는 고내라고도 부르던 상옥은 높은 곳에 냇물이 흐른다는 뜻 <고천(高川)>으로 풀이되기도 하고, 지형이 마치 거대한 고래로 각(刻)을 떠낸 듯한 행주형국(行舟形局)이라 고래(鯨)라 부른다. 동편 산의 모습 또한 암수 두 마리의 고래를 닮았다고 전한다. 신라말기 서라벌에서 난을 피해 들어온 고관대작들의 고급주택이 즐비하였으며, 먹방골은 그 당시부터 먹을 만드는 고을로 소문이 났고, 무쇳골은 병기와 농기를 만드는 마을로 군사상 중요한 지역이었다 한다. 성지비결(性智秘訣)에 이재칠전중(利在七田中)이라 했고, 정감록(鄭鑑錄) 비결에도 구인종 칠전중(求人種 七田中)이라 했다 하여 칠전(鯨田, 葛田, 坪中田, 馬頭田, 艾田, 大中田, 角田(火田))의 중앙에 위치한 이 마을을 피난처로나 군사기지로 이용하였다 한다. 이 상옥리 일대는 구한말 의병장 신돌석 장군의 본거지로 혁혁한 전과를 올린 곳이라고 한다.
* 성법리
1914년 무들, 생알, 섬마을, 음지마을, 양지마을, 보살미기, 피밭골과 같은 자연부락을 통틀어 성법리(省法里)라 칭하였다. 조선조까지 성법리부곡(省法伊部曲)이 있었고, 그 지휘관제소가 덕동에 있었다 한다. 법을 반성하라는 뜻으로 이 지역 일원을 예부터 성법(省法)이라 통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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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관령(士官嶺 : 788봉)
임진왜란 전후로 가사리에서 무기를 제조하여 벼슬아치 외는 덕동으로 못 넘어 오게 통제해서 붙여진 이름
* 벼슬재 및 덕동마을
1914년 덕동(德洞)과 오도(吾道), 새터, 솔거리마을 등을 합하여 오덕리(吾德里)라 하였다.
덕동(德洞)은 덕 있는 인물들이 많다는 의미로 삽연(淵)이라고도 했는데 이는 용계정(龍溪亭)뒤의 연못에서 연유하며, 일명 덕협(德峽)이라고도 불렸다. 자금산(紫金山) 남쪽 산기슭에 형성된 유서 깊은 마을로서 서편 벼슬재(官嶺)를 넘으면 죽장(竹長)의 독골-가사리(佳士里) 일원으로 통한다. - 배실재(덕동의 배나무 재배에서 유래)는 벼슬재에서 어원 변화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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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곡산
입암리(立岩里) 동쪽 침곡산(針谷山;726m)을 향해 뚫린 좁고 긴 바늘 같은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로 점마을, 안바느실, 중마을, 밖바느실과 같은 자연부락이 침곡리(針谷里)이고 침곡(針谷)계곡이 있어서 침곡산(針谷山)으로 명명된 것으로 보인다.
* 지명 등은 포항시 홈피 및 낙동정맥 선행자 홈피 등을 참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