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던가 나는 세상 살아가면서 마음이란것을 기쁨과 슬픔 이렇게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 놓았고 더 깊이 들어가서는 기쁨 3단계 슬픔 3단계로 소분해 놓았다 그리고는 시시각각 나를 타격해오는 각종 삶들의 아픔을 슬기롭고 요령있게 대처하며 살아 왔었다
그 중에 1단계 슬픔은 마음 저 깊은곳에 두텁게 봉인해 두었으며 애써 외면하며 살아왔었다 문득 허술한 마음을 비집고 그놈이 고개라도 삐쭉 내밀라치면 난 죽을힘을다해 두더지게임 뽕망치 내려치듯 열심히 두드려 막아 놓았고 그리하여 항상 즐겁고 평온한 날들이라 위안 삼으며 살아 왔었다 한데 오늘 어떤 계기있어 묻어 두었던 1단계 슬픔을 살짝만 맛보기로 하자 아주 담담하게.
1단계 슬픔 가령 남편이 전재산 다 말아먹어 근근히 살아가고 있던 그 어느날 아내에게 잘 살라는 말 한마디 남김없이 갑작스레 아이 두명만 남겨놓고 황망히 떠나버린 케이스다 따라가서 왜 떠났냐고 앙탈이라도 부려보고 그렇게 급했냐고 따져 보고도 싶었지만 그곳은 산 자가 갈수 없는곳 떠난 사람도 절대 가고싶어 하지 않는 그 곳
온몸 화상 78프로 서울 화상전문 병원 딱 15일 만에 온몸에 붕대로 칭칭감고 간신히 볼수 있었던 손바닥보다 작게 드러난 얼굴 폐혈증으로 인해 몸안에 가스가 발생 사람 인지 풍선인형인지 모를 낮선모습으로 변해버린 남편 얼굴 애들과 아내는 낮설어 울었고 무서워 울었고 애들이 울어 울었고 엄마가 우니 따라 울었다 아이 둘과 아내는 남편의 마지막 길을 막고 또 막았다 이제 그만 보내드리세요 환자 지금 너무 많이 아픔니다 자꾸 울면 떠날수가 없어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그들은 그저 소리도 못내고 눈물만 한강물처럼 펑펑 쏟아 내었다 그제서야 뛰다 서다 하던 생명선이 수평선을 길게 그린다 아.
2 단계로 갑니다 세월은 미친듯이 흘렀다 꼬맹이 아들이 구정을 앞둔 눈발 날리던 어느날 군입대를 했다 추운날 입대라 엄마의 마음은 까맣게 타 들어갔고 그 마음을 알겠다는듯 아들은 씩씩하게 연병장을 걸어 부대 안으로 들어갔다 멀리서 아들 뒷모습만 아스라이 부여잡던 엄마의 눈길은 그만 길을 잃어 버렸고 그해 따라 왜 그리 눈이 많이 오던지 엄마의 눈에선 눈물인지 눈 물인지 차가운게 뭔가가 하염없이 흘러 내렸다 아들아 미안타 내가 너를 남자로 낳아서 고생을 시키는구나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만 갔고 아들은 가끔씩 부대장 휴대폰으로 응석아닌 응석을 부린다 ㅡ엄마 하늘에서 똥떵어리가 너무 쏟아져 2시간씩 잠도 못자고 교대로 부대를 쓸고 있어요ㅡ 유달리 춥고 눈이 많았던 해 아들이 군대에 가지 않았다면 그 해가 어떤 해 였는지 추운날이 많았었는지 눈이 많이 왔었는지 아무 생각도 없었을 그 해 그 봄 아직은 꽃샘 추위라 뼈가 시리고 뜨끈한 아랫목에서 아이고 추워라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날씨 또한 새초롬히 지랄맞던 날 2010년 3월 26일 밤 벼락맞을 북한놈의 공격으로 천안함이 가라 앉았다 아이고 세상에 꽃 같은 우리네 자식들이 46명이나 바닷속에 가라 앉았다 이 일은 어째노 방송에서는 아직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밤 낮 없이 떠들어 댄다 배가 가라 앉으면 에어포켓이라는 곳이 생기는데 공기가 모이는 배 상부 쪽 으로 가면 살수도 있다고 빨리 구해야 한다며 온나라가 비통하다 정말 애가 타고 피눈물이 난다 나 라도 잠수할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바닷물에 뛰어들어 아들들을 건져내고 싶을지경이다 만약에 우리애가 육군이 아닌 해군에 입대 했었다면 저 배를 타고 있을수도 있었던일 자식을 군에 보내놓은 같은 엄마로서 난 완전 미칠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가 할수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눈물만 흐를뿐 지금 저 아이들은 깜깜하고 깊은 물속에서 얼마나 무서울까 엄마가 얼마나 보고 싶을까 난 정신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고 또 닦았다 저 부모님들은 지금 어떤 마음이겠나 제 정신으로 있을수나 있을까 나는 퉁퉁부은 눈두덩이 만큼이나 마음이 무거워 도저히 일을 할수가 없었다 과감하게 미용실 셧터를 내려버리고 방송만 지켜봤다 어서 장병들을 구했다는 소식만이 들려오기를 무교였던 나는 어느 신께 어떤식으로 빌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끝임없이 빌고 또 빌었다 제발 우리 아들들을 무사히 돌려 보내 주세요
마지막 3단계 슬픔에 대해서도 말해볼까 한다 때는 국민학교 5학년 안동땜으로 인해 학교가 물속에 잠기고 물을 건너지 않고 다닐수 있는 학교를 찾아 전학을 했다 학교는 그 옛날 봉화불을 올리던 아주 높은산 옆구리를 넘어 1시간 가량을 뛰어가야만 하는 거리였다 옛날 나라에 변고가 있을때 봉화불을 올리던 곳이니 높다는건 대충 알수 있을것이고 우리가 다니던 옆구리 봉우리도 만만치가 않았다 그 산은 이름또한 어두컴컴하니 검은솔밭이다 숲이 너무 우거져 대낮에도 해를 잘볼수 없다해서 붙쳐진 이름이었었나 가끔 늑대도 나타난다는 그 산 그렇지만 우리는 한번도 늑대를 본적은 없었다 다만 청설모가 너무 많아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휙 휙 건너 뛰어 우리들을 긴장 시켰고 까먹던 솔방울을 아래로 집어 던져 놀라게도했다 그때는 굵은 솔방울이 달리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너무 싫었었다 그곳을 무서워했던 우리 동내 아이들은 마을 어귀에 모두 모여 등하교를 하곤 했었다 어느날 나는 그렇게 무서운 그 곳을 혼자 다녀와야 하는 난감한 일이 생겼다 때는 초겨울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 오니 아버지께서 고됀 일로 몸살이 나셨는지 많이 편찮으셨다 그때는 쉽게 약을 구할수 없던 시절이라 학교 교무 선생님이 사택에서 비상약을 팔고 계셨다 아마 편리상 그땐 그런것이 가능 했었나 보다 엄마께서 다시 학교로 가 약을 사오라고 하신다 혼자서 산길을 다녀와야 했기에 너무 무섭고 정말 가기 싫었다 하지만 오빠 세명은 타지에 나가 상급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약 사올 사람은 오로지 나 뿐이었다 할수없이 마음을 다잡고 그 무서운 검은 솔밭을 번개보다 빠르게 늑대보다도 더 빠르게 뛰어 넘어야 했다 고무신보다 조금 진화한 실내화 비슷한 운동화를 다져 신고 바람을 가르듯 내 달렸다 험악한 산길에서 발에 채이던 칡넝쿨도 등나무 뿌리도 내 앞길을 막을수 없었고 청설모 나부랭이가 감히 나를 멈추어 세울수가 없었다 꼭 축지법을 쓰는 기분이었다 바람은 귓가에 아우성을 쳤고 심장은 하늘과 땅을 오가며 큰북을 쳐댔다 간신히 약을 사서 집으로 돌아 왔을땐 해 짧은 계절이라 엄마는 벌써 저녁밥을 짓고 계셨다 온몸은 흠뻑 젖었고 단발머리을 타고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긴장이 풀리면서 딸꾹질이 나왔다 이번 딸꾹질은 강도가 좀 쎄다 나는 가끔씩 딸꾹질을 길게 오래 할때가 있었다
약 사고 남은 거스름돈을 엄마께 드렸더니 엄마가 거스름돈이 왜 이렇게 조금 남았냐며 나를 다그친다 난 선생님이 남겨주신 그대로라고 말을 했지만 엄마는 믿지를 않고 돈이 너무 작다며 나를 의심하신다 나는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 크게 엉엉 목놓아 울어버렸다 그렇게 무섭고 험한길을 죽을힘을 다해 갔다 왔는데 칭찬은 커녕 의심을 하시다니 생각할수록 너무 신경질나고 속상했다 계모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펑펑 울고 있는데 엄마가 크게 웃으신다 엥 이게 뭐야 난 마구 속상해서 미칠 지경인데 엄마는 웃으시다니 ㅡ아이고 숙아 왜 그리 귀가얇노ㅡ 엄마는 남은돈 모두를 나에게 주시며 말하신다 어안이벙해서 엄마를 처다봤다 엄마는 웃으며 너 딸꾹질이 심히길래 깜짝 놀래켜서 딸꾹질 멈추게 하려고 그랬지 아이구 고생했다 무서웠제 엄마는 내 헝클어진 머리칼을 닦아 주신다 그러고보니 심하던 딸꾹질이 뚝 멈춰 있었다 정말 신기했다 딸꾹질이 잘 멈추지 않을땐 가슴이 시릿할때도 있었다
엄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했어요 난 입을 삐쭉 내밀고 쌜쭉하니 흘겨보며 꼬질 꼬질한 얼굴로 돈을 꼭쥔 눈물배인 손을 바지 주머니에 푹 찔러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