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고향인 유다 지파의 땅으로 돌아가 헤브론에 정착합니다. 1~4절 앞부분까지 보겠습니다.
1 이런 일이 일어난 뒤에, 다윗이 주께 "제가 유다에 있는 성읍으로 올라가도 됩니까?" 하고 여쭈었다. 주께서 그에게 올라가라고 하셨다. 다윗이 다시 여쭈었다. "어느 성읍으로 올라가야 합니까?" 주께서 헤브론으로 올라가라고 알려 주셨다.
2 그리하여 다윗이 그 곳으로 올라갔고, 그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도 함께 올라갔다.
3 다윗은 자기의 부하들과 그들의 온 가족을 데리고 함께 올라가서, 헤브론의 여러 성읍에서 살도록 하였다.
4 유다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 곳에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서, 유다 사람의 왕으로 삼았다.
사울이 죽었으니 다윗이 망명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건 당연한 수순입니다. 유다지파 사람이니까 유다지파의 관할지역인 헤브론으로 왔습니다. 헤브론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3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거기서 유다지파 사람들이 다윗을 자기 족속의 왕으로 삼았답니다. 하지만 나머지 지파의 동의를 받은 건 아닙니다. 8~11절을 보겠습니다.
8 넬의 아들 아브넬은 사울의 군대 사령관인데, 그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건너갔다.
9 거기에서 그는 이스보셋을 왕으로 삼아서, 길르앗과 아술과 이스르엘과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였다.
10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은, 이스라엘의 왕이 될 때에 마흔 살이었다. 그는 두 해 동안 다스렸다. 유다 족속은 다윗을 따랐는데,
11 다윗이 유다 족속의 왕으로 헤브론에서 다스린 기간은 일곱 해 여섯 달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왕위 계승의 정당성은 다윗이 아니라 이스보셋에게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보셋은 선왕인 사울의 아들로 전체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된 반면에 다윗은 유다지파의 왕으로 추대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왕위에 오른 것은 나머지 지파 사람들이 볼 때는 반역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성서는 다윗의 손을 들어줍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셔서 사무엘을 통해 은밀히 다윗에게 기름을 붓게 하셨고, 사울의 악행에 대한 벌로 그를 죽게 하신 것이라고 성서본문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이성계 장군이 고려 입장에서는 반역자지만 조선의 입장에서는 부패한 고려 말기의 고통에서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하늘이 낸 영웅으로 보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어쨌든 이렇게 되면 내전을 피할 수 없습니다. 먼저 사울의 가문이 속한 베냐민 지파와 다윗의 가문이 속한 유다지파 사이에 전쟁이 벌어집니다. 나머지 지파는 관망하는 입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의 총사령관은 사울의 사촌인 아브넬, 유다의 총사령관은 다윗의 조카인 요압이었습니다. 전쟁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보겠습니다. 30~31절입니다.
30 요압도 아브넬을 뒤쫓던 길에서 돌아와서, 군인들을 점호하여 보니, 다윗의 부하 가운데서 열아홉 명이 없고, 아사헬도 없었다.
31 그러나 다윗의 부하들은, 아브넬의 부하 가운데서 베냐민과 아브넬 군인을 삼백육십 명이나 쳐죽였다.
이스라엘군의 전사자는 360명인데 유다군의 전사자는 20명이라는 것입니다. 첫 전쟁은 이렇게 다윗 군대의 대승으로 끝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