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live/KLGxyooNhYU?si=D0qH_PuM_IQ-OD1b
마 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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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에게 수의(壽衣)를 선물하는 사람
크리스마스 시즌이나 누군가의 출산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우리가 가장 흔히 주고받는 선물은 무엇입니까? 실용적인 기저귀 케이크, 부드러운 오가닉 내의, 혹은 가장 현실적인 백화점 상품권일 겁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갓 태어난, 혹은 이제 막 걸음마를 떼려는 당신의 아이 돌잔치에 와서 최고급 '관(coffin)'이나 시신을 닦을 때 쓰는 '방부제'를 선물로 내민다면 어떨까요? 아마 당장 소금을 뿌려 내쫓거나,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하며 경찰을 부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동방박사의 세 가지 예물, '황금과 유향과 몰약'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성탄절마다 이 장면을 낭만적인 동화처럼 소비합니다. 찬송가를 부르며 이 예물들이 왕권과 신성을 상징한다고 기계적으로 암기하죠. 하지만 1세기 팔레스타인의 흙먼지 날리는 현실로 돌아가 보면, 이 조합은 기괴하기 짝이 없습니다.
황금은 그렇다 쳐도, 유향(Frankincense)과 몰약(Myrrh)은 갓난아이에게 주어지기엔 너무나 무겁고, 심지어 불길한 냄새를 풍기는 물건들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팩트 체크부터 하고 넘어갑시다. 우리는 흔히 '동방박사 세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마태복음 원문에는 그들이 세 명이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예물의 종류가 세 가지였기에 세 명으로 추정할 뿐, 그들은 페르시아나 바빌론 지역에서 온 점성술사이자 고대 과학자 집단인 '마고이(Magoi)'였습니다.
게다가 그들이 도착했을 때 예수님은 구유에 누운 신생아(brephos)가 아니라, 집에 거주하던 어린아이(pais)였습니다.
이 지성인들이 아이 앞에 내놓은 예물 중 가장 이질적인 것은 단연 '몰약'입니다. 헬라어로 '스뮈르나(smyrna)'라 불리는 이 향료는 히브리어 어근 '마라(marah)'에서 왔습니다. 구약성경 룻기에 나오는 나오미가 "나를 기쁨이라 부르지 말고 괴로움(마라)이라 부르라"고 했을 때의 그 단어, 즉 '쓰다(bitter)'는 뜻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몰약은 주로 두 가지 용도로 쓰였습니다. 하나는 지독한 통증을 잊게 하는 마취제였고, 다른 하나는 시체가 부패하지 않도록 바르는 방부제였습니다.
즉, 몰약은 '죽음'과 '고통'의 메타포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먼 길을 달려와 왕으로 태어난 아이 앞에 무릎 꿇은 이들이 내민 것은, 언젠가 이 아이가 겪어야 할 처절한 고통과 죽음을 암시하는 장례 용품이었습니다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하자면, 황금은 우리가 가진 '자본과 능력(Economic Capital)'을, 유향은 신과 연결되려는 '영성 혹은 정신적 가치(Spiritual Capital)'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우리도 하나님께, 혹은 세상에 기꺼이 내보이고 싶은 것들입니다. 우리의 성공, 우리의 경건함, 우리의 반짝이는 성취들은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리기 좋은 소재들입니다.
하지만 몰약은 다릅니다. 그것은 우리 삶의 '쓴맛'입니다.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실패, 밤잠을 설치게 하는 불안,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는 관계의 단절, 그리고 필연적인 죽음의 공포 같은 것들입니다.
우리는 흔히 신앙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할 때 이 '몰약'의 냄새를 지우려 애씁니다. 성공한 모습(황금)과 고상한 모습(유향)만을 편집해서 내놓으려 하죠.
그러나 동방박사들의 통찰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빛납니다. 그들은 황금만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의 삶이 영광(황금)으로만 채워지지 않을 것임을, 신성(유향)만으로 공중에 떠 있지 않을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분은 인간의 가장 밑바닥 고통(몰약)까지 껴안으셔야 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위로를 던집니다. 당신이 신 혹은 세상 앞에 나아갈 때, 반드시 성공한 결과물이나 말끔한 정신 상태만을 들고 갈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당신의 찢어진 마음, 씁쓸한 실패, 남모를 눈물, 즉 당신의 '몰약' 또한 거룩한 예물이 됩니다.
우리는 종종 "준비된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겠다"라고 말합니다. 번듯하게 성공해서, 혹은 마음의 정리를 끝내고 나서야 예배하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2천 년 전 그날, 갓 걸음마를 떼는 아기 앞에는 이미 죽음의 냄새가 나는 몰약이 놓였습니다. 그리고 그 예물은 거절당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당신의 손에 들린 것이 반짝이는 황금이 아니라, 쓰디쓴 몰약뿐이라고 해서 좌절하지 마십시오. 그 쓴맛과 아픔조차 당신이라는 존재를 구성하는 존귀한 일부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성공뿐만 아니라, 당신의 상처까지도 기꺼이 받으십니다. 그러니 오늘은 억지로 괜찮은 척 포장지를 두르지 말고, 당신의 고단한 마음 그 자체를 들고나와 보시는 건 어떨까요? 가장 쓴 것이 가장 향기로운 제물이 되는 역설, 그것이 복음의 신비니까요.
출처 :
seraphim_h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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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예배를 마치고 스레드를 둘러보다
오늘 설교와 유사한 내용의
글을 발견해서
참고로 인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