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혼불문학관 기행
온산천이 알록달록 물들어 가는 만추에 제천문인협회에서는, 전라북도 남원에
위치한 ‘혼불문학관‘으로 2011년 꿈의 문학기행을 가는 날이다. 필자는 사는
곳이 경기도 광주이기 때문에, 그동안 문협 정기 월례회나, 시화전 및 특별
행사에 불참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래서 이번 문학기행에는 꼭 참석할
것을 약속했다. 또한 필자와 남원은 끊을 레야 끊을 수 없는, 인연의 끈이
매여져 있기에 그 끈을 잡고 가는 것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곳에서 제5공수부대
창설요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1969년 제39회 춘향제 전국 백일장에서 일반부 장원을
하여,문학에 눈을 뜨게 한 동기부여가 된곳이기에 잊을 수 없는 곳이다.
이른 아침 출발 시간에 맞추느라 하루 전에 제천에 내려가 일박하고, 당일 오전
8시에 집결지인 청전동 동사무소로 나갔다. 오랜만에 회원들과 따뜻한 손 인사
를 나눈 뒤, 8시15분경 일행을 태운 관광 버스가 출발하면서 잔잔한 흥분을
감출 수 없다.
아침부터 추적추적 내리는 빗방울이 흔들리는 버스 차창 에 빗금을 긋는다.
김홍래 회장은 “하늘도 의사 표시를 한다고 하는데, 오늘은 제천문학회의
문학기행을 축하하는 가을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습니다.” 라고 첫인사말을
한다. 버스의자를 약간 뒤로 젖히고, 등을 비스듬히 기대인체 눈을 지그시
감으니 옛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그곳에 가면 어떤 모습으로 무엇이 얼마나 변했을까? 몇 년에 한 번씩은
들려 보는 곳이지만, 떠나 온지 40여 년의 세월의 두께만큼 풋풋한 서정이
넘치는, 어렴풋한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려 줄 수 있을까? 관광버스는
중앙고속도로 영주, 안동, 달성을 경유 88고속도로로 접어든다.
88고속도로는 동서 화합을 위하여 건설한, 대구와 광주를 있는 최단거리로
연결하는 고속도로이다, 경상남도 거창과 함양을 지나 전라북도 남원 땅이
다가오니, 버스 보다 마음이 앞서, 광한루 오작교 아래에 주홍색 잉어 떼가
관광객이 뿌려주는 번데기 받아먹는 모습이 선하다.
남원은 옛 부터 춘향의 절개로 꽃피운 춘향골로,사랑을 꿈꾸며 그 사연을
소설로, 판소리로 승화시켜 넋두리하던 곳이다. 12시 40분 경 목적지 남원에
도착하여,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전국적으로 유명한 ‘새집추어탕‘집에서
맛깔스런 추어탕을 점심으로 맛있게 들었다
거의 25년 만에 ‘새집추어탕’ 집을 찾았는데, 건물도 사람도 모두
바뀌었어도, 그 맛은 여전한 것 같다. 식사 후, 남원시청 관광과에서 나온 여성
해설자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지리산 산자락에 있는 육모정과 춘향묘를
탐방했다. 해설자는 문인들을 맞는다고 나름대로 준비를 한듯하다.
아동문학 작가 이기도한 그녀는 자료를 인용하여 “시인은 생각하는 직업을
가지고, 부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데, 대개는 리플리 증후군에 있다.” 면서
“자신이 꿈꾸는 세계를 진짜라고 믿으며, 현실을 허구라고 믿는 인격 장애를
‘리플리 증후군’ 이다‘ 라고 강조한다.
다음 목적지는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정원으로 요천수 물을 담아 연못을
만들어 오작교가 있는 남원의 대명사인 광한루로 이동한다. 광한루는
황이정승이 남원에 유배 되었을 때 지은 누각으로, 춘향과 이몽룡이 처음 만나
사랑을 맺은 곳이라는데, 픽션인지 논픽션인지는 잘 모르겠다. 오랜만에 찾은
광한루와 오작교 그리고 춘향사당은 옛 모습 그대로 이지만,전체 적인 정경은
많이 변모 확장 되었다.
다음은 만복사지로 이동했다. 만복사지는 창건 후 수차례에 걸쳐 중창 되었
으며, 석좌대위에 있었던 대형석불은 온데 간데없지만, 비 개인 맑은 하늘
흰 구름 사이 내리는 햇살이 잘 다듬어진 만복사지 잔디밭에 졸고 있다.
다음은 정유재란 때 남원산성 전투에서 순절한 호국의 얼이 서려있는
만인의총 으로 갔다.만인의총은 정유재란때 나라를 지키다 순국한, 민·관·군
1만 여명의 충혼을 모신 곳으로, 충열사에는 임진·정유재란때 순국한 50여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남원 관광을 모두 마치고 오후 4시경, 소설가 최명희씨가 짧은 생을 마감
하면서 혼을 불어 넣어 17년 만에 완성한 불후의 명작 ‘혼불'의 배경지이며,
그녀의 문학관이 있는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로 갔다. 남원에서 전주로 통하는
국도를 따라 약 20여분 달리다가, 샛길로 접어들어 농촌마을 들녘 사이에
대형버스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길을 오르면, 노적봉 산자락에 검은
기와 한옥으로 된 아늑한 ‘혼불문학관’ 이 나온다. 문학관 입구 주차장 아래에
청호저수지가 있는데, 이 저수지는 노봉마을 서북쪽으로 뻗어내린 노적봉과
벼슬봉의 산자락 기맥을 가두기 위해 큰 못을 파고, 그 갇힌 기운이 찰랑찰랑
넘치게 된다면, 백대천손의 천추락만세향(千秋樂萬歲享)을 누린다 하여
청암부인이 2년여에 걸쳐 이 저수지를 만들었다“는 문화 해설자의 절절한
설명이다.잔디로 잘 다듬어진 문학관 뜰에 서니, 규모가 생각보다 크게,
전시관은 두 채의 큰 한옥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외벽에는 소설의 시대적
배경들의 사진들이 전시 되어 있다. 수 십억원의 예산이 소요 되었을 법한
‘혼불문학관’ 건립은 남원시의 큰 배려가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 했는데,
누구의 귀띔에 의하면 문중에서 건립의 주체가 되었다고 한다. 먼저 기념관
입구에 들어서면, 작가의 초상화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비록 죽은 자는 말이
없다지만, 눈빛은 흔히 대하는 중년 여인에게서 풍기는 따스함이 느껴
지는데, 그 눈빛에는 빛나는 총기가 살아있다. 그러기에 뛰어난 작품을
남길 수 있지 않았을까? 작가는 여고 시절에 쓴 수필이 너무 완벽하여
교과서에도 소개 되었다고 한다, 목례를 하고 안으로 들어서니, 좌측으로
‘혼불’을 집필할 때, 퇴고한 흔적이 역역한 육필원고와,작가가 즐겨 사용
했었다는 몽불랑 만년필과 파카 잉크병 등이 함께 진열되어 있다.
여기 저기 작가의 행적이 묻어나는데, 작가와 삶을 함께한 유품과 영상물이
방문객을 반긴다.
‘혼불’을 쓰기 위해 준비한 치밀하고도 방대한 자료모음이 망라 되어 있으며,
전시관 중간에서 부터 소설 속에 나오는 주요 장면들을 모형으로 만든 혼례식,
소꿉놀이, 액막이 연 날리기, 장례식 장면등이 디오라마(Diorama)로
전시 되어있다.
작가가 집필을 하던 방에는 촌스러운 소파와, 손때 묻은 조그만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다. 비록 짧은 생애였지만 자신이 후세에 길이 남을 것을 예견
이라도 했을까? 주어진 삶을 보람있게 살고 갔다는 흠모로, 많은 방문객이 그를
추모하고 사랑하며, 오래 기억되기를 기원한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라’ 했는데 자신의
흔적을 조명해 보니 어두운 그림자 뿐 그동안 무엇을 했단 말인가? 푸념을 기념
조약돌에 몇자 메직펜으로 적어 놓고, 손을 부비면서, 뜰로 내려서는데, 뒤에서
“어! 윤서방 아닌가? 우짼 일인가?”하는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리기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뜻밖에도 전주에 사시는 처 외숙님이 우연한 만남에 반색을
감추지 못하고 손을 내 민다. 석양의 황금빛 햇살이 뒤편 노적봉에 걸렸을 때,
혼불문학관을 나오는 필자에게는, 특별히 작가가 남긴 세 구절이 기억에 꽂힌다.
첫째 "나는 원고를 쓸 때는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듯 썼다."
둘째 임종 때 남긴 "세상 잘 살다 갑니다. 나에게 혼불 하나면 됩니다." 그리고
셋째 “쓰지 않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라는 구절이다. 가슴 짠한
추모의 마음이 더욱 숙연해 진다. 그런 집념이 지나쳐서 불치의 병고에 시달리다
오십을 갓 넘어서 생을 마감한 삶이 아쉽게만 느껴진다. ‘ 혼불문학관’ 출구에
비치된 방명록에 이렇게 한 줄 적었다. “님의 혼에 불꽃이 영원하라“
출처 ☞ 윤카페
단체기념사진
광한루
만인의총
혼불문학관
최명희작가
| |
첫댓글 추억어린 장소에 가셨군요.
넓은 잔디밭과 수려한 한옥이 아름답습니다.
F-S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