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와 안 동조(회진) 향우 -유정란-
발그레한 석양의 끝을 잡고 워낭소리의 진원지를 찾았다.
유년의 푸른 들판엔 평화롭기 그지없는 풍경 하나가 스치고 지나간다. 늙은 황소는 목에 걸린워낭을 좌우로 흔들며 한가롭게 풀을 뜯는다. 맑고 청아한 워낭소리다.황소의 순수한 눈망울과 까까머리 소년의 천진한 웃음소리가 한 폭의 수채화가 된다. 소년에겐 꿈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목장의 주인이 되는 꿈이었다. 소년은 꿈을 향해 달렸다. 꿈은 현실이 되었다.
장마가 잠시 주춤 하던 날 안 동 조 씨를 만나러 갔다. 전화를 했더니 축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하신다. 대덕과 회진을 잇는 중간 지점에 자리한 한우 축사는 풍광 좋은 산 밑에 자리하고 있었다. 널찍한 공간에 분산된 두 개동의 축사엔 140여 마리의 한우들이 푹신한 왕겨 위에서 한가롭게 노닐고 있었다. 분뇨 냄새가 심하게 나는 여느 축사와는 달리 그곳은 별로 냄새가 나지 않았다. 오랜만에 교체한 왕겨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통풍이 잘되는 환경 덕분이라고 짐작이 되었다. 초우농장, 농장 이름처럼 아름다운 산새가 굽어보는 그곳에 소처럼 우직하고 순한 안 동 조 씨가 작업복 차림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지역 사회에서 덕망이 높은 인품으로 존경받는 안 동조 씨가 이달의 향우 탐방 주인공이다.
회진초등학교를 14회로 졸업한 그는 회진면 삭 금리 543번지에서 태어났다.1남 6녀 중 외동아들로 태어난 그는 여섯 명의 누이들로 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성장했다. 그래서 인지 그의 성품은 인자하고 따듯하다. 끝없이 펼쳐진 해안 길을 따라 한 시간을 걸어서 회진까지 통학을 했다. 그는 가끔 외로웠다. 남자 형제가 많은 다른 또래 친구들이 몹시 부러웠다. 무거운 책가방을 서로 나눠 들며 의지 하던 친구 형제들의 모습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었다. 가족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는 하나 남자 형제를 갖는 것이 소원이었다. 성장기 소년에겐 우애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이 형제인가 보다.
결혼하면 아이들을 많이 낳고 싶었다고 한다. 되도록이면 아들을 많이 낳아 서로 의지하고 살게 하고 싶었단다. 그러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자식을 갖는 일이다. 아들 하나만 얻는데 그쳤다. 부인 차 동애 씨와의 사이에 아들 성수가 있다. 2대 독자 아들 성수가 얼마 전 장가를 갔다. 볼수록 귀여운 며느리가 있어서 마구 행복하다.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요즘은 꿈속에서도 손 주를 기다리는 중이다. 안 동조 씨는 가족의 화목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가정의 평화가 없고서는 밖에서 그 어떤 일도 제대로 되지 않는 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부부는 서로 존댓말을 하며 30년을 살아왔다. 결혼 할 때 정한 언약이었다. 존댓말은 싸움을 슬기롭게 하는 전략이 되었다. 우선 막 말을 하지 않으니 서로 조심이 되었다. 싸우지 않고 사는 부부는 거의 없다. 싸움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야 금 새 화해한다. 안 동조 씨 부부처럼.
장흥경찰서 발전위원회 위원장으로 6년째 봉사 하고 있는 그는 회진새마을 금고 부 이사장과 천관 장학회 이사 직함도 가지고 있다. 또 다년간의 활발한 로 타리 활동을 통해 타인을 위하는 습성이 몸에 뱄다. 이 모두가 남을 배려하고 자신의 마음을 비우는 봉사정신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천관 장학회 이사로서 천관 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질문했다. 천관장학회 모금에 시골사람의 참여가 저조함을 걱정했다. 장학금이란 단어에 붙는 육중한 부담감 때문인지 사람들이 기부에 쉽사리 동참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십시일반 적은 금액이라도 뜻을 모은다면 당면한 천관의 어려운 현실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지역 발전에 그의 손이 닿지 않는 데가 없을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 현안에 대해, 아끼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지도 질문했다. 지방선거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민의 갈등을 조장하는 지역선거는 도태되는 민주주의와 구태의연한 지역 발전을 초래한다고 역설했다. 사회 단체장들의 자질 부족도 지적했다. 지역민과 행정의 심부름꾼인 대표가 봉사인의 신분을 망각하고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려 드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것은 참 일꾼의 의의가 실종되는 일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장 경력 5년 동안 단 한 번도 자신의 수고를 빛나게 하거나 어떤 댓 가를 바라고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에겐 요즘 꿈이 하나 있다. 순수 지역민들로만 구성된 회진면 발전위원회를 결성 하는 것이다. 이 지역 발전을 위해서 기꺼이 사재도 출연 할 수 있다는 뜻도 내비쳤다. 그 열정에 절로 마음이 숙연해졌다.노력한 만큼 세상은 자신을 알아보는 법이다. 원하지 않아도 저절로 보상은 따르고 성공이 보장된다. 부수적으로 행복도 따라온다. 안동조 씨의 주변엔 좋은 사람들이 많다. 그 사실만으로도 증거는 충분하다.
이제 더 이상 워낭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황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초원도 보이지 않는다. 가끔 추억 속에서만 들리고 보일뿐이다. 까까머리 순수한 소년은 이제 초로의 신사가 되었다. 뒷동산의 작은 풀 밭 대신 대규모 한우 사육 단지에 안 동조 씨가 서있다. 붉게 타는 저녁노을처럼 그의 가슴은 뛰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역민을 사랑하는 열정으로 말미암은 지독한 열병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