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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세상을 보이는 대로 믿고 편안히 잠드는가/ 그래도 지금이 지난 시절보단 나아졌다고 믿는가/ 무너진 백화점, 끊겨진 다리는 무엇을 말하는가…."(넥스트 '우리가 만든 세상을 보라', 1995)
가랑비가 내리던 1994년 10월 21일 아침 7시 40분, 믿기 어려운 사고가 발생했다. 출근을 서두르던 직장인과 학생을 태운 차들이 지나가고 있던 서울 성수대교의 중간 지점, 48m의 현수 트러스 부분이 갑자기 꺼지면서 한강으로 내려앉았던 것이다. 이 사고로 무학여중·고생 9명 등 모두 3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교량 가설 당시인 1977년 서울시내 차량이 12만여 대였던 데 비해 1994년에는 200만 대에 가까워 피로가 누적돼 있었던 데다, 용접 불량과 관리 소홀까지 겹친 탓이었다.
사고 8개월 후인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5분, 서울 서초동에 있던 지상 5층 지하 4층, 연면적 7만4000㎡ 규모의 삼풍백화점 건물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지은 지 6년 됐으며 단일 백화점 매장 중 전국 2위였던 이 대형 건물의 붕괴로 사망자 502명, 부상자 937명이 발생했다. 무단 설계 변경과 부실시공, 행정감독 소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총체적 부실'이었다.
최명석(20), 유지환(여·18), 박승현(여·19) 세 명의 젊은이가 매몰 11~17일 만에 구조되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두 사건과 1993년 3월의 구포 무궁화열차 전복(78명 사망), 7월의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66명 사망), 10월의 서해훼리호 침몰(292명 사망), 1995년 4월의 대구 지하철 폭발(101명 사망) 등 잇단 대형 참사는 김영삼 정부의 지지율을 하락시켰다. 그것은 '참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앞만 보고 질주해 온 대한민국의 압축 성장에 대한 경고음이었고, '고속 성장'의 이면에 '졸속 성장'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일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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