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열렬한 책읽기>(청어람미디어)를 읽었다. 책읽기란 무엇인가, 문학은 “인류의 기억”이라고 한다. 그 기억은 마음과 삶의 기록이다. 그것이 없다면, 인류의 기억은 야만내지는 문명의(문화가 아니라) 기록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원제는 <열독적 연륜(閱讀的年輪)>이다. 읽은 이가 ‘열(閱)’하면서, ‘독(讀)’한 연륜의 모음이다. 여기서 ‘열’이라 함은 나와서 보았다는 것이고, ‘독’이라 함은 들어가서 보았다는 말로 읽힌다.
이 책은 말(言)의 다리를 통해 세상을 우리에게 알리는 글이다. 좋은 번역가가 넣은 좋은 부제처럼, 그의 책읽기는 세상을 읽는 것이고, 그것은 ‘인류’를 잘 기억해 기록하는 일이다. 동서양을 넘나든다는 진부한 표현이 이 책에서는 세계화라는, 세계와 인류의 읽기라는 뜻으로 새겨진다. 데이몬드 로리스, 쿤델라, 헤겔, 공자, 체 게바라, 백경서, 포르난두 페소아, 브레히트…. 이들이 지금 우리와 함께 인류를 구성한다는 뿌듯함 마음. 우리의 세상은 책을 통해 지금보다는 밝다.
2.
최선호의 <한국의 美 산책>(해냄)은 여행을 떠나기 전 우리가 한번쯤 알아야 할 것들을 알려주고 있다. 작가는 책 서두에서 “못 볼 것을 보면 볼 걸 못 본다”는 철학적인 언어로 우리를 유혹한다. 무작정 떠나는 여행도 의미가 있지만 미리 보고 떠나는 여행은 더 여유가 있을 것이다.
3.
한국은 세계의 종교 전시장이라고 한다. 원래 있던 민간 신앙에 삼국시대에 중국에서 건너온 불교, 유교, 도교가 섞였고, 나중에는 서양에서 천주교와 개신교도 들어왔다. “종교는 인류의 지혜로 피어난 꽃과 같습니다. 그 꽃에서는 인간을 성찰하게 하는 향기가 퍼져 나오죠. 또 종교는 사회·문화·역사의 바탕에 있는 거대한 바다와 같습니다. 그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는 사회와 문화를 만들고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 되지요.”
사계절 김나미<청소년을 위한 세계 종교 여행>
지은이는 어떤 나라의 문화와 민족, 역사를 이해하는 데 종교를 통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조로아스터교는 페르시아 제국, 유대교는 이스라엘 민족, 천주교는 로마 제국과 서구 중세, 개신교는 서구 근대, 이슬람교는 이슬람 제국, 힌두교는 인도, 불교와 유교는 아시아의 역사를 품고 있다. 책은 각 종교의 창시자, 경전, 역사, 교리 계율 신앙, 종파, 오늘날의 모습을 꼼꼼히 살핀다.
4.
명화들이 왜 대단한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림이 주는 느낌과 전하는 이야기는 암호 같고 큰 의미 찾기는 어렵다. 그림과 사람 사이엔 넘어설 수 없는 강이 있고 그 사이는 화해할 줄 모르는 거 같다. 하지만 <나도 타오르고 싶다>(2001. 한길아트)는 그림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며 편안하게 그림세상 속으로 초대를 한다.
벨라스케스, 루벤스, 렘브란트, 고갱, 고흐, 고야, 드가, 모네, 마네, 피카소, 마그리트, 샤갈, 모딜리아니, 달리, 클림트 등이 소개된 차례를 보면 화가라는 것은 알겠는데, 모네가 마네같고 고갱이 고흔지 헷갈린다. 아니, 어쩌면 난생처음 들어보는 이름들이 더 많을 수 있다.
멀게만 느껴지던 화가와 그림들을 지은이 김영숙씨는 엄마가 딸에게 알려주듯 자상하게 이런 저런 이야기보따리를 푼다. 그 이야기를 듣다보니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2006)이 생각난다. 최강희가 연기한 여주인공이 이 책을 보고 데이트했다면 모딜리아니를 알았을 텐데.
방종한 삶을 살았던 모딜리아니의 그림 속 여자들은 무표정하면서 목선이 길쭉하게 늘어나 있는데, 14살 연하의 아내를 그린 ‘잔 에뷔테른의 초상’(모딜리아니. 1918)은 왜 묘한 분위기와 눈빛을 지녔는지.
초기에는 밀레를 따라 그려보기도 했고 파리에 머물던 시절에는 쇠라로 대표되는 신인상주의의 점묘기법을 흉내 내던 고흐, 드디어 자기답게 그리기 시작한 그림에서 물감튜브 하나씩을 그대로 짜 바른 듯, 고흐를 무겁게 짓눌렀던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놀라운 두께, 어둡고 우울한 성격이지만 그 감성마저 매혹으로 표현한 그 색채.
어느 날, 서른다섯에 다섯 명의 자녀와 아내를 버리고 타히티라는 섬으로 ‘예술’하러 떠난 증권회사 직원, 고갱. 고요하고 평온한 색을 쓰지 못하고 캔버스를 뚫고 나올 듯 강렬한 색으로 화면을 뒤덮게 한 그를 덮친 운명.
거꾸로 세워진 자기가 그린 그림을 보고 놀라서 추상화를 개척한 칸딘스키, 전혀 엉뚱한 대상을 뜻하지 않은 곳에 둠으로써 낯설음을 불러일으키는 데페이즈망이란 기법을 잘 이용한 초현실주의자 마그리트, 옷을 입은 마야와 옷을 벗은 마야의 모델을 찾기 위해 무덤의 묘를 파헤치는 소동, 아름다운 꽃들을 늘 크게 그린 오키프, 사람들의 여러 해석을 두고 그냥 자신이 느끼는 대로 보면 된다고 한 피카소, 화가 난 군중들이 그림을 찢으려 했던 마네의 올랭피아, 빛의 대가인 렘브란트의 불우한 말년, 삐딱선을 타며 스페인 톨레도에 정착하여 그리스 양반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엘 그레코, 가난을 숭고하게 그린 밀레, 기존의 모든 가치들을 부정하고 예술운동인 다다이즘을 대변한 뒤샹과 유난히 발달한 서양 여자누드 이야기까지.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명화와 함께 있으니 그저 먼 예술이었던 그림이 어느새 가까운 감동이 되었다. 다정하고 친절한 문장들은 그림과 화가, 그리고 그림에 얽힌 배경을 속삭이며 설명해주는 나만의 안내원 같다.
‘가여운 우리의 달리는 성불능이었답니다. 대충 감이 잡히지 않습니까. 그림 속의 사물들이 왜 저렇게 다 처져있는지.’
‘유대인적인 신비주의, 꿈속을 헤매는 것 같은 분위기 때문에 아이들도 샤갈을 쉽게 좋아하지요. 우리 딸도 샤갈을 아주 좋아합니다. 제가 혼자서 미술공부를 시작한 것도 샤갈 때문이었지요. 한데 저희 남편은 샤갈보다 빼갈이 더 좋다더군요.’ -책에서
그림이 사는데 뭐 도와주냐고 물을 수도 있다. 마치 사랑이 밥 먹여주냐는 식상한 말과 비슷하게. 사는 재미는 자기하기 나름이다. 그림보기는 메마른 일상에 촉촉한 단비가 될 수 있다. 따사로운 오후, 가벼운 차림으로 곳곳에 숨어있는 미술관으로 봄마중 가는 건 어떨까.
5.
훗날 미술사에 길이 남은 걸작은 당대 사람들에게 숙명처럼 ‘추하다’는 손가락질을 받았던 모양이다. 관람객을 도도하게 응시하는 창녀의 벗은 몸을 그린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는 ‘암컷 고릴라’, ‘시체 안치소의 주검’이라며 분노한 관람객이 휘두른 지팡이를 겨우 피했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최후의 심판〉 등장인물들은 ‘추한’ 알몸을 가리느라 허겁지겁 바지를 꿰입어야 했으며, 쓸쓸함과 연민이 느껴지는 에곤 실레의 누드화에는 ‘음란물’ 딱지가 붙었다. 소변기를 그대로 떼어내 뒤집어놓은 마르셀 뒤샹의 〈샘〉은 또 어떤가.
파블로 피카소는 새로움을 창조하려는 이가 짊어진 ‘필연적 추함’의 운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창조자는 엄청난 노력과 투쟁, 그 격렬함으로 말미암아, 또한 본인 자신도 창조하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그것을 추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천재를 뒤따르는 사람들은 그것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또 어떤 것을 만들려고 하는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 발명되었으니까.”
〈센세이션전(展)-세상을 뒤흔든 천재들〉은 바로 이 ‘추함’이 미술사의 고비마다 격발시킨 세기의 센세이션을 짚어간다. 관념 속에만 존재하는 이상적인 미의 틀에 맞춰 남루한 현실을 가리기에만 급급했던 당시의 지배적인 미술 사조를 ‘지금 여기’로 돌리고자 했던 이들이 책의 주인공이다.
낯선 것은 추했다. 오귀스트 로댕이 조각한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는 대중의 꿈과 욕망을 한껏 자극하고자 영웅이나 초인의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할 공공 조형물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낯설었다. 동맥이 드러난 두툼한 목덜미, 불룩 튀어나온 배에 잠옷 같은 수도복을 걸친 로댕의 발자크는 위대한 소설가보다는 막노동꾼의 모습에 가까웠다. ‘비대한 괴물’ ‘형체 없는 뚱뚱보’ ‘거대한 태아’ 등의 혹평을 받았던 이 작품은 오늘날, 돌덩어리에 갇힐 뻔했던 ‘진짜’ 발자크를 불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빚을 갚기 위해 전투하듯 글을 썼던 발자크의 고독하고 고통스러웠던 삶을 재현했기 때문이다.
낯설어서 추한 그림을 선보였던 미술가들의 면면은 계속 이어진다. 빈 대학 신관 대강당을 ‘외설스러운’ 그림으로 채운 구스타프 클림트, 금기 중의 금기였던 누드화를, 그것도 실존하는 여인의 누드화를 그려 관람객들의 위선과 욕망을 보란듯이 낚아버린 프란시스코 고야, 동성애를 양지로 끌어내 미술계의 또다른 금기를 깨뜨린 로버트 메이플소프 등등. 지은이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 관장은 책머리에 “위대한 예술가들이 진실을 바라보기를 겁내는 사람들의 편견에 맞서 투쟁하고 승리한 과정”을 그리려 했다고 밝혔다. 책 제목은 1999년 미국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열린 뒤 미국 사회에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센세이션전(展)’에서 따왔다고 한다. 손님의 눈치를 보는 장인에 불과했던 미술가의 틀을 깨고 살아 숨쉬는 개인으로서의 예술가를 찾으려 했던 이들의 투쟁은, 추하고 낯설었기에,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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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과 역사> 베진아 옮김/ 추수밭
1914년 11월 벨기에의 작은 마을 랑게마르크. 1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이곳에서 산 정상을 공격하던 2000명 이상의 젊은 독일 병사들이 영국군의 기관총 공격을 받고 전사했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자원입대를 했고, '위대한 과업'을 수행할 각오가 되어 있었으며, 배낭 속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가지고 다녔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비롯한 문제작들을 통해 19세기 말 독일과 유럽 문명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파악했다. 그에게는 인류 전체나 계급보다 한 인간, 즉 개인이 중요했다. 니체는 이를 '초인(超人)'의 개념을 내세워 설파했다. 그러던 중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많은 젊은이는 그 전쟁을 1870~1871년 벌어졌던 보불전쟁과 같은 영웅적인 모험으로 생각했고, 그 속에서 소시민적인 시대의 종말과 새롭고 영웅적인 존재의 출현을 보았다. "그들은 보불전쟁을 돌아보면서 햇빛 속에서 반짝이는 흉갑(胸甲)과 바람에 나부끼는 기사들의 투구 장식 등 뭔가 목가적인 장면을 떠올렸다."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이론을 풀어쓴 '특수 상대성 이론과 일반 상대성 이론에 관하여'는 뉴턴으로 대표되는 고전물리학의 종언을 고하고 새로운 물리학의 도래를 알린 저작이다. 1927년 아인슈타인은 덴마크 출신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와 양자역학을 둘러싸고 '보어-아인슈타인 논쟁'을 벌였다. 아인슈타인은 보어 때문에 세계가 우연성과 개연성으로 와해되고 있다고 여겼다. 그는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통해 세계가 우연성의 집합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려 했다. 그러자 보어는 '주사위 놀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고 응수했다. "세계는 세부적인 부분들로 분열되어 있을까, 아니면 하나의 통일체를 형성하고 있을까"라는 문제는 물리학자들을 달라이 라마, 신학자, 철학자들과의 논쟁으로 내몰았다. '신이 세계를 가지고 주사위 놀이를 하는가?'라는 의문, 즉 '세계는 우연과 혼란인가, 아니면 필연성과 조화인가?'라는 의문이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저널리스트들이 펴낸 이 책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즉 이집트의 사후(死後)세계 여행안내서인 '사자(死者)의 서(書)'부터 자아실현에 대한 동경을 담은 '해리 포터'까지 인류가 기억해야 할 책 50권을 선정하고, 그 책들이 역사·문화·정치 등에 끼친 영향들을 살피고 있다. 책의 구성·줄거리와 더불어 시대적 배경, 저자의 사상과 생애, 연관된 읽을거리 등을 담았다.
저술된 연대기 순서로 배열돼 있는 책들은 몇 가지 범주로 나뉠 수 있다. 첫 번째, '구약성서' '신약성서' '코란' '논어' 등 세계 종교의 기초가 되는 서적들이다.
두 번째는 우주물리학(코페르니쿠스의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 인간 신체(왓슨과 크릭의 'DNA의 구조'), 인간 정신(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등 자연의 비밀을 규명하고 그 과학적 근거를 밝혀낸 획기적인 서적이다.
세 번째는 인간의 사고 구조나 사회적 행동의 기초를 다룬 서적(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루소의 '사회계약론',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다.
마지막으로 서사시(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소설(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희곡(실러의 '군도', 괴테의 '파우스트',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등 문학 작품이 있다.
책의 파급 효과가 저자의 소망과 일치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심지어 저자가 원하는 방향과 반대되는 결과가 벌어지기도 했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이 그렇다. "장차 자신의 책이 국가사회주의에서 스탈린주의에 이르는 20세기의 가장 끔찍한 이데올로기들을 정당화하는 데 쓰일지 알았더라면, 철학자 헤겔은 아마 경악에 몸서리치다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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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의 <동양학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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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건축가다> 김현우 옮김/현암사.
건축은 그림보다 조각에 더 가깝지만,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 등 파격적인 곡선의 건물들을 설계한 건축가 프랭크 게리는 조각보다 그림에서 영감을 얻는다. "조각가보다 화가에게서 더 많은 걸 배웠어요. 회화 특유의 부드럽고 깊은 화면을 정말 좋아해요."
저자는 "대부분의 스타 건축가들의 흥미를 끄는 것은 형식적인 측면보다 건축이 어떻게 삶을 다르게, 더 낫게 이끌 수 있는가 하는 문제"라고 말한다. 건축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타인의 인생역정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에게 권한다.