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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개신교 부패의 고리를 끊는 원년이 되자!
-목사나 평신도 모두가 민주적 헌법으로의 개정을 통해 목회 역할을 분담하고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 부패의 고리를 끊는 원년이 되자
2004년도 한국개신교의 부패의 대미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목사 일가에 대한 <시사저널>의 '조용기목사께 묻습니다'로 장식했다. 실로 천문학적인 재정의 유용과 일가에 의한 족벌 경영은 그리스도인들 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의 입조차도 다물지 못하게할 정도로 충격은 메가톤급이였다.
필자가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다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크리스쳔이란 이름 때문에 믿지않는 동료들로 부터 많은 질문 세례와 비아냥을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개신교 치부의 핵심을 들어낸 사건이었다.
이러한 치부를 뒤로하고 2005년도 새해 새아침이 밝았다.
자연의 섭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인간의 세상이 어떠한 모습으로 굴곡지던, 어떠한 죄로 타락을 하던 늘 정해진 규칙대로 운행을 계속해서 절망 가운데서도 새로운 희망을 갖게 한다. 그 희망이 바로 새해 새아침이다.
절망의 연속성을 어느 일정 시점에서 끊게하고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하는 2005년도 새해 아침에 나는 우리 개신교 1.200백만 성도들 앞에 '부패의 고리를 끊는 원년'이 될것을 주창하면서 다음과 같이 세부 실행방안두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목사의 우상화와 담임목사 1인에 대해 권력을 집중시켜 놓고 있는 교단
헌법 개정에 모두가 발벗고 나서자
한국개신교 헌법의 정치조항은 목사를 극도로 우상화 시켜놓고 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개신교단의 '목사의 의의'는 목사를 사도, 선지자, 대제사장의 반열에 올려놓고 있으며 특히 기하성의 헌법이 유독 심하다.
본래 목회자들이란 뜻은 '섬기는 사람들' '시중드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그런의미에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목회자들이다. 미국 장로교 보스톤 노회의 한 지교회인 뉴튼 장로교회는 주보의 왼쪽 귀퉁이에 Paster는 '아무개 목사'라고 되어있고, 그 오른쪽에는 Ministers 라고 하고 '모든 교인들'이라고 명시해 놓고 있다. 이는 Paster는 담임목사란 의미의 말이고, Ministers는 목회자들이란 의미의 말로서 모든 교인들이 목회에 참여 한다는 뜻이다.
목사(paster), 장로(elder), 감독(bishop)은 교회에서 동일한 직분으로 한 사람이 수행하지만, 그 직분 측면은 각각 다르다. 목사는 목회 전문사역자를 의미하며, 성도들에게 설교하고 성도를 육성하며 보호하는 직분을 수행한다.
신약성경에서 '목사(paster)'란 단어는 단 1회 나오며(엡4:11), 헬라어 포이맨(poimen)에서 유래되었다.
또 '목자(shepherd)' 로 번역된 말이 16차례나 나오는데(마 9:36, 마25:32, 26:31, 막6:34, 14:27, 눅 2:8, 15, 18, 20, 요10:2, 11, 12, 14, 16, 히13:20) 헬라어 신약성경의 '무리에게 먹인다(행20:28, 벧전5:2)'란 구절을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무리를 보살핀다'란 뜻이 되며 '목사(paster)'와 '목자(shepherd)'의 어근은 동일하다.
'장로(elder)'란 말은 신중하고 침착하게 의무를 다하고 양들의 모범이 되며 믿음으로 가정과 교회를 잘 다스린다는 의미이다(벧전 5:1,3)
'감독(bishop)'이란 말은 양떼를 보호하는 자를 의미한다. 사도행전 20:28을 표준 새번역판에서 보면 '여러분은 자기 스스로를 잘 살피십시요. 또 여러분은 양 떼를 잘 보살피십시오. 성령이 여러분을 양 떼 가운데서 감독으로 세우셔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의 피로 사신 교회를 돌보게 하셨습니다.'라고 기록하여 '감독자'에 해당하는 의미를 '보살핀다' '돌본다' 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감독은 교회를 이리떼로부터 보호하고 돌봐야 하는 파수꾼의 역할이다 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러한 용어들이 동일한 교회 업무를 가리킨다는 사실이다. 디도서 1:5-7을 보면 '장로(elder)'와 '감독(bishop)'이란 용어를 호환하여 사용하고 있으며 사도행전 20장에서는 위의 세가지 용어가 동일한 직분에 적용되고 있다.
사도행전 20:17에서는 목회자를 '장로(elder)'라고 했고, 20:28에서는 '감독(bishop)'으로 언급했으며 그는 '무리를 보살피는 목회자(paster)'에 해당하는 일을 하는 자로 언급되어 있다. 베드로전서 5장에서도 이 용어들을 동일한 교회 직분을 가리키는 데 사용하고 있다. 이 용어들을 호환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주 중요하다.
목사는 장로요 감독이다. 그 직분은 서로 구분될 수 없으며 주의 자녀를 보살피고, 보호하며, 주를 섬기듯 섬김의 자세를 견지해야 하는 종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구약 가운데 선지서에서 '목자'라는 명칭은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왕들을 가리켜 사용하는 말로서 장차 오실 선한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명칭인 것이다. 이 용어 조차 '목사의 의의'에 갖다 붙여서 목사가 선지자나 제사장을 뜻하는것으로 나타낸다면 이는 어불성설이다.
예수께서 직접 세우신 사도직임 또한 목사직임의 기원은 아니다. 구약시대에 제사장과 왕과 선지자 직임들은 그 시대에 필요했던 직임들이고, 신약시대 초기에 있었던 사도의 직임 역시 그 시기에만 단회적으로 있었던 직임들인 것이다.
사도 바울은 목사직임의 기원에 대하여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너무도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그러므로 목사직임이 구약시대의 제사장과 왕과 선지자의 직임들과 관계가 있고, 신약시대에도 사도직임과도 관계가 있다라고 하는 생각은 어림없는 생각인 것이다. 따라서 목사직임은 축복권과 저주권을 받아 가지고 성도들에게 복을 빌어 주어서 복을 받아 누리게 하거나 저주를 빌어 주어서 저주를 받아 고통을 받게 하는 신통력을 발휘하는 직임은 더욱더 아니다.
목사의 직임은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의 고백위에 세우신 교회에서 성도를 서로 교제하게 하며, 선한 일을 행하게 하며, 말씀으로 책망하고 격려하며 위로하는 일에 힘쓰고,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깨달아 택한 백성들에게 잘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성도들을 가르쳐야 하는 디모데에게 성경을 배우고 확신에 거하라고 당부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개신교단의 헌법은 목사직임을 구약시대 선지자들 처럼 하나님께로 부터 직접 음성이나 계시를 받아 장래 일어날 신적 비밀을 예언하는 예언자로, 구약시대 제사장들처럼 하나님께 특별히 구별을 받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성도들을 대신해서 드려주는 제사장으로, 구약시대 왕들처럼 하나님께로 부터 직접적으로 신권을 위임 받아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교회의 최고 권력자로, 초대교회 당시의 사도들처럼 성령의 능력을 받아 온갖 표적을 행하며 복과 저주를 마음대로 빌어 줄 수 있는 신통력을 가진 능력자로 정의 해놓고 있어서 인격이 구비되지 않은 사람들이 목사직에 대한 안수를 받게 되면 크게 착각하고 교만해 져서 목사직을 군대의 계급같이 생각하고 최고 사령관이나 되듯이 교회 공동체를 자기 마음대로 휘어젖게 된다.
이런 목사들이 담임목사가 되면 자기보다 훨씬 나이 많은 성도들 조차도 반말로 일관하고 설교시 저주의 말을 함부로 하며 교회정치를 제 멋대로 하게 되는데 이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대단히 불행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목사를 우상화 시켜 놓고 담임목사 1인에게 권력을 집중시켜 놓게 되면 교회 헌금, 그중에서 십일조 헌금은 결국 목사의 몫이라는 착각이 일어나게 되고 교회수입이 증가할 수 록 목사의 몫은 점점 커져가게 되니 재정적으로 풍족한 나머지 사치에 여념이 없게 된다. 이러한 사람들은 70~80평 아파트에 거하는 것이 보통이며 자가용도 최고급 내지는 외제차들을 타고 다니는 등 일반 성도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매년 가을에 열리는 총회에 총대들이 타고오는 최고급차들이나 총회장 선거에 수십억원을 뿌리는 것을 보면 이들이 교회 재정을 얼마나 사금고 처럼 여기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결국 한국 개신교의 부패는 앞서 필자가 <한국개신교 부패의 근원은 교회정치>에서 언급했듯이 목사의 우상화와 담임목사에 집중된 권력이 문제다.
따라서 헌법개정을 통해 목사를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에서 일반성도와 동등한 위치로 내려오게 하는것이 중요하며 은사의 구별은 있을지언정 특별히 기름 부은자로서의 착각에서 깨어나게 하는것이 중요하다.
특히 노회 주관의 담임(위임)목사 임명제 폐지 및 부목사 제도를 없애고, 지교회마다 자율적으로 목사를 선임해서 목사들끼리 공동목회 및 당회장을 순번제로 돌아가며 맡을 수 있도록 관련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 또한 계약직을 통해 3년 단위로 신임을 물을수 있도록 명문화 하는 조항도 반드시 필요하다.
담임목사는 타 교회에서 더 나은 대우를 해준다고 하면 시무교회를 미련없이 팽개치고 떠나면서 목사가 문제가 있을 경우 성도들이 시무를 원치 않아도 떠날 생각을 안하는것은 분명히 모순이다.
둘째 평신도의 주권을 회복하자
평신도라는 용어가 성직자라는 용어를 인정하고 구분하는것 같아서 용어 자체가 적합
하지는 않지만 일반성도를 지칭하는 일반적인 용어가 되었기에 여기서는 그냥 사용하
려고 한다.
우리는 초대교회에서 사도들이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고 일곱집사에게 구제 및 교회정치의 전반을 맡긴 사건을 통해 오늘날 목사와 평신도간의 역할에 대해 중요한 단초를 발견하게 된다. 즉 오늘날의 목사와 평신도의 교회내 역할을 보면 분명히 초대교회의 모습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평신도의 교회내 역할은 수동적이고 제한적인 반면에 목회자의 역할은 교회 전반에 걸쳐 독점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교회가 개척되고 사이즈가 작을 수 록 평신도들의 목회적인 참여가 많고 그 반대로 교회가 커져서 교인들의 수 가 많아질 수 록 평신도의 목회에의 참여는 줄어드는 반면에 목사의 권위는 높아지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 수 있다.그러므로 목사의 권위와 평신도의 목회에의 참여는 반비례함을 알 수 있다.
교회의 크기가 커지고 목사의 지위가 급상승하며 평신도의 목회에의 참여가 줄어들게 되면 교회는 이때부터 부패하기 시작한다. 즉 목회자의 권위가 높아지고 절대화 됨에 따라 교회는 관료화 되게 되고 성직자 제도가 강화되며 이에반해 평신도들의 위상은 매우 낮아지고 목회 참여도가 낮아지며, 그렇게 되면 교회는 부패하는 경향을 띈다는 것이다.
초대교회 이후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기전까지는 평신도들이 목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교회 생활에서 거의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었으나 교회가 커지고 발전하면서 소위 성직자 계층이 생겨나고 이 소수의 성직자라는 사람들이 모든 목회적 권위와 직무를 독점하게 되었다는것이 역사적인 사실이다. 이로인해 성직자의 권위는 높아지고 목회적인 지도력이 강화되는 반면 자연히 평신도는 목회에 덜 참여케 되고 성직자에게 복종하는 지위로 떨어지는 것이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았다는 성직자들에게 교회의 모든 목회 책임을 맡기고 뒤로 물러나 않는 평신도는 나쁘게 말하면 관객이나 구경꾼이라는 지위로 떨어져 기껏 열심히 교회에 나와서 목사가 설교를 잘하나 못하나 구경하고 평가하는 방관자가 되기 싶다. 평신도들이 그 목회적 책임과 사명과 역할을 반납하고 나면 필연적으로 신앙의 자유도 잃어버리는 결과가 나오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평신도들이 목회 일선에서 후퇴하고 성직자들이 교회를 지도하게 될 때 교회는 대체적으로 생동력이 없어지고 타락하며 부패하게 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전 유럽이 기독교화 되고 성직자들의 권위가 하늘을 찌를듯하던 중세 시대를 역사가들은 암흑시대라고 말했다. 오랜 세월동안 교권주의화 하고 성직제도가 강화된 결과 교회의 부정/부패가 제도화된 것이 16세기에 와서 절정을 이루었고 그것이 결국 종교개혁을 유발시켰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익히 알고 있다.
지금의 한국 개신교 대형교회를 보면 거의 목사가 중세의 성직자들과 다름이 없다. 다는 아니지만 경,중에 있어서 차이는 있을 지언정 대체로 그렇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결국 평신도가 주권을 포기함에 따라 오는 필연적인 결과라는 것이다. 각 교단의 헌법을 보면 목사에 대해서는 장황하게 정의해 놓고 있지만 장로는 너,댓줄, 집사는 간략하게 한줄로 담임목사를 보필하는 것으로 정의해 놓고 있다.
이제 평신도들은 각성을 하고 잃어버린 주권을 찾아 제 소임을 다해야 한다. 베드로 전서에서 베드로사도는 "본도와 갈라디아와 갑바도기아와 아시아와 비두니에 흩어져서 나그네 생활을 하고 있는 여러분에게"(벧전 1:1) 라며 소아시아 지방 일대에 살고 있던 모든 일반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평신도 사역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벧전 2:5)
우리가 더이상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이분법적 논리에 현혹되어 더이상 특정한 직임자들이 교권을 독점하고 군림하며 교회 재정을 함부로 유용하는 등 부패해 가는데 침묵하거나 그들을 보호한답시고 언론사나 시청 광장등에 평신도인 일반성도들이 동원되거나 이용당해서는 안된다. 헌법이 민주적으로 현실적으로 개정이 되지 않는한 저들은 현행 헌법과 신본주의를 내세워 부패를 정당시 할것이며 개신교를 끝내 조롱의 대상으로 만들것이기 때문이다.
교회내에서의 비리와 부조리는 반드시 제직회나 공동의회등을 통해 직임의 종류에 관계없이 반드시 감시되고 치리되어야 한다. 이 일에 평신도들은 제 역할을 다해야 하며 교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일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만약 해 교회나 노회 총회에서 나름대로 치리가 안될 때에는 반드시 언론과 개혁단체등을 통해 고발하여 세상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한다. 부끄러운 일이라고 주저하거나 덮어서는 안된다. 세상이 이해 못하는 부패가 교회내에서 점점 가속화 되고 있는데 이 일을 방관하고 있다면 오히려 평신도로서의 직무유기를 더 부끄러워 해야 한다.
새해에는 목사나 평신도 모두가 민주적 헌법으로의 개정을 통해 목회 역할을 분담하고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 부패의 고리를 끊는 원년이 되도록 기도하자
새해 원단 느보산
첫댓글 그렇습니다. 숭사리는 교회개혁의 데이터베이스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은행에서 자금을 대출하듯 숭사리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개혁의 원동력을 가져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좀더 적극적으로 부패의 고리를 끊는..행동하는 원년으로 삼자는 새해원단에 크게 공감합니다. 힘을 보태겠습니다..................아자아자 숭사리 홧팅!!!!
한방울의 물이 바위에 구멍을 내듯 교회개혁도 그렇게 될것입니다.
좀더 성경적으로 많은 근거를 제시해 주시면 설득력이 강할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