靈感
김 동 원
극도로 쇠약해 끝없이 따라가다 더 이상 몸 귀찮아 놓아 버리면, 우주 모든 물체가 갑자기 겨자씨보다 더 축약돼 버리는 놀라운 현상 경험하지. 휴우! 찰나나마 그땐 어찌 그렇게 평온한지, 거짓말처럼 그토록 아픈 몸, 텅 빈 우주 공간처럼 고요하디고요해져 버렸다. 어디서 들려 왔을까, 살고 싶다는 한 생각. ― 순간 너무 고통스러워 비명조차 지를 수 없던, 몸 뜯어지던 그 아픔. 천지간 뒤바뀐 엄청난 오장 경련, 불안 공포가 다시 엄습턴 그 놀라운 충격에, 난 그만 정신적 공황 속 빠져 버렸다.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는가, 긴 8년 간 투병, 수술, 어찌할 수 없는 인간 삶의 유한을 절감하면서 난, 인간과 우주의 거리를, 너와 나의 숨소리를, 그 들리지 않던 한밤중 막막한 존재의 거리를, 살려고 발버둥치다 알았다. 온갖 것 다 머릿속 달라붙어 소곤거리던 그 착시와 환시를, 나의 죄를, 릴케와 보들레르가 본 觀入을, 미당, 이백이 들나들던 물아일체 세계를, 생사의 벼랑 끝 매달려 벽이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 끝없이 빨려만 들어가던 몸 속 블랙홀. 아! 경이처럼 쏟아지던 눈물과 시의 영감이여! 그때 난 확연히 보았다. '우주 일체 만물이 하나'임을, 조화의 아름다움을, 생명의 건강성을, 그 위대한 자연의 이치를!
구멍
김 동 원
구멍은 어찌 보면 참 많은 것을 가졌다.―저 광활한 우주의 별들이 생겨나고 또 죽어서 스스로 돌아가는 몰락과 생성의 두 구멍이 있는가 하면, 우리 같은 수컷들이 알이나 새끼로 자라서 흘러 나오는 저 한정 없는 암컷들의 한없이 깊고 넓고 편안한, 그 한 길 구멍도 있다.
좁게는 부끄러운 짓거리를 했거나 크게는 온 나라를 망쳐서 말아 먹은 자들이 으레히 숨어서 들락거리는 쥐구멍 같은 것도 있고, 참 착한 것들이 두 귀를 쫑긋거리고 봄나들이 길을 나서는 그 아늑한 수풀가의 토끼 구멍도 있다.
구멍은 또, 여름 밤 도시 옆구릿길의 복개천 아래로 몰래 쏟아 놓은 퀴퀴한 인간들이 썩는 오물냄새 나는 수챗구멍에도 있고, 꽝꽝 얼어붙은 겨울 연못가 도랑 밑에 흐르는, 졸졸졸 소리 나는 맑은 봄기운을 흡입하는 그 생기 도는 버들 뿌리의 작은 공기 구멍에도 있다.
구멍은 어찌 보면 참 많은 것을 가졌다.―이따금 난 산이 몸부림치는 이상한 소리를 바람 부는 뒷산의 동굴 구멍 안쪽 벽에서 들었는데, 어찌 들으면 그 소리는 태초의 첫 구멍 내는 소리 같기도 하고, 또또 어찌 들으면 많이 쓴 구멍들의 흥건한 절정의 끄트머리에서 흘러 나오는 그 야릇한 소리로, 수만년 제대로 키워 온 자연의 그 순리 구멍의 신음쯤으로 알아들었다.
어쩌면 좋은가. 이 하늘과 땅의 그 많은 구멍 중에서 우리는 어떤 구멍을 가져야 하는가. 오뉴월 개도 걸리지 않는 삐삐거리는 콧물소리 내는 콧구멍이 되든가, 아니면, 달빛이 걸어가는 대숲 속에서 은은히 흘러 소리 되어 나오는 그 멋진 대금의 피리 구멍 가락이 되든가, 아니면 또, 저 동해 바다 한가운데를 마음껏 휘젓고 다니는 그 고래들의 마구마구 뿜어 올리는 무한 자유의 숨구멍이라도 되든가.
참으로 그 구멍이 하는 일은 아무도 모르는 일.―그러나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그 무슨 질퍽거리는 운명의 진흙 구멍 속에라도 들어가야만 하고, 또 그 구멍 밖으로 안간힘을 다해 기어 나와야만 한다. 마치, 저 백두산 천지 복판에서 날마다 힘차게 밀고 올라오는 그 생수 구멍의 당찬 힘처럼, 우리도 언젠가 한 번은 찬란한 기쁨의 인생을 위해, 온몸으로 어둠의 구멍을 뚫고 나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