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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密陽) - 천혜의 자연 경관 속에 햇빛이 빽빽하게 들어차 따뜻한 고장
밀양시(密陽市)는 대한민국 경상남도 동북부에 있는 시로서 대구광역시와 부산광역시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때문에 대구와 부산 양 대도시 영향을 모두 받는 편이며 창원과 울산 등 다른 대도시들도 도처에 있기 때문에 지리적으로는 이 4개 대도시 중앙에 위치하는 지리적 이점을 안고 있다. 밀양아리랑, 밀양국밥 등이 유명하며 특산물은 대추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의 주 무대가 되는 곳이기도 하다.
밀양 문화관광 http://tour.miryang.go.kr/main/
영남 알프스
http://www.ktv.go.kr/common/popup/vodplayer.jsp?cid=358127
밀양(密陽) 新 8경(八景)
1. 종남산(終南山) 진달래
2. 영남루(嶺南樓) 야경(夜景)
3. 사자평(獅子坪) 억새
4. 월연정(月淵亭)
5. 위양지(位良池) 이팝나무
6. 만어사(萬魚寺) 운해(雲海)
7. 가지산(表忠寺) 호박소(湖泊沼)
8. 표충사(表忠寺) 설경(雪景), 추경(秋景), 춘경(春景), 하경(夏景)
밀양의 3대신비
1. 여름에 얼음이 어는 얼음골
2. 땀흘리는 비석으로 유명한 표충비
3. 종소리 나는 만어사의 경석
기회송림 밀양시 산외면 남기리 기회마을
만어사[萬魚寺 제6경 만어사 운해]
또 다른 전설로는 옛날 동해 용왕의 아들이 수명이 다한 것을 알고 낙동강 건너에 있는 무척산(無隻山)의 신승(神僧)을 찾아가서 새로 살 곳을 마련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신승은 가다가 멈추는 곳이 인연터라고 일러주었다. 왕자가 길을 떠나니 수많은 종류의 고기떼가 그의 뒤를 따랐는데, 머물러 쉰 곳이 이 절이었다. 그 뒤 용왕의 아들은 큰 미륵돌로 변하였고 수많은 고기들은 크고 작은 화석으로 굳어 버렸다고 한다.
현재 절의 미륵전(彌勒殿) 안에는 높이 5m 정도의 뾰족한 자연석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용왕의 아들이 변해서 된 미륵바위라고 하며, 이 미륵바위에 기원하면 아기를 낳지 못한 여인이 득남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미륵전 아래에는 무수한 돌무덤이 첩첩이 깔려 있는데, 이것은 고기들이 변해서 된 만어석(萬魚石)이라 하며, 두들기면 맑은 쇳소리가 나기 때문에 종석(鐘石)이라고도 한다.
무봉사[舞鳳寺]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삼성각·종루·요사 등이 있고, 유물로는 대웅전에 있는 무봉사석조여래좌상이 유명하다. 보물 제493호로 지정된 이 불상은 약사불로 연화대좌 위에 올라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본래 이 절에 있던 것이 아니라 옛 영남사 터에 전해 오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조각 솜씨가 뛰어난 광배는 불상과 함께 있던 것은 아니다. 복잡하면서도 화려한 유물로 9세기경 제작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미리벌민속박물관 http://www.miribeol.org/
전시된 민속품이 7백여 점, 고문서나 그림 등이 1천4백여 점 등 총 2,400여 점의 유물이 있다. 총 5개의 전시실을 갖추고 있으며, 안방 유물, 사랑방 유물, 소품, 서지 유물 등 종류별로 전시하고 있다.
밀양 교동 손씨고가[孫氏古家] 교동 810번지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왼편에 큰 사랑채가 있고 그 맞은편 중문을 지나면 작은 사랑채가 있다.
1935년 불이 나 정침과 사랑채를 제외한 모든 건물이 불에 탔으며 여러 해를 두고 지금과 같이 재건하였다.
후방에 작은 구릉을 사이에 두고 밀양향교(密陽鄕校)가 자리잡고 있으며 마을 전방으로 아동산(衙東山)을 바라보는 남향집이다.
주변은 밀양손씨 집성촌. 냉기가 나오는 지하실(김장).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건립
밀양 영남루 [密陽 嶺南樓 제1경 영남루 야경]
문화재청 사이버문화재탐방 영남루
http://www.heritage.go.kr/visit/cyber_2008/index.html
밀양읍성[密陽邑城] 밀양시 내일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축읍성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둘레가 1425m, 높이 2.8m, 성내 우물이 넷, 못이 하나 있다고 한다. 1902년 경부선 철도부설공사 때 4대문과 성벽의 석재가 모두 헐리어 철도부설공사에 이용되었으며, 아동산과 아북산을 잇는 산등성이에 퇴뫼성이 남아 있다.
밀양 퇴로리 이씨고가[密陽退老里李氏古家]
참고로 추사체로 쓴 '죽로지실(竹爐止室)'이란 현판의 의미는 차를 달여 마시며 늘 차향이 그윽한 문사(文士)의 서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퇴로리 마을 입구에는 고송이 마을을 지키듯 그 기다란 몸을 뻗대며 드러누워 있다. 나무 옆에 세워진 작은 사당인 동신각에는 고을도 마을 사람들이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술을 놓고 가곤 한다.
사명대사 유적지
사명대사생가지는 숙청사,분충서난문,육영당,사명당이 복원되어 있으며, 청동함은향완, 사명대사 가사장삼 등 복제품 65점과 평양성탈환 디오라마, 영상실,정보검색실 등이 사명대사 기념관에 설치되어 있다. 그 밖에 충의문, 원형광장, 사명대사 동상 등이 있다. 삼국의 명장을 낳을 것을 예언한 명산이 있는 이곳은 임진왜란때 의승장(義僧將)으로서 국난극복에 많은 공훈을 세운 사명대사의 생가터이다. 마을 뒷산 서쪽 기슭에 사명대사의 조부모(祖父母)와 부모의 묘소가 있다.
사자평
삼랑진 작원관지[鵲院關址]
낙동강변의 절벽에 위치하여 부산 동래에서 한양에 이르기 위해서는 문경의 조령관과 함께 반드시 통과해야하는 교통 및 국방상의 2대 관문이었다. 임진왜란 때 밀양 박진장군이 300여명의 병졸로 소서행장이 이끄는 18,000여명의 왜적을 맞아 작원관의 천험적인 지리를 이용하여 치열한 혈전을 벌이다 중과부적으로 패배한 처절한 역사의 전적지이다. 1995년 이곳에 작원관지를 복원했다.
아랑사(阿娘祠), 아랑각[阿娘閣]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6호.
어변당[魚變堂]
그는 이곳에 물고기를 길러 부모에게 효도를 하였는데, 물고기가 효성에 감동하여 비늘을 남긴 채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 어변당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오랜 옛날부터 시례 빙곡으로 불렸던 얼음골은 재약산(1,189m) 북쪽 중턱 해발600~750m의 노천 계곡에 자리하고 있다. 밀양시 산내면 남명리 재약산 남쪽에 자리한 천황산엔 신비한 자연현상으로 알려진 얼음골이 있다. 봄부터 얼음이 얼기 시작해 삼복더위에 본격적으로 얼음이 얼고, 처서가 되면 얼음이 녹기 시작하는 신비로운 이상기온 지대다. 바위 사이사이 손바닥만 한 고드름이 잠시 쉬어가는 이들의 땀을 식힌다.
얼음골 주변의 지형은 얼음이 어는 돌밭(安山巖)과 계곡을 중심으로 동남·서 3면으로 깎아지른 듯 한 기암절벽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장엄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어 사시사철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영산정사[靈山精舍]
월연정[月淵亭 제4경] 밀양시 용평동에 이태(1483∼1536)가 지은 별장.
월연정은 가장 북측에 위치하고 제일 높은 언덕에 있는 월연대(月淵臺)는 남동향을 하고 있으며, 월연정 주위에 건립된 제헌(齊軒), 월연대등 모두 풍치 수려한 곳에 무리를 이루어 정자의 기능을 가지며, 놓여진 지형에 맞추어 모두 각기 다른 평면을 지니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위양못.양양지(陽良池 제5경 위양못 이팝나무)
또한 위양못은 둘레에 크고 작은 나무로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는데 이른 봄에 피는 못가의 이팝나무로 유명하다. 나무 전체가 하얀꽃으로 뒤덮여 이밥, 즉 쌀밥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봄비 내리는 위양못가는 걷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이팝 쌀밥의 함경도 사투리
종남산 진달래(제7경)
추원재[追遠齋]
여러 차례의 전란을 겪고 오랜 세월의 변천으로 생가 등 유적의 원형을 지키지 못하다가 순조10년(1810년)에 선현의 유적이 황폐한 것을 개탄하고 사림들과 후손들이 합의하여 건물을 개조 중건하여 추원재라 하고 당호(堂號)를 "전심당(傳心堂)"이라 하였다.
"전심"이라 함은 동방의 성리학이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 강호 김숙자에게 전했으며 강호는 아들 점필재에게 전하고, 점필재는 김 한휜당과 정일두에게 전했으니 점필재는 조선조 성리학의 전수자라는 뜻이다. 전심(傳心)이란 조선시대 성리학의 전수자라는 뜻으로 김종직을 이르는 말이다
그가 죽은 후인 1498년(연산군4) 그가 생전에 지은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관(史官)인 김일손이 사초(史草)에 적어 넣은 것이 원인이 되어 무오사화(戊午士禍)가 일어났다. 이미 죽은 그는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였다
조의제문[弔義帝文] 김종직은 서초패왕(西楚覇王) 항우(項羽)에게 죽은 초나라 회왕(懷王), 즉 의제(義帝)를 조상하는 글을 지었는데, 이것은 세조에게 죽음을 당한 단종(端宗)을 의제에 비유한 것으로 세조의 찬탈을 은근히 비난한 글이다.
점필(佔畢) 책을 엿본다(佔)는 뜻으로, 책의 글자만 읽을 뿐 그 깊은 뜻은 알지 못함을 이르는 말.
점필재 김종직의 묘소 옆에 세워진 ‘인망호폐(人亡虎斃)’ 비석. 김종직이 죽자 무덤 옆에서 날마다 슬피 울다가 숨을 거뒀다는 호랑이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표충비각
표충사[表忠寺 제3경]
가람각 가람수호를 기원하는 가람각으로써 가람각은 죽은 자의 혼을 실은 영가가 경내로 들어가기 전에 잠깐 모셔지는 곳으로, 이곳에서 영가는 속세의 떼를 벗는 목욕을 하게 됩니다. 순천 송광사에 있는 아주 작은 전각인 세월각(洗씻을 세月閣 여자 영가의 관욕소)과 척주각(滌씻을 척, 珠閣 남자 영가를 위한 관욕소)과 같은 용도의 건물입니다
영사각 가람수호를 기원하는 외가람각으로써 가람각은 죽은 자의 혼을 실은 영가가 경내로 들어가기 전에 잠깐 모셔지는 곳으로, 이곳에서 영가는 속세의 떼를 벗는 목욕을 하게 됩니다.
영정약수 신라 흥덕왕 4년에 왕의 셋째 왕자가 나병에 걸려 명의, 명약을 찾던 중 황발선인이 소문을 듣고 이곳에 찾아와 병을 치유했다고 한다. 이에 왕이 친히 선사를 찾아와 크게 칭송하나 황발선인이 말하기를 이곳 산초와 유수가 모두 약초요, 약수라 하였다. 왕은 그 말에 감탄하여 탑을 세우고 가람을 부흥시키고 산 이름을 재약산이라 하고, 사명 또한 영정약수의 이름 따서 영정사라 하였다.
대광전은 표충사의 큰 법당이다. 대광전에는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깊이 신봉 되어온 삼존불을 봉안하고 있다. 삼존불은 석가모니불, 약사여래불,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 대광전은 도교적인 잡상(雜像)을 지붕에 장식하고, 지붕의 한 가운데에『찰간대(刹竿臺)』를 세워 큰스님이 많이 나온다는 표식을 해 두었다.
찰간대(刹竿臺)는 불교의 장례의식인 다비의례에 염습, 입감, 기감, 입탑 등이 있는데, 입탑의례에 ‘사리를 거두어 사거리에 탑을 세우고 사당을 지어 찰간대로 표시하고 비단번을 달며 꽃과 향을 올리는 예배’를 말한다.
사찰에서 의례를 올릴 때 당간지주에 당간을 세우고 불화를 거는데, 불화를 오색비단 천으로 둘러쳐 장식을 한다. 그 오색비단 천이『찰간대』에 묶여져 아래로 내려오면서 불화를 아름답게 장식을 한다.
기둥머리의 용머리 조각과 추녀의 장식들이 화려하고 섬세하며 기둥괴 기둥위 장식들의 간격이 동일하게 배치되어 균형미을 잘 살리고 있다
건물 네귀퉁이에는 추녀가 처지는 것을 막기 위해 4개의 기둥(活柱)을 따로 두어 추녀을 받치고 있다. 4개의 기둥중 앞쪽의 기둥은 팔각형인데 반해 뒤쪽의 기둥은 원형으로 되어인는데 이런 구성은 매우 특이 하다. 건물을 받쳐 주는 받침돌은 잘 다듬어져 있어며 주춧돌 역시 다듬은 돌로 되어 있어 건물의 품위을 높여 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이 건물은 화려하고 섬세한 조선 후기 건축 양식을 잘 유지 하고 있다
표충사 청동함은향완(表忠寺靑銅含銀香?) [국보 제75호]
향완 전체에 문양이 음각되어 있는데, 6개의 원 안에 '범(梵)' 자를 은입사하였으며, 그 사이에 구름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받침에는 구름과 용무늬를 장식하였는데, 굵은 선과 가는 선을 적절히 배합하여 능숙하게 표현된 용의 모습에서 고려시대의 뛰어난 은입사기법을 볼 수 있다.
이 향완은 현재 국내에 알려진 가장 오래된 것이다. 또 명문에 '함은향완(含銀香垸’)'이라는 문구가 있어 향로의 이름을 함은향완이라고 한 것이다. '함은'이라는 말은 은입사라는 뜻이며 이 말은 현재 흔히 쓰이는 은상감(銀象嵌)이라는 말과 같다. 뿐만 아니라 받침 안쪽에 새겨진 글을 보면 원래 이 향완이 있었던 곳이 현재의 표충사가 아닌 창녕 용흥사였음을 알 수 있는데, 어떻게 해서 표충사에 전래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호랑이미술관
예로부터 호랑이는 우리민족과 인연이 깊은 동물로 사랑을 받아왔다. 현실 속 호랑이는 인간을 잡아먹는 무서운 적이지만 신화속의 호랑이는 인간을 돕고 산을 지켜주는 신령한 존재였다. 자식의 입신양명과 집안의 안녕을 위하여 호랑이 그림을 걸고 건강을 기원하며 호랑이 뼈를 갈아먹고 바르며 능호석을 무덤에 세워 망자의 명복을 빌기도 하였다.
<사진. 맹호백태도 백두에서 한라까지 금수강산을 배경으로 백한마리의 호랑이를 그린 작품. 가로 5m,세로 1.1m 크기의 대형 작품>
호박소(제2경)
홍제사[洪濟寺]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호인 홍제사 표충비(땀 흘리는 비)는 임진왜란 당시 국난을 극복한 사명대사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영조 18년 1742년에 건립됐으며, 표충비는 1984년 갑오경장이 일어나기 일주일 전 처음으로 땀을 흘린 뒤 3.1운동과 6.25전쟁,5.16 쿠데타 등 국가 중대사가 있을 때마가 땀을 흘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표충비는 국가의 중대사가 있을 때를 전후하여 비면에 자연적으로 땀방울이 맺혀서 마치 구슬땀처럼 흐르는데 이것을 두고 사람들은 나라와 겨레를 염려하는 사명대사의 영험이라고 신성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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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시 부북면 감천리(감내) 일대에서 정월 대보름에 행하는 줄다리기. 예로부터 이 마을의 감내에서 게가 많이 잡혀 윗마을과 아랫마을이 서로 게가 많이 잡히는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 싸움이 일어나자, 게줄을 당겨서 이기는 마을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인데 감내 게줄 당기기 놀이는 농삿일을 하며 고된 와중에도 신명을 즐기곤 했던 우리 선조들의 배포가 드러나는 밀양의 놀이마당이다
경상남도민물고기전시관 2009년 5월 산외면 금천리에 민물고기 전시관을 개관하였으며 물고기의 생태를 체험하면서 자연의 소중함을 체험하는곳 이다.
밀양깻잎 잎들깨 재배면적은 전국 900ha로 밀양이 37%를 차지하며 연간소득은 약 375억에 달하고 겨울철에 상대적으로 따뜻한 기후로 전국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겨울철 밀양 지역의 깻잎 생산량은 전국의 80%나 될 정도로 독보적이다.
밀양 백중놀이 1980년 11월 17일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로 지정되었다. 한국 중부 이남, 벼농사를 주로 하는 지방의 ‘호미씻이 놀이’의 일종으로, 밀양에서는 백중날에 논다 하여 백중놀이, 혹은 꼼배기참놀이라고도 한다.
밀양아리랑 대축제 옛날 밀양 태수(사또)의 외딸 아랑(阿娘 윤정옥)이 젊은 통인(通引)의 요구를 뿌리치다가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것을 슬퍼하여 “아랑 아랑” 하고 노래를 부른 데서 비롯하였다 하며, 경상도지방에 널리 전파된 민요이다.
밀양아리랑 대축제의 향연은 표충사(表忠祠).·아랑각(阿娘閣) .천진궁 등 밀양 영남루를 배경 삼아 베풀어진다.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 연희단거리패가 밀양연극촌을 개관한 이후 2001년 이윤택과 연희단거리패가 몇몇의 젊은 연출가들과 대학 연극을 중심으로 시작한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는 한국의 젊은 극작가, 배우, 연출가, 무대예술가들의 경연방식을 통해 한국연극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집중적으로 후원하는 역할을 해 오고 있습니다.
밀양연꽃단지 부북면 가산리 밀양 연극촌 주변에 조성한 7만 772㎡의 연꽃단지에서 늦가을 수확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농심을 체험할 수 있다.
밀양 청양고추 청양고추는 중앙종묘에서 일반고추와 ‘땡초’라고도 불리는 조그만 고추인 하늘초를 교배시켜 탄생시킨 품종으로 지금은 경남 밀양과 진주 등지에서 많이 재배되고 있습니다. 전국 생산량의 60%까지 차지하고 있습니다. 일반 고추는 26%를 차지해 농가 소득 증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삼랑진(三浪津) 밀양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곳에 삼랑진(三浪津)이 있다. 삼랑진은 밀양강(응천강)이 낙동강 본류에 흘러들어 세 갈래(三) 물결(浪)이 일렁이는 나루(津)라 하여 삼랑진(三浪津)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삼랑진(三浪津) 경전선[慶全線]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다 하여 붙어진 이름의 철길, 총 길이 300.6km의 단선 기찻길. KTX가 최고 시속 300㎞를 자랑하며 철길을 달릴 때 이 위를 지나는 기차는 6시간 동안 천천히 달리며 40여 개의 역에 정차한다. 광주 송정역과 경남 밀양 삼랑진역을 잇는 경전선
삼랑진 삼랑창[三浪倉] 후조창이라고도 한다. 마산창(馬山倉)·가산창(加山倉)의 설치로 세곡운송의 폐단이 제거되는 것을 보고, 인근 주민이 자신들의 고을도 조창에 소속시켜 줄 것을 요구함에 따라 1765년(영조 41) 우참찬(右參贊) 이익보(李益輔)의 주창에 의해 이루어졌다.
삼랑진 후조창유지 비석군[後曹倉遺址 碑石群 ] 조선 후기에 후조창(後漕倉)이 있었던 밀양시 삼랑진읍 삼랑리 하부마을에 무리 지어 서 있는 8기의 비석이다. 지역 주민을 잘 보살피고 뛰어난 공적을 세운 역대 수령과 관찰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보인다. 주철로 만든 철비석이 특이하다
삼랑진양수발전소[揚水發電所] 삼랑진읍 안태리에 있는 양수식 발전소
청평양수발전소에 이어 두 번째로 건설된 한국 최대의 양수식 지하 발전소로 순수 우리 기술로 1979년 10월에 착공하여 1986년 4월에 준공되었다. 지하에 시설용량 30만kW급 발전기 1, 2호기를 보유하여 총 시설용량은 60만kW에 이른다. 모든 기기는 자동화되어 중앙제어실에서 컴퓨터로 원격 제어된다(국내 최초)
삼량진딸기 한마당대축제 낙동강변 삼랑진은 1943년 우리나라에서 딸기를 심은 첫 시배지입니다. 삼량진딸기는 전국 딸기 생산량의 40%를 차지하는 밀양. 삼랑진 딸기는 지난 1943년 삼랑진 금융조합이사였던 송준생(1976년 작고)씨가 일본 금융조합이사회에 참석한 뒤 귀국하면서 가져온 일본 딸기 모종 10포기를 삼랑진읍 송지리 밭에 심은 것이 첫 재배로 알려져 있다
영남 알프스 가지산(1,241m), 운문산(1,188m), 천황산(재약산:1,189m), 신불산(1,159m), 영축산(1,081m), 고헌산(1,034m), 간월산(1,069m) 등 7개 산군이 유럽의 알프스처럼 아름답다는 의미에서 이름이 붙여졌다(희고 높은 산)
18세기 조선 영정조 시대 검무(劍舞)로 문인들의 찬사를 받았던 밀양 출신 기생이 있었다. 박지원, 박제가 등이 운심의 춤에 탄복하며 글을 남겼다.
특히 박제가(1750-1805)는 ‘검무기(劍舞記)’란 글을 써서 검무의 동작을 세밀히 묘사하고, 또 밀양 출신 기생 운심(雲心)이가 당시 검무의 제일인자로서 가장 인기가 있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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