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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식의
' 클래식은 영화를 타고 '
< 맨체스터 바이 더 씨
- Manchester by the sea >
- '상실'의 슬픔어린 바다,
그 아프도록 생생한 '기억'의 로드무비...
눈부신 코발트 빛의 바다 풍경과 어우러지는
레슬리 바버의 오리지널 스코어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코랄' 이 청아하게 품어지며,
영화 < 맨체스터 바이 더 씨 > 는 그 막을
적요히 열어가지요.
배안에서의 정겨운 가족들의 모습은 아련한
노스텔지어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런데...
청량한 바다의 풍광은 어느새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린 채,
대신 온기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차가운 눈으로 가득 쌓인 삭막한 도시의
정경이 눈 앞에 펼쳐지지요.
과거의 상처를 깊이 파묻은 채, 고향
맨체스터를 떠나 보스턴에서 아파트 잡역부로
일하고 있는 리 챈들러(케이시 에플렉 분).
그는 무슨 일이 생겨도 그저 무덤덤해
보이지요.
하지만 이 과묵한 사내는 속에서부터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리는 견딜 수 없는 것을 필사적으로
견뎌내려는 인물인 게지요.
그러던 어느 겨울날,
헨델의 오라트리오 < 메시아 - Messiah) > 중
'전원교향곡(Pastoral Symphony)'이 무연히
흐르는 가운데,
눈을 치우던 리는 형인 조(카일 챈들러 분)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급하게 맨체스터로
달려가지만,
이미 세상을 뜬 형의 차가운 시신과 마주하게
됩니다.
더욱이 장례를 치르기 위한 준비를 하던 리는
형이 유언장에 아들 패트릭(루카스 헤지스 분)
의 후견인으로 자신을 지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적잖이 당황하지요.
고향에서 있었던 아픈 과거에 대한 기억이
수시로 악몽처럼 떠오르고,
철딱서니 없는 패트릭과도 계속 갈등이 생겨
어려움을 겪던 리에게 어느 날 전처 랜디
(미셀 윌리엄스 분)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억의 음영'을 영화는
어떻게 담아내고 있을까요.
<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의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케네스 로너건.
그는 심리적 진실의 흐름을 시종 섬세하게
짚어 내고 있습니다.
고향에서 기억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리의
마음 속으로 불쑥불쑥 틈입해 묵은 상처를
찔러대는데,
이 영화는 과거 회상의 플래시 백을 꼭 있을
법한 자리에 딱 그럴 법한 방식으로
끌어들여가며,
한 인물의 어두운 내면 깊숙이 회중전등을
비추고 있지요.
그렇게, 과거와 현재를 교직해나가는
<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의 플롯은 능숙하게
짜여져 있습니다.
형의 유언을 변호사로부터 전해 듣자마자,
리는 목소리를 높여가며 거부하지요.
"이해가 안가요.
제가 어떻게 후견인이 된다 말이에요?
못해요!"
"정말 맡을 마음이 없으면 거부해도
괜찮아요..."
"그럼 누가 데려가요?"
그런 가운데 과거의 참혹했던 '상실의 기억'이
끊임없이 떠오릅니다.
돌아온 리를 향한 주위 눈길은 심상치 않지요.
“그 유명한 리 챈들러?”
아이스하키 코치의 외마디를 떡밥으로 던진
카메라는 플래시백을 미끼로 사용합니다.
토마스 알비노니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와
함께 플래시 백에 담긴 가장 비극적인 참사의
회상 장면은 러닝 타임이 상당부분 진행된
지점에 펼쳐지지요.
그건 일단 고향에 돌아온 이상,
리가 아무리 회피하려고 해도 곧바로 떠올릴 수
밖에 없는 결정적 기억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한 어린 조카의 후견인이 되어달라는 요청을
받는 순간 자동적으로 돌출될 수밖에 없는
메모리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그 플래시 백의 시퀀스가 상당히
길게 삽입되어 있는 것 또한,
리 챈들러의 입장에선 일단 떠올리면 도저히
중도에 헤어나올 수 없는 악연의 미로인 바,
그라면 이 상황에서 그럴 수밖에 없는 게지요.
카메라는 시공간을 넘나들지 않지만,
회상 장면은 암시나 예고도 없이 튀어나와
현재와 뒤섞여대며 혼란스럽게 합니다.
이렇듯, 케네스 로너건은 화술의 경제성이나
화법의 효과보다는 인물의 내적 핍진성을
예민하게 더듬어 따라감으로써,
아프도록 생생한 '기억으로의 여정' 필름
한 편을 탄생시켰죠.
내내 매섭도록 추운 겨울로만 이어지던
영화의 말미...
리가 보일러 수리를 하는 집의 주인 할아버지는
참치잡이 출항을 나갔다가 아무런 조난 신고나
구조 신호의 흔적도 전혀 없이 끝내 실종됐던
자신의 아버지를 향한 기억을 무심히 꺼냅니다.
그러니까,
그냥 그렇게 불쑥 들이닥치는 일들이 삶의
도처에 있다는 걸 암유하는 걸까요,
또한 그럴 때 사람들은 의미나 이유도 모른 채,
그 모든 걸 그저 견뎌내야만 하는 것일런지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상실'이라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의 명제에 대해 말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갈 무렵,
패트릭이 아버지의 관을 묻을 수 있는지
나뭇가지로 찔러보는 땅은 어느덧 조금 풀려
있지요.
어쩌면 여름은 끝내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요,
그래도 어느새 겨울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시나리오 작가 출신의 케네스 로노건은
어딘가 외로운 관조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강하죠.
< 맨체스터 바이 더 씨 > 는 그런 감독의
성격을 그대로 함축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케네스가 영화를 통해 보여주는 리나 패트릭의
'내면적 자아의 성장' 은 치열한 현실의 자각에
다름 아니지요.
" 작은 아버지는 잡역부잖아.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일이야.
여기서도 변기랑, 하수구는 널려있어.
하지만 난 내 모든게 여기 다 있어.
떠나지 않을거야.
작은 아버진 어디에 살든 상관없지만..."
급기야 친구 조지에게 양육권을 떠넘기려 하는
리에게 패트릭은 일갈합니다.
'후견인 하기 싫으면 안해도 돼."
"그런게 아니라 방법을 찾고 있을 뿐야..."
해서, 그들 사이엔 생뚱맞게 날 선 대화가
이어집니다.
"이젠 고아원을 찾아봐야겠네."
"닥치고 차에 올라타기나 해!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모티브로 차용한,
영화 후반부 속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리의 '꿈'..
영원히 떠나보낸 딸들을 꿈속에서나마
마주했던 리는,
맨체스터에 머물 수 없는 이유를 비로소
조카 패트릭에게 고백합니다.
"더이상 못버티겠어!(I can't beat it!)
더이상은, 미안하구나..."
리는 결국 자신이 책임을 발휘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을 택해 조지 일가에게
조카의 양육권을 넘기기로 하지요.
그는 보스톤에 머물며 패트릭을 최대한
조력할 것이고,
패트릭 또한 청춘의 추억을 잃지 않으면서
고향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에서 성년을
맞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李 忠 植 -
1. 영화 < 맨체스터 바이 더 씨 -
Manchester by the sea > 예고편
https://youtu.be/xUYujfQEQhw
< 맨체스터 바이 더 씨 > 의 오프닝은
패트릭이 어렸던 꼬마 시절에 형 조와 더불어
셋이서 낚시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거기서 패트릭이 월척을 낚아 모두들 즐거워하며
정겹게 농담을 주고 받지요.
이는 영화의 전체적인 밑그림이자, 잃어버린
'실낙원' 같은 이미지로 그려진 시퀀스입니다만...
그렇게,
셋이서 행복했던 순간을 복원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어떤 식으로든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건 아닐런지요.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고 고통스럽지 않은 것은
아닐터,
어떤 비극은 밖으로 연기 한줄 나지 않는 채로
무겁게 안으로 타오릅니다.
리의 기억에 맨체스터는 끔찍한 생지옥으로
남아 있지요.
트라우마라는 용어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영혼을 베고 살을 찢는 충격이었습니다.
순식간의 실수, 어떤 부부애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 그리고 풍비박산...
이를 감내해야 하는 리는 통한의 슬픔,
자책감과 회한의 질곡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지요.
이처럼,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는 한 남자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한 남자의 서사를
다루고 있는 영화 < 맨체스터 바이 더 씨 >.
연출가 케네스 로노건은 클로즈 업이나 커팅을
최대한 절제하며, 한발짝 떨어져 인물들을
관찰합니다.
카메라 무빙보다는 짧은 쇼트 전환이
두드러지는데,
한 공간을 2~3개 정도의 각도에서 잡아내어
정적이면서도 입체적으로 이미지를 포착해내려
애쓰지요.
그러다보니 관찰당하는 화면 속 당사자는
나머지 부분들을 다 채워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리에게 인생이란 죽지 못해 사는 일,
아니 죽기보다 사는 게 두려운 나날의
연속이지요.
걷는 것인지 떠밀리는 것인지 모를 리의
배회가 쓸쓸하며, 춥고도 막막하게
스며옵니다.
그런 면에서 케이시 에플렉의
'온통 머뭇거린 채 , 현실보다 더 지긋지긋한
현실 같은' 리 챈들러 역 연기는 탁월하지요.
명확한 지시가 아닌 어떤 뉴앙스나 호흡을
통해 그 사람의 감정 상태가 어떤 건지
유추케 만들며,
무언가 잃어버린 남자의 외롭고도 황폐한
상실감을 정물화에 가깝게 정치한 톤으로
묘사해내고 있습니다.
한없이 슬프거나, 행복했던...
그 엇갈리는 기억을 마주하는 과정을 통해서
상처가 얼마나 사람을 아프게 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가 계속해서 살아갈 거라는
걸 보여주지요.
해서,
케네스 로너건은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 신에
젊은 시절 고향에서의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순간들, 그 화양연화의 기억을
배치하며,
'서사를 만드는게 아니라 감정을 응시하는
영화'로 자리케 합니다.
2. 레슬리 바버(Lesley Barber)의 OST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fzW_wEeYxk5E4fnyXmcL4PZ9r9Nacqfy
'Manchester by the sea chorale'...
이 곡은 영화의 주제(Main Theme)음악이라
할 수 있는데요,
영화 처음과 마지막 부분에서 젊은 시절의
리가 어린 조카 패트릭과 교감하는 시퀀스,
그리고 형의 임종을 확인하고 패트릭을 만나러
가는 장면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캐나다 여성 음악가 레슬리 바버 작곡의
성가 느낌이 물씬 묻어나는 합창곡이지요.
비브라토를 자제하고 담담하고 소박한 목소리는
마치 하늘에서 천사가 건네는 위로와 치유의
선율로 울려옵니다.
패트릭이 나뭇가지를 들고 가서 땅을 찔러보는
장면과 아버지의 입관식 때 'Plymouth Chorole'
이 풀어지죠.
교회에서 장례식이 치뤄질 때엔 헨델의
오라트리오 < 메시아 > 20번째 곡
'주는 목자이시니'(He shall feed his flock
like a sheperd ; come unto him)가
의미있는 처연함으로 흐릅니다.
리가 맨체스터에서 일자리를 알아보지만
거절당하는 상황에선,
OST 'Manchester minimalist piano &
strings' 가 배치되고 있지요.
영화 말미에,
리와 패트릭이 야구공으로 장난을 치면서
방 두개짜리 집을 구할테니 나중에 놀러오라고
말할 때엔,
마스네의 오페라 < 케루빈 - Cherubin > 중
오바드 '꿈꾸는 사랑 영원하라(Vive amour
qui rêve')' 가 함께 합니다.
리가 깜박 잠이 들어 딸의 환영이 나오는 꿈을
꾼 후 , 그는 조지에게 패트릭을 맡아달라고
부탁합니다만...
바로 이 장면에 헨델의 '오보에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1악장이 흐르지요.
드디어 패트릭이 그리도 원하던 새 모터를
장착한 배에 리, 패트릭과 여자친구 셋이
함께 타는 시퀀스에선,
엘라 피츠제랄드의 'I'm beginning to see
the light' 가 마치 노래 제목처럼 그들을
포근하게 감싸안아 줍니다.
이처럼 클래식 음악에서부터,
레이 찰스와 알버트 킹의 블루스에 이르기까지
음악감독 레슬리 바버의 탁월한 OST는,
그 매혹적인 선율로 이미지들과 이야기의 흐름,
그리고 주인공 내면의 감성에 섬세하게 조응해
오지요.
특히나 레슬리 바버가 영화 속에 활용한
클래식 음악들은 온몸을 다해 오늘을
버텨내는 '절망 속 희망'을 담아내며,
주변의 모든 소리를 차단한 채 화면을 온전히
적셔줍니다.
비극적 사건의 플래시백,
그리고 리 챈들러의 감정 폭발 직전의 상황에서
풀어지는 알비노니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명'이
들리는 것처럼,
애절한 비애의 감정이 미려한 클래식 음악으로
아이러니컬하게 교차 편성됐다는 느낌을 들게
하지요.
하여,
좌절 속의 고통스러운 리의 뒤틀린 심리를
아름답고 평화로운 맨체스터의 풍광 속 공간에
교묘하게 투영시키고 있습니다.
3. '경찰서 장면(Police Station Scene)'
https://youtu.be/J30cS-dusjI
영화 중반에 이르러서야 밝혀지는 리의
비극적 사건...
이 플래시백의 시퀀스로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카메라 앵글이나 인물 표현 방식 등 연출의 톤은
바뀌지 않지만, 관객의 시선이 달라지는 것이죠.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라며 이해가 안될 정도로
시종 무뚝뚝하고 무표정하게 보였던 리 챈들러의
표정은,
'아, 저래서 그리된 거구나' 식으로 확연하게
달리 이해되는 것입니다.
조사를 마친 경찰에게 리는 그저 묻지요.
"이게 끝인가요?
이제 가도 돼요?"
경찰서에서 나오다가 갑자기 경찰의 총을 빼
자살하려는 리의 극단적 행동은,
'인간이 극도로 슬픔의 충격에 빠지면 더이상
살아있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을 절로 들게 합니다.
4. 랜디 역 미셀 윌리암스의 시퀀스
(Powerful Michelle Williams Scene)
https://youtu.be/gfaow4Ydzno
형 조의 장례가 다가오면서 리는 형의 헌신적
희생이 상기되기 시작합니다.
심대했던 형의 그늘을 비로소 맞닥트리게 된
것이지요.
운명적으로 다시금 마주친 전처 랜디가
리에게 통렬한 사과를 건네지만,
애초에 랜디가 그에게 행할만한 사과도
아닙니다.
"나랑 얘기하기 싫겠지만..."
"그건 아니야."
"말마저 할께.
내가 너무 못된 말을 많이 했어.
하지만 마음이 너무 아팠어.
앞으로도 계속 이럴거니까
당신도 마음이 아프다는 거 잘 알아."
"자기 잘못이 아니야.
모두 내 잘못이야!"
맨체스터에 리의 심신이 머물러 있는 한,
'화마' 라는 과거의 처참한 악몽이 계속해서
그를 지옥의 불꽃처럼 괴롭힐 터,
그것을 자책하고 반성하는 건 가능하지만
완전히 떨쳐낼 수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지요.
5. 리의 절규(crying scene)'
https://youtu.be/-U8MqkqIsfE
6. 리의 I can't beat it'
https://youtu.be/kAcYyreYFyk
무겁게 짓누르는 죄책감과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런 마음의 소용돌이...
일말의 의욕조차 없이 자포자기식으로
무기력해 보이다가도,
알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혀 폭발해버리고 마는
리를 무심한듯 보여주는,
케네스 로너건 감독의 짜임새 있는 구성과
정치한 연출은,
남겨진 자의 슬픔이 짙게 깔린 이야기를
설득력있게 이끌어갑니다.
7. What Is 'Manchester by the Sea' ?
https://youtu.be/OUHJhbfvkfU
(주연 배우 케이시 에플렉과 미셀 윌리암스,
그리고 감독 케네스 로너건의 코멘트)
상실은 어떤 얼굴을 하고 오는 걸까요.
사랑하는 가족과의 이별이 아마 상실의 시간 중
가장 무거운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텐데요.
두려운 고통의 시간을 굳이 미리 생각하고
싶어하지는 않을 테지만,
가슴 속 깊이 파묻은 채, 될 수 있는 한 뒤로
미뤄뒀던 '잃어버림의 트라우마'가 막상
자신 앞에 다가오는 걸 막을 수는 없을 겁니다.
어느날 상실의 실체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어 연약한 가슴을 갈갈이 찢어낼 때
그 상처의 심연은 또 얼마나 깊을런지요.
시간이 모든걸 치유해줄 수 있을거야 라는
극히 상투적인 위로의 말이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면 좋으련만,
불행이라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리 챈들러는 바로 절망스럽고도 처참한 상실의
사연과 그 참혹한 기억을 가진 인물이지요.
그는 막힌 변기를 뚫거나 새는 욕조나 망가진
보일러를 수리하는 등 온갖 허드레일을
도맡아 하는 잡역부입니다.
수당이나 처우가 턱없이 부당해 보이지만,
딱히 그 일을 그만 둘 것처럼 보이지도 않지요.
알콜중독이었던 형수는 이미 집을 떠난지
오래됐고,
이제 보호자없는 조카는 그가 돌봐야 할 짐이 된
상황입니다.
그러면서 리의 과거, 그 숨기고 싶었던 사연이
하나 둘 씩 고개를 들고 터져 나오게 되죠.
결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의 악몽같은
기억은 '맨체스터 바이 더 씨' 라는 공간과 엮여
그를 옴짝달짝하지 못하게 짓누릅니다.
한 때는 리도 예쁜 아이와 아기 천사같은
세 아이들을 둔 평범하고도 단란한 집안의
가장이었지요.
한데,
리가 이 마을을 떠들썩하게 했던 비극적 사건의
당사자였다는 것,
해서, 도망치듯 그 곳을 떠나야만 했다는 것,
그리고 가능한 한 고향에 되돌아오고 싶지 않아
했다는 것 등
불쑥불쑥 삐져나오는 쓰라린 기억의 파편들을
통해서 힘겹고도 고통스럽게 그 조각들이
맞춰집니다.
벽난로 안전판을 닫지 않았던,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실수...
그로 인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세 아이들을
모두 하늘나라로 보내야 했던 상실의 기억과
함께 리는 굳게 마음을 닫아야 했던 것이죠.
하여,
리는 매사에 머뭇거리고 웃는 모습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은 채,
남들이 그에게 면죄부를 줄지언정,
정작 자신은 절대 그럴수도, 그래서도 안된다고
자책하며 스스로에게 형극의 채찍질을 가해
온 것입니다.
리의 눈길이 닿는 마을 곳곳은 역설적이게도
그의 불행과는 무관하게 너무도 아름다운
목가적 풍광을 펼쳐내고 있지요.
감독 케네스 로너건은 '상실의 극복'을,
'살아갈 희망과 용기'를, 또한 '따뜻한 치유와
위로'를 섣부르게 직설적으로 건네지는 않고
있습니다.
짐짓 어른이 되고 싶어하는, 아니 어른이 된 체
하는 16살 사춘기의 패트릭은 죽음 앞에서
의연한 것처럼 행동하지요.
하지만...
땅이 얼어 묘를 파고 관을 묻을 수 없어
아버지의 시신을 냉동고에 넣을 수 밖에 없는
그 며칠동안 패트릭의 마음 또한 그렇게
얼어붙습니다.
집에서 냉장고 문을 열다 쏟아져내린
냉동닭 팩들을 마주하며 참았던 울음을
그만 터뜨리고.말지요.
거의 공황장애 상태에 빠져 숨이 막혀 울부짖는
그런 조카를 다독여주는 리...
그 역시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 줄 시간이
절실하게 필요할 것입니다.
미셀 윌리암스는 설명하지요.
"이 영화에서 저는 행복하고 활기찬 가족들과
함께 하고 있었지요.
세 아이가 있는 젊은 부부였는데,
제 생각엔 그들은 완벽에 가까웠던 관계였다고
생각합니다.
겉과 속이 다르지도 않고요.
하지만 결국 모든 게 처참히 무너져 내립니다..."
8. 알비노니의 현과 오르간을 위한 '아다지오'
('Adagio' Per Archi & Organo in Sol Minore)
- 오리지널 스코어
https://youtu.be/-hSs-ZlAzEg
메인테마처럼 영화 < 맨체스터 바이 더 씨 > 를
관통하며,
수려한 바닷가 마을의 풍광과 어우러져 통렬히
심금을 울리는 토마스 알비노니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애절하게
펼쳐지지요.
리가 한밤중 마트를 향해 길을 나서는 순간부터
들려오는 오르간의 선율은 곧 닥쳐올 엄청난
화재 사고를 예고하듯 불안스런 처절함의 선율로
울려옵니다.
해서, '아다지오'의 비감어린 엘레지풍의
멜로디는,
리가 처한 상황을 더욱더 비극적으로 만들면서
'살아남은 자'의 깊은 슬픔을 극대화시키지요.
9. 마스네의 오페라 < 케루빈 - Cherubin > 중
오바드 '꿈꾸는 사랑 영원하라
(Vive amour qui rêve')'
- 소프라노 나탈리 드세이
https://youtu.be/EbmtvfnpBCs
10. 'Oh, What A Beautiful Morning'
- 레이 찰스
https://youtu.be/dGoJxZqyFAc
11. 'I'm Beginning to See the Light
- 엘라 피츠제랄드(Ella Fitzgerald) 와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
https://youtu.be/T_PTpcVgdSM
첫댓글 상처와 절망, 아픔과 단절에 대해
정면으로 부딪힘으로써 오히려 치유와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아이러니...
그렇게, 가슴을 파고드는 울림으로
당신을 따스하게 보듬어주는
< 맨체스터 바이 더 씨 >.
(영화 제목 '맨체스터 바이 더 씨' 는
실제로 미국 메사추세츠 주에 있는
인구 5천의 조그마한 항구도시이지요)
영화는 플래시백의 교차편집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단란했던 한 가족이 무엇때문에
송두리째 무너지고 깊은 슬픔과 상처
아래 놓이게 되었는지를 세심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 맨체스터 바이 더 씨 >는 인물 투 샷의
활용이 돋보이는 영화이지요.
주인공 리는 철저한 시선 회피로
일관하는데 이는 불안감과 초조함의
심리 표현으로,
그가 유일하게 눈을 마주보는 대상은
조카 패트릭 뿐입니다.
패트릭 또한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작은아버지와 함께 상처를 극복하는
법을 배워가는 캐릭터이지요.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의 상처를
보듬게 되는 리와 패트릭, 두 사람...
이들은 그렇게 서툴지만
천천이 가족이 되어갑니다.
자신을 용서할 수 없기에 자포자기식으로
고독과 자학적 고통 속에 자기 자신을
유배시켜 버린 리...
그의 흔들리는 마음 속 풍경은 늘 황량하기
이를데 없는 겨울 빛입니다.
억지로 참고 있는 트라우마...
하지만 상실감을 비워내는 게 아닌,
터트리지 않게 최대한 억누르고 있는 것,
바로 이게 리의 무기력과 무표정으로
연결되는 게지요.
하지만 추운 겨울이 지나고 얼었던 땅이
녹듯,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면 버티기 힘든
세월의 무게도 서서히 가벼워질 터,
리 또한 꽁꽁 얼어붙었던 가슴이 따스한
온기를 되찾아 상처가 아물고 새 살이 돋는,
그런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삼촌을 '소 닭 보듯' 대하는 고교생 패트릭은
철부지의 조건을 두루 갖췄지요.
공부는 일치감치 포기했고,
아버지의 죽음을 맞았어도 눈물은 커녕
밴드의 보컬 소녀와 뒹굴고 싶은 궁리만
합니다.(그의 말로는 '비지니스 진행' 중
이랍니다만)
또래끼리 결성한 밴드 이름은
스텐토리안(Stentorian)...
그리스 신화의 ‘목소리 큰’ 전쟁 영웅
‘스텐토르’에서 파생된 말입니다만,
이들의 연주 실력은 그저 아우성치는
수준에 그치죠.
패트릭 역의 루카스 헤지스는 말합니다.
"리와 패트릭 사이엔 불가피한 거리감이
있었고,
그 감정을 갖출만큼 충분한 리허설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래서 반대로 리허설을 작게 했죠.
어렸을 때는 삼촌을 잘 알고 있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간 후에는 그가 어떤
인물인지 잘 모르게 된 거죠.
케네스 로노건의 사나리오가 훌륭했던
것은 그의 이야기를 전적으로 믿으면
됐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그 안에서 연기만 하면
됐습니다."
영화 < 맨체스터 바이 더 씨 > 의 말미...
리가 조카 패트릭과 야구공으로 장난을
치다가,
보스톤에 방 두개짜리 집을 구할테니
나중에 놀러오라고 말하는 시퀀스에서는,
마스네의 오페라 < 세뤼뱅 - Cherubin >
중 오바드 '꿈꾸는 사랑 영원하라
(Vive amour qui rêve')' 가 함께 하지요.
" 태양의 여인, 꿈꾸는 사랑 영원하라
너울거리다 키스하고 이내 사라져 버리는,
하룻밤이면 죽어버리는 사랑 영원하라
울어라 아가씨들아
하지만 눈물이 메말랐구나!
꿈꾸는 사랑 영원하라
사랑에 날개가 있다면
그이도 날개가 있어 날아가 버릴테니
태양의 여인은 아름다움으로 다스린다 "
영화 < 맨체스터 바이 더 씨 > 에는
헨델의 음악 3곡이 장중 배경음악으로
활용되고 있지요.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첫번째 곡으로는,
보스톤의 한 아파트 잡역부로 눈을
치우던 리가,
형의 위독 상황 전화를 받고
고향 멘체스타로 달려갈 때 흐르는,
오라트리오 < 메시아 > 중 '전원교향악
(Pastoral Sympony)' 이지요.
- 대전시향과 대덕한빛교회연합찬양대
https://youtu.be/WLIZ7l7ehrw
이어 두번째 곡으론,
교회에서 형 조의 장례식 시퀀스에
의미있는 처연함으로 품어지는,
오라트리오 < 메시아 > 20번째 곡
'주는 참 목자이시니(He shall feed his
flock like a sheperd ; come unto him)' 입니다.
- 김윤희와 이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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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광태 지휘 칸티쿰합창단
https://youtu.be/feEsGZcFYDI
마지막 곡으로는,
리가 깜박 잠이 들어 딸의 환영이 나오는
꿈을 꾼 후,
조지에게 패트릭을 맡아달라고 부탁할 때
흐르는,
'오보에와 콘티누오를 위한 소나타 c단조,
Op.1 8번, HWV 366' 중 '1악장 Largo'
이지요.
- 세인트 마틴 아카데미 인 더 필즈
챔버 앙상블
https://youtu.be/viIJvkFF438
그렇게...
화면 속 헨델의 음악들은 처절한 상실의
기억을 잊고자 몸부림치는 리에게 진정한
치유의 선율로 울려오는 거 같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수고하는 자,
무거운 짐을 진 자,
모두 그에게 오라
너희를 쉬게 하리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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