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당진, 씨티앤티 공장에 줄줄이 세워 놓은 전기자동차를 보자 애니메이션 <꼬마자동차 붕붕>이 떠올랐다. 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으로 골격을 만들고 강도 높은 플라스틱판을 붙여 만든 초경량 자동차. 좌석 두 개짜리 작은 몸체에 작은 바퀴가 달리고, 전면 양쪽에 동그란 눈처럼 튀어나온 헤드라이트…. 작고 귀여웠다. 납축배터리나 리튬폴리머배터리에 충전시켜 운행하는 자동차로, 한 번 충전하면 70~110km를 달릴 수 있다고 한다. 하루 평균 주행거리를 50km로 잡을 때 한 달 전기료 1만 원 안에서 연료비가 해결된다. 이제까지는 골프장이나 관공서, 리조트, 학교, 기업 등에 판매했는데, 8월부터 일반 소비자에게도 판매한다. 요즘 같은 고유가 시대에 귀가 솔깃했다. 씨티앤티의 전기자동차는 베이징 올림픽 기간 동안 올림픽공원을 누비며 세계인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이 자동차를 만든 주역들이 마침 전략회의를 하고 있었다. 회의가 끝난 후 자동차 주위에 모여든 씨티앤티 이영기 대표와 김공식 상무(공장장) , 박은표 상무(기술연구소 소장), 김준엽 상무(해외 영업), 박상덕 이사(생산본부장), 조경훈 이사(개발본부장), 정권채 이사(CR 본부). 이들은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을 현재 위치로 끌어올린 역군들이다. 수십 년간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쌍용자동차 등에서 일하며 중추 역할을 했던 이들은 40대 후반에서 50대 후반의 나이에 “세계 최고의 전기자동차 기업을 만들겠다”는 꿈으로 뭉쳐 새로운 인생의 승부수를 던졌다.
이들은 가족들과 떨어져 당진의 원룸에서 합숙하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든 정열을 일에 쏟는다. 아침 7시쯤 당진 시내 숙소에서 당진군 고대면 옥현리 공장으로 출근, 공장 주변 풀을 뽑고 청소를 한 후 공장으로 들어가 체조, 선 채로 조회 후 업무 돌입. 이들이 다시 공장을 나서는 시간은 밤 12시가 다 되어서라고 한다. ‘새마을운동’ 시대가 연상되는 일과다. 고되고 외로운 시간일 텐데 이들은 “꿈이 있어 즐겁다”고 말한다. 이영기 대표는 해외시장 개척으로 일주일에 절반 이상 외국에 나가 있지만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당진을 찾아 이들과 전략회의를 한다. 대기업에 있을 때보다 일을 더 많이 하지만, ‘우리 손으로 세계 최고의 회사를 만든다’는 자부심에 즐겁다면서 그 덕에 젊음을 되찾은 것 같다고 한다.
일본제품을 밀어내고 시장점유율 70% 이상을 차지한 골프카. |
현대자동차에서 22년간 근무했던 이영기 대표(54세)가 씨티앤티를 설립한 것은 2002년. 현대자동차 출신 엔지니어가 만든 전기자동차 회사를 인수하면서 “전기자동차에 미래를 걸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자동차업계에서 중추 역할을 했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스카우트하기 시작했다. 이 중에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떠나 다른 업계에서 일하고 있지만 자동차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사람도 많았다.
김호성 이사(기획실)는 현대자동차 신입사원 시절부터 이영기 대표와 함께 일했던 직속 후배. 그는 그때부터 이영기 대표에 대해 “그냥 꿈만 꾸는 게 아니라 꿈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현대자동차 시절 이영기 대표는 상용-특장차를 80개 국에 수출하는 신화를 썼다. 일본과 유럽의 유명 자동차 메이커들이 선점하고 있어 틈이 없어 보이던 시장을 뚫었던 것이다. 특수 장치 등 상대방의 요구사항을 즉각 반영하면서 가격까지 그 자리에서 결정해 주문을 받았던 게 경쟁력. 기술적인 내용까지 꿰뚫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번 식구는 영원한 식구”라며 팀원들을 챙기는 의리파에 보스 기질이 강했다. 그래서 이영기 대표가 현대자동차를 퇴직한 그를 불렀을 때 “저 사람이라면 운명을 같이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한다.
박은표 상무는 현대자동차에서 상용-특장차를 개발하며 이영기 대표와 호흡을 맞췄던 사이. 조경훈 이사 역시 현대자동차에서 부품개발을 맡았었다. 김공식 상무는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의 생산본부장을 지냈고, 김준엽 상무와 박상덕, 정권채 이사는 기아자동차 출신이다. 여기에 포니에서 에쿠스까지 우리나라 자동차 기술의 산증인인 이충구 전 현대자동차 통합연구개발본부장이 기술고문을 맡고 있다.
일본 회사들이 선점했던 골프카 시장 공략해 70% 이상 차지
기술이나 해외영업에서 베테랑들로 진용을 갖춘 후 이들이 처음 공략한 곳은 우리나라의 골프카 시장이었다. 산요, 야마하, 히타치 등 일본 회사가 장악하고 있던 시장. 2005년 말 처음으로 골프카를 출시한 씨티앤티는 이제 이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넓은 차 폭에 온열 시트, 4륜독립 현가장치, 이중회로의 4륜 디스크 브레이크로 경쟁자들은 생각지도 못하던 승용차의 기술을 적용, 일본 골프카에 비해 안락하고 고급스럽게 만들었죠. 그래도 처음에는 국산 골프카를 미심쩍은 눈으로 봤습니다.”
2007년 레이크사이드 골프장에 골프카 240대를 한꺼번에 공급하면서 씨티앤티의 골프카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고, 시장 판도는 뒤집어졌다. 이들은 이를 ‘골프대첩’이라고 표현한다. 전 사원이 나서서 씨티앤티 골프카의 우수성과 경쟁력에 대해 설득한 결과였다. 올해 초부터는 거꾸로 일본시장으로 씨티앤티의 골프카를 수출한다. 전기자동차는 공해나 소음을 배출하지 않는 무공해차라 골프장 외에도 공원이나 놀이동산, 레저단지, 실버타운, 대규모 사업장이나 공장, 학교나 연구단지, 농촌지역에서 사용하기에 알맞다. 현재 기술로는 최대 시속이 60km 정도인데, 선진국에서는 가까운 거리를 다닐 때 쓰는 ‘세컨드 카’로 자리 잡고 있는 추세. 화석 연료 고갈이 시간문제이므로 결국 전기자동차가 휘발유 자동차를 대체할 것이라고 씨티앤티는 미래를 내다본다.
“세계 최고의 전기자동차 회사를 만들겠다”는 이영기 대표의 공언은 이제 현실이 됐다. 지난해 중국 산동성 문등시에 연산(年産) 5만 대 수준의 공장을 세워 당진공장(1만 대)과 함께 한 해 6만 대의 전기자동차를 생산하는 규모를 갖춘 것. 이제까지 세계 최고 수준의 전기자동차 회사는 크라이슬러 자회사인 GEM으로, 한 해 8000대 생산 규모다. 이와 함께 글로벌 시장 개척도 활발하다. 지난해 세계 최대 골프장인 중국의 남산국제골프클럽 등 중국의 대표적인 골프장들에 골프카를 공급하기 시작했고, 아랍에미리트 왕궁, 카자흐스탄 대통령궁에도 씨티앤티의 전기자동차가 들어갔다.
현재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태국, 싱가포르, 홍콩 등지에 진출하기 위해 현지 업체와 상담을 진행 중이다. 한 해 1만 대 생산 규모의 조립공장을 모듈화해 현지에 세운 후 부품을 공급하면서 현지 업체가 운영하게 하는 플랜트 수출 형태. 소규모 투자로 단기간에 전 세계에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는 방법이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전기자동차를 개발하면서 이영기 대표는 “김치냉장고를 봐라. 이만큼 히트할지 누가 알았겠느냐”는 말을 자주 했다. 전기자동차도 미래를 선도하는 자동차로 곧 자리 잡을 것이라는 신념에서다. 씨티앤티의 모토는 ‘with GREEN to BLUE’. 친환경으로 블루오션을 개척한다는 뜻이다.
사진 : 문지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