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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기억을 남겨주는 사람일까?
언제부터인지 지나간 일을 기억해낼 때마다 내가 어린 시절에 즐기던 숨바꼭질 놀이 속의 술래가 된 것 같다. 기억의 하나가 떠오르지 않으면 숨어 있는 친구를 찾지 못해 답답하고 조바심을 내는 초조한 술래와 같고, 추억의 한 조각이 맞춰질 때의 기쁨은 친구를 발견한 술래의 환호와 같기 때문이다. 조금 전의 일도 한참 전의 일로 착각 하거나 가까운 시일 전인 것을 깨달으면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마저 민망할 때가 많다. 변화가 잦지 않은 건조한 날씨처럼 잔잔하게 흘러가는 일상의 연속은 추억과 기억이 갈수록 헷갈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날이 그날인 것 같은 날이 이어진다는 것은 한 편으론 다행스럽고 축복받은 삶이다. 특별한 사건 사고 없이 흘러가는 따분한 일상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소소한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의 표정은 늘 밝고 행복해 보인다. 결국 행복과 불행은 마음먹기에 따라 갈리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뚜렷한 기억 하나 남겨놓지 않고 무심히 질주하던 여느 해와 달리, 지난 한 해는 정말 다르다. 송구영신 예배를 마치고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던 아들의 입을 통해서도 얼마나 인상적인 한 해였는지 잘 알 수가 있다. “엄마, 올해는 진짜 익사이팅했어. 2015년! 정말 재미있고 아주아주 신나는 해였어!” 반짝거리는 아들의 눈빛 속에 스쳐 가는 행복했던 시간이 목소리에 담겨 나왔다. 익사이팅(Exciting)의 사전적 의미는 신나는, 흥미진진한, 흥분하게 하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피 끓는, 약동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자극적인, 흥분시키는 등등의 뜻이 있다. 아들의 365일이 이 단어 하나로 정리가 된 셈이다. 그러나 아들과 내가 같은 경치를 바라보아도 느끼는 감정과 생각이 다르듯이 2015년을 돌아보는 아들에겐 슬픔은 없다.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자 인생의 전환점이 된 아들은 자기의 표현대로 재미있고 신났던 해로만 앞으로도 기억할 것이다. 그렇지만 같은 시간 선상에 살고 있던 내게는 달마다 즐거움과 아쉬움을 묻혀 놓고 고마움과 미안함도 버무려 놓았다. 거기에 슬픔과 기쁨이 배인 강하고 진한 여운까지 흘리며 총총히 옮겨 간 해가 2015년이었다.
설렘 속에 맞이한 2015년 새해는 1월부터 졸업반인 아들에게 중요한 시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필요한 학점을 이수해서 시험 기간에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작은아들은 뒤늦게 알고 내게 전했다. 그 덕분에 일주일이라는 생각하지 않은 황금연휴가 생겨서 아들과 의논 끝에 하와이로 향했다. 석양빛에 반짝이는 와이키키 해변을 다정한 연인처럼 아들과 걷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 탐식하며 신년의 첫 시작을 하와이의 정월 태양 아래 즐거움으로 열어 갔다. 그뿐인가! 다양한 디자인과 화려한 색상으로 공주님처럼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여학생들과 멋진 턱시도를 갖춰 입은 늦둥이 아들 녀석의 환상적이고 로맨틱한 고등학교 졸업식은 6월에 있었다. 감미로운 선율에 맞춰 무도회에 온 것처럼 아들에게 이끌렸던 댄스 타임은 영화의 한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두근거림으로 나를 긴장시키기도 했다.
5월에는 한국에서 짧지만, 친정엄마와의 해후로 엄마의 환한 미소를 봄볕을 받아 흐드러지게 피어오른 붉은 영산홍꽃 무더기 앞에 놓아두었고, 미술부에서 로마로 향한 아들아이가 돌아오던 3월에는 품에 안은 꽃다발 탓인지 설렘 속에 예쁜 추억 하나가 빅토리아 공항에 남겨지기도 했다. 더욱이 우리의 새로운 출발점이 된 7월은 배추 포기가 소금에 절여지듯 애틋한 고향의 향수가 십 년 동안 흠뻑 젖은 빅토리아를 아쉬움 속에 떠나왔다. 아들의 장래 희망이던 VFX(Visual Effects Compositor 비주얼 어펙트 컴포지터)의 밴쿠버 필름 스쿨 수업이 9월에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7월에는 새로이 밴쿠버에 둥지를 틀어야 했다.
8월에는 알래스카 크루즈 여행을 준비하신 권사님 내외가 한국에서 오셔서 일주일을 우리 집에서 머물렀는데, 빅토리아에서의 인연으로 가까이 지냈다 보니 허물없는 즐거움을 선사하시고 가셨다. 게다가 이별의 연습도 이별의 준비도 하지 못한 두 번의 소중한 이별을 속절없이 왔다 간 10월과 11월에 묻어 놓아야만 했다. 이처럼 몇 해에 걸쳐 일어날 만한 크고 작은 많은 일이 열두 달 안에 선명하게 기억의 자국이 되어 추억으로 담겼다. 하지만 그중 이별로 인한 두 번의 좌절이 되레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마치 맑고 청아하게 울리던 새벽 종소리와 같은 강한 여운을 가슴에 새겨 놓았다.
들뜬 기대감으로 시작한 나의 지난여름은 수많은 이삿짐 속에 스며드는 땀방울에 고스란히 내어 주어야 했다. 7월의 무더위가 선선한 바람으로 바뀌는 계절 변화에도 산처럼 쌓아 올린 짐 상자가 도무지 낮은 언덕을 벗어나지 못했다. 박스 안에 들어있던 것이 제자리를 찾아갈 때마다 드러나는 빈 곳에 가을볕이 찾아들고 있었지만, 바람에 너울대는 고운 빛깔의 낙엽을 주워 볼 겨를도 여유도 없었다. 그리고 스키 장비를 정리하며 순백의 설원 위로 역동적인 곡선의 춤사위를 꿈꾸던 겨울 또한 즐길 수가 없었다. ‘높지 않은 산봉우리들이 도심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밴쿠버의 평화롭고 낭만적일 것 같은 정경 또한 어떠한 감흥조차 느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순간’을 가르며 날아가는 시간의 화살촉 끝에 매달린 계절 탓도 있지만,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안에 채워지는 공허함이 더 컸던 탓이기도 하다. 희망에 찼던 밴쿠버의 지난가을은 내게 너무 잔인했고, 절망의 나락으로 겨울과 함께 나를 밀어 넣었다.
삼십 대로 들어서던 때부터 근 이십여 년 동안 각기 다른 부위의 암으로 여러 차례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던 내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동갑내기 친구 선옥이. 긍정적인 사고와 특유의 밝은 웃음소리를 잃지 않던 다정하고 유쾌한 내 친구. 멀리 낯선 이국땅에 혼자 덩그러니 던져진 나의 운명을 오히려 안쓰러워하던 내 사십여 년 지기 여고 동창은, 길고 긴 아픔과 고통을 내려놓고 단풍이 한창 어여쁘던 지난가을, 내가 좋아하는 시월에 떠났다. 정신적인 유대감으로 돈독한 우정을 나눴던 친구와의 수많은 시간의 기억을 토해낼 때마다 튕겨 나온 추억은 나를 더욱더 슬픔 속으로 끌어들였다. 극구 말려도 아픈 몸을 내색하지 않고 늘 공항에 밝은 모습으로 있던 친구. 눈웃음을 얹은 특유의 느긋한 말투는 친구의 독특한 매력으로 현명하고 지성적인 교양을 엿볼 수 있고 그것은 언제나 내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 그 친구를 잃은 애통함은 창밖으로 보이는 하얀 구름 한 덩이에도 눈물이 실리고 바람에 흩어지는 낙엽 무리를 보아도 그리워 눈물이 나왔다. 그런데 3주 내내 시도 때도 없이 흘러내리던 눈물이 멈추었다. 아니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그 순간부터였다.
매주 금요일마다 밴쿠버 순복음 교회 심야 예배에 참석하던 나는 나의 비통한 마음을 울부짖는 기도에 담아 쏟아내었다. 울며불며 호소하고 서운하고 안타까운 울분을 토하는 내 절규는 예배당 안에 울리는 찬양 소리에 섞여 친구 잃은 슬픔을 마음껏 뱉어낼 수 있었다. 그날도 원망에 가득 찬 눈물이 솟구치던 때에 잔잔히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 “줄리아, 내가 내 딸을 사랑해서 이제 더는 아프지 않은 곳으로 평안하게 해주려고 데려왔는데, 네가 왜 그렇게 서럽게 우느냐?” 부드럽지만 강한 어조로 나를 다독이며 위로하시는 하나님. 슬픔을 어루만져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서 비로소 나 또한 안정을 찾아 갈 수 있었다.
어느새 창밖은 벌거벗은 나무들이 눈에 띄고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빠른 속도로 가을이 밀려가고 있었다.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잎새를 모두 떨구려는 듯 달려들던 비바람은 애처롭게 버티는 내게도 불어오고 있었다. 그날은 늦가을의 차가운 공기가 겨울을 재촉하듯 이른 아침부터 바람이 예사롭지 않던 날이었다. 이별을 겨우 내려놓고 몸을 추슬러 가던 때에 또다시 믿기 힘든 비보가 빅토리아에서 날아들었다.
캐나다에서 살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주 오랜 친구처럼 내게 다가온 가족 같은 친구가 있다.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도 곁에서 위로하고 격려하며 좌절하지 않도록 함께 기도하던 고마운 내 친구. 낯선 문화와 어눌한 언어에서 오는 불편함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첫 벽 안의 친구이자 만 9년을 함께 한 단짝 친구인 메리 캐스턴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친정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한국에서 머무는 동안 틈틈이 우리 집을 방문해서 우편물도 정리하고 꽃 화분에 물도 주고 심지어 내가 돌아올 무렵에는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서 냉장고에 채워 두던 친구였다. 이삿짐을 여미고 빅토리아를 떠나던 날에도 좋은 글귀가 담긴 책을 내게 선물하며 평온한 모습으로 방문했던 메리의 뜻밖의 부고는 나를 절망케 했다. 사랑하는 여고 동창 선옥이를 잃은 슬픔으로부터 채 벗어나지 못했던 나에게 닥친 거짓말 같은 또 다른 사랑하는 친구의 부고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쏟아지는 오열에 나를 가두는 것뿐이었다. 가혹한 현실을 자각할수록 힘든 시기에 함께하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더욱 슬픔을 몰고 왔다. 온 세상의 비극이 내게로 향한 것과 같은 기분에 휩싸일 때마다 스스로 자학하고 자책하며 두 친구의 죽음을 비통해했다. 그렇게 슬픔 속에 갇힌 시간이 계절에 묻어 흘러가던 어느 날 빅토리아의 가까운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걱정되어 전화하셨다는 어르신은 임종 무렵 메리의 모습을 담담히 전하셨다.
“줄리아가 너무 힘들어하고 슬퍼하고 있을 것 같아서… 내가 둘이 친했던 걸 아는데,… 그러지 말아.” 담담하게 이어지는 말씀 안에 그려지는 누워있는 메리의 모습은 뿌연 안개처럼 깔려있던 슬픔을 사그라뜨리며 오히려 내게서 부끄러움이 스멀거리며 번져가는 것이었다.
별 증상 없이 가벼운 두통에 어지러움이 잦아져서 검사했을 뿐인데 폐암 말기와 뇌에 종양이 무려 열 한 개나 들어 있어 수술도 항암치료도 없이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을 날만 기다렸다는 예순여섯의 내 친구 메리. 전화할 때마다 자동 녹음으로 넘어가서 동부에 사는 자녀 집에 손자 보러 갔나 보다.라고 평소처럼 별스럽지 않게 여겼던 메리의 부재가 생각났다. 그 시간에 하늘나라에 가는 소망을 품고, 곱고 맑은 모습으로 기쁘게 기도하며 밝고 평온한 모습이었을 메리. 방문하는 주위의 사람들에게 죽음을 대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였다는 나보다 나를, 더 좋아해 준 내 친구.
"Peace, 그 평화롭다는 말이 메리를 통해 깨닫겠더라. 메리가 진심으로 부러웠어." 여든을 바라보는 어르신의 말씀 덕분에 메리의 뒷모습으로 죽음을 새롭게 인지하고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나는 의사로부터 몇 개월, 몇 년이라는 남은 수명 기간을 선고 받는 사람만이 시한부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착각이고 그릇된 것이라는 것을 사랑하는 두 친구의 생각지 못한 죽음을 겪으며 삶과 죽음에 대해 달리 인식하게 되었다. 나 역시 아니 내가 태어날 때부터 시한부 생명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깨닫게 된 것이다. 우리 모두 주어진 시간이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뿐 죽는 것은 똑같지 않은가. 더군다나 남녀노소, 학벌, 빈부의 격차와 상관없이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결국 사람의 평등은 주검이 되는 시점에서야 같아지는 것이다. 주검, 시체, 시신, 사체, 송장 등등 생명이 없는 몸을 지칭하는 것 또한 같은 의미이고 동일하게 부여한다. 그런데도 죽음은 나와는 상관없고 나만 특별한 존재로 남들에게나 일어나는 일처럼 여기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사람은 태어나면 반드시 죽고 이미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을 잊고 있기에 차창 밖의 풍경같이 인생이 빨리 지나간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가끔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 ‘당신이 떠나간 자리는 당신의 얼굴입니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는 것을 볼 때가 있다. 물론 화장실을 깨끗하게 사용하라는 이야기일 테지만, 뒷모습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렇듯 사람이 떠나간 그 빈 자리를 기억하며 채우는 것은 그들이 살아생전에 지녔던 품성과 인격으로 나눠진 사랑이 그리움으로 가슴에 담기는 거다. 내가 친구 잃은 슬픔이 컸던 것 또한 그들에게 받은 사랑이 컸기 때문이고, 그로 인해 이별 안에 남긴 밝고 긍정적인 희망의 메시지를 찾을 수 있었다. 그렇듯 내게 주어졌던 시간이 소멸하여 시한부의 삶을 마감할 때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던 줄리아”라고…. 그렇게 기억된다면, 나는 정말 괜찮은 인생을 살다 간 행복한 사람으로 사랑을 나누던 삶을 보냈을 것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스치듯이 짧게나마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비록 그들의 기억 속에 담기지 않을 지라도 찰나의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무엇을 남기는 사람이 될 것인지 그것은 우리 모두 각자의 몫이다. 나도 늘 한결같이 나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마음을 닮아가도록 더욱더 겸손하게 나의 뒷모습을 사랑으로 가꿔 보리라.
-2016년 5월 선옥이와 메리가 무척 보고 싶고 그리운 날에….
* 캐나다의 서부지역인 밴쿠버와 빅토리아는 하와이 가는 것이 한국에서 가까운 동남아시아로 여행 가는 것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