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루카 3,15-16.21-22
그때에 15 백성은 기대에 차 있었으므로, 모두 마음속으로 요한이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16 그래서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말하였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21 온 백성이 세례를 받은 뒤에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야르덴(Yarden)’이라고 불리는 요단은 ‘흐르다’는 뜻을 가진 야라드’(Yarad)와 여러 샘물이 합쳐지는 지역의 ‘단’(Dan)이라는 단어가 합쳐져서 생겨난 말입니다. 결국 요단이라는 말은 ’단에서 흐르다’ 즉 ‘단 지방에서 흘러내리다’라는 뜻입니다.
해발 520m 높이의 헬몬산 기슭에서 발원된 강은 남쪽으로 220 km를 흘러 해발 68m 높이의 후라(Hule) 호수와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셨고 12사도가 투망을 던져 물고기를 잡았던 깊이 212m의 갈릴레이 호수로 흘러 들어갑니다. 그리고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곳이라고 불리는 사해로 흘러갑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기 위해 요르단 강에 발을 들여 놓으신 뜻은 지리적으로 또 사회적, 심리적으로 가장 깊은 곳 즉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심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과 하나가 되기 위해 그들과 함께 참회를 하시고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죄 없으신 분이시지만 그들과 함께 줄을 서고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그들의 형제 자매가 되셨습니다. 따라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그저 세례를 받으려는 사람 중 한 명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성탄절에 우리는 스스로 인간이 되신 아기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아기예수님은 그 어느 것도 가진 것 없는 가장 나약하고 가난한 갓난 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내려 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기 위해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셨습니다.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예수님의 공 생활이 시작되었고 복음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스스로 요르단 강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이미 사람의 모습을 하고 사람의 옷을 입으셨지만 인간들과 진정한 형제애를 나누고자 그들과 함께 아래로 내려가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르단 강에 발을 들여놓음으로써, 하느님의 고귀함을 씻어버리고 이 세상과 온전한 하나가 되시고자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같이 세례를 받음으로써, 당신과 인간 사이에 가로막고 있는 장애를 씻어버리고 진정한 형제 자매가 되신 것입니다. 요르단 강은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인간으로 거듭 태어나시기에 부족함 없는 신비가 넘치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깊은 겸손함으로 당신 자신을 씻으셨습니다. 겸손은 자만심과 자신을 버리는 것이기에 겸손이야말로 진정한 세례입니다. 요르단 강 깊이 내려가신 것은 죽음과 고통을 받아들이신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죽음은 바로 세례입니다.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을 다 겪어낼 때까지는 내 마음이 얼마나 괴로울지 모른다.” (루카 12,50)
요한과 야고보가 물속에서 그 분의 곁에 앉고자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마르 10,38).
이 말씀은 예수님 당신은 죽음에 이르는 고통까지 견뎌야 한다는 뜻입니다. 잠언에 이르기를, “단지 사랑의 증거만을 보는 사람은 사랑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의 증거는, 당신 스스로 가진 것 없는 나약하고 가난한 어린 아기로 태어나신 것이며 죄를 씻기 위해 사람들과 함께 요르단 강으로 들어가신 한 없는 겸손입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은 예수님을 더욱 깊이 내려가도록 하였고 물로써 하느님과 인간과의 벽을 없애는 참회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분의 겸손함은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만일 주님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낀다면, 세례가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주저하지 말고 당신의 삶을 바꾸도록 노력하십시오. 주님께 다가가고자 한다면 예수님의 세례를 따라 용감하게 행하십시오. 비록 예수님과 같은 치욕스런 죽음의 세례를 받을 수는 없겠지만 겸손의 세례는 받을 수 있습니다. 회개의 눈물로 나의 죄를 씻고 겸손의 강물에서 나의 몸을 씻고 새로이 거듭나십시오.
다윗 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느님께 맞갖은 제물은 부서진 영. 부서지고 꺾인 마음을 하느님, 당신께서는 업신여기지 않으십니다.” (시편 51.19)
겸손한 참회야말로,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이기 위한 시작입니다. 겸손한 참회는 바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 효성스러운 아들로 사는 것입니다. 겸손해져야만 자녀를 기다리는 인자한 아버지를 만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들이신 예수님께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희는 나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들이다. 너희가 돌아온 것을 기뻐한다”
주님, 저희가 겸손한 마음으로 참회하고 주님께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함께 묵상해 봅시다.
1. 주님께서는 한없이 낮아지셨습니다. 과연 나도 주님처럼 낮아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상대방이 낮추기를 원합니까?
2.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사랑스러운 자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3. 날마다 예수님의 겸손한 세례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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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
주님의 말씀안에서 살아나가는 날들로
무장하게하소서~~♥
네,,, 주님께서 한없이 낮아지셨던것 처럼 저희도 주님을 닮아 주님처럼 살아야만 주님을 따를수 있다는것을 알고있슴에도,,,,,
나도 주님처럼 낮아지려고 노력했느냐는 질문에는
상대방이 낮추기를 원했던것 같아요, 아니 그랬어요,
상대방이 내 앞에서 너무나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내 앞에서는 바짝 납짝 엎드리기를 원했답니다,
주님이 보시기에 잘못을 저지른 상대방과
그래서 낮추기를 바랬던 저를 보시고 얼마나 한심해 하실까 묵상해봅니다, 한없이 부끄럽기만 하네요,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