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교구 치평동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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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당 현황
1.1 관할구역 및 인구, 신자수
치평동 성당은 광주광역시의 상무신도심(옛날 상무대 자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1998년 2월 3일에 신설된 본당이다. 관할구역인 상무신도심 지역에는 8,000여 세대에 47,0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교적상 세대수는 1,100세대이고, 신자수는 2,900명, 주일미사에 참례하고 있는 신자수는 900여명이다.
2. 소공동체 추진 과정(설립 당시의 상황과 관찰)
2.1 초창기 상황
2.1.1 관할지역의 조건
관할지역은 자연부락 하나를 제외하고는 전부가 아파트 주거 지역이다. 본당이 신설되었을 때, 대부분의 신자들은 상무신도심지역으로 이사를 오기 전의 성당에 다니거나, 가까운 성당에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97년말에 터진 I.M.F.타격으로 인해서 신자들의 경제 사정은 상당히 위축된 상태였고, 많은 신자들은 신설본당이 들어선다는 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2.1.2 성당의 상황
발령을 받고 치평동에 부임하여 첫미사를 봉헌하는 날까지 교적은 한 장도 없었고, 확실한 것은 성당부지 1,200평과 교구청으로부터 받은 5,100만원이 전부였다. 교구청에서 지원해준 5,100만원을 가지고 공동체가 모일 장소와 신부가 거주할 아파트를 빌리려고 하였다. 다행히 고마운 신자 덕택에 유치원 지하실(30여평)과 사제관으로 쓸 아파트(32평)도 돈을 들이지 않고 빌릴 수 있었다.
2.1.3 판단
성당에 부임하기 전에 여러차례 관할지역을 돌아보았다. 지역을 돌아보면서 대부분의 주민들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것을 알고 어떻게 공동체를 이루어 가야 할 것인지 고민을 했다. 특별히 인근 본당에서 공동체가 분할된 것도 아니었고, 광주시내 전지역과 타교구에서 저마다 각기 모여든 신자들이었으므로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닐 것으로 생각했다.
아파트의 가장 큰 특징은 ‘익명성’이다. 자신이 입만 다물고 있으면 얼마든지 자기 자신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살 수 있다. 앞집에 사는 사람과 몇 년을 살아도 말한마디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곳이 아파트다. 아파트도 통로별로 반상회라는 것이 있지만, 반상회 회비만 내면 반상회에 한번도 참석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지낼 수 있다.
아파트 두꺼운 철문만큼이나 단절된 곳이 아파트인데, 이곳에서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로 생각되어졌다. 대부분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아파트로 이사를 한다. 아파트라는 조건에 몸이 익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놓고 어떻게 공동체를 꾸릴 것인가?
처음에 발령을 받고 난 뒤에 여러 선배 신부님들로부터 본당에 부임하자마자 단체를 만들어라는 충고를 들었다. 특히 레지오를 만들면, 공동체를 쉽게 형성할 수 있다는 고마운 충고를 들었다.
그리고 또 다른 선배 신부님들은 신설본당이니, 단체를 만들지 말고 우선적으로 ‘소공동체’를 꾸려서 본당을 운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충고도 들었다.
고민 끝에 소공동체를 중심으로 본당공동체를 형성하기로 결정을 했다. 신설본당이다보니 단체로부터는 자유로운 잇점도 있었지만, 이 결정을 하게 된 것은 소공동체가 곧 교회라는 생각이었고, 단체를 먼저 꾸리는 것보다, 교회 공동체를 일구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우선적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단체를 우선적으로 만든다는 것은, 밥을 해먹고 잠을 잘 자리도 없는데, 정원에 나무를 심고 꽃을 심고, 연못을 파서 물고기를 키우자는 이야기와 같다고 생각한다. 우선 밥을 해먹을 솟단지를 걸고, 천막이라도 쳐서 잠잘 곳을 미리 마련해야지 않겠는가?).
고민하는 과정에서 아파트라는 조건이 모두 다 나쁜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했다. 아파트라는 조건 중에서 좋은 점은 가까이 산다는 점이다. 그래서 두꺼운 철문만 열 수 있다면 소공동체를 이루어나가는데는 참으로 좋은 조건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파트 별로 공동체를 형성한다면 자연부락보다 훨씬 좋은 조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가지는 단체 중심의 교회가 아니라, 소공동체(=교회) 중심으로 사목을 해보고 싶은 욕심도 들었다. 우리 교구 거의 대부분의 본당이 단체중심의 사목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졌으므로(적어도 나에게는), 새로이 신설되는 본당에서 소공동체 중심의 사목을 해본다는 것도 크게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했다.
2.2 소공동체 형성 과정(진행과정)
2.2.1 소공동체를 준비하는 미사 봉헌
1998년 2월 3일에 ‘첫미사’를 봉헌하면서 공동체가 문을 열었는데, 2월 26일부터 매주 3-4곳의 지역을 돌아다니며 ‘소공동체를 준비하는 미사’를 봉헌했다. 그리고 설문지(교적이 없었기 때문에 교적을 대신할 수 있는 설문을 조사했다.)를 토대로 신자분들과 함께 27개의 소공동체를 구성하였다. 그리고 각 소공동체에서 자발적으로 소공동체 대표와 총무를 뽑게 하였다.
2.2.2 가정방문과 집축복 - 대부분의 신자들이 새로 이사를 온 사람들이어서 집축복을 해주기를 원했다. 5월 7일부터 소공동체별로 원하는 시간을 접수받아서, 가정방문과 집축복을 하였다. 집축복은 공동체별로 공동체 식구들이 함께 모여서 기도하면서 축복하면서 각 가정을 돌아다녔다. 함께 모여서 집축복을 함께 하고 음식도 공동체 전체가 함께 나눔으로써 신자들의 좋은 친교의 시간도 될 수 있었다.
2.2.3 ‘소공동체 위원회’구성(6월 19일) - 27개의 소공동체의 대표들과 총무들로 구성된 ‘소공동체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소공동체 위원장과 총무 서기를 선출하였고, 매월 첫째주 수요일 오전에 ‘소공동체위원회 회의’를 하기로 했다. 이 회의에서는 본당의 모든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함께 결정하였다.
2.2.4 ‘본당 운영위원회’ 구성(8월 6일) - 본당의 사목협의회를 대신할 수 있는 ‘본당운영위원회’를 구성하였다. 본당운영위원회의 임기는 사목협의회가 새롭게 출범되는 11월 29일(대림 제 1 주)까지로 하였다.
2.2.5 구역확정(9월 13일) - 8개 구역으로 나누었다. 구역장과 총무를 소공동체가 모여서 뽑도록 하였다.
2.2.6 구역미사 봉헌(10월 30일부터 12월 18일까지) - 구역에 가서 구역별로 미사를 봉헌하였다. 구역에 속해있는 소공동체들이 함께 모여 미사를 봉헌함으로써 같은 구역에 속한다는 유대감과 친밀감을 가지게 했다.
2.2.7 소공동체 대표의 명칭을 ‘사도’로 바꿈
2.2.8 사목협의회 구성(12월 6일) - 운영위원회의 인원을 보강하여 사목협의회 구성
2.2.9 1999년부터 매주 소공동체 모임 실시 - 지금까지 각 소공동체의 자율에 맡겨왔던 모임을 1999년 1월부터 매주 1회 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매주 목요일은 ‘소공동체의 날’이고, 목요일은 새벽미사 외에 본당에서 어떤 다른 모임도 갖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각소공동체가 1개의 봉사단체 가지고 지속적으로 봉사하게 함.
2.2.10 본당의 소식지 [평화마을] 창간(5월 30일, 삼위일체 대축일)- 소공동체 보고서를 바탕으로 매주 본당소식지인 ‘평화마을’을 만들고 있다. 소공동체의 소식과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기쁜일이나 슬픈 일 모두를 공동체 전체가 나누고 있다. 매주 소공동체 모임장소, 소공동체 탐방, 소공동체 사례발표를 싣고 있으며, 소공동체의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또 지역사회의 현안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꾸준한 홍보작업을 하고 있다.
3. 소공동체 현황
현재 12개 구역에 60개의 소공동체가 매주 모임을 갖고 있으며, 구역별 남성소공동체는 14개이나 아직 활성화가 잘 되지 않고 있다. 매월 첫주 화요일에는 ‘소공동체위원회 회의’를 한다. 이 회의에서 구역장과 구역총무, 소공동체의 사도와 총무들이 함께 모여서 한달간의 소공동체 삶을 나누고 점검한다. 그리고 매월 5개 소공동체가 소공동체 체험사례를 발표하고 이를 매주 ‘평화마을’에 실어서 모든 신자들과 함께 나누고 있다.
3.1 소공동체 참석 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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