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안중근의사추도법요식 참가기
日本 安重根義士追悼法要式 참가기
글쓴이 : 판광공파전회장 안 경 환
9월2일 일본 센다이仙台 미야기현宮城縣 다이린지大林寺의 안중근의사安重根義士 순국 102년 탄신 133주년 기념 日本國 법요식法要式 및 역사탐방 이란 타이틀이 특별한 국제친선교류전에 참여하게 되었다.
1981년부터 매년 9월 첫째 일요일에 일본 다이린지大林寺에서 ‘安重根義士와 치바도시치千葉十七’ 선생 추도법요식追悼法要式을 거행오고 있다고 한다. 다이린지大林寺에는 안중근 의사와 치바도시치千葉十七의 위패가 안치되어 있다.
안의사께서 1909년 여순감옥에 수감 시 간수로 있던 치바도시치千葉十七는 안의사의 고매한 인격과 사상에 크게 감동을 받아 마음속으로 깊이 존경하게 되었고 특히 사형을 앞둔 시점에서 안의사로부터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이라는 휘호를 받아 귀국 후에도 그가 죽을 때까지 안의사의 명복을 빌고 한일 양국 평화공존을 위한 기도를 거르지 않았다고 했다. 그 유묵遺墨을 소중히 보관해 오다가 1979년 안의사 탄생100주년을 기하여 한국에 반환했고 지금은 대림사에 유묵석비遺墨石碑를 본당 앞에 건립했다. 그래서 더욱 다이린지大林寺는 유명한 곳이다.
요즘 한일 두 나라 사이에는 독도문제, 위안부문제, 일본천황사과문제 등으로 어려울 때라 매우 복잡한 중에 방일하게 되어 위의 유적지를 찾고 법요식에 동참하는 것이 더 큰 의의가 있다고 여겼다.
인천공항 M코너에 아침 8시에 안중근의사숭모회 임원과 순흥안씨대종회 임원 등 19명이 동참했다. 우리 대종회에서는 순흥안씨대종회장 천학님, 안용석, 안영홍, 안근배, 안덕주, 안병완, 안택수, 안긍전부회장 또 뜻밖에 안의사님의 증손녀인 안지숙여사, 부군인 윤종구님, 안기영님이 동행하였고 보훈처에서도 이동일부장, 홍현일(서대문감옥 원형복원위), 서화진(가이드 겸 세계일주사장, 한일교류회장)또 숭모회 실무 어수진, 이혜균부장 그리고 김영배님으로 모두 19명의 회원이라 숭모회의 정하철 상무이사가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들뜬 기분으로 청명한 가을 하늘을 뚫고 一路 약1시간 50분 만에 센다이 공항에 도착했다. 주위엔 누렇게 익은 벼가 잘 정돈된 들녘과 우거진 삼목숲이 좋았다. 도시도 깨끗하고 쾌적한 편이었다.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 쇼핑센타에서 일본우동 합동파티가 있었다. 5천원 정도 인데 꾀나 짜고 이것이 음식인가 싶었는데 2천 평의 매장에 손님이 가득차 있었다.
다음으로 日本三景의 하나인 마쓰시마松烏에 가서 별로 깨끗하지 않은 해안에 오밀조밀하고 편안해 보이는 옛 정자와 산책길이 잘 조성되어 있는 섬들을 둘러보았다. 선착장의 배는 타볼 시간이 없어 그냥 지나 인근에 있는 서암사瑞巖寺에 갔다. 마쓰시마松島 중심부에 위치해 있고 많은 유적 유물도 있다. 이 절의 와룡매臥龍梅는 828년 자각대사가 창건한 후 이곳 동북지방의 맹주였던 다데미사무네伊達政宗가 1604년에 중건 확장하고 1909년 본전 상량을 축하하면서 조선의 와룡매 두 그루를 양쪽에 심었는데 실물은 경내 공사중이라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대단히 유명하다고 한다. 이곳은 입구부터 여러 모양의 관세음보살상 수 십위가 세워져 있고 또 장어 고개묘를 세워 자비를 보여준다. 일본 국보가 많이 소장된 곳으로 아름드리 리키다송과 삼목 등은 1000년을 지켜보고 굽어보는 숲이 장관을 이루었다.
가이드서화진씨의 일본어가 우리나라 語音에 유래된 예를 소개하면서 우리가 이곳 일본의 옛주인 이였음을 시사했다. 버스는 약 50킬로를 북상하여 찾아간 곳에 텐포로만칸天平浪漫館이란 역사자료관이 있었다. 붉은 원기둥의 85미터 주황색 회랑이 거대했다. 15억 엔을 들였다고 한다, 우리 일행이 도착 할 때 임원 및 주민 10여 명이 환영인사차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흡사 같은 동포로 옛날로 돌아간 백제유민百濟遺民이란 것을 보여 준 것이다. 그 곳은 1250년 전에 세워진 나라奈良의 東大寺로 大佛像에 금박을 입히기 위해서 일본 최초의 사금을 채취했는데 그것을 백제인이 했다고 한다. 이곳 와쿠야쵸 지역의 귀중한 역사적 자료를 총집합하고 채금과정을 전시했는데 놀라운 것은 백제 의자왕으로 끝난 것이 아니고 그 후 육세를 걸친 세계도世系圖를 그려 전시하고 있는 것이다. 백제시대의 일반인의 밥상, 지배층의 밥상모형이 인상적이었다. 고대 일본인 모습을 한눈에 그려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이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대림사를 찾았다. 어둠이 깃든 시간이었다. 평지에 세워진 사찰이고 주위에는 납골묘지가 즐비했다. 이 절에 안중근의사와 치바도시치의 위패가 모셔져 있었다.100여 년 전에 중국 여순감옥에서 옆방에 간수로 근무하던 일본인 헌병오장인 치바도시치가 그간의 안의사의 고매한 인격과 사상에 크게 감동하고 존경하여 오던중 사형직전에 어렵게 부탁한 휘호이고 어렵게 결단하고 써주신 안의사의 휘호가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이었다. 치바도시치는 고향에 와서 사망 시 까지 안의사의 명복을 빌고 한일 양국의 평화공영平和共榮을 위해서 기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후 1979년 安義士의 탄신 100주년을 기념해서 한국으로 반환하고 대림사주지가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후원회에서 유묵을 커다란 비석에 세겨 본당 앞에 모시고 매년 9월 첫째 일요일에 추모법회가 이어져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다니 놀랍다. 그날 저녁 법당에 한일양측 인사 200여명이 모였다.
일본측에서는 대림사호지회大林寺護持會 熊谷회장 및 그 유족 3인, 미야기현 宮城縣의회의원 및 임원 4명 또 호세이대학法政大學의 지한파知韓派의 마키노에이지牧野英二교수, 안의사영화제작위원 5명 또 고려박물관 임원 太田씨 仙台씨 백합학원고교교장 靑木씨 와 보존회保存會 한국유학생 등이 모였다. 우리측에서는 센다이仙台주재 총영사 이범연씨 및 부인 및 임원과 숭모회 임원 외에 재일본거류민 궁성현지방본부장 등이 함께 했다. 150여명이 한사람한사람이 영전에 분향하고 배례拜禮를 들였다. 참으로 감명깊었다.
곧이어 근처 식당에서 한일친선교류의 자리가 베풀어 졌다. 齊蘇주지의 주관이었다. 일본인 임원 10명과 우리일행 19명의 가족적인 분위기였고 음식도 고급스럽고 크게 정성이 깃든 일본 유명 초밥이 였다. 양측의 환영사 축사 건배 격려사가 이어지고 약1시간 30분간의 화합분위기가 고조되었다. 80세 일본 노인(정원사)은 고향의 봄 등 한국가곡을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야! 이럴 수가 있을까 싶었다. 아쉬운 하루저녁이었다.
환대를 뒤로 하고 이일째는 치바도시치의 생가인 미야끼에 갔다. 그가 일생을 보낸 곳으로 대림사로 부터는 약 1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이곳에 세이운지靑雲寺가 있어 치바도시치 가족의 위패를 모시고 2002년 이 지역 사담회私談會가 주축이 되어 지역의 유지와 후원으로 매년 한일양국의 친선모임을 갖고 대형 고양비를 건립하여 놓았다.
석비에는 ‘안중근의사 치바도시치거사 현창공양비(顯彰供養碑)’라고 한자로 새겨져 있다. 불공을 올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을 기다리는 10여명의 현지 유지인사와 인사를 하고 같이 헌화했다. 감동적이었다. 이렇게 한일간의 친선과 평화를 위한 일본인도 많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꼈다.
지바도시치의 생가도 들러봤다. 전통 2층 일인의 중가옥이었다. 70여년 전에 작고한 지바도시치는 절손으로 양자를 두었는데 93세의 노인과 손자라는 50대 증손자가 우리를 맞이했다.
차를 같이하고 저녁에 이곳 사담회가 주관하는 11회 한일친선교류회가 있었다. 양국인사 60여명이 모였고 구리하라시栗原市 사담회장의 환영사가 있고 우리측에서 안의사 숭모회 대표로 안용석회장 황해도민회장 안택수씨의 답사 그리고 구리하라시의 사토이사무시장과 주일센다이한국총영사인 이범연씨의 축사가 있었다. 또 구리하라의회의장 궁성현의회의원 川仙씨가 연설하고 우리측에서 순흥안씨대종회 안천학 회장님이 유창한 일본어로 좌중을 웃기고 격려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일본측 인사로 구리하라시의 시장, 의회의장, 시교육위원회 교육장, 伊蘇씨 청운사 및 대림사주지가 함께 참여했다는 것이 감명 깊다. 지바씨 유가족도 함께 했고 늦은 시간에 어린이 무용 그리고 관원회장의 특별출연으로 그의 장기인 마술을 보여줘서 좌중의 박수를 받았다. 밤9시 아쉬운 작별을 하고 한일간의 우호친선을 되새겼다. 이모임이 더 확대 되고 계속되길 기원한다.
2012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