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nes, dum docent, discunt: 가르치는 사람이 배운다.
세네카 Seneca, <Epistolae morales>
지나간 내 두 번째 사랑, 우연을 가장해서 얻은 당신의 전화번호가 하루 종일 심장에 망치질을 합니다. 가슴이 모루로 변합니다. 당신의 카톡 프로필을 살포시 훔쳐보았습니다. 보고 싶은 얼굴은 없고 라틴어로 씌여진 세네카의 명언만이 있었습니다.
인색하게도 당신은 그 흔한 셀카 한 장을 안 남기셨더군요! 언제나 당신은 자신을 철저하게 장막 아래 감출 줄 아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아직도 난 당신을 캐고 싶은 다이아몬드 원석처럼 끌어안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여전히 몇만 광년이나 먼 거리가 우리 사이에 있습니다. 이제는 기억 속에서만 당신은 살고 있습니다. 당신과의 물리적인 거리는 차로 10분입니다. 기억은 햇빛 속 춤추는 먼지들의 향연일 뿐입니다
운명은 왜 그리도 잔악무도 했을까요? 우리는 각자 다른 비행기를 탔습니다. 꼭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당신은 독일행을 그리고 나는 뉴욕행을! 당신은 언제나 잘 빚은 조각상처럼 살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내겐 있었습니다. 자랑스러운 교수상을 받았고 수많은 제자들이 존경하는 스승이었습니다. 모래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막의 낙타처럼 당신은 그렇게 가고 있습니다.
행여나 부모님 상이라도 당하면 부고를 받고 한걸음에 달려갈 수도 있을 거라는 잔악한 상상도 해보았습니다. 그렇게 만나서 무슨 말을 할까요? 정말 서로가 불행한 모습은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차라리 행복하게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막막한 상상만이 나를 다독여 줍니다. 그렇게 당신은 그 모습 그대로 거기에 언제나 존재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게 내가 꿈꾸는 당신이니까요!
그런데 왜 이유 없이 화가 날까요? 삶을 잘 잘 살고 있을 거라 예상한 대로 살고 있을 뿐인데! 예감이 틀리길 간절히 기원도 했습니다. 프로필에 씌여진 겸허한 글귀는 당신이 얼마나 좋은 스승인지를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한 번쯤은 지나가다 만날 법도 한데 우연히도 수십 년 동안 짧은 가시거리에도 한 번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신의 타이밍인가 봅니다. 수십 년 동안 못 본 게 기적처럼 느껴집니다. 그게 차라리 나을지도 모릅니다. 비보는 더 빨리 달리는 법이니까요. 아귀힘이 센 악령의 전령사가 뒷덜미를 잡습니다.
무작정 당신에게 손 편지를 썼다가 찢어 버립니다. 난 너무 어렸습니다. 미친듯한 외로움에 혼잣말도 해 봅니다. 삶에서 빨간 주머니, 파랑 주머니, 더도 말고 이렇게 힘든 날에 펼쳐볼 위로의 말이라도 붉고 노란 부적처럼 받고 싶습니다. 당신에게서 하루만이라도 "나도 무척 외로웠소."라는 말을 들어보고 싶어지는 밤입니다. 다시 한번 더 인생에서 선물을 들고 누군가를 향해 셀레임으로 달려갈 날이 있을까요?
완벽한 당신에게도 외로움의 실핏줄이 터져버린 날들이 많았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봅니다.
사골국 끓이다가 깜빡하고 불을 안 끄고 8시간 외출하고 왔습니다. 연기가 자욱하고 솥뚜껑까지 한여름 아스팔트처럼 녹아내렸습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화장터 냄새가 생각났습니다. 양키캔들 "라일락 블라썸"에 불을 붙입니다. 라일락 잎을 씹어봅니다. 하루 종일 입안이 얼얼합니다. 사랑의 맛이라더군요. 물을 마시고 우유를 마시고 커피를 들이켜도 가시지 않는 냄새가 뇌를 점령합니다. 미친 밤입니다. 술과 약과 내가 하나가 되는 기묘한 밤입니다.
네 갈래로 갈라진 라일락 꽃잎 사이 행여나 다섯 개의 잎이 있을까 꽃잎을 헤적입니다. 평생 동안 악운의 연속이었습니다. 끝이 보일 듯 보일 듯 보이지 않습니다. 다섯 개로 갈라진 꽃을 발견하면 사랑을 이룬다는 속설을 믿고 하루 종일 학교에서 찾고 또 찾았던 기억이 납니다. 인생은 결국 잔혹동화가 진실이었습니다. Happily ever after가 아닌 Happily never after입니다! 누구나 다 비극일 뿐이 고 신의 대본에 희극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수십 개의 네잎클로버를 어느 날 발견한 후, 일생을 다시는 찾지 못했습니다. 라일락의 하트 모양 잎을 깨물면 첫사랑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은 정설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입안이 아리고 썼습니다. 라일락 잎은 첫사랑의 맛이라는데 두 번째 사랑도 같은 맛이더군요! 아마도 세 번째도 네 번째도 영원히 사랑은 같은 맛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의 모든 이루어진 사랑의 99.999%의 결과는 권태기라는 말이 명언인지도 모릅니다.
무언가를 먹고 싶은 날에는 보고 싶은 사람도 함께 생각이 납니다. 저만 그럴까요?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세상,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
코로나 372번 참회하는 마음으로(?) 승정원 기록처럼 올립니다. 나를 위한 피의 고백서! 삶에서 못다한 말들, 그리고 그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던 지나간 시대의 비극인 <코로나 일지>. 한번 피해자는 영원한 피해자입니다. 누군가는 기록하고 기억해야할 <상실의 아픔>을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좋은 이웃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너무나 망해 버린 삶, 누군가에겐 희망이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