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15.8:34 土. 맑음
차담茶啖, 차담茶啖. 차담茶啖.
숭늉에 대한 기억은 차나 커피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차나 커피라는 것을 알기도 전부터 으레 식사 후에는 입가심을 하기 위해 숭늉을 마셔왔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숭늉이라도 양은솥이나 냄비보다는 새하얀 김이 풀풀 오르는 검정무쇠 가마솥에서 끓인 숭늉이 더 진하고 고소한 맛이 우러났다. 밥을 다 푼 다음에 바가지로 물을 퍼서 붓고 가마솥 뚜껑에서 시잇~ 시잇~ 하는 소리가 나도록 끓여내면 손바닥만한 누룽지가 둥둥 떠 있는 옅은 갈색의 숭늉은 입가심이라기보다는 식사 후의 디저트 겸 또 한 번의 식사가 되었다. 이렇게 건더기가 푸짐하게 들어있는 숭늉에는 삼삼한 싱건지나 동치미의 하얀 통무를 젓가락에 푹 꿰어서 들고 우적우적 씹어 먹어야 제 맛이 났다. 아무렴, 그래서 숭늉은 여름보다는 낙엽이 휘날리는 가을이나 흰 눈이 펑펑 내려쌓이는 겨울이 제격이었다. 설설 김 오르는 숭늉과 따끈한 아랫목, 그리고 바람이 찢기는 듯한 문풍지소리는 서로 잘 어울리는 어린 시절의 풍경風景들이었다. 그렇지만 대체로 어른들께서 날상하고 부드러운 누룽지가 들어있는 숭늉을 선호選好하시는 까닭에 내 차례가 항상 돌아온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내 밥상머리에도 늘 숭늉이 올라온다는 것을 어쩌다 알게 되었다. 어머니께서 일부러 가마솥에 누룽지를 많이 남겨 내 몫까지 숭늉을 만드신다는 것을 안 것은 철이 들고 난 뒤의 일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커피를 마셔본 것은 아마 국민학교5학년 때인 걸로 기억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귀국한 월남파병군인들과 미군부대를 통해서 흘러나온 시레이션C-ration(미군전투식량)이 시중에 돌아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안에 들어있던 카키색의 네모난 봉지커피가 커피 맛을 혀끝에 각인시켰다. 아이스깨끼가 아닌 아이스 바라는 이름의 얼음과자를 먹어본 것도 그 무렵이었고, 칼피스, 쿨피스라는 명칭의 새로운 음료를 마셔본 것도 그 즈음이었다. 이제는 일용할 양식이 되어버린 라면을 먹어본 것은 중학교에 들어가서였고, 우리 집에 흑백 텔레비전이 설치된 것은 내가 중학교1학년이었던 1967년 4월말이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첫 번째 중간고사를 치르고 집에 돌아갔더니 TV수상기가 안방에 늠름하게 놓여있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1965년이나 66년, 그리고 67년도라면 역도산과 김일이 당대 최고의 스포츠맨이었고, 동백아가씨에 이어 섬마을선생님을 부른 가수 이미자의 절정기였었다. 저자의 화젯거리였던 신성일과 엄앵란도 그 무렵에 결혼을 했었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했던 ‘마부’의 두 주연인 김승호와 조미령의 인기가 아직 상당한 영향력을 발하고 있던 때이기도 했다. 장소팔-고춘자의 만담시대漫談時代가 슬슬 저물어가고, 신세대 코미디언인 서영춘과 구봉서가 이름을 세상에 들이밀기 시작을 했었다. 육군사관학교를 포함한 삼사관학교가 가장 인기가 있었던 4년제 대학이었고, 도시의 사거리에서 하얀 장갑을 끼고 수신호로 교통정리를 하는 교통순경의 모습이 그대로 볼만한 구경거리였었다.
매 가을이면 산토닌이라는 하얀 알약 구충제를 학교에서 일괄적으로 복용하게 했는데, 이 약이 꽤 독했던지 발이 동그랗게 보이고 화장실에 가면 오줌이 샛노랗게 나왔다. 그리고 일 년에 몇 차례 쥐잡기 운동을 하게 되면 한 사람당 몇 마리씩 배당을 준 뒤에 꼭 쥐꼬리를 잘라서 학교에 가져와 확인을 받으라고 했다. 교탁에 수북이 쌓아놓은 그 쥐꼬리로 선생님들께서 뭘 했는지 모르겠지만 요즘 같으면 동물학대로 비난받아 마땅할 일이겠으나 그때는 동물학대보다 쥐 퇴치가 더 시급한 일이었던 모양이다. 구두통을 멘 아이들이 따꺼~ 따꺼~를 외치며 길거리를 돌아다녔고, 시원한 얼음통을 멘 아이들은 아이스깨끼~를 불러댔다. 아참, 그리고 몇 가지가 더 있었다. 쥐약장사들도 쥐약 사려어~를 부르짖었고, 어떤 사람들은 나무통을 어깨에 메고 쇼빠앙~ 사려어~ 쇼빵~ 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쇼빵이란 다름 아닌 식빵의 왜식발음이다. 그런데 그 쇼빵이 얼마나 고소하고 맛나던지 쇼빠앙~ 소리만 들려오면 대문 틈새로 쇼빵아, 쇼빵아 하고 일단 불러놓은 뒤에 부리나케 엄마에게 달려가곤 했었다. 내 머릿속에 담긴 그 당시 풍경風景들을 하나하나 들쳐가며 쓰려고 한다면 오늘 하루 내내 의식의 창고 속에 묵혀놓은 추억들을 쓰고 있을 것 같아서 여기에서 그만 멈춰야겠다. 이제 그만~
다른 분들은 옆방에서 영수증을 정리하면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아침산책 후에야 느지막이 주지스님 방에 들어온 나는 진월거사와 나란히 앉아 스님과 차담茶啖을 나누게 되었다. 스님들은 작설이나 녹차 또는 보이차 뿐만 아니라 요즈음에는 커피도 많이들 내려서 먹는다면서 차 대신에 커피를 내려서 찻잔에 따라주셨다. 나는 평소 커피우유는 마시지만 커피는 먹지 않았으나 주지스님께서 내려주는 원두커피는 자판기커피나 마트커피와는 다른 순수한 것이라서 먹어보았다. 찻잔 속의 진갈색 커피는 커피라는 이름으로 만들어놓은 인스턴트 음료가 아니라 커피 열매 맛이 그대로 담겨있는 약간 쌉쌀하면서도 올큰한 맛이 들어있었다. 주지스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검붉은 커피를 한 모금씩 마실 때마다 옛적에 식사 후에 마셨던 숭늉냄새가 어디선가 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설탕도, 크림도, 넣지 않은 순수한 커피 맛 속에는 가마솥에서 막 끓여낸 숭늉맛과 닮은 알싸한 삶의 애환哀歡과 정취情趣와 노고勞苦가 들어있어서일까? 하는 생각을 간간히 해보았다. 커피와 도시都市와 낭만浪漫이라는 조합만이 아니라 커피와 절집과 차담茶啖이라는 조합도 이제 어색하지 않을 만큼 어엿하게 커피가 모든 생활 속으로 깊숙하게 들어와버렸구나.하는 생각에 잠시나마 마음이 가늘어졌었다. 열어젖힌 방문 바깥으로 파란 하늘아래 염궁선원 지붕이 가을햇살에 엄청 반짝이고 있었다.
(- 차담茶啖, 차담茶啖, 차담茶啖.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